빌립보서 2:19-24 너 밖에 내게 없다

관리자
2019-09-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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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너 밖에 내게 없다 / 빌2:19-24


예루살렘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는데, 간헐천입니다.

간헐천에는 정확한 시간의 간격을 두고 물을 품어내는 규칙적 간헐천이 있고, 언제 물이 솟구쳐 올라올지 모르는 불규칙 간헐천이 있습니다.

베데스다 못은 불규칙 간헐천입니다.

온천물은 피부병이나 신경통에 효험이 있는 경우가 많은데

누군가! 베데스다 연못에서 씻어 피부병이 나았는데, 이때가 물이 솟구쳐 오를 때였을 것이고,

이 말이 사람들에게 “천사가 내려와 물을 휘저을 때에, 물에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든지 낫는다.” 하는 말로 퍼져나갔을 것입니다.


이 베데스다 연못의 치료효과는 신통치 않은 듯합니다.

“물이 동할 때에 들어가는 자는 다 낫는다.” 가 아니라. “제일 먼저 들어간 사람만 낫는다.”하는 인색한 조건이 붙어 있기 때문입니다.


마땅한 치료 시설이 없던 시절!

치료 받기 위하여 어떠한 것도 할 수 없던 시절!

많은 병든 사람들이, 물이 동하기를 기다리며, 제일 먼저 못에 들어가 병 고침을 받아야 하겠다는, 매우 희미한 소망을 가지고 물려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들이 모여 있는 베데스다 연못의 38년 된 병자를 찾아오셨습니다.

이 병자는! 물이 동할 때마다 “제일 먼저 못에 들어가야지!” 생각은 하였지만, 한 번도 제일 먼저 들어간 적이 없습니다.

38년, 긴 세월이 지나면서, 병은 더 악화 되었습니다.

앞으로도 물이 동할 때에, 제일 먼저 물에 들어갈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도, 베데스다 못가에 머물러 있습니다. 특별히 갈 곳도 없기 때문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에, 많은 병자들이 고침의 소망을 가지고 오지만,

실제는 소망 없는 장소입니다. 절망의 장소입니다. 의미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장소입니다.



예수님께서, 38년 된 병자를 향하여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병자는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대답을 합니다.


예수님께서! 믿음을 보시고, 병을 고쳐 주시고, 역사하시는데

예수님께서 “네가 낫고자 하느냐?” 물으시면

“주님! 제가 믿습니다. 주님께서 저의 병을 고치실 수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이렇게 믿음의 고백을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38년 된 병자는

“주여!”라고 고백은 하지만

“물이 움직일 때에, 내 힘으로는 제일 먼저 들어갈 수가 없습니다.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내가 물에 들어가려 하면, 이미 다른 사람이 먼저 들어갔습니다.

이렇게 38년을 살았습니다.

나를 도와주세요. 은혜를 베풀어 주세요!

물이 동할 때에, 제일 먼저 나를 물에 넣어 주세요!”

엉뚱하게 대답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믿음이 하나도 없는 38년 된 병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말씀하시고, 고쳐주셨습니다.



히브리어의 벧은 집이고, 헤세드는 자비 • 은혜입니다. 벧헤세드, 베데스다는 자비의 집 • 은혜의 집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데스다 • 은혜의 집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치신 것은

“네가 낫고자 하느냐? 네가 구원 받고자 하느냐? 네가 영생 얻고자 하느냐?

사람의 힘으로, 능력으로, 노력으로, 수고로 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된다.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로 된다.

하나님의 역사하심으로 된다.” 말씀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5장에

“오래된 환자다. 장기 환자다.” 말씀하지 않고, “38년 된 환자다.” 말씀하신 것은!

38년이란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신 2:14)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이라.”

이집트에서 400년 종살이 하던 이스라엘이 구원을 받았고, 광야에서 40년 생활 하였습니다.

홍해바다를 건너고, 시내산에서 계명을 받고, 가데스 바네아까지 이르는데 2년이 걸렸습니다.

