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1-2 하나님의 뜻으로 일꾼이 되었습니다

관리자
2017-11-06
조회수 1727

하나님의 뜻으로 일꾼이 되었습니다 / 엡1:1-2

에베소서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을 통하여 에베소교회에,

더 나아가, 세상의 모든 교회와 모든 성도들에게 주시는 말씀입니다.

에베소는 로마제국 소아시의 수도로

로마, 안디옥, 알렉산드리아와 함께 로마제국 내에서 큰 도시로

정치, 경제, 문화, 종교의 중심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이, 2차 전도 여행의 마지막으로

에베소에서 복음을 증거하고, 주님의 교회를 세웁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에

에베소에서 3년을 머물며 목회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의 4차 전도 여행 - 여행이라고 하지만, 황제에게 재판을 받기 위하여, 사슬에 묶여 로마로 압송되었고

로마의 감옥에 2년 갇혀 지내면서, 에베소서를 기록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나누는 에베소서를

빌립보 골로새 빌레몬서와 함께 옥중서신이라 합니다.

(엡 1:1)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 된 바울은 에베소에 있는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신실한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에 편지를 쓰면서, 먼저 자신을 소개합니다.

신약성경에, 바울 서신이 13권입니다.

모든 바울 서신의 처음에, 자신을 소개하는데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고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빌 1:1)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오직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어느 서신에나

“나 바울은! 하나님의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가 되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다.”자신을 소개합니다.

바울이 항상, 이렇게 자신을 소개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울은 사도가 아니다.”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도, apostolos 의 뜻은, “보내심을 받은 자”입니다.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생활하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내 복음을 증거 하라.”는 사명을 받은 자라야 합니다.

12사도 모두, 갈릴리에서 “내 제자가 되라.”는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12사도 모두,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의 말씀을 증거 하실 때에, 기사와 표적을 행하실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걸어가실 때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묻히실 때에, 예수님께서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실 때에, 함께 하였습니다.

12사도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사명을 받았습니다.

가룟 유다가 제 길로 갔기에,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직접 듣고,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사와 표적을 직접 보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을 직접 뵙고

예수님께서 승천하실 때에,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사명을 받은 ‘맛디아’를,

가룟 유다를 대신하여, 12사도의 빈자리에 채웠습니다.

12사도 외에

주님께서 가르치시는 천국 복음을 말씀을 직접 듣고,

주님께서 행하시는 기사와 표적을 직접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친히 본 사람들을

사도로 인정하였습니다.

바울은 사도가 아닙니다.

바울로 이름을 바꾸기 전, 사울이었을 때에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과 함께 천국 복음의 말씀을 가르치시고, 기사와 표적을 행하실 때에, 함께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실 때에,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을 뵙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고 승천하시면서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주실 때에,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입은 사도들이, 복음을 증거 하며, 주님의 교회를 세울 때에,

사울은 성도를 핍박하고, 교회를 허무는 자였습니다.

결코 사도일 수 없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바울은 사도가 아니다. 사도가 갖추어야 하는 조건을 하나도 갖추지 못했다.” 말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 된 나 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바울은, 자신인 것을 강력하고 주장합니다.

바울이 자신을 사도라고 하는 이유는!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을 잡으러 가는 길에, 눈을 뜰 수 없는 강한 빛 가운데 찾아오신 부활의 주님을, 직접 뵈었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너는 이방인을 위한 택한 나의 그릇이다. 이방인들에게 나의 복음을 증거하라.” 주님의 음성을 직접 듣고, 주님으로부터 사명을 받았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은 사도가 아니다.”라고 말해도

바울은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사도가 되었습니다. 내가 사도 된 것은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은 것입니다!”주장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이 사도 인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였을 뿐 아니라,

일생 동안 사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증인으로서, 이방인에게 천국 복음을 전하는 증거자로 살았습니다.

