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1 데오빌로여!

관리자
2021-03-07
조회수 1473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오빌로여 / 행1:1-2

 

코로나 팬데믹으로, 크게 어려워지는 분야 가운데 하나가, 교회와 성도들의 신앙입니다.

코로나가 끝나도, 1/3은 교회로 다시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주일 예배마다,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다시 기대하며 - 사도행전∙성령행전∙교회행전의 말씀과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마태복음의 말씀을, 교대로 나누려고 합니다.

 

사도행전은!

성령 하나님의 감동에 의하여, 사도 바울과 함께 전도여행을 한, 의사 누가가 기록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순교하기 직전, 마지막으로 디모데후서를 쓰는데

제일 마지막 장인 4장에 “데마, 그레스게, 디도는 나를 버리고 떠났고,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사도 바울과 전도여행을 함께 하고, 사도 바울의 마지막까지 곁을 지켰던 의사 누가가,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습니다.

사도행전 1:1 “데오빌로여 내가 먼저 쓴 글에”

 

“먼저 쓴 글”은 누가복음입니다.

누가복음 1:1-)

“우리 중에 이루어진 사실에 대하여

처음부터 목격자와 말씀의 일꾼 된 자들이 전하여 준 그대로

데오빌로 각하에게 차례대로 써 보내는 것이 좋은 줄 알았노니,

이는 각하로 그 배운 바의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로라.”

 

누가는 예수님을 믿는 데오빌로 각하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 자세히 알고, 분명히 믿어, 더욱 믿음의 확신 가운데 거하도록 - 누가복음을 기록하였습니다.

 

“데오빌로”라는 사람에 대하여 알려진 바는 없습니다.

누가가! 그에게 붙인 “각하”라는 칭호로 보아, 고관이나 왕족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로마의 도미시안 황제의 조카인 클레멘스가 아닌가?

어떤 학자는 아가야 지방의 총독으로 있다가 누가의 고향인 안디옥에 와서 교회의 감독을 지내신 분이 아닌가? 추측하고 있습니다.

 

“데오빌로”는 - “데오스∙하나님∙θεος”과 “필로스∙사랑∙Φιλος”이 합쳐진 이름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라는 뜻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난 후에, 바꾼 이름인 듯합니다.

 

 

누가가! 데오빌로에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연속하여 기록한 것을 통하여, 은혜를 나누겠습니다.

 

첫째! 전도자의 마음입니다.

의사 누가는!

“누가복음”에서 데오빌로에게, 예수님에 대하여 자세히 알게 하였습니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의사 누가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따라, 주님의 몸 된 교회가 세워지고, 복음이 널리 전파되어, 세계의 많은 민족∙족속∙백성들이 구원함을 받는

성령의 역사∙교회의 역사∙구원의 역사를

데오빌로에게 알리기 위하여, 다시 펜을 들어 사도행전을 기록하였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있어서,

가장 힘들고 어려웠던 것이 시간이 되고, 훗날 계속하여 추억을 되쌔기며 이야기합니다.

 

남자들에게, 제일 힘들었을 때는 군대 생활입니다.

그래서 남자들이 모이면, 군대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여자들에게, 제일 힘들었을 때는 아이 낳은 것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모이면, 아이 낳던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한 여자 분이

“남자들 군대 생활이 힘들어도, 여자들 아이 낳는 것이 훨씬 힘듭니다.” 말하는데

제가 군대는 갔다 왔지만 아이는 낳지 않아서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고전 4:15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복음으로써 내가 너희를 낳았음이라.”

사도 바울이! 고린도 교회의 교우들에게 “내가 너를 낳았다.” 말합니다.

애 낳는 것이 힘들지만

“예수 믿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게 하는 일이! 아이를 낳는 해산의 고통처럼 힘이 든다.

전도하여 교인에서 신자로, 신자에서 제자로 자라게 하는 것은!

아이를 낳은 뒤에 양육하는 것과 같이 힘이 든다.” 말하였습니다.

 

 

어느 분이

“봉사는 할 수 있고, 헌금도 할 수 있고, 찬양과 기도도 할 수 있지만, 전도는 못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전도는 시간과 정성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도는 해산의 수고와 같은 인내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전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게 하기까지는, 아이를 양육하는 것과 끈기와 인내가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데오빌로를 하나님께로 온전히 인도하기 위하여 누가복음의 긴 편지를 썼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의 믿음이 성장하여, 온전한 그리스도인이요, 진실된 제자가 되게 하기 위하여 사도행전의 긴 편지를 다시 썼습니다.

누가는! 데오빌로를 위하여 해산의 수고와 양육의 인내를 감내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안디옥에서 시작하여 - 구브로, 밤빌리아, 갈라디아, 아시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지방으로

1차, 2차, 3차 전도 여행을 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전파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지나간 곳에는 어김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사도 바울은!

