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1:15-19 마음의 눈을 밝혀 주소서

관리자
2017-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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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눈을 밝혀 주소서 / 엡1:15-19

사도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서,

“에베소 교인들이, 환란과 시련이 많지만, 믿음 위에 굳게 서서 신앙생활을 잘 하고 있으며, 하나님의 크신 사랑을 가슴에 담고,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아름답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다.”는 귀한 소식을 듣습니다.

사도 바울이 3차 전도 여행 때에,

에베소의 두란노 서원에서 복음의 말씀을 선포하였고

3년 동안 목회하였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떠나

아가야 마케도니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갔고

붙잡혀 가이사랴 감옥에 2년 여 갇혀 있다가

로마로 압송되어,

지금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나이가 많이 들어, 백발이 성성한 노인이 되었습니다.

눈도 흐려지고, 팔 다리 허리 어깨가 뻐근합니다.

습하고 어둡고 겨울에는 너무 추운 로마의 지하 감옥에서 지내기가 너무도 힘이 듭니다.

제자 하나가

에베소교회의 소식을 사도 바울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에베소 교회가 믿음 위에 굳게 서 있다고 합니다.

에베소 교회의 성도들이, 서로 사랑하며 섬기며 살고 있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으니 얼마나 기쁜지!

3년의 수고가 헛되지 않았습니다.

3년 동안 열심히 복음의 말씀을 심었더니, 이제 아름답게 결실한 것입니다.

이 기쁨의 소식을 들으니

침침했던 눈도 밝아지고

아프고 쑤신 팔 다리 허리 어깨 무릎이 시원해졌습니다.

살을 에는 추위에도 온 몸이 따듯해졌습니다.

마음에 기쁨이 샘솟아 오릅니다.

강 같은 평화가 충만합니다.

사도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습니다.

사도 바울의 2차 전도 여행 때에, 마케도니아에서 빌립보에 이어 두 번째로 방문하여 세운 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도,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고,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의 삶으로,

하나님의 택하심을 입은 백성으로, 주님을 본 받는 삶을 살고 있어서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의 모든 교회에 믿음의 본을 보였고,

온 교회에 믿음의 소문이 퍼져 있다는 소식을 듣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의 아름답고 귀한 소식을 들은 사도 바울은!

(살전 1:2) “너희 모두로 말미암아, 항상 하나님께 감사하며, 기도할 때에 너희를 기억함이라.”

사도 바울은 1차, 2차 전도 여행 때에

비시디아 안디옥,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 갈라디아 지방에서의 복음을 증거 하였고,

갈라디아 지방 여러 곳에 주님의 교회를 세웠습니다.

앉은뱅이를 일어나는 역사가 있었습니다.

돌에 맞고, 죽었다고 버려진 적도 있었습니다.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만났습니다.

그러나 갈라디아 교회에 대한 소식을 듣는데

거짓 교사, 거짓 선지자가 들어와

다른 복음을 전하였는데,

구원하지 못하는, 변질 된, 왜곡 된 다른 복음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았는데, 복음을 버리고 율법으로 돌아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을 받았는데, 하나님의 은혜를 버리고 자신의 행함과 수고와 노력으로 구원을 받으려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갈라디아교회에 갈라디아서를 쓰게 됩니다.

(3:1) “어리석도다. 갈라디아 사람들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이 너희 눈앞에 밝히 보이거늘 누가 너희를 꾀더냐?”

갈라디아 교회의 소식을 듣고는

기쁨의 샘이 말라 버렸습니다.

강같이 평화로운 마음에 큰 물결이 일어났습니다.

몸과 마음이 함께 상하였습니다.

요한 계시록을 보면

예수님께서! 일곱 금 촛대 사이를 두루 다니시는데, 일곱 금 촛대는 아시아의 7교회를 말합니다.

두루 다니시며, 칭찬의 말씀을 하시는데

“환난 가운데서도, 수고하고, 인내하고, 참고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하였고, 믿음을 저버리지 아니한 것을 내가 안다.

너희의 믿음과 섬김과 인내가 처음보다 많아졌다.

너희가 궁핍하지만 실상은 부유한 자다.”

책망의 말씀도 하십니다.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다.

왜 발람의 거짓된 교훈을 받아 들였느냐?

왜 거짓 선지자 이세벨을 용납하여, 음행을 저지르냐?

