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12-24 안나스와 가야바

관리자
2018-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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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전 63년,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유대를 정복하고, 시리아에 합병시킴으로, 로마제국의 속주가 됩니다.

로마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정복한 곳을 속주나 속국으로 삼았습니다.

(눅 3:1-2) “디베료 황제가 통치한 지 열다섯 해 곧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분봉 왕으로, 그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분봉 왕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분봉 왕으로,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으로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이 빈 들에서 사가랴의 아들 요한에게 임한지라.”

세례 요한이 활동을 시작한 때는, 로마제국의 2대 티베리우스 황제 즉위 15년으로, 주후 29년입니다.

세례 요한보다 6개월 후에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는,

빈들에서 외치는 세례 요한에게 가셔서 세례를 받으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

로마의 속주였던 시리아에, 로마의 황제는 집정관을 지낸 이들 가운데 총독을 파견하였고

시리아에 속해 있던 유대에는, 집정관보다 낮은 호민관 출신이었을 것입니다. 빌라도를 파견하였습니다.

빌라도의 직책은, 총독(procurator)이 아니라, 유대의 지방 행정관(praefecter)이었습니다.

로마 이름으로,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 주후 26년에서 36년까지, 10년 동안 유대를 다스렸습니다.

대제사장은 한 명인데, 안나스와 가야바가 대제사장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로마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정복한 곳을 속주나 속국으로 삼았습니다.


로마는! 속주와 속국에 대한 존중과 관용 · 똘레랑스로 통치합니다.

로마는!

유대인들만의 독특한 종교와 정치, 신정정치를 이해합니다.

모든 민족 족속이 여러 신을 섬기지만, 유대인은 오직 한 분의 신을 섬깁니다.

모든 민족 족속은 자기 섬기는 신의 신상이 있지만, 유대인에게는 신전은 있지만 신상은 없습니다.

모든 민족 족속이 귀하게 여기며 섬기는 신상을, 유대인들은 우상으로 가증하게 여깁니다.

로마인들은 원로원에서 만든 법을 존중하고, 법을 지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법을 만들지 않습니다. 유대인은,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서 법을 받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명, 율법을 지킵니다.

로마시에서는, 가난한 자들에게 한 달에 두 번, 무료로 양식을 주었습니다.

가끔 유대인들이 배급을 타러 나오지 않는 것입니다.

조사를 해 보았더니, 1일이나 15일이 안식일이면, 안식일에 일 할 수 없는 유대인들이라, 배급을 타러 나오지 않았습니다.

이를 알게 된 로마시에서는 “배급 안 타면 너희들 손해지! 굶어라.” 할 것 같은데,

1일이나 15일이 안식일이면, 다음 날 유대인들에게만 배급을 주었습니다.

대제국을 건설하고, 팍스 로마나 – 로마의 평화를 이루었지만,

까탈스러운 유대인들을 다루는 것에, 많은 신경이 쓰였습니다.

로마의 군단은, 언제나 독수리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하고, 독수리의 깃발과 함께 주둔합니다.

로마인들에게는 독수리 깃발이 군단의 상징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우상입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이 거룩한 곳으로 여기는 예루살렘에,

로마의 군단기를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군단이, 유대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닌, 가이사랴에 주둔하였습니다.


정복자 로마이지만, 유대인에 대한 존중과 관용의 로마는

로마에 반기를 들지 않는 한,

유대인의 종교와 관습을 유지하는, 유대인의 자치를 허락합니다.

(민 11:16)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라” 는 유대인의 경전인 성경을 따라

대제사장과 70명의 바리새인 사두개인,

그래서 71명으로 구성된 - 산헤드린이라는 자치정부, 공의회, 공회를 세우도록 허락하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 최고의 행정기관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 최고의 재판기관입니다.

예수님도, 사도 베드로와 요한도, 스데반도, 사도 바울도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았습니다.

로마는, 유대인들에게 유대법을 따라 통치하고 재판하는 자치를 허락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 사형을 집행하는 일은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주후 6년, 안나스는 시리아 총독 구레뇨(Quirinius)에 의해 대제사장에 임명되었습니다.


대제사장직은 - 유대교회의 최고 수장이고, 자치 정부의 최고 권력자이고, 재판정인 산헤드린 공회의 의장입니다.

상당한 권한과 권세를 가지고 특권을 누렸습니다.

성경에 대제사장직은 종신직이지만,

로마의 지배 아래서는 그렇지 못했습니다.

