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2:25-30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된 자

관리자
2019-1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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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 / 빌2:25-30


예수님을 핍박하고, 성도를 박해하고, 교회를 헐던

베냐민 지파이고, 바리새인이고, 최고의 랍비라는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하였고, 대제사장의 총애를 받고, 차세대 유대사회의 지도자인 사울이라는 젊은이가

예수님을 만났고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이심을 확실하게 믿었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 구원의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 바울이 되었습니다.

이때가 주후 33년이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 교회의 파송을 받고,

키프로스와 갈라디아 지방의 루스드라, 더베 등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이것이 1차 전도여행이고, 주후 47년쯤입니다.


사도 바울은! 2년 후인 49년 쯤, 2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갈라디아를 거쳐 무시아 지방의 드로아 • 트로이에서, 배를 타고 유럽의 마케도니아로 건너갑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넘어간 것입니다.


역사학자 토인비는! 사도 바울의 이 여행을 가리켜, “유럽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여행이다.” 평가하였습니다.


사도 바울 전도대는,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파하였고, 곧 열매가 맺혔습니다.

고운 자색 옷감 장사를 하는 루디아를 비롯하여 많은 이들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신앙과 재력이 있는 루디아의 후원으로, 사도 바울은 오직 복음전파에 전념할 수 있었습니다.

세워진 빌립보 교회는 크게 부흥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마케도니아의 데살로니가, 베뢰아에 복음을 증거하고 교회를 세웠고

아가야 지방으로 내려가 아테네, 고린도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고린도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감으로 2차 전도여행을 마쳤습니다.


3차 전도여행은

아시아의 에베소에서 3년을 목회하였고

마케도니아, 아가야 지방의 교회를 순회할 때에,

가늘 길, 오는 길에 빌립보 교회를 2번 방문하였습니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한 사도 바울은

유대인의 고소로 체포되어, 총독부가 있는 가이사랴의 감옥에 2년 수감 생활을 하며 재판을 받고

로마의 시민권자로 황제에게 재판을 받고자 상고하여, 사슬에 묶여 로마로 압송됩니다.

사도 바울의 4차 전도여행입니다.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이방인을 위한 택한 그릇으로,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 사명을 받았습니다.

바울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 시간부터, 사도로 • 복음 전하는 자로 • 사명자로 살았습니다.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

성령 하나님께서 “결박과 환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 알려 주셨는데

사도 바울은!

(행 20:24) “내가 달려갈 길과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하나님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 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노라.”

사명을 놓지 않았습니다.



노구를 이끌고 로마의 감옥에 갇혀 지낼 때에

“(딤후 4:6) 전제와 같이 내가 벌써 부어지고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사도 바울은!

거동도 불편해진 노인이고, 감옥에 갇혀 있고, 이 세상을 떠날 시간이 가까워졌습니다.

그래도

바울은 사도이고, 사명자이고, 복음 전도자로 마지막 남은 불꽃을 태웁니다.


사도 바울이 감옥에서 할 수 있는 것!

이 땅에 세워진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위하여,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일입니다.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간절히 기도하였습니다.


기도하는 것 외에 할 수 있는 또 한가지!

직접 가서, 만나 -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서로 사랑하며, 소망으로 달음질 하라” – 권면하고, 위로할 수는 없지만

편지를 써서 권면하고 위로하는 일입니다.

사도 바울과 동행하였고,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한 의사 누가가 대필하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나누고 있는 빌립보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빌립보교회를 향하여 쓴, 기도와 권면과 위로의 편지입니다.

그래서

감옥에서 쓴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빌립보서”를 – 옥중서신이라 부릅니다.


“사랑하는 빌립보 교우들이여!

여러분을 처음 만났을 때부터

여러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였고

나와 함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은혜에 참여하였고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우들이여!

내가 감옥에 갇혀 지낸다는 것을 듣고, 여러분들이 마음 아파하지만

하나님께서 역사하고 계십니다.

나를 지키는 로마 황실의 시위대 가운데 복음의 말씀이 전파되고 있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내가 갇혀 있는 것은 보고, 용기를 얻어 담대하게 복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하고 또한 기뻐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로 달려가, 빌립보 교우들을 만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 위에 굳게 서라 권면하고

이 세상의 어떠한 것과도 비교할 수 없는 영광에 이르려면, 주님을 위하여 고난도 받아야 한다는 소망의 말씀으로 위로하고 싶지만

로마의 감옥에 갇혀 지내는 영어의 몸이라 갈 수는 없어,

대신 편지와 함께 디모데를 보냅니다.


디모데는 2차 전도여행 때에 갈라디아의 루스드라 더베 교회에서 온 교우들에게 칭찬 듣는 진실한 그리스도인 청년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를 전도대에 합류시켜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에 이르러

함께 복음을 전파하고, 함께 교회를 세우고, 교회가 부흥하도록 함께 수고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생명의 복음을 전하여 준, 사도 바울을 사랑할 뿐 아니라 디모데도 사랑합니다.