가데스바네아에서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가 38년입니다.

38년은!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 계약,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광야생활한 기간입니다.


이스라엘은!

농사를 지어 양식을 구할 수 없는, 물을 구하기 힘든, 낮에는 매우 뜨겁고 밤에는 매우 추운,

작지만 맹독을 가진 뱀과 전갈이 있는 광야에서 38년을,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광야 생활을 마칠 때에 주신 신명기서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은혜를 잊지 말라!

여호와는 너를 이집트, 종 되었던 땅에서 이끌어 내셨다.

너를 인도하셨다.

너를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다.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로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다.

여호와의 은혜를 잊지 말라! 여호와께 감사하라! 여호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라!”



오늘!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로

영원한 나라 • 생명의 나라 • 영광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 아들을 내어 주신 하나님의 극진하신 사랑하심과

• 인간의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내가 불의함으로 받아야 하는 저주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시고

내가 허물로 받아야 하는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시고

죄 값은 사망입니다. 내가 죄로 죽어야 하지만,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심으로

내 모든 죄를 씻어 주시고,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한량없으신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시 23편)

“원수가 나를 해하려 합니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시고,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지키시고, 의의 길로 인도하십니다.

내 평생에,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와 함께 하시고

나의 삶이 마쳐진 후에도,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거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 세상 끝 날까지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 천국 문에 이를 때까지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앞으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 것입니다.

• 외국인과 나그네 인생, 광야와 같은 이 세상의 삶을 마칠 때에,

우리 주님의 영접함을 받고,

우리 주님께서 친히 예비하신 생명의 나라, 영광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주님과 함께 살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38년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베데스다 38년 된 병자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았습니다.

지금까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고, 앞으로도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찬양) “은혜 아니면 살아 갈 수가 없네!”




믿음이 좋고, 신실한 한 성도가!

상황이 어렵고 답답하여, 기도원에 올라가, 얍복강의 야곱처럼 하나님과 담판을 기도의 씨름을 시작하였습니다.

깊은 밤! 아무도 없는 산에서 간절히 기도하다, 두 손을 입에 모으고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나의 기도를 들어주세요!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 성도의 부르짖은 기도가, 곧 메아리가 되어 돌아오는데,

하나님께서 응답하시는 말씀으로 들렸습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들어줘! 내가 네게 부탁한 사명을

도와 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에, 나의 교회를 세우는 일에 충성함으로!”


“주세요!” 부르짖던 이 성도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가 내게 족합니다.” 고백하며

주님께서 주신 사명을 붙잡고 산을 내려왔습니다.

더욱 주의 일에 힘쓰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의 은혜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 하나님의 인도하심,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도!

우리가 필요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택하신 사람 • 부르신 일꾼 • 충성된 제자를 통하여 하나님의 일을 하십니다.


죄 가운데, 멸망을 향하여 가는 인류를 구원하시는 구속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한 아브라함을 통하여 시작하셨습니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시고 구원하시는 일을

모세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보내셔서 역사하셨습니다.



이사야 선지자 시대에 예루살렘에는,

기름 부음을 받은 많은 제사장과 선지자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숭배하며 온갖 악을 행하는 북 이스라엘을 심판키로 하시고

앗시리아 제국을 일으키셔서, 사마리아 성을 함락시키시고, 이스라엘 왕국을 멸망시키셨습니다.

남쪽 유대 나라는 지키시려고,

제사장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시는 바른 제사를 드리게 하고

선지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여 회개하고 돌아오게 하려고

바른 제사장 • 바른 선지자를 찾으시는데, 아무리 찾아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사 6:8)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내가 보낼 사람이 이렇게 없느냐? 나의 일을 할 사람이 이렇게 없느냐?”

이 때에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응답한 이사야가, 하나님께 사용되었습니다.



