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7:13-15 내 기쁨을 저들에게 충만케 하소서

관리자
2017-09-11
조회수 1884

                  내 기쁨을 저들에게 충만케 하소서 / 요17:13-15

요17장을 대제사장의 기도라 부르고 

마태 마가 누가복음의 병행 구절에서는, 감람산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라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곧 자신에게 닥칠 무겁고 끔찍한 십자가 처형을 앞에 두시고,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되도록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 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가 마쳐지면

배신자 가룟 유다가 이끌고 온, 성전 경비병들에게 붙잡혀 끌려가시고 

유대교 산헤드린 공회에서 심문을 받으시고

로마의 본디오 빌라도에게 십자가 사형 판결을 받으시고

못 박히실 무거운 십자가를 형장인 갈보리 언덕까지 등에 지고 가시고

십자가 사형틀에 눕혀 지신 뒤, 양 손과 발에 굵은 대못이 박히시고

십자가가 세워지면, 

못 박힌 손과 발이 찢어지고 부서지고

십자가의 고통이 너무나 커서

기꺼이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 오셨지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절규하시고

오래 동안, 십자가에 위에서 고통 가운데 아파하시다가

숨을 거두십니다. 

시신이 십자가에서 내려지고, 차디찬 돌무덤에 장사되고

사도신경의 고대 다른 사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음부는 죽은 자들이 가는 세상인 캄캄한 곳, 스올, 지옥을 말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죽은 자들이 가는 음부의 세계에까지 내려가십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오셨지만

십자가가 너무도 끔찍하고 무거운 것이라, 피하고 싶으셔서 “아버지여! 이 십자가의 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기도하시지만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십자가를 지시기로, 결단하고 다짐하는 기도를 드리십니다. 

본문의 말씀은

이어서 제자들을 위한 기도입니다. 

“저는 아버지께로 가고, 저들은 세상에 있사온데, 내 기쁨이 저들 안에 충만하게 하옵소서”

예수님께서 “내 기쁨”이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바로 앞에 두시고, 내 기쁨이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를 내 기쁨이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형벌을 내 기쁨이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고통을 내 기쁨이라 말씀하십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내 기쁨이라 말씀하십니다. 

장사되어 차디찬 돌무덤에 묻히는 것을 내 기쁨이라 말씀하십니다. 

죽은 자들이 가는 스올 음부에 내려가시는 것을 내 기쁨이라 말씀하십니다. 

(찬송)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네, 주를 보낸 하나님 사랑!”

사람들은 알 수 없습니다. 

사람들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하나님의 기쁨입니다. 우리 주님의 기쁨입니다. 

모든 인생들이 죄의 종으로 태어났습니다. 모든 인생들이 죄의 사슬에 얽매여, 죄가 이끄는 대로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얽어매고 있는 죄의 사슬을 끊으시고, 죄의 종에서 해방시키시고, 죄로부터 자유케 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저주와 형벌과 멸망의 심판의 자리로 가고 있는데, 

우리를, 영원한 생명의 나라로 이끄시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하셔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히 살게 하시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셔서, 영광스러운 천국에서 영원토록 함께 거하시는 것이 큰 기쁨입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의 기쁨은! 

우리를 사랑하시는 기쁨

사랑하는 우리를 위하여 유일하신 아들, 하나 뿐인, 너무도 소중한 성자 예수님을, 내어 주시는 기쁨

성자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하여 기꺼이 자신의 몸과 생명을 내어 주시는 기쁨

십자가가 너무도 아프고, 고통스럽고, 절망적인 것이지만,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기쁨입니다. 

(습 3:17)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찬송)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 하시며

 즐거이 부르며 기뻐 기뻐하시리라.” 

사랑은 기쁨입니다. 

사랑하기 때문에,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 주어도 기쁨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가

사랑하는 기쁨

사랑하여 주는 기쁨을 갖기를 위하여 기도하십니다. 