전도 여행을 하며, 이미 세워진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믿음의 역사를 이루고, 사랑의 수고를 아끼지 아니하고, 소망의 인내로 평안한 교회가 있습니다.

부흥하는 교회가 있습니다.

반면에, 나뉘어 싸우는 교회, 다른 복음이 들어와 혼란스러운 교회, 그릇된 신앙으로 믿음이 흔들리는 교회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증거 하고, 세워진 모든 교회와 성도들을 위하여, 쉬임없이 기도합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교회를 일일이 찾아가

주님 안에서 평안하고 부흥하는 교회에는, 칭찬과 위로의 말을 하고

시끄럽고 소란스럽고 흔들리는 교회는, 바른 믿음에 서도록 권면하고,

복음의 말씀을 거스리는 교회는, 호되게 책망하고 싶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땅끝까지 이르러, 내 복음을 전파하라!” 명령하셨고

이 명령을 지키기 위하여

“로마를 거쳐, 땅끝인 스페인까지 가서 복음을 증거” 하는 계획을 세우고

늘 전도여행을 채촉하고 있기에

이미 세워진 교회를, 다시 방문할 시간이 없습니다.

대신, 교회에 친필 편지를 씁니다.

 

“교회를 향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진리를 다시 한 번 가르치며

환란과 시련이 있지만,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믿음의 역사를 이루는 교회는 크게 칭찬하고

믿음 위에 서서, 영원한 산 소망을 굳게 잡고, 믿음의 달음박질을 달리라’ 권면하고,

그릇된 신앙과 바르지 못한 믿음을 가진 교회에는 심하게 책망하며, 바른 믿음과 신앙을 가지라 권면하고

하나님의 자녀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덕을 세우지 못하는 교회와 교우는 심하게 나무랍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교회, 에베소교회, 빌립보교회, 골로새교회,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를 썼습니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디도에게, 빌레몬에게 편지를 썼습니다.

 

편지 한 통으로는 부족하여, 두 번째 편지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고린도 전서와 후서, 데살로니가 전서와 후서, 디모데 전서와 후서입니다.

 

사도 바울이

“내가 너를 낳았다.” 말한 것처럼

해산의 수고를 통하여 교회를 세웠고 양육하여

교회를 든든하고 평안한 가운데 부흥케 하였습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제일 어려운 것이 전도입니다. 영혼 구원입니다.

“예수 믿으세요!” 한 마디 했다고, 가슴을 치며 회개하고, 예수 믿는 사람은 없습니다.

전도 대상자를 위하여 기도하고

쉼 없이, 만나고, 교제하고, 베풀어야 합니다.

하루 이틀로 되지 않습니다. 한 달, 일 년, 몇 년 동안 - 사랑의 수고를 해야 합니다.

 

이를 제일 잘하는 곳이 – 신천지입니다.

전도하기 위하여 만나는데, 만남을 오래 유지하기 위하여 - 취미활동, 봉사활동, 학습활동을 함께 합니다.

만남의 시간이 길어지면서, 끊기 힘든 정을 쌓습니다.

함께 성경공부 하러 가자는데, 끈끈한 정을 끊을 수 없어서 거절하지 못합니다.

성경공부를 시작하게 되면, 빠져나올 수가 없게 되고, 이만희의 충성스러운 사람으로 세뇌됩니다.

 

 

교우 여러분!

어떻게 그리스도인이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십시오.

스스로 마음이 곤고하여 교회에 찾아 나온 사람이 있고,

부모님으로부터 신앙을 물려받은 사람도 있지만

많은 분들이 친구, 친지, 이웃의 권유로 나왔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신앙생활을 하게 된 이야기를 하는데!

가까이 지내는 이웃의 강권함으로 억지로 끌려, 교회에 처음 나오게 되었습니다.

교회에 나오면 금방 깨달음이 생기고, 하는 일이 다 잘 될 같았지만, 그렇지 않았습니다.

찬송가는 낯설고, 본문의 말씀을 성경에서 찾으라는데 어디 있는지 알 수가 없고, 목사님의 설교는 따분하고 재미가 없습니다.

1시간 예배인데, 1시간이 3-4시간이 되는 것처럼, 견딜 수 없이 지루합니다.

교회 문을 나서며 “나는 교회가 안 맞는다, 다시는 교회에 나가지 않겠다.”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전도한 이웃이, 주중에도 몇 번 찾아오고, 자주 전화를 하는데,

토요일 오전에 “내일 함께 교회 가자.” 전화가 왔습니다.

교회를 가지 않으려, “내일 이불 빨래를 해야 하는데, 남편이 도와 주기로 해서, 교회에 갈 수가 없어!” 핑계를 댔습니다.

잠시 후 고무 장갑을 끼고 나타나 “내가 지금 도와줄께!” 나타났습니다.

