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1:6-11 마라나타 (대강절 설교)

관리자
2017-12-19
조회수 2891

마 라 나 타 / 행 1:6-11

성탄절을 앞둔 4주를 강림절, 대강절, 강림절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강림하심을 기대한다. 고대한다.”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땅에 전쟁이 일어났는데, 사랑하는 사람이 전쟁터에 나갔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전쟁이 끝났습니다.

전쟁터에서 무사히 돌아온 사람, 부상을 당한 채 돌아온 사람, 전사하여 돌아오지 못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오지 않습니다.

전사하였다는 이야기도 들리지 않습니다.

함께 싸웠던 동료들도, 사랑하는 사람에 대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죽었는지 살았는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래도 기다렸습니다.

많은 시간이 흘러, 전쟁의 상처가 아물어 갈 때에,

사랑하는 사람이 돌아왔습니다.

지금까지 포로로 잡혀 있었답니다.

돌아온 사랑하는 사람은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 어떻게 지금까지 나를 기다렸습니까?”

기다린 여인이 대답합니다. “저는 이스라엘이에요.”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백성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약속을 가진 언약의 백성입니다.

오랜 시간, 하나님의 약속을 기다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약성경인,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을 통하여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를 보내 주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오래 된 약속이 기록되어 있는,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을 – 구약구약성경 이라 부릅니다.

구약의 성도들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구원자, 메시야 그리스도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렸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졌습니다.

성자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하늘의 영광 자리를 내어 버리시고,

세상을, 인간을,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인간의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 성육신 하셨습니다. 도성인신 하셨습니다. 거룩한 탄생, 성탄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초림입니다.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유월절에,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자신의 몸을 화목제물로 드리셨습니다.

무덤에 묻히셨지만,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40여일 이 땅에 계시다가, 감람산에서, 500여 성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구름을 타시고 하늘로 승천하셨습니다.

주님께서 승천하시면서

“(행 1:11)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이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사도신경에서 고백하는 대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되시어 지옥에 내려가신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다.” 증거하지만,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새로운 약속이 기록되어 있어서 신약신약성경이라 부릅니다.

하나님은 신실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약속하신 것은 반드시 지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신구약 성경에 수많은 하나님의 약속들이 기록되어 있고

하나님이 약속하신 것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그래서 신구약 성경을 “예언과 성취, 약속과 응답”이라 말합니다.

모든 예언의 말씀이 다 이루어졌지만,

오직 이루어지지 않는 말씀이 있는데,

그것은 주님의 재림, 주님의 다시 오심입니다.

성경에,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하여

신약성경에 300번 이상, 정확하게 318번 기록되어 있답니다.

이는 신약성경 전체 260장에, 30절마다 한 번씩 언급하고 있으며

신약성경 27권 가운데 23권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나머지 4권에 실리지 않은 이유는,

3권은 개인적인 편지이고

나머지 한 권은 갈라디아서인데, 갈라디아서에도 재림에 대한 암시의 내용은 들어 있습니다.

성경에!

예수님의 탄생에 대하여 많이 말씀하고 있지만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는 훨씬 많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도들은!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이하기 위하여 준비하고,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재림하심에 대하여, 아무런 생각 없이 사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벧후 3:8-9)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초대교회 때에, 그리고 지금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은 없다.” 말하는 이들이 있는데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결코 부인해서는 안 됩니다.

- 우리 주님께서 직접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 성경에 수없이 기록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 사도 때부터, 사도신경으로 고백한, 믿음의 중요한 내용이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우리 신앙에 매우 중요한 고백임에도 불구하고

“재림”이라는 단어에, 거부 반응이 일어나고 있는 것은!

지금까지, 재림 신앙 때문에 교회가 큰 혼란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여기 계신 분들 가운데 기억하실 것입니다.

“1992년 10월 28일, 예수님이 재림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합시다. 다가올 미래를 예비합시다.” 다미선교회의 이장림이라는 사이비 목사의 말을 듣고

직장인들이 직장을 그만 두고

군인들이 부대로 복귀하지 않고

학생들이 학교에 가지 않고

말리는 남편을 뒤로 하고,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않고, 아이와 함께 집을 나간 엄마가 있었습니다.