남 유대 나라가, 바벨론 제국에 망할 때에도

수많은 제사장, 선지자가 있었지만, 하나님께서

(렘 14:14) “나는 그들을 보내지 아니하였고 그들에게 명하거나 이르지 아니하였거늘

그들이 거짓 계시와 복술과 허탄한 것과 자기 마음의 속임으로 너희에게 예언하도다.”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만이, 하나님이 택하시고 세우시고 사용하시는 참 선지자였습니다.




본문의 말씀은!

네로 황제는, 로마시에 일어난 대형 화재의 책임을, 그리스도인들에게 덮어씌우고

붙잡아 온 성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화형을 시키고, 원형경기장에서 맹수의 밥이 되게 하여,

로마 시민들의 분노를 가라앉히기 위한 서커스를 하고 있습니다.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 바울도, 곧 처형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에게 있어서 죽음 • 순교는!

외국인과 나그네 인생을 마치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히 영광 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리고, 믿음을 지켰기에 – 의의 재판장 되시는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께 의의 면류관 •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날입니다.


사도 바울은!

죽음이 두렵지 않습니다.

죽는 것을 염려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이 염려하며, 걱정하며, 근심하는 것은?

“나는 곧 주님께로 떠날 것인데,

누가 주님의 양무리를 돌아볼까?

누가 주님의 교회를 지킬까?

누가 주님의 생명의 복음을 전할까?”



딤후 4장에

“데마는 이 세상을 사랑하여 나를 버리고 데살로니가로 갔고, 그레스게는 갈라디아로, 디도는 달마디아로 갔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구리 세공업자 알렉산더가 내게 큰 해를 입혔다.

디모데야! 겨울이 오기 전에 속히 내게 오라.”


죽음을 앞에 둔 이 시간에, 모두가 떠나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만 곁에 있습니다.

믿음의 아들 디모데가 보고 싶습니다.

많은 제자가 있지만, 자기 일을 구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자기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그리스도 예수의 일을 구하였습니다.

사도 바울과 같은 마음과 뜻으로,

“놀라우신 하나님의 사랑과 크신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받고, 복음의 빚진 자의 마음으로 복음을 증거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거 하는 일에는 자기의 생명을 조금도 귀히 여기지 아니하고

살든지 죽든지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였습니다.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1차 전도여행 때에

갈라디아의 루스드라에서 복음을 증거 하는데

하나님께서 놀라운 능력으로 역사하셔서, 날 때부터 걸어 보지 못한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였습니다.

이를 본 루스드라 사람들은, “제우스와 헤르메스 신이, 사람의 모습으로 오셨다” 말하며

소를 끌고 와, 사도 바울에게 제사를 지내려 하였습니다.


깜작 놀란 바울은

“여러분! 나는 여러분과 같은 사람입니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세상을 사랑하시고 구원하시려

아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인간의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 값을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죄가 용서함을 받습니다. 의롭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으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루스드라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파하며 지나왔던 비시디아 안디옥과 이고니온에서 올라온 열성적 유대인들이 몰려와, 루스드라 사람들을 선동하였고

쉽게 휘말린 루스드라 사람들이, 바울을 향하여 돌을 던졌습니다.

돌에 맞고 쓰러진 바울이 죽었다고, 거적에 말아, 성 밖에 내다 버렸습니다.


다음 날,

사도 바울은, 온 몸이 터지고 찢어진 채로 일어나

루스드라 교인들에게

“예수님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많은 고난과 환란을 받아야 합니다.

더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위로를 받아야 하는 사도 바울이, 오히려 교우들을 위로하고 더베로 떠났습니다.


몇 달이 지난 후

사도 바울은 루스드라에 다시 들려, 주님의 위로와 평강을 전한 뒤에

안디옥으로 돌아감으로 1차 전도 여행을 마쳤습니다.



몇 년 뒤

2차전도 여행 때에, 루스드라와 더베를 다시 방문하였는데

루스드라와 더베 교회의 교우들로부터, 칭찬을 듣는 디모데라는 청년이 있습니다.

