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립보서 1:1-2 예수 그리스도의 종

관리자
2019-07-01
조회수 1414

예수 그리스도의 종 / 빌1:1-2


오늘부터, 주일예배 때에, 빌립보서의 말씀을 나누겠습니다.

빌립보서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빌립보 교회와 이 땅에 세워진 모든 주님의 교회에 주시는 말씀입니다.



그리스 중부에, 해발 3천 미터에 육박하는 올림포스 산이 있고,

그리스인들은 올림포스 산에는 여러 신들이 산다고 믿었습니다.

올림포스 산의 남쪽에 아테네, 스파르타, 고린도, 테베 등의 수많은 도시국가가!

각기 다른 정치체제를 가지고, 경쟁하며 지냈기에, 전쟁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잠시라도 전쟁 없이 살기 위하여 고안 해 낸 것이 올림픽 경기입니다.

그리스어를 쓰는 모든 도시국가는 - 어디에 있든지, 전쟁의 승자이든 패자이든, 올림피아에 모여, 4년 마다 경기를 치르는 7일을 포함하여, 한 달 동안 전쟁을 쉬었습니다.


올림포스 산 북쪽이 마케도니아입니다.

신들이 남쪽을 바라보고 있다고 생각하였기에, 신이 등을 돌린 지역이고

그리스어를 쓰지만 사투리가 심하고,

모든 도시국가가 민주정치 아니면 과두정치를 하고 있는데, 마케도니아만이 왕정국가였습니다.

그래서 300년 동안 마케도니아는 올림픽 경기에 초대 받지 못했습니다.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는 왕은

군사개혁으로 강군을 만들고, 올림포스 산 남쪽의 그리스 연합군과의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 그리스의 맹주가 되었습니다.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를 초정하여, 아들의 가정교사로 삼았는데, 이 아들이 알렉산더 대왕입니다.


필립포스 왕과 알렉산더 대왕의 이야기는, 그냥 넘어가도 되지만

신약성경의 역사적 배경을 이해하려면, 반드시 알아야 하기에 잠간 말씀을 드렸습니다.


마케도니아의 필립포스 왕이 신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 필립포스 • 빌립보로 불렀습니다.




사도 바울은, 실라와 함께 2차 전도여행을 떠납니다.

1차 전도여행 때에 갈라디아의 루스드라 • 더베에서 복음을 증거 하다, 돌에 맞았습니다. 죽었다고 성 밖에 내다 버려진 일이 있었습니다.

2차 전도여행 때에 루스드라 • 더베를 방문하였더니

1차 전도여행 때에는 어린 소년이었는데, 온 교회의 칭찬을 듣는 귀한 믿음의 청년으로 자라 있는 디모데를 만나게 됩니다.

디모데를 전도대에 합류시켰습니다.



(행 16:6-8) “성령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비두니아로 가고자 애쓰되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아니하시는지라. 무시아를 지나 드로아로 내려갔는데”


호메로스의 서사시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에서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공격하지만, 일진일퇴를 거듭합니다.

트로이 성 앞에 큰 목마를 세워 놓고, “트로이가 이 목마를 성 안에 들여 놓으면 트로이가 승리하게 된다.”는 헛소문을 냅니다.

트로이 사람들은, 전쟁에 승리하기 위하여, 큰 목마를 힘들게 성 안에 들여 놓습니다.

밤에, 목마 안에 숨어 있던 그리스 병사들이 나와 트로이 성을 함락시킵니다.

그리스 연합군이 전쟁에서 승리합니다.


트로이 목마 이야기는 안 해도 되지만, 화가 나서 잠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개혁개정성경은 2007년에 나왔습니다.

예전 조선시대, 일제 강점기 때에

중국어 성경을 한글로 번역하던 - 애급, 바로, 파사, 다소, 드로아, 사대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21세기인데 요사이 사용되는 – 이집트, 파라오, 페르시아, 타르수스, 트로이, 사르테스 번역되었어야지...

