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10-11 칼을 칼집에 꽂아라

관리자
2018-0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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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을 칼집에 꽂으라 / 요18:10-11


2달 만에, 요한복음의 말씀으로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이 잔을 나에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기도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기 위하여, 기도론 시내를 건너시는 내용까지 나누었습니다.

기도론 시내를 건너시자,

배신자 가룟 유다의 인도를 받은, 대제사장 휘하의 병사들이, 예수님을 사로잡아 가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왔느냐?” 말씀하시고, 순순히 포승줄에 묶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에

베드로가, 품속에 있던 칼을 꺼내, 대제사장의 종 – 말고를 향하여 휘둘러, 말고의 귀가 잘라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말고의 귀를 붙여 주시면서

“칼을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시카리오(Sicario) / 암살자의 도시” 란 영화가 상영되었는데

“시카로오”는 예수님 때의 “셀롯·질롯(Zealot)”에서 온 말로, 우리 성경에는 열심당이라 번역되었습니다.

열심당은! 다윗 왕국의 재건, 이스라엘을 회복하러, 가슴을 칼을 품고 다녔고, 암살도 서슴치 않았던, 극단적 독립 운동가들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시몬은 열심당원이었습니다.

성서학자 가운데, 시몬 뿐 아니라 상당수의 예수님의 제자가 열심당원이었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베드로가 칼을 품고 있었으니, 열심당원이다.

가룟 유다도 이스라엘의 회복을 꿈꾸는 열심 당원이었을 것이다.

예수님이 행하시는 능력이라면, 로마의 군대 군단을, 능히 몰아낼 수 있을 것이라 믿으며

예수님의 능력을 이용하여,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하여,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나는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삼일에 살아날 것이다.

인자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그 천사들과 함께 왕권을 가지고 올 것이다.’ 말씀하시자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이용하여 다윗 왕국을 회복하겠다는 꿈을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수님을 배반하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면

예수님이 극한 상황에 몰리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내려와, 자신을 못 박는 로마인들을 물리치실 것이라 생각하였다.

가룟 유다는 은 30이 탐이 나서, 예수님을 배반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이용하여,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을 회복하기 위함이었다.”

설득력 있는 주장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뿐 아니라, 예수님을 따르던 허다한 사람들이

가슴에 칼을 품고 다니는, 행동하는 암살자 열심당원은 아니었어도

마음은 모두가 열심당원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다윗 왕국을 회복하실 분으로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5병 2어의 기적을 행하셨을 때에

제자들이 앞장서고, 모인 사람들 모두가, 예수님을 왕으로 세우려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시면서,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 그리고 왕권을 가지고 다시 오실 것”을 말씀하시자,

예수님 곁에, 언제나 구름과 같은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실망하여 제자들만 남겨 두고 모두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들도 가려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에

제자들은 물론이고, 많은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이여. 왕이신 예수님 만세!”를 외치며

종려나무가지를 꺾어 흔들고, 종려나무 가지와 자신의 옷을 벗어 길에 깔고

열광적으로, 다윗 왕국을 회복하실 왕으로 환영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말씀하신 대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40여 일, 이 땅에 계시다가, 감람산에서 500여 성도가 지켜보는 가운데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을 기다리라.” 말씀하시고, 구름을 타시고 승천하시려는데

제자들은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묻습니다.

예수님께서 구름을 타시고 승천하시는 엄숙한 자리이지만

제자들과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의 관심·기대는?

“메시야 그리스도 구원자 왕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왕의 자리에 앉으셔서

로마인들을 몰아내시고

이스라엘을 회복하시고, 무너진 다윗 왕국을 언제 재건하십니까?”

예수님의 제자들과 성도들의 마음은 열심당원인입니다.

예수님께서 로마인들을 몰아내고, 무너진 다윗 왕국을 다시 세우실 것을 간절히 소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에게,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세상 나라는 칼로 세워진다.

칼로 세워진 나라는 칼로 망한다.

나는 왕으로 나라를 세우고 다스리지만,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롬 14:17) “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 · 부귀와 영화와 권세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오직 성령 안에 누리는 의와 평화와 기쁨이다.

나의 나라는 하늘에 있다.

나의 나라는 영원한 나라이다.

나의 나라는 생명의 나라이다.”

주님의 교회가 세워진지 1500년 쯤 되었을 때에

독일의 부유한 가정에 태어난 마르틴 루터(Martin Luther, 1483~1546)는 수도사가 되었습니다.

수도원에서

의의 하나님 앞에 서기 위하여

엄격한 수도원의 규칙을 따라 - 금식, 철야, 죄를 회개하는 기도, 심한 노동을 하며 – 의롭게 되어 구원에 이르려 하였습니다.