네가 살아 있다고? 아니다. 너는 죽은 자다.

네가 부유하다고? 아니다. 네가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아야 한다.

왜 너는, 차지도 않고 덥지도 않느냐? 미지근하면 내가 너를 토하여 낼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월산교회를 보시고 뭐라 하실까요?

우리 주님께서

월산교회의 성도 된 나를 보시고 뭐라 하실까요?

우리 주님께서

“너희의 믿음의 역사와 사랑의 수고와 소망의 인내를 안다.

너희의 믿음은 정금과도 같아, 부유한 교회이다.

너희의 사랑과 섬김과 헌신과 충성을 내가 안다.

너희가 죽도록 충성한 것을 내가 기억한다.

너희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지만, 내가 큰 것을 너희에게 갚아 주리라. 채워 주리라.”

이 교회와 이 교회의 모든 성도들에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말씀에서

에베소 교회의 믿음과 사랑과 섬김에 대하여 듣고,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그치지 아니한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하나님께 기도드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영광의 아버지께서,

지혜와 계시의 영을 주시어,

하나님을 알게 하옵소서.

마음의 눈을 밝혀,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성도들이 누리게 될,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이며,

성도들에게,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게 하옵소서!”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 가운데, 우리 인간은 최고의 걸작품입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게

아름다운 소리를 들을 수 있게

향긋한 꽃 냄새를 맡을 수 있게

상큼한 것을 맛볼 수 있게

따사로움을 느낄 수 있게

5개의 감각 기관, 오감을 주셨습니다.

인간은 아름다운 장면을 오래도록 남기기 위하여 카메라를 고안해 냈습니다.

그러나 최첨단 카메라라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아름다운 세상을 볼 수 있도록, 우리에게 만들어 주신 눈을 본떠서 만들었습니다.

사진기는 빛의 밝기에 따라, 조리개와 셔터를 조정합니다.

우리 눈은, 자동 조리개로 빛이 많으면 작아지고, 빛이 적으면 커지고, 눈 껌뻑이는 자동 셔터를 가지고 있습니다.

사진기는 먼 곳과 가까운 곳에 따라, 렌즈의 초점을 맞추어야 합니다.

우리 눈은, 먼 곳과 가까운 곳을 볼 때에, 자동으로 초점이 맞추어 집니다.

입체 영화, TV가 근래에 나왔는데

하나님께서는, 원래부터 우리에게 사물을 입체로 볼 수 있도록, 눈을 두 개 만들어 주셨습니다.

카메라 렌즈는 가끔 닦아 주어야 하는데, 우리 눈에는 자동 세정제인 눈물을 주셨습니다.

렌즈에 물이 들어가면 잘 볼 수 없습니다.

우리 눈에 빗물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눈썹을 주셨습니다.

위 눈썹을 주신 것은, 빗물이 옆으로 흐르게 하기 위함입니다.

눈썹을 밀어 모나리자의 눈썹으로 만드는 분들이 혹 있는데, 눈썹을 밀면 비 올 때, 빗물이 눈에 들어갑니다.

귀도 그냥 만드신 것이 아니라,

세상에 있는 아름다운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도록 귓밥을 만드셔서

작은 소리라도, 잡아 귀에 쏙 들어가도록 설계하셨습니다.

코도, 비가와도 빗물이 콧구멍으로 들어가지 않도록, 콧구멍을 밑에다 내 주셨고

한 구멍이 막히면, 다른 구멍으로 숨을 쉬도록, 두 개를 만들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아름다운 세계를 -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느끼도록 5감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알 수 있도록 5감을 주셨는데

미련하고 어리석은 인간 중에

세상을 볼 수 있는 눈으로, 하나님을 보려고 합니다.

(시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영이신 하나님은!

우리의 육의 눈으로는, 결코 볼 수 없습니다.

우리의 육의 눈으로 하나님을 보았다면, 그것은 결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볼 수 있고, 하나님을 만날 수 있고,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새로운 감각 기관을 주셨습니다.

그것은 영안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하나님께서 너희 마음의 눈을 밝히사” - 마음의 눈, 영안을 열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불신자들은 우리 신앙인들을 이상하게 바라봅니다.

일요일은, 공일입니다. 한 주간 동안 일하다 쉬는 날입니다.

부족한 잠을 자거나,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거나, 좋아하는 운동을 하거나, 산과 들로 나들이를 가는 날입니다.