고후11:23부터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

사도 바울에게

“한 번도 아니고, 여러 번! 길게는 2년씩이나 감옥에 갇혀 지내셨는데, 감옥에 갇혀 지내시면서도 어떻게 그렇게 기뻐할 수 있었습니까?” 묻는다면

“하나님의 뜻으로 내가 사도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매를 여러 번 맞으셨습니다. 40에 하나 감한 매를 5번이나 맞고, 태장을 3번이나 맞고, 돌에 맞아 죽었다고 거적에 말아 내다 버린 적도 있었는데, 어떻게 참으셨습니까?”묻는다면

“죄인의 괴수인 나를 구원하신 주님께서, 나를 사도로 세우셨습니다.”

“배 타고 전도하러 가다가, 3번이나 배가 파선하였고, 한 주간 동안 살 소망이 끊어진 채 큰 풍랑 가운데 있었는데, 어떻게 복음 증거 하는 일을 계속 할 수 있었습니까?” 묻는다면

“살아 계신 하나님, 역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이, 나를 어여삐 여기셔서 천사도 흠모하는 존귀한 사도의 직분을 맡겨 주셨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증거하며 살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일을 하며 지내오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전도 여행 중, 강도를 만나 생명을 위협 받기도 하고, 동족 유대인에게 핍박을 받고, 이방인에게 폭행을 당하고, 여러 번 자지도 못하고, 굶주렸고, 목말랐고, 추위에 떨었고, 헐벗으며 지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일에 충성하는데도, 이런 환란과 핍박과 고난을 당하게 내버려 두셨습니다.

그래도 어찌 하나님께 죽도록 충성할 수 있었습니까?”묻는다면

“나는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 장차 이 세상을 심판하실 왕이신 하나님의 종입니다.

나의 주인께서 ‘복음을 전하라.’ 명령하셨는데,

종 된 내가, 주인이신 예수님을 위하여,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충성하는 것이,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지 않겠습니까?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으로서, 내 몸에 그리스도의 남의 고난을 채우며 사는 것이, 나의 기쁨이고, 감사이고, 영광입니다.”

사도 바울은!

“나는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내 인생의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나를 충성되이 여겨 종으로 삼으셨습니다.”분명하게 고백하며,

하나님께 보내심을 받은 사도로 살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종으로 살았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예수님께서,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믿는 신앙 위에,

성도들의 믿음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운다.”- 예수님께서 친히 세우신, 예수님이 주인이 되시는, 예수님의 교회입니다.

구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제사장, 왕, 장로, 천부장, 백부장, 오십부장, 십부장 - 직분자를 세워,

광야교회, 구약교회를 섬기고 세우게 하셨습니다.

신약시대에, 하나님께서는

(엡 4:11) “어떤 사람은 사도로, 어떤 사람은 선지자로, 어떤 사람은 복음 전하는 자로, 어떤 사람은 목사와 교사로 삼으셨으니”

여러 직분자를 세워, 주님의 교회를 섬기고 세우게 하셨습니다.

요사이, 불교에서는, 며칠 간 사찰에 머물려 지내는 Temple stay 를 운영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뿐 아니라, 외국인들도 많은 참여하고 있습니다.

사찰에서, 사찰 음식을 먹고, 선 수행을 합니다.

며칠간의 선 수행을 통해서

“나는 누구인가?”를 명상합니다.

바쁘고 분주한 삶 가운데, 한 번도 자신을 돌아보지 못했습니다.

며칠 동안, 깊이 명상 하는 가운데, “내가 누구인지!”를 깨달았다고,

큰 기쁨을 가지고 사찰을 내려옵니다.

우리 기독교에서는, 오래 전부터 “나는 누구인가?”를 깨닫도록 가르칩니다.

우리는! 예배를 통하여, 설교를 통하여, 말씀을 읽는 것을 통하여, 기도를 통하여, 찬양을 통하여 “나는 누구인가!”를, 이미 발견하였습니다.

기독교의 자아 발견과 불교의 자아 발견은! 분명하고 확실하게 다릅니다.