1510년, 루터는 수도회의 일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살아 있는 성지요, 모든 성도들의 조국이요, 교황님의 위엄 어린 처소인 로마에, 부푼 가슴을 안고 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루터가 로마에서 본 것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저주 받은 바벨론, 바벨론의 창녀들, 불량배들, 뚜쟁이들, 성직과 성물을 매매하는 성직자들, 믿음도 없고 도적적 관념도 없는 추기경들”

크게 실망하고 돌아온 루터는, 성경을 읽기 시작하였습니다. 성경을 연구하였습니다.

30세에, 비텐베르크대학에서 성경을 가르치는 교수가 되었습니다.

1515년, 루터는 성경을 깊이 읽는 가운데, 귀한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루터는 의롭게 되기 위하여,

금식하고, 기도하고, 고행하였습니다.

자신의 수고와 노력과 행함으로 의롭게 되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의롭게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됩니다.

믿는 자에게 베풀어 주시는 - 하나님의 용서하시는 은혜, 품어 주시는 은혜, 구원하시는 은혜로 됩니다.

루터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서

‘이신득의’(以信得義, Justification by Faith)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교리”를 발견하였습니다.

루터는 세 가지를 주장하게 됩니다.

‘오직 믿음’(Sola Fide), ‘오직 은혜’(Sola Gratia), 오직 성경(Sola Scriptura)

이때에, 교회에서 면죄부를 팔았습니다.

“성 베드로 성당의 재건축을 위하여, 헌금함에 은화 여섯 닢을 넣는 순간, 즉시 모든 죄로부터 해방됩니다.

헌금함 속에서 금전 소리가 나자마자, 조상들의 영혼이 연옥으로부터 튀어 나와 천국에 이릅니다.”

루터는,

1517년 10월 31일, 비텐베르크 성당에,

로마 카톨릭 교회의 쇄신 · 교회의 개혁 · 신앙의 개혁을 요구하는 95개 조항을 써 붙였습니다.

“구원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된 대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과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받는 것이니

성경으로 돌아가자!

교회가 주님의 교회로, 주님이 원하시는 교회로 돌아가자!

이 땅에서 주님의 나라, 하나님의 나라, 신령한 나라, 의의 나라를 세워가자!” 외친 것입니다.

그러나 루터가 교회의 쇄신 · 교회의 개혁 · 신앙의 개혁을 외쳤는데

루터가 생각하지도 못했던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루터가 원하지 않은, 엉뚱한 방향으로 개혁이 진행되었습니다.

개혁이 아니라 혁명이 되었습니다.

모든 계층의 사람들은, 루터의 외침에 공감하면서,

루터의 외침을, 자신의 욕구와 바램에 맞추었습니다.

군주들은!

교황에게서 벗어나, 왕권을 강화하려 하였습니다.

교황은 수위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로마의 콘스탄틴 황제가, 교회의 수장인 교황에게, 세상 나라도 맡겼다는, 위조된 ‘콘스탄틴 기증서’로, 교회 권력 뿐 아니라 세속 권력도 쥐고 있었습니다.

루터가 95개의 교회의 쇄신 · 교회의 개혁 · 신앙의 개혁안을 내어 놓자

독일의 제후들은 루터를 지지합니다.

교황에게서 벗어나, 자신들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서입니다.

루터의 외침에, 주님이 왕이시고, 주님께서 친히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왕국”을, 이 땅에 세우려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교황도 없고 왕도 없고, 영적인 권력과 세속적인 권력도 없고,

사람이 주인인 교회가 없고, 초대교회로 돌아가, 주님이 왕이 되어 다스리시는 “그리스도의 왕국, 천년 왕국”을 세우려 하였습니다.

세례는! 자신의 죄와 믿음을 공개적으로 고백하고 받아야 하기에, 유아세례를 부정하고, 다시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그래서 이들을 재세례파로 부릅니다.

재세례파는, 마지막 시대를 살고 있다는 확신을 가졌고, 재세례파의 지도자들을 하나님의 예언자 사도로 인정했습니다.

순수한 신앙으로, 이 땅에 천년왕국을 세우려 한 재세례파가 장악하고 있던 성은, 제후의 공격을 받고, 함락되고, 지도자와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흩어진 이들의 선교 운동으로, 지금까지 세계 여러 곳에 재세례파 · Anabaptist · 메노나이트(Mennonites)가 있습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에

성경대로 믿고 실천하며, 1세기 초대교인으로 생활하려는 노력을 하며

교회와 정부의 완전 분리를 주장하고,

정부의 필요 이상의 기능과 역할에 부정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세상과는 거리를 두고, 아직도 이동할 때에 마차를 타고 다니는

지극히 보수적인, 재세례파 아미쉬 공동체가 있습니다.