어떡합니까?

이불 빤다고 핑계 댔다가, 할 수 없이 멀쩡한 이불을 꺼내 함께 빨았습니다.

주일 날. 핑계거리가 없어, 또 교회에 끌려갔습니다.

자기에게 너무도 잘했던 정겨운 이웃인데, 찰거리머리 같이 붙어서 교회를 끌고 가는데

꼴보기 싫은 원수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한 달쯤, 억지로 끌려 교회에 나갔습니다.

그런데,

목사님의 설교를 조금 깨닫게 되었습니다.

믿음이 조금 생겼습니다.

하나님이 살아 계시고, 살아가는데 나의 도움이 될 것 같다는 생각이 조금 들었습니다.

그 후, 시간이 흐르면서

이웃에 끌려 나가는 것이 아니라, 자기 발로 교회에 나가고,

억지로 교회에 나갔는데, 교회에 가는 것이 즐거워지고

예배 보러 갔는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러 가게 되었고

교인에서 신자가 되고, 신자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 때문입니다.

그리고 나를 위하여 기도하며, 수고한 이웃 때문입니다.

늘 기도하며, 권면하며 인도한, 부모님과 할아버지 할머니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으로부터, 전도의 사명을 받은, 모든 교우 여러분!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여야 하는 책임을 받은 모든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도!

누가가! 데오빌로를 향하여 가지고 있었던, 사랑의 마음과 복음의 열정이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사도 바울이 “나는 너를 낳았다.” 하는, 해산의 수고가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특별히

가르치는 일에 수고하시는 교사 여러분!

누가가, 데오빌로를 구원하고, 데오빌로의 신앙의 진보를 위하여,

두 번씩이나 펜을 들고, 긴 편지를 쓰는, 사랑과 사랑의 수고를 하였는데

여러분이 가르치는 학생들에게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더욱 특별히

나의 자녀이지만, 하나님의 자녀로 양육하여야 하는 부모 된 여러분!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 가운데 하나가 자녀 교육이지만

데오빌로를 향한 누가의 신앙의 사랑과 양육이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모니카는, 아들 어거스틴을 위하여 늘 기도하였지만

아들 어거스틴은, 하나님께 돌아오지 않을뿐더러, 방탕한 생활을 하고, 조로아스타교라는 페르시아 이방 종교에 빠져서 전도사 일을 하였습니다.

그래도 모니카는 쉬지 않고, 끊임없이 기도하였습니다.

이렇게 기도하기를 15년!

하나님께서,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를 들으시고, 어거스틴을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 돌아온 어거스틴은 회개하며 “참회록”을 쓰고,

교회의 신앙과 신학을 정리하였습니다. 교회를! 성경적 바른 신학 위에 올려 놓았습니다.

어거스틴은! “최후의 고대인이요, 최초의 근대인”이란 칭송을 듣게 되었습니다.

 

 

청지기 인생으로, 지금 이 세상을 살고 있는데

청지기 인생을 마치고, 주님 앞에 서서 결산할 때에, 가장 큰 상은 “전도 상”입니다.

왜냐하면

천하보다도 귀한 생명을, 하나님께 인도하여 드렸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 제일 크게 기뻐하시는 일은! 우리의 전도를 통한 영혼 구원입니다.

한 마리의 잃어버린 양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면, 하나님께서 너무 기쁘셔서, 큰 잔치를 여십니다.

 

그러나

전도는 결코 쉽게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뜨거운 영혼 사랑의 마음을 가지고

사랑의 수고와 해산의 아픔을 통하여,

한 영혼을 하나님께로 인도해 낼 수 있습니다.

이 역사가!

우리를 통하여 이루어지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성도의 아름다운 사귐, 코이노니아입니다.

누가복음에서, 누가는 “데오빌로 각하” 하고 부릅니다.

그러나 사도행전에서, 누가는 “데오빌로여!” 부릅니다.

누가와 데오빌로 사이가, 격식을 버릴 만큼 아주 가까워졌습니다. 아름다운 성도의 교제와 사귐이 있습니다.


에베소서 2:13)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워졌느니라.”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모든 것이 가까워집니다.

전에는 죄의 종으로, 하나님과 원수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전에는 우리가 서로 외인이요, 남이었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을 한 아버지로 모신 한 가족이요, 한 형제요, 한 자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월산교회의 교인이 되고, 월산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함께 예배드리고, 함께 봉사하고, 서로 교제하며, 사귐을 갖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시고, 교회를 몸으로 비유하셨습니다.

교회의 머리는 예수 그리스도이시고, 모든 성도들은 몸의 지체입니다.

사람의 몸에 눈과 코와 귀와 입과 오장육부와 사지가 있는 것처럼, 서로가 다르지만 한 몸을 이루는 것입니다.