눅7장에는, 베다니 마을의 마리아를 죄 많은 여인이라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때에, 세리와 창녀는 죄인의 대명사였습니다. 

마리아는 창녀이었을 것입니다. 

이웃으로 함께 사는 사람들도, 죄인이라고 손가락질 하고, 함께 식사와 교제도 하지 않았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은, 마리아가 더럽고 추한 죄인이라는 것을 아시지만, 맞아 주셨습니다. 

마리아의 모든 죄를 깨끗하게 씻어 주셨습니다. 

마리아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죄를 짓는다와 빚을 진다.”는 같은 말입니다.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죄인인 마리아를 맞아 주신 것에 대하여 비난하자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빚진 자가 둘이 있는데,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빚 졌다. 

 갚을 것이 없자, 채주는 둘 다 탕감하여 주었다.

 둘 중에 누가 채주를 더 사랑하겠느냐?”

더럽고 추한 죄, 무겁고 큰 죄, 결코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지었지만

주님으로부터, 모든 죄를 용서 받은, 탕감 받은 마리아는 

주님을 크게, 많이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풍속에, 

일반적인 손님이 오면, 평안을 기원하며 입을 맞추고

중요한 손님이 오면, 종들이 발을 씻겨 주거나, 발 씻을 물을 주고

더 중요한 손님이 오면, 주인이 직접 발을 씻어 줍니다. 

아주 귀한 손님이 오면, 집 안에 향을 피우고, 향유를 한 두 방울 머리나 다리에 발라 줍니다. 

마리아는 자신의 죄를 모두 용서하여 주시고, 구원하여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천국 백성 되게 하신 것이 너무도 고마워

구원의 기쁨, 구원의 감격이 너무 커서

자신의 전 재산에 해당하는 나드향이 담겨져 있는 옥합을 가지고와

“사랑하는 예수님께, 

 한 방울을 발라 드릴까? 두 방울을 발라 드릴까?

 그것으로 부족하다. 몽땅 부어 드리자!”

마리아는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예수님을 발을 씻어 드리고

옥합을 깨뜨려 나드 향을 몽땅 예수님께 붓고

자신의 머리털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 드렸습니다. 

이를 본 유다가 몹시 아깝고, 안타까와 하며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지, 어찌 그 귀한 것을 낭비하는가!” 말합니다. 

유다는 사랑을 알지 못합니다. 

사랑은 자신의 가장 귀하고, 가장 소중한 것을, 아낌없이 주는 것입니다. 

자신의 가장 귀하고 소중한 것을 주어도

그 마음에 기쁨이 충만합니다. 

유다는, 예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기 때문에

마리아의 사랑, 헌신, 섬김을 낭비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전 재산을 주님께 드린, 마리아에게는 기쁨이 충만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하여

 나의 몸을 너희에게 주었다. 

 나의 생명을 너희에게 주었다.  

 십자가 대속의 죽음을 통하여, 

 너희가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으니 

 나의 기쁨이 충만하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

 너희가 서로 사랑하라.”

(마10:37-38)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

(눅 9:62) “손에 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다.”

우리는, 아둔하고 미련해서, 예수님께서 주시는 생명의 양식보다, 세상의 기름진 양식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세상에서 낮아져서 하나님께 높임을 받는 것보다, 세상에서 높아지기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 가운데 거하기보다, 세상 나라에서 부귀영화 권세 누리기를 더 좋아합니다. 

우리는, 입으로는 주님을 사랑한다고 하지만, 세상의 썩어질 재물 권세 명예를 더 사랑합니다. 

(요 14:27)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주님이 주시는 평안, 주님이 주시는 기쁨

세상이 주는 것과 같은 잠간의 평안, 곧 사라지는 기쁨이 아닌

영원한 평안, 참 기쁨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 주시는 참 기쁨, 참 평안을 누리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알고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죄로 말미암아 내가 받을 저주, 내가 받을 형벌, 내가 당할 죽임을 대신 담당하시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를 깨달아 알고

“주님 사랑합니다.” 고백하고

사랑하는 하나님을, 나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사랑하고

사랑하는 우리 주님께, 나의 마음과 몸과 시간과 재물과 재능을 드릴 때에

받게 됩니다. 