루터는! 교회의 쇄신 · 교회의 개혁 · 신앙의 개혁을 외쳤는데

개혁이 혁명이 되어, 로마 카톨릭 교회와 대립하는, 루터교회가 생겨났습니다.

신앙개혁을 외친지 15년이 가까워 질 때에

독일의 루터교회에 속한 제후들이 슈말칼덴 동맹(Schmalkaldischer Bund)을 맺고, 로마 카톨릭 교회의 탄압에 저항합니다.

전쟁이 일어납니다.

24년 동안, 신교와 구교는 종교 전쟁을 벌입니다.

1555년 아우크스부르크에서 신교와 구교는 평화협정을 체결합니다.

로마 카톨릭 교회로부터, 교황의 지배를 받지 않는 신교 · 저항하는 사람들이란 ‘프로테스탄트’로 공인 받았습니다.

이후 오래 동안, 여러 지역에서, 예수님을 믿는 신교와 예수님을 믿는 구교가 종교전쟁을 벌입니다.

마틴 루터가! 교회의 쇄신 · 교회의 개혁 · 신앙의 개혁 외쳤는데

개혁이 혁명이 되고

종교개혁을 시작으로, 지나온 500년 동안, 세계의 역사를 바꾸는 혁명이, 공교롭게도 한 세기에 한 번씩 일어났습니다.

16세기 종교혁명

17세기 군주혁명

18세기 시민혁명

19세기 산업혁명

20세기 경제혁명인 사회주의혁명입니다.

루터가 교회의 쇄신 · 교회의 개혁 · 신앙의 개혁을 외친 후, 일어난 가장 처참한 사건은 농민 전쟁입니다.

루터는 만인 제사장설을 주장합니다.

교황만이 성경을 해석할 수 있고, 신부만이 성경 말씀을 읽고 설교할 수 있고, 신부만이 죄를 용서할 수 있었는데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누구나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할 수 있고

누구나 죄를 회개하고 자백하여, 하나님으로부터 사죄의 은총을 받을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루터의 가르침으로,

예수님은 믿고 세례를 받은 농민들은

“우리는 존귀한 하나님의 자녀이다. 그러나 우리는 매우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 생각하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게 되었습니다.

농민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영주의 엄청난 세금 뿐 아니라, 교회에서 소출의 십일조와 가축이 일한 것의 십일조도 거두어 갔습니다.

귀족들은 자신의 즐거움과 취미를 위하여 사냥, 수렵, 고기 잡는 것을 금지함으로, 농민들은 자기 땅의 짐승을 잡을 수 없었습니다.

남자가 죽으면, 그의 재산을 아이나 부인이 아니라 영주가 가져갔습니다.

농민들은 자유인에서 소작농으로, 노예로 전락하였습니다.

부당한 대우와 억압을 당하고 있던 농민들이 합당한 대우를 요구합니다.

사방에서 민심이 동요합니다.

마틴 루터는 곧 폭동이 일어날 것을 예견합니다.

폭력으로 피투성이가 되는 독일을 봅니다.

마틴 루터는 제후와 농민들에게

“하나님은 강력한 군주이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세속 왕국에 왕을 세우셨습니다.

왕의 권력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께 충성하여야 하고, 세상의 왕에게 복종하여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법과 세상의 법을 따라야 합니다.”

루터는 농민들을 설득할 수 없었습니다.

악한 정부에 피해를 보고, 재산을 빼앗기고, 종으로 전락하여, 고통당하는 것은, 루터가 아니라 농민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루터가 종교개혁을 한지 7년 째인, 1524 농민들은 마침내 폭동을 일으켰습니다.

곳곳에서 약탈을 하고, 성을 파괴하고, 교회와 수도원을 훼손하였습니다.

루터는 농민을 찾아다니며, “폭력은 안 됩니다.” 외쳤지만, 듣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농민을 설득하는데 실패한 루터는

영주에게 “도적질하고 살인하는 농민 강도떼들을 무자비하게 진압할 것”을 요구하였습니다.

독일의 가난한 농민 30여 만 명이 참여하여, 2년 동안 벌어진 농민 전쟁에서, 10만 명이 학살되었습니다.

농민 전쟁을 앞에 두고 루터가 외친 것은

“성도는 하나님의 나라와 세상 나라 – 두 개의 왕국에 속해 있다.