사도 바울을 존경할 뿐 아니라 디모데도 존경합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너희 사정을 누구보다 잘 알며, 너희를 위하여 누구보다 간절히 기도하는 디모데를 보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라는 이가 많지만 모두 자기의 일을 구합니다.

그러나, 디모데는 자기의 일을 구하지 아니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구하며,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수고한 자입니다.

디모데는 나의 믿음의 아들입니다.

자식이 아버지에게 하는 것처럼, 나와 함께 복음을 위하여 힘썼습니다

디모데를 잘 영접하고, 디모데가 가르치는 복음의 말씀을 잘 듣고, 지켜 행하십시오!”




지난 주에 나눈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빌립보 교인들은, 자신들에게 구원의 복음, 생명의 복음, 영광의 복음을 전해 주신 사도 바울이

노구를 이끌고, 로마의 지하 감옥에 갇혀 계시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로마의 감옥에서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신 바울 사도님을 위하여 우리도 기도합시다.

우리가 바울 사도님의 가르침대로, 더욱 열심을 품고 예수님을 사랑하고, 우리 빌립보 교회를 섬깁시다.

지금 로마의 차가운 지하 감옥에 갇혀 계시니 얼마나 힘드시겠습니까?

우리가 옷가지와 음식과 필요한 것을 넣어 드리면 어떻겠습니까?

우리 가운데 한 사람을 보내어 바울 사도님의 옥바라지를 하게 합시다.” 결의하였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 사도를 위하여 헌금을 하고

헌금을 가지고 로마에 가, 바울 사도에게 전달할 뿐 아니라, 머물며 옥바라지를 할 사람으로

진실한 사람, 성실한 사람, 믿음의 사람인 에바브로 디도를 택하여 보내기로 하였습니다.



간혹, 어떤 교회의 재정 담당자가, 교인들이 정성으로 헌금한 돈을 횡령 • 유용 하는 일이 있습니다.

주보에 헌금자 명단을 기록하는데

“교회도 세상과 똑같아서, 돈 내는 사람의 이름을 주보에 싣는다.” 간혹 투덜거리며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주보에 실린 헌금자 명단은 영수증과 같습니다.

주보에 실린 자기 이름을 보고 “지난 주간에 드린 헌금이 하나님께 잘 드려졌구나!” 확인하는 것입니다.


10여 년 전, 100주년 기념교회당을 건축 할 때에

주일에 건축헌금을 드린 이름과 총액수와 누계를 주보에 실었습니다.

한 교우가, 자신이 드린 헌금보다, 총액이 작은 것을 발견하고

“말할까? 말까?” 한참을 고민하다, 저에게 말씀하셨습니다.

확인을 해 보았더니, 헌금은 바르게 입금 되었습니다.

주보에 올릴 때에, 액수에 0 하나를 빠뜨렸습니다.

재정사고가 아니고, 타자 오류였습니다.


헌금을 드렸는데 주보에 이름이 빠졌을 때에 ‘누가 떼어 먹었는가?’ 고민하지 마시고, 즉시 말씀하십시오.



여리고 성을 정복하였을 때에 아간은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욕심에 눈이 멀어 금은 보화를 몰래 숨겨 두었습니다.

오래지 않아 그의 죄가 드러났고, 아간은 아골 골짝에서 돌로 쳐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엘리사의 종이었던 게하시는,

엘리사 선지자 모르게, 문둥병에서 씻음을 받은 나아만 장군에게 가서 금 은 보화를 받아 숨겨 두었습니다.

그의 죄는 곧 드러났습니다.

나아만 장군이 벗어 버린 문둥병을 그가 짊어지게 되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는 전 재산을 팔아 하나님께 드리기로 하였지만,

아까운 생각이 들어 절반을 숨겨 두고 “이것이 저희의 모든 재산입니다.” 헌금을 드렸습니다.

“이것이 저의 재산의 절반입니다.” 말하면 될 터인데, 거짓말을 하였고, 곧 거짓말이 탄로가 났고, 부부는 한 날에 죽었습니다.


우리가 필리핀에 세운 좋은 교회에

목사님께서 교회 책상을 구입하기로 하고,

청년 하나에게 돈을 주고 책상을 사오라 하였는데, 사라져 오지 않았답니다.




에바브로 디도는!

빌립보 교우들의 정성을 가지고, 빌립보에서 로마까지 긴 여행을 잘 하였습니다.

로마에 도착해서, 즉시 바울에게 빌립보 교회의 정성을 전달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옥바라지도 잘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25)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나의 쓸 것을 돕는 자라.” 칭찬합니다.