25년 전, 드디어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날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교회에 모여,

흰옷을 입고, 명찰을 달고, 얼굴에 환한 미소를 머금고, 열심히 찬송하고 기도하였습니다.

명찰을 단 이유는, 옷만 남기고 몸이 들려올라가는 휴거가 있을 것인데,

명찰을 보고, 누가 휴거 되었는지를, 들림 받지 못한 불쌍한 영혼들에게 알리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그 모습을 자세하게 기억하는 것은!

텔레비전에서 생중계 하였기 때문입니다.

밤 11시, 11시 30분, 11시 50분 – 자정이 되어 올수록 그들의 찬송과 기도의 열기는 더욱 뜨거워졌습니다.

자정이 되었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들의 허탈해 하는 모습, 환한 미소가 탄식으로 변하는 모습 – 전국민이 지켜보았습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다미선교회나, 건강한 교회나 – 모두 같은 교회라고 생각하여

모든 교회와 기독교를 비웃었습니다.

다미선교회가 일으킨 재림 소동은!

한국 사회, 한국교회를 큰 혼란에 빠뜨렸고

그 때부터 한국교회가 정체기에 들어갔습니다.

노스트라 다무스란 예언자가 1999년 마의 대왕이 온다고 예언 하였습니다.

그는 히틀러의 출현, 케네디의 암살까지 맞출 정도로 신통력이 있다고 알려져 왔습니다.

더군다나, 1999년에는 태양계의 행성이 일 열로 서게 되고, 그 당기는 힘에 의하여 지구의 대폭발이 있을 것이라는 주장을 하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일부 목회자가

“천지창조부터 아브라함까지 2천 년

아브라함부터 예수님까지 2천 년

예수님부터 재림까지 2천 년

1999년 주의 재림이 있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딱! 딱! 맞아 들어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푼 꿈을 안고 새 천년을 준비하고 있을 때에,

한편에서는 주님의 재림과 지구의 종말을 주장하였습니다.

이 역시, 사람들의 비웃음 속에서, 해프닝으로 끝났습니다.

역사를 보면, 이러한 일들이 많았습니다.

주님의 재림에 대한 열풍은, 19세기 중엽 미국교회에서 갑자기 일어났습니다.

챨스 러셀이란 사람이, “1874년 주님이 재림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그러나 1992년 다미 선교회가 그랬던 것처럼 아무 일도 없이 지나갔습니다.

“계산을 잘 못 했습니다. 1914년에 오십니다.”

그러나 역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자 “1874년 예수님이 공중 재림 하셔서 하늘에 계시며, 예수님에 의하여 천년왕국이 시작되었고 1914년 예수님이 모든 권한을 장악하였습니다.” 둘러 댔는데

이렇게 하여 생겨난 교단이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지금도, 여호와의 증인들은, “예수님이 이미 공중 재림하셨다.” 주장합니다.

윌리암 밀러라는 침례교 목사가 있었는데, 성경을 연구하다가

“예수님이 1844년에 재림하실 것입니다.” 말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흰옷을 입고, 산에 올라가 기다렸습니다.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잘못 계산하였다 하여, 다른 날에 기다렸지만, 역시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재림이 없자, 교회는 혼란에 빠졌고, 밀러 목사는 사람들에게 몰리게 되었습니다.

그래도 추종자들이 있습니다.

밀러는 추종자들을 데리고 침례교회를 떠나, 새로운 교리에, 새로운 교회를 만들었는데, 그것이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입니다.

근래에, “제칠일 안식일 예수 재림교회”에서 나온 이단이 “하나님의 교회”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907년, 평양대부흥운동이 일어났고, 한국교회가 급성장 하였습니다.

이때에 길선주 목사님은, 한국의 성령 부흥 운동을 앞장서 이끄시던 분이셨습니다.

그런데, 길선주 목사님께서 “1929년 4월 29일 예수님이 재림하신다.” 예언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이루어지지 않아, 많은 성도들을 실망시켰습니다.