누리게 됩니다.

311장 C key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만 너 무엇 주느냐?

 내 몸을 희생 했건만 너 무엇 주느냐?

 내 몸을 희생 했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 주느냐?

 네 죄를 대속 했건만 너 무엇 주느냐?

유대교 최고의 랍비인 가말리엘 밑에서 수학한 사울은

어느 누구도 따라 올 수 없는 열심 있는 유대교인이었습니다. 

성경인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에, 메시야 그리스도 구원자를 보내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울도, 여느 유대인들처럼 메시야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예수가 메시야, 예수가 그리스도, 예수가 구원자라고 믿는 사람들이 생기더니 늘어나고 있습니다. 

사울은, 

예수를 메시야로 믿는 예수당 사람들은, 로마제국의 십자가 사형틀에 못 박혀 죽은 사형수를 메시야라고 믿는, 잘못 된 메시야 신앙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대적하고, 율법을 훼손하고, 유대교의 전통을 해치고, 예루살렘 성전을 더럽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잘 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는 예수당 사람들을 없애야 하기에

예수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 때리고, 옥에 가두었습니다. 

예수교의 핵심 멤버 가운데 하나인 스데반을, 공회로 끌고 가 재판하여, 돌로 즉결 처형하는 일에 앞장섰습니다. 

많은 예수 믿는 사람들이, 다메섹 다마스커스로 도망쳤습니다.

사울은, 대제사장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을 잡아들일 수 있는 위임장을 가지고, 

병사들을 이끌고, 다메섹을 향하여 갑니다. 

다메섹에 거의 다 이른 정오 무렵

갑자기 눈을 뜰 수 없는 환한 빛이 비춰왔습니다. 

놀란 말이 앞발을 높이 치켜 들었습니다. 

사울은 땅에 거꾸러졌습니다. 

사울에게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사울은 “주여! 뉘시니이까?”묻습니다. 

부드러운 음성이 들려 왔습니다. “나는 네가 핍박하는 나사렛 예수니라. 너는 이방인을 위한 나의 택한 그릇이다.”

사울은 지금까지 

하나님을 위하여, 하나님의 일을 한다고 하였지만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성도들과 주님의 교회를 열심히 박해하였던 사울은! 

주님을 제일 많이 거역한, 죄인 중에 죄인임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장에 지옥의 구덩이에 던져 넣으실 만도 하신데

죄인 중의 죄인을 찾아오셨습니다.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사울은 주님 앞에 엎드려 “주여! 무엇을 하리이까?” 묻습니다. 

주님께 자신의 삶, 전부를 드리기로 결심하며

가장 큰 자라는 뜻의 이름인 사울을 버리고

가장 작은 자,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뜻인 바울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던 사울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인 사도 바울이 된 후

예수님의 거룩한 성도를 핍박하는 자가 아니라 핍박받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교회를 허는 자에서, 주님을 교회를 세우는 자가 되었습니다.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그릇”으로서, 주님의 복음을 들고, 이방인에게 갔습니다. 

시리아, 갈라디아, 비시디아, 아시아, 마케도니아, 아가야 그리고 로마까지 가서 주님의 복음을 증거하고, 주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예루살렘, 세계의 변방에서 시작된 기독교를, 세계의 기독교가 되게 하였습니다. 

사울이 사도 바울이 된 후에

바리새인이고 베냐민 지파로 자랑할 만한 가문의 명예와 재물

대제사장의 총애를 받은 권세와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높은 학식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여기며 버렸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 된 종인 사도로 살면서

(고후 11:23-)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도 바울이 된 후에

세상 사람들이 움켜 쥐려하고, 갖기 위하여 애를 쓰던, 세상의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내어 버리고

자신의 삶 전체를 주님께 드렸습니다. 

자신의 삶 전체를 주님을 위하여 사용하였습니다. 