드로아가 예전 그 유명한 트로이라고 알고 있는 분들이 많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과 실라 누가 디모데 등이 드로아 • 트로이에 이르렀습니다.

(행 16:9) “밤에 환상이 바울에게 보이니 마게도냐 사람 하나가 서서 그에게 청하여 이르되 마게도냐로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사도 바울은, 하나님께서 드로아에서 보여 주신 환상이 “마케도니아로 건너가 복음을 증거 하라!”는 말씀으로 깨닫습니다.



(행 16:11-12) “우리가 드로아에서 배로 떠나 사모드라게로 직행하여 이튿날 네압볼리로 가고

거기서 빌립보에 이르니 이는 마게도냐 지방의 첫 성이요 또 로마의 식민지라.”

사도 바울 전도대는, 네압볼리 • 네오폴리스 • 신도시 오늘날의 카발라 항구에 도착하였고

로마의 고속도로가 있는 유럽의 첫 성인 빌립보에 도착합니다.

이렇게 하여, 빌립보 성에, 유럽에 - 하나님의 역사, 복음의 역사,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스인들은, 에게 해를 기준으로, 동쪽을 “오리엔트 • 동양” 이라 불렀고, 에게 해 서쪽을 “유럽 • 서양”이라 불렀습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토인비”는!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에게 해를 건너,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간 이 항해를,

“유럽과 세계의 역사를 바꾼 위대한 항해”로 불렀습니다.




2차 전도여행 때에

마케도니아의 빌립보를 시작으로,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가야 지방의 아테네, 고린도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주님의 교회를 세우고

예루살렘에 도착함으로 2차 전도여행을 마쳤습니다.


3차 전도여행 때에, 에베소에서 3년 여 목회하던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잠시 방문하였고

3차 전도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에 도착하자, 유대인들의 고소로 가이사랴 감옥에 2년 여 갇혀 지내며, 재판을 받았습니다.

로마시민권자로,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하여, 사슬에 묶여 로마로 연행되어 가는데

이것이, 사도 바울의 4차 전도여행이며, 마지막 여행입니다.


사도바울은!

2년 여 로마의 감옥에 갇혀 지내다 순교하시는데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에베소서, 골로새서, 빌레몬서와 함께 빌립보서를 씁니다.

그래서 이 4권을 “옥중서신”이라 부릅니다.




본문 1-2절은, 편지의 발신자와 수신자를 밝히는데

수신자는 -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과 온 세계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성도들입니다.

발신자는 -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입니다.



신약성경은 27권인데

마태, 마가는 복음서를 기록하였고,

사도 바울과 전도대로 함께 하였던 의사 누가는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기록하였고

요한은 복음서와 서신과 계시록을 기록하였고

사도 베드로는 베드로 전후서

사도 바울은 13권의 바울 서신을 기록하였습니다.



(딤후 3: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성령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에게 감동을 주셔서,

성경의 저자의 지식과 지혜와 삶의 경험을 사용하셔서,

성경의 저자를 통하여 기록하셨습니다.

그래서, 성경의 저자는!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13권의 바울 서신은, 사도 바울이 자신을 소개함으로 시작하는데

(엡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고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빌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어느 서신에나

“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다.” 자신을 소개합니다.




이 세상에, 가장 나쁘고 악한 제도는 노예제도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불쌍한 사람들은 노예 • 종입니다.

노예 • 종이 되고 싶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전쟁에서 패하면 포로가 되고, 노예로 끌려갔습니다.

빚을 졌는데, 갚지 못하면,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에게서 태어난 자녀는 물론 노예가 되었습니다.


노예 • 노비 • 종은! 주인의 소유입니다. 주인을 위하여 일합니다. 주인의 명령에 순종만 할 뿐입니다.

게으름을 피웠다가는 가차 없이 채찍이 날아들었습니다.

고대 로마에 “노예와 당나귀는 똑같다. 다른 점이 있다면 당나귀는 말을 못하고 노예는 말할 줄을 안다는 것이다”

소나 돼지나 당나귀 같이, 시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시장에서 사기도 하였습니다.