성도에게는 충성해야 하는 영원한 왕이 계시고, 복종하여야 하는 세상의 왕이 있다.

성도에게는 따라야 하는 하나님의 법과, 지켜야 하는 세상 나라의 법이 있다.”

두 왕국설입니다.

루터보다 26년 뒤에 태어난 칼빈은 기독교강요에서 두 왕국설을 말하는데

“집권자들의 명령이, 하나님께 반대되는 것이라면 그 명령을 존경하지 마라.”

칼빈의 제자였지만, 장로교를 창시한 프로테스탄트의 개혁가로 평가 받은 존 낙스는

“하나님의 뜻을 거부하는 군주제라면 그것은 무익하며, 오히려 다른 형태의 정부가 더 낫다.

하나님의 법을 지키지 않는 군주려면, 그 폐위가 정당하다.”

존 낙스 두 왕국설은 청교도 정신이 되고, 민주주의의 초석을 놓게 됩니다.

두 왕국설을 처음 말한 이는, 최후의 고대인이며 최초의 근대인이라는 어거스틴입니다.

“성도들은,

세상 나라에 살지만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며 산다.

세상 나라에서 세상의 지혜로 살지만, 신구약성경적인 믿음으로 산다.

세상 나라에서 평화를 위하여 힘쓰지만, 영원한 하늘의 평화를 사모해야 한다.

세상 나라에서 질서와 조화를 이루지만,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여야 한다.”

그러나, 두 개의 왕국을 말씀하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칼을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칼로 세워져 칼로 망하는 세상의 나라가 있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세워지는 영원한 나라가 있다.

나는 왕이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내 나라는 하늘에 속하였다.

그러나,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라.

세상 나라의 법을 지키고, 하나님 나라의 법을 지켜라.

세상 나라에 충성하고, 하나님 나라에 충성해라.

세상에 살지만, 너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다.

너희는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고 있다.

너희는 이 세상에 살지만, 하나님의 자녀이다. 천국의 백성이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천국의 백성답게, 하늘에 속한 자처럼 – 세상에서 빛으로 살아라. 세상에서 소금으로 살아라.”

예수님께서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쓴 잔을 마시려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허물로 받아야 하는 저주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시고

내가 불의함으로 받아야 하는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감당하시고

죄 값은 사망입니다. 내가 죄로 죽어야 하는데, 십자가에서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부활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영과 육의 부활입니다.

육만 부활하면 시체이고

영만 부활하면 유령입니다.

예수님께서 영과 육으로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영과 육으로 부활하신 것은

땅에 사는 우리의 육신을 구원하시고, 하늘에 사는 우리의 영을 구원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 성도에게는

땅의 나라와 하늘의 나라, 세상의 왕국과 하늘의 왕국이 있습니다.

두 나라에 모두 충성해야 합니다.

세상의 왕과 하늘의 왕이 계십니다.

두 왕께 모두 복종해야 합니다.

세상의 법과 하나님의 법이 있습니다.

두 법을 모두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과 세상 나라의 법이 충동할 때는, 상위법인 하나님 나라법을 따라야 합니다.

영원한 왕이신 하나님과 세상의 왕이 충돌할 때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루터 때,

세상의 군주처럼, 세상 나라의 권세와 영광만을 위하여 사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재세례파처럼, 세상 나라에서 살지 않는 것처럼 사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농민들처럼, 하나님의 법을 따르지 않고, 폭력을 행사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로마 카톨릭교회처럼,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 같지만 세상의 부귀 영화 권세를 더 사랑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살았습니다.

광야 40년 나그네의 삶, 순례자의 삶을 마치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됩니다.

지나가는 광야라고 아무렇게나, 함부로 살면 안 됩니다.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다. 차라리 애급으로 돌아가자!” 불평하고 원망하고 살면 안 됩니다.

구원하신 하나님을 믿고,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소망하며 살아야 합니다.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 영광과 기쁨을 드리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이 나라를 사랑하고, 조국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으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하고

대한민국의 국민으로, 대한민국의 법을 지키며 살아야 합니다.

성도의 의무인 성수주일과 십일조와 교회 치리에 복종하며 살아야 하고

대한민국 국민의 의무인 교육을 받고, 노동을 하고, 국방의 의무를 지고, 세금을 납부해야 합니다.

고넬료, 디모데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고, 하나님께 칭찬과 상급을 받았듯이

우리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존경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으로부터 칭찬과 상급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3가지를 승리하여야 합니다.

첫째, 가정 생활에서의 승리

둘째, 교회 생활에서의 승리

셋째, 삶의 일터에서의 승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