얼마 있다 문제가 생겼습니다.

:26)“자기 병든 것을”

:30)“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

에바브로 디도가 죽음의 문턱까지 이르는 중병에 걸렸습니다.

사도 바울을 돌보기 위하여 온 에바브로 디도를

오히려 사도 바울이 돌보아야 하였습니다.


이 소식을 들은, 빌립보 교인들은 크게 걱정하게 됩니다.

바울 사도를 돕는다고 보냈는데 돕기는커녕,

오히려 바울 사도님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드린 것입니다.



병이 든 에바브로 디도도 걱정입니다.

:26)“자기 병든 것을 너희가 들은 줄을 알고 심히 근심한지라.”

사랑하고 존경하는 바울 사도님을 돕기 위하여 멀리 빌립보에서부터 왔는데,

도움은커녕 커다란 짐이 되었습니다.

빌립보 교회가 자신을 믿고, 바울 사도님을 잘 섬기라고 파송하였고, 자신도 그렇게 하기 위하여 왔는데

중병에 걸려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으로 인하여, 자신을 파송한 교회에 오히려 큰 염려를 끼치게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도 걱정입니다.

에바브로 디도가 빌립보에서부터 와서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고, 최선을 다하여 섬기고, 많은 수고를 하였는데

갑자가 병이 들어 죽을 것 같아 걱정이고

에바브로 디도가, 병들어 사도 바울에게 큼 힘이 되지 못하는 것을, 너무도 안타까워 하는 것이 걱정이고

빌립보 교우들이, 에바브로 디도가 병이 들어, 사도 바울에게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무거운 짐을 지워 드린 것을 나무도 안타깝게 여기고 있는 것이 걱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에바브로 디도가 병에서 나았습니다. 건강해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빌립보 교인들이 자신을 위하여 헌금도 하여주고, 사람까지 보내어 돌보아 준 것에 감사하며 에바브로 디도를 빌립보로 돌려보내기로 하였습니다.

빌립보 교인들은, 에바브로 디도가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온 것을 보면 기뻐할 것이고,

에바브로 디도는 빌립보 교회의 일꾼으로, 자신의 옥바라지를 하고 있어서는 안 되고, 교회를 섬기고, 교회에서 충성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29) “너희가 주 안에서 모든 기쁨으로 에바브로 디도를 영접하라.”

:30) “그리스도의 일을 위하여 죽기에 이르러도 자기 목숨을 돌아보지 아니하였다.”

혹시라도

“너는 바울 선생님을 도우라고 보냈는데, 무거운 짐만 되어 드렸냐?

바울 선생님이 옥에 계시는 동안 잘 돌보아 드려야 하는데, 벌써 왔느냐?” 책망할까

에바브로 디도를 보내며 “기쁨으로 영접하라!” 권면합니다.




처음 사람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아담의 후손 된 온 인류는 죄의 종, 멸망의 자녀, 저주 받은 족속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를 원하시는 성부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아들 • 성자 하나님을 내어 주셨습니다.


인간의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내가 불의함으로 저주를 받아야 하지만,

(신 21:23)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예수님께서 내가 받아야 하는 저주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내가 불의함으로 형벌을 받아야 하지만,

(사 53) “형벌 받을 내 백성의 허물 때문에 징계를 받으셨다.”

예수님께서 가장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 사형틀에서 형벌을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내가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신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습니다.


성부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으로

예수님을 믿기 전에는 - 죄의 종 • 멸망의 자녀 • 저주 받은 족속 • 하나님과 원수였지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 • 하나님 나라의 백성 • 천국의 시민이 되었습니다.

(엡 2:16) “십자가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셨느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엡 2:13-14)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그리스도 안에서, 주님의 몸 된 교회 안에서

우리 모두 • 세상 사람들 모두가 화목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 하나님 안에서 한 가족이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교회를 세우신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회 안에서

마음을 같이하여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송을 드리고, 함께 봉사하고, 서로 사랑의 사귐과 교제를 나누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아름다운 교회는

믿음의 역사 • 사랑의 수고 • 소망의 인내가 있는 교회입니다.


그런데

평안하지 않은 교회가 많습니다. 다투고 싸워 아파하는 교회가 많습니다. 싸워 분열하는 교회도 있습니다.



우리가 나눈 본문의 말씀에서

어떻게 하면 아름다운 교회 • 평안한 교회 • 성령 하나님께서 강하고 뜨겁게 역사하는 교회 • 부흥하는 교회가 될 수 있을까를 보게 됩니다.

목회자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교우와 에바브로 디도를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과 에바브로 디도를

에바브로 디도는! 사도 바울과 자신을 보낸 빌립보 교회 교우를

몹시 사랑합니다.

사랑 가운데 이해하고, 배려하고, 격려합니다.