로마인들은

신체 건장한 노예들을 검투사로 만들었습니다.

검투사들은, 함께 숙식을 하며, 몸을 단련하고 싸움하는 기술을 익혔습니다.

검투 경기가 열리면, 많은 로마 시민들이 운집한 원형 경기장에 환호를 받으며 입장합니다. 검투 경기가 시작되면, 지금까지 형제처럼 함께 먹고 자며 생활했던 동료를 내가 죽이든지, 동료에게 내가 죽든지,

생명을 건 싸움을 싸워야 합니다.

이기면, 주인은 많은 돈을 법니다.

죽으면, 주인은 큰 손해를 보게 됩니다.

검투사 노예의 생명은 주인의 것입니다.

주인의 이득을 위하여

주인의 기쁨을 위하여,

검투사 노예는, 생명을 내어 놓아야 합니다.




노예 • 노비 • 종의 삶은 비참합니다.

세상의 어느 누구도, 노예 • 노비 • 종이 되기를 원치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유인일 뿐 아니라, 당당한 권세를 가지고 있는 로마의 시민권자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의 노예 • 노비 • 종이라 소개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된 것에 대하여, 자랑스럽고 영광스럽게 생각합니다.

앞으로도 계속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살려고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인생이 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후에

우리 인생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선하고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 - 경배와 찬양, 존귀와 영광, 감사와 기쁨을 드리게 창조하셨는데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하나님처럼 경배와 찬양, 존귀와 영광, 감사와 기쁨을 받으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롬 5:12, 14)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러 왕노릇 하였나니”


처음 사람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시편 51편에서 다윗은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죄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처음 사람 아담이 죄를 짓고, 죄에 팔려, 죄의 종이 되었습니다.

아담의 후손인 인류는! 이 세상 사람들 모두는!

죄악 가운데 잉태되어,

죄의 종으로 태어났습니다.

죄에 붙잡혀, 죄가 이끄는 대로, 죄 가운데 살게 되었습니다.

(시 90:10)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

죄 가운데 사는 우리 인생이라 “화살처럼 날아가고, 잠간 잠을 자는 것 같고, 산다는 것도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죄 값은 사망입니다.

죄의 종인 모든 인생은 두 번 죽습니다.

모든 인생이 한 번 뿐인 인생을 살다가 마치는 첫 번째 사망이 있고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저주와 심판과 멸망의 자리에 던져지는 두 번째 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말씀하시자

유대인 바리새인들이 (요 8:33) “우리가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남의 종이 된 적이 없거늘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케 되리라 하느냐?” 묻습니다.


세상에는 자유인과 노예 • 노비 • 종이 있지만

오늘날,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들이 자유인이지만

영적으로는 모두가 죄의 종입니다.

모든 인생이 죄의 노예입니다.




이러한 우리 인생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유일하신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인간의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예수님은!

내가 죄로 말미암아 받아야 하는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내가 허물로 말미암아 받아야 하는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내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받아야 하는 징계를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내가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시지만, 죄의 사슬에 묶이셨고

어둠과 허물이 전혀 없으시지만, 죄 값인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온 인류를 강하게 얽어매고 있던 죄의 사슬을 끊으셨습니다.

온 인류가 짊어지고 고통스러워하던 사망의 멍에를 벗기셨습니다.

죄의 권세를 물리치셨습니다.

사망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사탄의 권세를 짓밟고 승리하셨습니다.


(행 2:36)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이 예수를, 하나님이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예수님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부활의 첫 열매로, 예수님을 믿는 우리에게 생명의 주님이십니다.

예수님은 죄와 허물로 죽은 우리를 살리시는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부활하신 주님이,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에 나타나셨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친히 뵈온 제자들은 부활의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그 자리에 도마가 없었습니다.