이러한 사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주님이 주시는 기쁨이 충만하여 강같이 흐릅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강이 폭포수같이 넘쳐 흐립니다. 

하나님 은혜의 바다에서 온 몸을 잠그고 헤험을 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넘치는 사랑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한 은혜와

우리와 동행하시고, 인도하시는 성령 하나님이 주시는 참 평안, 넘치는 기쁨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의 몸과 마음과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우리 하나님께 드리는 성도들이

받을 수 있고, 누릴 수 있습니다. 

존 뉴턴(John Newton,1725-1807)은 열한 살 때부터, 아버지를 따라 배를 타게 되었습니다. 

뉴턴은 여느 뱃사람처럼 거칠고, 포악하였습니다. 술을 즐겨 하였고, 창기들과 어울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습니다. 

노예선을 타게 되었습니다. 

아프리카로 가서, 흑인 노예들을 붙잡아다, 노예선에 실고 와서, 노예 팔아넘기는

노예선의 선원으로 일하다가, 얼마 후에는 노예선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항해 할 때마다, 노예를 팔아 돈을 벌었습니다. 

오래 동안, 노예 선장으로 일하며 많은 돈을 벌었습니다. 

한 번은, 많은 노예를 붙잡아, 배에 실고, 돌아오는 길에, 큰 폭풍을 만났습니다. 

큰 풍랑이 곧 배를 삼킬 듯 하였습니다. 

다급한 뉴턴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주여!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구원하여 주십시오.”

배는 풍랑 가운데 파선되었습니다. 

바다 위에 떠 있다가, 4주 만에, 구조되었습니다. 

뉴턴은, 

큰 풍랑 가운데, 자신 같이 더럽고 추한 죄인의 기도를 들어 주시고, 풍랑 가운데 구원해 주신

살아 계신 하나님, 용서하시는 하나님,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분명하게 만났습니다. 

뉴턴은,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하였습니다.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습니다. 예수님의 종으로 살기로 하였습니다. 

당장 노예무역을 그만 두었고, 신학교에 입학하였고, 39세에 목사 안수를 받고, 

버킹검에서 16년, 올니 교회에서 27년을 목회를 하였습니다. 

30여 년의 연하인 윌리암 윌버포스(William Wilberforce, 1759-1833)란 정치가가 있습니다. 

1780년 하원 의원에 당선되었고

1787년, 노예 해방 운동을 시작합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노예 무역은 악한 것으로, 폐지하여야 합니다.” 주장하였습니다. 

당시에, 노예무역을 통하여, 기득권 세력은 막대한 부와 이득을 취하기 때문에, 큰 반대에 부딪혔습니다. 

윌버포스는, 영국의회에서, “노예제의 비도덕성, 비윤리성, 비성경성”을 외치며, 연설하였습니다. 

힘차게 외치지만, 바위를 향하여 계란을 던지는 것과 같이 느껴져, 정치를 포기하고 성직자의 길을 걸어가려 하였습니다. 

이때에, 노예선 선장으로 일하던 존 뉴턴 목사님이, 

젊은 정치가 웰버포스에게 

“노예제를 폐지하는 것이, 정치가로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하는 것입니다.” 격려하고, 함께 노예제 폐지를 위하여 일하였습니다. 

1807년, 뉴턴 목사님이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던 해에

영국 하원은 “노예 무역 폐지법(The Abolition Act)”을 통과시킵니다.

1833년 노예를 해방시키는 법이 통과 되었습니다. 

이는 미국의 링컨 대통령이 노예해방을 선언한 1863년 보다 30년이 앞선 것입니다. 

존 뉴턴 목사님은!

추악하고 더러운 죄 가운데 살았지만,

하나님께서 용서하여 주시고, 자녀 삼아 주신 것을 감사하여

오늘 날도,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찬송가

주님이 주시는 은혜, 기쁨, 감사, 평강을 찬양하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 Amazing Grace 찬송가”를 지었습니다.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