그러나 쉬는 날, 가장 중요한 한 가운데 시간을, 교회에 가서 예배를 드립니다.

시간을 허비한다고 생각합니다.

눈에 보이는 자신도 믿지 못하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믿는 것을 이해할 수 없습니다.

모든 종교가, 다 착하게 살라고 하는 것인데, “예수 만 믿어야 된다.”는, 우리의 주장을 고집이라고 생각합니다.

돈은, 열심히 모아도 부족한데, 힘들게 번 돈을 헌금합니다.

세상에, 하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은데, 신앙 때문이라고 절제하며 살아가는 것을 보며, “무슨 재미로 세상을 사느냐?” 말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세상에 속한 불신자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능력과 신성이 대자연 속에 분명하게 보이는데, “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지 못하는지!”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집도 지은 사람이 있고, 모든 물건은 만든 사람이 있는데,

어떻게 이 신비스럽고 오묘한 우주와 세상이, “아주 오래 전, 빅뱅 대 폭발로 생겨났고, 생명체가 우연히 생겼고, 진화되어 오늘의 모습을 갖게 되었다.” 말하며, 창조주 조물주 하나님을 부정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화살처럼 날아가는 인생, 안개처럼 사라지는 인생, 잠간 잠을 자는 것과 같은 인생, 밤의 한 순간과도 같은 인생을 살면서,

“한번 죽은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는데”

마치, 세상에서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생각하고,

영원한 천국을 위하여, 아무런 준비를 하지 않으며 살아가는 것을,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장차, 하나님 앞에 서서, 심판을 받게 될 터인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지 않고,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저주와 심판과 멸망의 자리에 던져질 터인데

죄의 종으로, 죄에게 붙잡혀, 죄 가운데 살아가는지, 이해 할 수가 없습니다.

영의 눈이 열린 사람과 영의 눈이 열리지 않은 사람의 차이입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크고 놀라운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의 눈을 밝혀 주셔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서 나의 영의 눈을 열어 주셔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생명의 나라, 영광의 나라를 보게 하시고

“달려 갈 신앙의 길을 달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지키고,

악한 영과의 선한 싸움에서, 함께 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승리하고

생명의 면류관을 받아쓰게 하십니다.”

그러나

(약 1:14)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세상의 재물에 대한 욕심은!

나의 기쁨과 영광을 위하여 살려는 욕망은!

하나님께서 열어 주신 영의 눈과 마음의 눈을 가립니다.

신령한 것을 볼 수 없게 합니다.

시험에 들고, 미혹되어,

달려야 하는 믿음의 길을 달리지 않고,

선한 싸움에서 쉽게 주저 않고,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상급을 준비하셨는데, 받을 수 없게 합니다.

하나님의 선지자 발람이,

모합과 미디안 장로들이 가지고 온, 은과 금 보화를 받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행진하는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하여, 나귀를 끌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하는 것이 내려다 보이는 언덕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

갑자기 길을 가던 나귀가 멈춰 섰습니다.

끌어도, 밀어도, 채찍으로 때려도 꼼짝을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좁은 길에서 나귀가 담에 밀치는 바람에, 발람 선지자가 상처를 입었습니다.

화가 난 발람 선지자는 “내가 칼이 있었다면 너를 당장에 찍어 죽였을 것이다.” 말하며,

지팡이로 나귀를 때렸습니다.

그런데 나귀가 “왜 나를 때리는 거요” 말을 하는 것입니다.

나귀가 말하는 것을 들을 때에, 여호와께서 발람의 눈을 밝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발람의 영안을 열어 주셔서,

여호와의 사자가, 손에 칼을 빼어 들고, 길에 선 것을 보게 되었습니다.

발람은 머리를 숙이고 땅에 엎드렸습니다.

세상의 금과 은, 썩어질 재물에 대한 욕심의 눈, 육의 눈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저주하려던 발람은!