한참 후 도마가 왔습니다. 제자들 모두가 “우리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을 뵈었네!” 말하자

도마는 “내가 그의 손의 못 자국을 보며, 내 손가락을 그 못 자국에 넣으며, 내 손을 그 옆구리에 넣어 보지 않고는, 믿지 아니하겠노라!” - 믿을 수 없다고, 믿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하였습니다.

여드레 후에, 도마도 함께 있을 때에 제자들에게 다시 오신 주님께서,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말씀하셨습니다.

도마가 무릎을 꿇고 “나의 주님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주여! 주여! 나는 예수님의 종입니다.”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을 – 제자들이 꾸민 이야기, 부활하셨으면 하는 간절한 바램 속에서 본 환상, 기절하였다 깨어 난 것,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것처럼 보인 것 등 등! 믿지 않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예수님을 사랑을 가르친 교사, 도덕가, 민중의 선동자, 많은 성현 가운데 한 사람이라고 여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석가를 주인으로 믿는 불자

마호메트를 주인으로 믿는 이슬람

힌두를 믿는 힌두교인

공자를 믿는 유교신자 등 등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세상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류의 역사를 경륜과 섭리 가운데 이끌어 가시는 역사의 의 주인이시고,

우리 인생의 주인 되이는 심판주가 되시는 하나님 앞에서!


예수님을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 구원의 주님으로 믿는 예수님의 종이냐?

예수님을 믿지 않는 죄의 종이냐?

양이냐? 염소냐?

의인이냐? 악인이냐?

오른편이냐? 왼편이냐?

구원 받았느냐? 받지 못하였느냐?

영의 사람이냐? 육의 사람이냐?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영원한 생명의 나라에 들어갈 복 받은 자이냐? 영원한 심판의 자리에 던져질 저주 받은 자이냐?

오직 둘 중의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중간지대, 회색지대가 없습니다.



많은 이들이 “나는 예수의 종이 되지 않겠습니다. 나는 자유인입니다.” 힘 있게 말하지만

실상은 죄의 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것은! 귀하고 복된 삶입니다.

(요 15:15) “이제부터는 너희를 종이라 하지 아니하고 친구라 하리라.”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예수님께서 나를 친구로 삼아 주십니다.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면,

성부 하나님께서 나를 자녀로 삼으십니다.



저는 초등학교도 못나왔습니다.

국민학교를 나왔습니다. 마석국민학교 42회입니다.

학교를 다닐 때 공부를 무척이나 못하는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보통 1학년이면 깨우치는 한글을, 2학년 말에야 깨우쳤습니다.

이런 학생을 가르치는 선생님께서는 얼마나 답답하셨겠습니까?

가르치시다가 속이 상하니까 “너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되려니?” 야단을 치셨습니다.

저도 옆에서 “재는 이다음에 커서 뭐가 될까?” 걱정을 하였습니다.


지금 보니, 괜한 걱정을 하였습니다.

넓은 논밭을 아버지에게 물려받았습니다.

땅 값이 무척이나 올랐습니다.

지금 좋은 집에, 좋은 차에, 땅땅거리며, 잘 살고 있습니다.

세상의 아버지를 잘 만나면

공부를 못해도, 지식이 부족해도, 재주가 없어도 아무런 염려가 없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예수님의 종으로 사는 우리는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 나라의 상속자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믿고 고백하며 사는 우리 모두에게

이 세상의 어떠한 것과도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나라! 영광의 나라! 생명의 나라! 하나님 나라가 준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랑스럽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내 인생의 주인이십니다.” 외치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님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고 살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충성된 종으로 살기를 축원합니다.


입술로만 “주여! 주여!” 해서는 안 됩니다.

영화 “사도 바울”의 대사처럼

내가 오른 쪽으로 가려 하는데, 주님이 왼쪽으로 가라 하시면 왼쪽으로 가고

내가 왼쪽으로 가려 하는데, 주님이 오른쪽으로 가라 하시면 오른쪽으로 가고

내가 내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살고 싶지만, 주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살고

나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

오직 충성!

오직 순종! 하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주님 말씀하시면 내가 나아가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