불교에서는 “세상 속에서 나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 기독교에서는 “하나님 앞에서 나를 찾습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입니다.

왕 같은 제사장입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직분을 받은 사명자입니다.

고양이 내외가 살고 있었습니다.

고양이 내외는 예쁜 아이를 낳았습니다.

두 내외가 의논하기를 “우리가 이 아이를 강하고 멋지게 키웁시다. 그러기 위해서는 멋진 이름을 지어 주어야겠습니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요?”

“호랑이가 가장 강한데 호랑이라고 지으면 어떨까요?” “그것 참 좋은 생각이네요.” 아이의 이름은 호랑이가 되었습니다. “호랑이 고양아!” 하고 불렀습니다.

며칠이 지났을 때에, 아빠 고양이는 “호랑이가 강하지만 호랑이도 번개와 천둥이 칠 때는 무서워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부인과 이 이야기를 하다가 “호랑이보다 더 강한 천둥이로 이름을 바꾸자”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천둥 고양아!” 하고 불렀습니다.

며칠 후, 아빠 고양이는 “천둥이 강하지만 천둥도 구름이 있어야 생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고양이 내외는 의논을 하여, 천둥보다 강한 구름으로 이름을 바꿔 “구름 고양아!”라고 불렀습니다.

며칠 후, 아빠 고양이는 “구름도 바람에 이리 저리 밀려다닌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내외가 의논하여, 자기 새끼를 구름보다 강한 “바람 고양아!”라고 불렀습니다.

며칠 후, 아빠 고양이는 “바람을 막기 위하여 담을 높이 쌓는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바람을 막는 담이 더 강하다고 생각한 내외는, 자기 새끼를 “담 고양아!”라고 불렀습니다.

며칠 후, 이번에는 엄마 고양이가 “아무리 담을 높이 쌓아도 구멍을 잘 뚫는 쥐를 당할 수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두 내외는 의논하여, 담보다 더 강한 쥐로 이름을 바꾸어 “쥐 고양아!”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이상합니다.

꼼짝 못하고 벌벌 떠는 것을 가리켜 “고양이 앞에 쥐”라 하는데, 자신의 잘나고 예쁜 아들의 이름이 “쥐”가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냥 “고양이”라고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이 일 후에, 지금까지, 고양이 나라에서는 고양이를 고양이로 부르고 있답니다.

분명한 자의식이 있어야 합니다.

고양이는 고양이임을 인식하고 고양이로 살아야지, 호랑이로 살려고 해도 안 되고, 쥐로 살려고 해도 안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사도는 사도로 살고,

목사는 목사로 살고,

장로는 장로로 살고,

집사는 집사로 살고,

권사는 권사로 살고,

성도는 성도로 살아야 합니다.

제가 군에서 막 제대한 22살 때,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았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 이 몸 밖에 더 없어서, 이 몸 바칩니다.” 찬송을 부르고 또 불렀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사용하시겠다는 “부르심, Calling, 소명”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해가 지나면서, 목사가 되겠다고, 장로회 신학대학 2학년에 편입학하였습니다.

신학대학교를 선지동산이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성직자, 목회자를 양성하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선지동산인 신학교를 다닐 때에, 고민하는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사명자인가?

하나님의 부르심이 확실한가?

하나님의 부르시지도 않았는데, 내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고 착각하여 이곳에 와 있는 것이 아닌가?”

이렇게 소명에 대하여 의심하는 이들!

하나님의 부르심에 확신이 없는 이들은!

중간에 학교를 포기하였습니다.

간신히 졸업을 하였지만, 목사가 되지 않았습니다.

저는!

장로회신학대학에 입학하고

장로회신학대학원에 진학하고

가평의 마장교회 담임 전도사로 부임하고

목사 안수를 받고

33살에 월산교회 담임목사로 부임하고

1988년, 88올림픽이 열리던 해의 부활절에 부임하였으니까! 내년 4월이면 월산교회 시무 만30년이 됩니다.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고,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셨고, 하나님께서 나를 목회자로 세우셨다는 것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하고, 의심을 품어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제가 많이 부족하고 허물이 많지만 -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로, 오늘까지 목회하였다는 것을 감사하고 있습니다.