안나스는, 주후 16년에 총독 그라투스(Gratus)에 의해 해임되고

안나스의 아들 엘르아살이 대제장에 있다가

안나스의 사위인 가야바가, 주후 18년 대제사장에 임명 되어 18년 동안 권세를 누리다가

주후 36년, 시리아의 총독 비델리우스에 의해 해임 되었습니다.


요11장, 예수님께서 베다니 마을의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자,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 · 메시야 · 구세주 · 왕으로 믿고 따랐습니다.

(11:47) “이에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이 공회를 모으고”

(11:53) “이 날부터는 그들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 하니라.”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증거하실 때부터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은 예수님을 죽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고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다시 살리신 이후에, 생각을 구체적으로 실행합니다.


사두개인은 세속적 유대인으로, 부활과 천사가 없다고 믿습니다.

권력 지향적인, 대제사장은 사두개인입니다.

바리새인은 스스로 경건한 유대인으로 여기며, 부활과 천사를 믿습니다.

사두개인과 바리새인은 늘 대적하였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사도 바울을 산헤드린 공회의 재판정에 세웠을 때

사도 바울이 “나는 바리새인으로, 죽은 자의 소망 곧 부활로 말미암아 심문을 받노라!” 말하자

부활을 믿는 바리새인과, 부활을 믿지 않는 사두개인이, 회의를 하다 말고 서로 다투게 되고, 둘로 나누어졌습니다.

이렇게, 늘 다투고, 반목하던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이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는 마음을 같이 합니다.


바리새인은 예수님을 미워합니다.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에게

“외식하는 자들아! 독사의 자식들아! 회칠한 무덤아!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자들아!” 책망하셨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에게

“바리새인처럼, 사람에게 보이려고 기도, 금식, 구제, 헌금을 드려서는 안 된다.

은밀히 보시고 상주시는 하나님께 은밀하게 행하여야 한다.

바리새인의 나쁜 누룩, 교훈, 가르침에 주의하라.”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은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을 모두 지켰다. 우리는 의롭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생각하는데

예수님의 비난과 책망을 들으면서,

예수를 죽여 없애야 한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사두개인의 대표인 대제사장은, 예수님을 더욱 미워하였습니다.

유대와 갈릴리에 사는 모든 남자는 유월절과 칠칠절과 초막절에,

성전에 올라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해외에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평생에 한 번은 예루살렘에 올라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것이 의무였습니다.

각기 형편에 따라,

소와 양과 비둘기를, 예루살렘 성전으로 끌고 와 제사를 드리는데

예루살렘이나 유대 지방에 사는 유대인들은 제물로 사용할 소와 양을 데리고 가기가 쉽지만

갈릴리에서 사는 유대인들은, 소와 양을 끌고 예루살렘까지 가기가 쉽지 않습니다.

디아스포라 유대인들은 더욱 힘듭니다.

제물을 끌고 가기 힘든 유대인들은

예루살렘에서, 제물로 드릴 소나 양이나 비둘기를 사서,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제국의 속주민으로, 로마 돈을 사용하였습니다.

로마 돈에는, 로마 황제인 가이사의 얼굴이 새겨져 있습니다.

황제의 얼굴이 유대인들에게는 우상입니다.

우상이 새겨진 돈을, 하나님의 성전에 드릴 수 없습니다.

평시에는 로마 돈인 데나리온 드라크마를 사용하지만, 하나님께 헌금을 드릴 때에는 유대 돈인 세겔로 바꾸어 드렸습니다.

예루살렘에는

제물로 사용될 소와 양과 비둘기 파는 상인들과,

돈을 바꾸어 주는 환전소가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은,

시온성이라고 하는 예루살렘 성, 한 가운데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성전 문을 통과하면,

넓은 이방인의 뜰입니다.

그 안에는 여인의 뜰입니다.

그 안에는 유대인의 뜰입니다.

12살 이상 된 성년 유대인 남자들만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유대인 남자들은 이곳에서 서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렸습니다.

유대인의 뜰을 지나면 제사장의 뜰이 나오는데, 제물을 태우는 번제단이 있습니다.

번제단 앞에 성전이 있는데

성전은 제사장이 들어가는 성소와 대제사장이 일 년에 딱 한 번 들어가는 가장 거룩한 곳인 지성소로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에서, 성전의 문으로 갈 때에, 베데스다 연못이 있고, 근처에 양문, 양의 문이 있습니다.

양문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은,

제사 드리는 사람이, 제물로 드릴 양을, 이 문을 통하여 끌고 들어갔기 때문이고

먼 곳에서 온 순례자의 편의를 위하여, 이곳에서 제물로 드릴 양을 팔았기 때문입니다.