1차 전도여행 때에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의 말씀을 들었고

복음을 증거 하다 돌에 맞아 쓰러진 것을 보았고

일어나, 오히려 교우들에게 복음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더베로 가셨고

더베에서 다시 오셔서 복음의 말씀을 가르쳐 주셨습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로부터 복음의 말씀을 들었고,

생명을 걸고 복음을 증거하는 것을 보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은, 생명을 걸고 믿어야 하고, 생명을 걸고 전해야 하는 소중한 것임을 깨달았고

믿음이 자라고, 신앙이 성장하여,

온 교우들에게 칭찬 듣는 귀한 믿음의 청년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진실하고 칭찬 듣는 믿음의 청년 디모데를 데리고

2차 전도여행을 함께 하였습니다.

3차 전도여행도 함께 하였습니다.

로마로 압송되는 4차 전도여행 때에는 에베소에서 목회를 하고 있었습니다.


1차 전도여행, 사도 바울이 디모데를 만난 해가 주후47년 쯤

2차 전도여행, 사도 바울이 디모데와 함께 전도 여행을 시작한 해가 주후49년 쯤

사도 바울이, 순교한 해가 주후65년 쯤입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 하다

- 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돌에 맞고, 배가 파선 되어 깊은 바다 위에 지내고, 강도를 만나고, 유대인으로부터 온갖 위협을 당하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목마르고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죽기까지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저는 예수님의 제자입니다.” 다짐하고 맹세했던 많은 이들이 떠났는데

디모데는! 16년 동안 바울의 곁을 떠나지 아니하고

아들이 아버지에게 함과 같이

바울과 함께 온갖 고난을 당하고, 환란과 핍박 가운데서도 복음을 위하여 수고하고 애썼습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에게 믿음의 아들이고

우리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이고

주님의 몸 된 교회에서 충성 된 일꾼입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벤셀라 선교사를 시작으로, 하디 무스 등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 왔습니다.

이들 선교사의 삶을 두 단어로 요약한다면 “버린다.”와 “잃는다.”입니다.

당시 미국 국민의 1%가 대학졸업자였습니다.

목사와 의사들은, 대학원까지 졸업한 최고의 학벌을 가진 이였습니다.

그러나, 자그마한 회사의 신입사원 정도의 급여에 만족하며,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언더우드 목사님은 1,500달러 연봉을 제시한 ‘Long Island 장로교회’ 목사 청빙을 버리고

한국에 와 600달러의 연봉을 받았습니다.

선교사가 된다는 것은! 이렇게 포기하고 내려놓는 것이고,

선교사역을 계속 감당하는 것은 “‘포기 한다’는 것조차 포기하는 것”입니다.


많은 선교사들이!

한국에서 선교할 때에,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마마 홍역과 여러 가지 질병으로 - 아이, 아내, 그리고 본인조차 생명을 잃어버리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러나, 선교사들의 이러한 “포기와 잃어버림”을 통하여

한국 땅에 복음이 전파되었고, 복음이 흥왕하게 되었고, 세계 선교사상 유래가 없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었습니다.



오늘날! 크게 성장한 한국교회는, 힘없는 교회 • 무기력한 기독교가 되어 가고 있습니다.


디모데는 자기 일보다 하나님의 일을 우선하는 하나님 중심의 삶을 살았습니다.

디모데는 주님을 위하여 • 교회를 위하여, 버리는 삶 • 잃어버리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예수 그리스도의 일꾼이라고 말하는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 일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따르기보다 세상의 것을 따라갑니다.

고난 없이 영광을 받으려 하고, 버리는 것 없이 얻으려 하고, 잃어버리는 것 없이 채우려 합니다.

입으로는 “주여! 주여!” 하지만,

손이 움직이지 않고, 몸은 따르지 않고, 삶으로 행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나를 위하여 갈꼬?

누가 나의 충성된 일꾼이 되겠느냐?

누가 나를 따르는 진실 된 제자가 되겠는냐?

누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겠는냐?” 찾고 계십니다.


(찬양) - “주여 나를 가르쳐 주 일꾼 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