제가 성령이 충만하고, 흠 없고 온전하였다면, 월산교회가 지금보다 배나 부흥하였을 것이라는 생각은 많이 합니다.

저는 월산교회의 담임 목회자로서

이 월산교회는!

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교회라는 것을, 분명하게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님의 교회인 월산교회에서,

주님의 양 무리들을 목양하는 목자로

주님의 교회를 섬기는 종으로

세워 주셨음을 분명하게 믿고 있습니다.

당연한 이야기인데

요사이 당연하게 여기지 않는 이들이 많이 있습니다.

“주님의 교회”라고 말은 하지만

“내 교회, 내가 주인인 교회, 내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로 여기고 있습니다.

어느 교회에서

오래 동안 목회하시던 목사님이 은퇴하시고, 새 목사님이 부임하시는

“은퇴 부임예배”를 드리는데

총회장, 노회장을 지내신 목사님께서

“세례 요한이 ‘나는 쇠하여야 하고, 예수님은 흥하여야 한다.’고 말하였는데

이 역사가 이 교회에 있기를 원합니다.”설교하셨습니다.

저는 목사님의 설교를 들으면서, “참으로 합당한 말씀을 하시는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이 예배 후,

은퇴하신 목사님과 가족들이, 큰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내 교회”라 여기기에 소란을 일으킨 것이지

“주님의 교회”라면, 은퇴하면서,

“지금까지 목회를 잘 하고 은퇴하게 된 것을 감사합니다.

이제 물러납니다. 나는 쇠합니다.

새로 부임하신 목사님께서, 목회를 잘 하여, 교회도 목사님도 흥왕케 하여 주십시오!”

이 교회의 장로, 권사, 집사, 교사, 찬양대원, 성도되신 여러분!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세우신, 월산교회에

나를 충성되이 여겨 - 장로로, 권사로, 집사로, 교사로, 찬양대원으로, 성도로 세워 주셨습니다.”

확실하게 고백하기를 축원합니다.

어느 장로님이, 다툼이 생겨 교회를 떠나면서

“나는 장로 안 하려 했는데, 목사님이 하도 하라 해서 했습니다. 내가 장로된 것은 목사님 때문입니다.”말했습니다.

장로는 노회의 허락을 받아서,

공동의회에서 2/3이상의 지지를 받아

교회에서 임직합니다.

그 분이, 공동의회에서 2/3가 넘는 표를 얻었습니다.

그런데, “나 장로 안합니다. 못 합니다.” 말하는 것입니다.

제가 찾아가,

“하나님이 맡기시는 일을 안 하면 어떡합니까?

하나님께서! 공동의회를 통하여, 교우들의 투표를 통하여, 장로로 세우려 하십니다.

맛디아가 투표로 사도가 되었는데, 사람이 세운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투표를 통하여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시는데, 안 하면 어떡합니까?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겠습니까?”

교회에서 안수하여, 장로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 다투게 되자,

“하나님이 세우셨습니다.” 고백하여 장로가 되었는데

“목사님이 세우셨습니다.” 말하는 것입니다.

“나 장로 하기 싫었습니다.

나 권사 안 하고 싶어요.

나 집사 그만 둘래요.”

하나님이 세우신 직분인데

예수님께서 충성 되이 여기 맡기신 직분인데

이렇게 말하면 되겠습니까?

“나 장로 할래요

나 권사 할래요

나 집사 할래요” 말하지만

하나님이 세우시지 않으시는데 어떡합니까?

이 시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께서, 피로 값을 주고 사신, 주님의 몸 된 월산교회의

목사 된 나, 장로 된 나, 권사 된 나, 집사 된 나, 찬양대원 된 나, 교사 된 나, 성도 된 나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