“재림” 신앙이 우리의 신앙을 더욱 돈독하게 하여야 하는데

오히려 혼란스럽고 거부감을 갖게 된 것은

주님께서 “그 날과 그 때는 나도 모르고, 천사도 모르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말씀하셨는데,

예수님도 모르시는 날을, 안다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재림의 시간에 대하여, 때에 대하여 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믿는 것 같지만 부인하는 자이고

예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자이고

자신이 예수님보다 더 큰 자라고 말하는 자입니다.

“재림 신앙”으로, 큰 혼란이 일어난 것은, 재림 신앙이 그렇게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값비싼 보석에는 도적들이 끊습니다. 천한 것은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습니다.

재림 신앙은, 소중한 보석과 같은 것이므로 - 악한 영, 사단이 재림 신앙을 이용하여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미혹하여 넘어뜨리고 있습니다.

악한 영의 간사한 계교로 - 잘못된 종말론자, 잘못된 신비주의자들이 생겨났습니다.

그렇다고, 재림 신앙을 무시하거나, 등한히 여기는 것은

“구더기 무서워 장 담그지 못하는 것”과 같습니다.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사도신경의 고백처럼

주님이 다시 오시고, 모든 인생들이 주님 앞에 서야 합니다.

주님 앞에 서는 것은! 2가지 중의 하나입니다.

첫째,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둘째, 내가 주님 앞에 나아가 주님 앞에 서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나의 떠날 시각이 가까웠도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딤후 4:6-8)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고, 사도로 살다가, 사도의 사명을 마치고,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주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실 때에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오른 편에 못 박힌 강도에게

“오늘 밤,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주님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았던 모든 성도들이, 이 세상을 떠나, 주님께 나아가, 주님 앞에 섰습니다.

하나님의 시간은 “천년이 하루 같고, 하루가 천년 같기에”

화살처럼 날아가는 삶을 사는 우리 인생들이, “지금까지 주님의 재림이 없었으니, 재림은 없을 것이다.” 말하지만,

하나님의 시계로 보면, 지금까지 이틀이 지났을 뿐입니다.

이러한 인생이기에

하늘을 쳐다보며, “주님 언제 오십니까?” 말하는 것은 미련한 일이고

사도 바울처럼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리고, 믿음을 지켜며, 주님 앞에 설 준비를 하는 것”이

바른 재림 신앙, 바른 종말 신앙입니다.

서양 사람들은 “Good Morning, 좋은 아침입니다.” 인사합니다.

우리는 “밤새 별고 없으셨습니까? 평안하십니까? 아침 식사는 하셨습니까?” 하고 인사합니다.

우리 민족이 많은 고난 가운데 살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밤새 변고가 많았고, 평안하지 않은 일이 많았고, 아침 식사조차 할 수 없을 만큼 궁핍한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우리처럼, 많은 고난을 겪은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와 비슷한 인사를 합니다.

“샬롬! 평안하셨습니까?”

초대교인들은 “마라나타” 인사 하였습니다.

이 뜻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십니다.” 하는 뜻입니다.

우리 모두 초대교인들처럼 인사 한번 해 보겠습니다. “마라나타”

초대교인들이 카타콤의 지하 어두운 동굴 속에서도 주님의 이름을 굳게 잡고 살았던 것은!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기 위해서였습니다.

콜로세움의 원형 경기장에서 굶주린 사자의 밥이 되고, 불에 태워져 죽으면서도, 주님의 이름을 결코 놓지 않았던 것은! 주님께서 영원한 영광의 나라로 인도하실 소망을 가지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터어키의 가바도기아에서 짐승의 가죽을 쓰고 토굴 속에서 살면서도 믿음 위에 굳게 서 있었던 것은! 잠시 받는 환난이 주님이 다시 오셨을 때에 받게 되는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신다고 약속하셨는데,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서야 하는데

주님이 다시 오시지 않으실 것처럼, 주님 앞에 서지 않을 것처럼

주님이 우리의 행한 대로 심판하시지 않으실 것처럼,

이 세상의 어떠한 것과도 족히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천국이 없는 것처럼 살아간다면

믿음이 약하여졌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의 향한 사랑이 식어졌다는 증거입니다.