사도 바울은 참 목자이고

빌립보 교회의 교우들은,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로 달려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고

에바브로 디도는 주님을 따르는 참 제자입니다.


(고후 5:18)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책을 주셨으니” 말씀처럼

목회자, 교회, 교회의 교우 모두가 “화해, 화목, 화평”을 이루기 위하여 힘쓰고 있습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은혜와 복을 부어 주셨습니다.



옛날, 어느 마을에 김 서방네와 이 서방네가 이웃에서 살았습니다.

두 집 모두 - 식구 수도 고만고만하고, 가진 살림도 고만고만한데,

딱 한 가지 다른 것은

김 서방네 식구들은 서로 사이가 나빠서 허구한 날 싸우면서 살고,

이 서방네 식구들은 서로 사이가 좋아서 날마다 웃으면서 삽니다.


동네 사람들도 두 집안 사정을 다 알기 때문에

큰 소리, 시끄러운 소리가 나면 “김 서방네 집에서 또 싸움을 하는 게로군”

하하하 하는 큰 웃음소리가 들리면 “이 서방네 집에서는 또 재미난 일이 생겼나 보군” 하였습니다.


하루는

김 서방네 소가 온 동네 밭을 휘젓고 다니며 곡식을 다 망쳐 놓았습니다.

김 서방이 언덕 위에 소를 매어놓았는데, 줄이 풀리면서 소가 온 동네를 헤집고 다닌 것입니다.

식구들이 간신히 소를 잡아 외양간에 매어 놓았습니다.

이어서 식구끼리 큰 싸움이 벌어졌습니다.

“야, 이 여편네야! 아침에 소여물을 어떻게 주었길래, 소가 배가 고파 날뛰어 끈이 풀어지게 만들었는가!” 김 서방이 아내를 나무랍니다.

“너는 눈을 어디에 달고 다니기에 소 코 밑에서 빨래를 하면서 고삐 풀리는 것도 못 봤냐?” 아내는 며느리를 나무랍니다.

“여보, 당신은 뭐하는 사람이 소가 풀을 다 뜯어먹도록 옮겨 매지도 않고 그냥 두었어요?” 며느리는 제 남편을 나무랍니다.

“아버지가 소고삐를 단단히 매어 두었으면 이런 일이 생기지 않았을 것 아닙니까?” 아들은 제 아버지를 나무랍니다.

큰 소리가 온 식구에게 한 바퀴 돌았고, 돌고 또 돌았습니다.

싸우고 나서

“이 서방네는 어떻게 싸우지 않고 살까?

아마 오늘 같은 일이 일어나면 이 서방네도 싸울거야!”


김 서방은 이 서방네 가서

“이보게, 우리는 소가 고삐가 풀려, 동네 밭을 다 망가뜨리는 바람에, 집안 식구끼리 큰 싸움이 벌어졌네.

화목하게 지낸다는 자네 집도 그런 일이 일어나면 싸우지 않을까?

자네 집 식구들은 무슨 재주로 일 년 가도 싸움 한번 없이 그리 화목하게 사는가?”

이 서방이 허허허 웃으면서

“우리 집 식구들은 어떻게 하는지 잘 보게” 하고는 마당에 매어놓은 소를 일부러 고삐를 풀어 엉덩이를 때려서 내쫒았습니다.

소가 마구 돌아다녀 밭을 망가뜨렸습니다.

식구들을 불렀습니다.

“모두들 나와 보게, 소가 풀렸네!”

이 이야기를 듣고는 방안에 있던 식구들이 다 나와서 힘들게 소를 붙잡았습니다.

외양간으로 끌고 와 붙잡아 매었습니다.


김 서방이 속으로 생각하기를 ‘이 서방네도 별 수 있겠나? 아무 큰 싸움이 벌어지겠지!“

그런데 예상은 빗나갔습니다.

“내가 소 고삐를 단단히 매어 두지 않은 것이 잘못이었네” 이 서방은 이렇게 자기를 탓하며 말했습니다.

“아니예요, 여보! 내가 아침에 여물을 든든히 먹였더라면 소도 더 얌전했을 텐데, 다 내 잘못입니다.” 아내는 이렇게 자기를 탓합니다.

“어머님 그런 말씀 마세요. 제가 우물가에 있으면서 소를 빨리 잡지 못한 탓이에요” 며느리는 또 자기 탓이라고 합니다.

“아니오. 내가 점심 먹고 소를 풀밭에 옮겨 매어 놓는다는 것을, 그만 깜빡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아들이 말합니다.

싸움이 날 리가 없었습니다.

서로 자기 탓 이라고 우기더니, 금세 까르르르 웃음이 터졌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 교회에, 나에게 주신 사명 가운데 하나는 “화목케 하는 직책입니다.”


(마 5:9)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찬송가 508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 하겠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