영안이 열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자기 백성으로 삼으셔서,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고 계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감히 하나님을 뜻을 거스릴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발람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을 저주하기 위하여 올라간 언덕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축복하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주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주신 지혜와 계시의 영으로

열어 주신 영의 눈으로

밝혀 주신 마음의 눈으로

첫째, :17) 하나님을 알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처음 사람 아담의 범죄함으로

아담의 후손 된 모든 인류가, 죄 가운데 잉태되고, 죄의 종으로 태어나고, 죄가 이끄는 대로 살다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저주와 형벌과 심판과 멸망에 이르게 되었는데

성삼위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실 계획을 세우시고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 – 구약 성경을 통하여, 구원자를 보내 주실 것을 약속하시고

때가 차매, 약속하신 대로, 아들을 내어 주시고

유월절 양으로 이 땅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유월절 양으로

내가 허물로 받아야 하는 저주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시고

내가 불의함으로 받아야 하는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감당하시고

죄 값은 사망입니다. 내가 죄로 죽어야 하는데, 십자가에서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대속의 죽임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려 아들을 내어 주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성자 예수님의 은혜와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 안에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교통하심을

분명히 알고, 믿고, 의지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둘째, :18) “하나님의 부르심의 소망이 무엇이며, 기업의 영광의 풍성함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한 노인이, 의사를 찾아가 나누는 대화입니다.

“이보게, 의사 양반! 팔 다리 허리 어깨가 뻐근한데, 안 아프게 해주게.”

“할아버지, 연세가 어떻게 되세요?” “85세네.”

“할아버지 나이가 되면, 여기 저기 아프게 되어 있습니다. 할아버지는 건강하신데, 뭘 더 바라십니까?” “100세까지 살려고!”

“아직도 일하고 계십니까?” “일은 20년 전에 놓았고, 지금까지 아무 일도 안 하고 있네”

“술 담배를 하십니까?” “건강을 위하여 전혀 안 하네”

“가족은 어떻게 되십니까? 자식들은 잘 합니까?” “할멈은 몇 해 전에 세상을 떠났고, 자식이 3명인데, 자식도 아니네, 웬수야!”

“지금 맘에 드는 할머니가 계십니까?” “아니 없어”

“같이 놀 친구가 있습니까?” “몇 있었는데, 다 죽었어”

“등산이나 낚시 등 취미 생활을 하고 계십니까?” “나는 무 취미가 취미야”

의사가 마지막으로 말합니다. “그러면 뭐 하러, 100세까지 살려 하십니까?”

연명 치료를 중단하고 존엄사를 택할 수 있는, 연명의료결정법이 내년 2월부터 시행됩니다.

여론 조사를 하였습니다.

“연명을 위한 항생제 투여를 받지 않겠다.

임종 직전 인공호흡을 거부하겠다.

혈액투석, 심폐소생술을 받지 않겠다.”

신앙인이, 신앙을 갖지 않은 사람보다, 적극적으로 연명치료 중단을 찬성하는 것으로 나왔습니다.

(벧전 1:3) “예수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게 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세상의 소망은 썩어질 소망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소망은 산 소망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한 영원한 거처를 마련하셨습니다.(요 14:2)

우리가 영원토록 거할 하나님의 나라에는,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않습니다.(계 21:4)

오늘의 삶이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장차 우리가 영광의 나라에서 누리게 될 영광과는 족히 비교할 수 없습니다.(롬 8:18)

셋째, :19) “그의 힘의 위력으로 역사하심을 따라, 믿는 우리에게 베푸신 능력의 지극히 크심이 어떠한 것을 너희로 알게 하시기를 구하노라.”

이집트 종살이 하던 곳에서 구원함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을 향하여 가면서

40년 동안 광야에서 살았습니다.

광야는! 넓고, 황량하고, 물이 없고, 농사를 지을 수 없고,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는 사람이 살 수 없는 땅입니다.

그러나 광야에 40년 머문 이스라엘 백성이

죄로 말미암아 죽었지

양식이 없어 주려 죽은 사람이나 물이 없어 기갈하여 죽은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습니다.

우리 모두는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우리 인생길에 홍해 바다의 시퍼런 물이 넘실거리고 있습니다.

양식이 없고, 마실 물이 없어, 주리고 목마를 때가 있습니다.

아말렉과 같은 원수가 우리를 삼키려 할 때가 있습니다.

뱀과 전갈이 있어, 살 수 없는, 거친 광야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크신 능력으로 인도하시는 하나님

우리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능히 이길 수 있습니다.

임마누엘 성령 하나님의 함께 하심으로

달려갈 길을 달리게 하십니다.

믿음을 지키게 하십니다.

선한 싸움에서 이기게 하십니다.

주님 앞에 설 때에, 담대하게 주님 앞에 서게 하십니다.

찬양) 내 인생 여정 끝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