하늘의 소망이 희미해졌다는 증거입니다.

이는 우리가 세속화되었다는 증거입니다.

주님이 다시 오실 때에 3종류의 사람이 있습니다.

첫째, 땅을 치며 통곡하는 사람입니다.

주님을 맞이할 아무런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은 사람입니다.

예수님이 온 세상의 심판주로 오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이 왕이신데, 왕이신 예수님께 충성하지 않고

예수님이 내 인생의 주인이신데, 주인께 순종하지 않으며 살았습니다.

엉뚱하게도 썩어질 세상 것을 섬기며 살았습니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둔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주님의 크고 두려운 심판 앞에 땅을 치며 통곡할 것이고,

주님의 심판이 너무 두렵고 무섭워 “골짜기야 나를 덮어라, 바위야 나를 덮어라!” 외칩니다.

저주와 형벌의 장소에 던져진 뒤에,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입니다.

제가 잘 아는 분은, 2년 동안, 중동에서 일했습니다.

성실하신 분으로, 아내와 자식들을 위하여 열심히 일했고, 일해도 번 돈을 가족들에게 송금하였습니다.

드디어 2년 해외 근무를 마치고 귀국 길에 올랐습니다.

사랑하는 가족들과 함께 지낼 아름다운 꿈을 꾸었습니다.

2년 동안 일했으니, 아내와 함께 잠시 여행이라도 가야겠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아내와 아이를 위하여 준비한 선물을 바라보면서, 특별히 좋아할 아이들의 모습을 머리속에 그리며 웃음을 지었습니다.

비행기는 무사히 김포공항에 안착하였습니다.

공항에는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내와 아이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습니다.

후에, 이혼법정에서 아내를 볼 수 있었습니다.

아내가, 멀리 떠난 남편을 기다리지 않는 것은, 남편을 사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들이, 신랑 되신 예수님 앞에 서는 것을, 다시 오심을, 준비하지 않고, 기다리지 않는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고,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조금만 있다 오시지요!” 말하며 고개를 들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주님 오실 것을 알았습니다.

주님이 오실 것을 준비하며, 기다려야 하겠다는, 생각은 하였습니다.

그러나 세상일에 분주하고, 세상일에 바빠서, 세상의 쾌락을 좇느라,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하지 못했습니다.

주님 맞이할 준비를 하여야 한다는 마음뿐이었습니다.

등잔은 준비하였지만, 기름은 준비하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달란트의 비유로, 재림하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달란트를 맡겨 두고, 떠났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돌아온 주인은 종들을 불러 결산합니다.

금 5달란트, 2달란트 받은 종은!

열심히 일하여 곱절을 남겼습니다.

주인은 “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하셨습니다.

1달란트 받은 종은, 받은 것을 그대로 가지고 왔습니다.

주인은 “악하고 게으른 종아!” 책망하였습니다.

어느 분이 말하기를

“우리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 앞에 설 때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시간과 재물을 어떻게 사용하였는지 보고 하여야 한다.”

주님을 위하여 시간과 재물을 잘 사용하였으면, 착하고 충성된 종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시간과 재물을 사용하지 않았으면, 악하고 게으른 종입니다.

게으른 종은 악한 종입니다.

주님을 위하여 나의 시간을 사용하지 않고

주님을 위하여 나의 재물을 사용하지 않으면 - 악한 종입니다.

마지막으로, 주님 앞에 설 때에 “아멘! 주 예수여 오시옵소서!” 외치며, 기쁘게 뛰어 나가 주님을 맞이하는 성도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에 입고 나갈 예복을 잘 준비하여 놓았습니다.

주님 오시면 참여할 천국 잔치를 위하여, 등잔 뿐 아니라 등잔에 넣을 기름도 준비하였습니다.

마라나타!

주님이 다시 오십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서게 됩니다.

주님 앞에 부끄러움 없이 서고

주님으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아!” 칭찬 듣는

저와 여러분 되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그 날이 도적 같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