 

몸의 한 지체가 영광을 받으면, 온몸이 즐거워하고

몸의 한 지체가 아프면, 온몸이 아픈 것처럼

우리 모두는 한 몸이기 때문에

한 교우의 기쁨이, 온 교우의 기쁨이고

한 교우의 아픔이, 온 교우의 아픔입니다.

“(요일 4:11)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세계에서 제일 큰 나무는 세콰이어 나무입니다.

캘리포니아의 세콰이어(Sequoia, 미국 서부산 거목) 나무는, 약 90미터의 높이까지 자랍니다.

거의 모든 나무는, 나무의 크기만큼 뿌리도 큽니다.

90미터까지 자란 세콰이어 라면, 뿌리도 땅속으로 90미터까지 뻗어가야 하지만

세콰이어 나무의 뿌리는 땅속이 아니라, 사방으로 뻗어 갑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지만

뿌리가 얕은 나무는 바람에 뽑혀 버립니다.

세콰이어 나무는 큰 나무이기 때문에, 바람도 세게 맞습니다.

그러나, 큰 나무가 강한 바람에도 결코 뽑히지 않습니다.

세콰이어 나무는 무리를 지어 삽니다. 함께 삽니다.

옆으로 퍼진 뿌리가, 서로서로 엉켜 있습니다.

강한 폭풍 가운데서도,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어서,

뽑히지 않고, 하늘 높이까지 곧게 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교회의 교인이 되게 하신 것은,

세퀘이어 나무처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라는 것입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에 모인 곳에 내가 함께 하겠다.” 약속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함께 예배 드리고, 함께 봉사하고, 서로 사랑하고, 서로를 위하여 기도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를 강하게 붙잡아 주시고,

우리 교회에 뜨겁게 역사하시고

우리 교회의 모든 지체에게 크신 은총을 부어 주실 것입니다.

 

 

 

셋째, 본문을 통하여 신앙의 성장을 볼 수 있습니다.

누가가! 처음에 쓴 누가복음에서

“예수님의 탄생, 가르치심, 행하신 기사와 표적 그리고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에 대하여 증거합니다.

누가는! 다시 쓴 사도행전에서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교회가 탄생하고, 성도들을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예루살렘과 유대와 사마리아를 넘어 세계의 모든 족속 나라 백성에게 전파되었는가!”를 증거합니다.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복음을 듣고 알고 믿는 단계에서

복음의 증거자로∙말씀의 실천자로 살도록 사도행전을 통하여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성장∙신앙의 성숙입니다.

처음에는, 교회를 다니는 교인의 단계입니다.

교회에 나오지만, 감사도 없고, 감격도 없고, 소망도 없습니다.

 

다음은, 예수님을 믿는 신자의 단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어, 죄 씻음을 받고,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구원의 기쁨과 감격이 있어서 “(찬송) 나 처음 믿는 그 시간 귀하고 귀하다.” 찬양합니다.

 

그 다음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의 단계입니다.

“내 뜻대로 살았지만, 주님의 뜻을 묻고 살아갑니다.

내 기쁨∙내 만족을 위하여 살았지만, 하나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삽니다.

‘우리 인생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기쁘시게 하는 것입니다.’ 고백합니다.

말씀을 듣는 자에서 행하는 자가 되고,

말씀을 증거 하는 자가 되고

교회의 부흥과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을 위하여 힘씁니다.

누가복음의 삶에서, 사도행전적인 삶을 삽니다.

‘(찬송) 이 몸 밖에 더 없어서 이 몸 바칩니다.’ 찬양합니다.”

 

 

 

신약성경의 처음에는 복음서가 있고, 다음에 사도행전과 서신이 있고, 마지막에 요한 계시록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 인생의 단계∙신앙의 여정과 같습니다.

처음에는, 예수님에 대하여 듣고 아는 믿음의 삶이고

그 다음 단계는, 사도행전적인 삶∙복음의 삶∙복음을 증거 하는 삶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단계는, 요한계시록에 나타난 영광의 삶∙영원한 삶∙생명의 삶으로

우리 주님의 영접함을 받고

우리 주님께서, 주님을 위하여 흘린 수고의 땀과 ‘주님 사랑합니다.’ 고백하며 흘린 눈의 눈물을 닦아 주시고

아픈 것이나, 죽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이별과 탄식이 없는

영광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사는 것입니다.

 

 

앞으로 우리에게 나타날 세상의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찬란한 요한 계시록의 영광을 바라보면서

오늘은 우리에게 주어진 삶 속에서 사도행전적인 헌신과 봉사와 충성의 삶을 살 때입니다.

 

 

사도행전에서 펼쳐지는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이∙복음의 역사∙믿음의 역사∙교회 부흥의 역사가

우리와 우리의 가정과 우리 교회와 한국교회와 세계 교회에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