양 뿐 아니라, 소와 비둘기도 팔고, 돈을 바꿀 수 있는 환전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장사꾼과 환전인들이, 성전 안에서, 이방인의 뜰에서 장사를 하는 것입니다.

성전 문 밖이면 괜찮은데,

어찌 성전 안에서 장사를 하게 된 것입니까?

성전을 관리하는, 제사장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대교의 최고 권력자인, 대제사장의 허락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대제사장인 안나스와 가야바는, 순례자들의 편의를 제공한다는 명목으로, 상인들로부터 많은 뇌물을 받고, 못 본 척 눈 감아 준 것입니다.

(레 22:21) “여호와께 드리는 자는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아무 흠이 없는 온전한 것으로 할지니”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은 다리를 절거나, 한 쪽 눈이 멀었거나, 삐쩍 마른 부실한 짐승은 안 되고, 흠이 없고 온전하여야 합니다.

제사를 드리기 전에, 제사장은 제물로 합당한지를 판단합니다.

불합격 판정을 받으면 제물로 드릴 수 없습니다.

집에서 기르던 짐승을, 하나님께 제물을 드리려 끌고 왔는데, 불합격 판정을 받는 일이 자주 있습니다.

그런데 성전에서 산 제물을 가지고 갔을 때에는, 절대로 불합격 판정을 받는 적이 없습니다.

먼 곳에서, 힘든 순례의 길을 걸어, 예루살렘 성전에 이르렀는데, 끌고 간 짐승이 불합격 판정을 받아, 제물로 드리지 못한다면 어떻겠습니까?

할 수 없이, 사람들은, 성전 뜰에서, 제물을 구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확실한 장사입니다.

상인들과 환전상은 성전 뜰에서 장사를 하여, 많은 돈을 벌고

대제사장인 안나스와 가야바는, 많은 뒷돈을 받고, 많은 재산을 모았습니다.

이러한 대제사장과 상인들의 적절하지 않은 관계, 검은 거래를, 알만 한 사람들은 다 알고 있습니다.

대제사장이 최고의 권력자이기에, 감히 누구도 이야기를 꺼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데, 너희가 어찌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느냐?” 말씀하시며,

돈 바꾸는 자들, 비둘기 소 양 파는 장사꾼들의 상을 엎으시고, 채찍으로 사정없이 내리치시며, 성전에서 모두 내어 쫓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을 정결케 하셨습니다.


이 일로, 가장 머쓱해진 사람은! 대제사장입니다.

가장 경건하고, 가장 성결하고, 항상 위엄을 갖추고 지냈는데,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위선과 거짓과 외식이 모두 드러났습니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이 없는 것이 밝히 드러났습니다.

유대인들 위에, 대제사장이라는 직함과 권위로 서 있었는데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습니다.


제사장 가야바의 주도 아래

예수님을 죽이기 위하여

예수님을 체포하여 연행해 오고

급히 산헤드린 공회를 소집하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원들 모두가 알고 있습니다.

예수님께 사형을 선고할 수는 있지만, 사형을 집행할 수는 없습니다.

사형 집행은, 로마의 행정관으로 있는 빌라도만이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기는데

예수님을 유대교의 신앙과 종교 문제로, 고발해서는 안 되고

로마 황제에 대한 반역죄, 로마 제국에 대한 반란죄로 고발해야 합니다.

안나스와 가야뱌는, 이미 자기 사람들을 보내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동,

예수님의 제자들과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의 동향을 예의 주시하여 왔습니다.

예수님을 심문하는 안나스가

“당신 제자들은 어떤 사람이오?

당신의 가르침은 무엇이오?”

안나스가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대하여 묻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 가운데 유대왕국을 다시 세우려는 폭력적 열심당원도 있고

예수님의 제자들 모두가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오신 왕으로 믿고 있고,

예수님을 통하여 무너진 다윗 왕국을 재건하고,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 하려 한다.”는 것을 알고

예수님의 입으로 직접 진술을 받아낸 뒤에

빌라도에게 고발하려는 것입니다.


얼마 전, 예수님께서 베다니 마을의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을 때

예수님을 메시야 그리스도 구원자 왕으로 믿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 새끼를 타시고 예루살렘 성으로 입성하실 때, 이 사람들이

“호산나! 다윗의 자손으로 오시는 왕이신 예수님 만세! 호산나 만세!”를 외치며, 예수님을 왕으로 옹립하려 하였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급히 공회를 모으고 말했습니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는 것이 유익합니다.

백성 중의 일부가, 예수를 메시야 그리스도 왕으로 믿고 있는데

예수가 백성들을 선동하여 봉기를 일으킨다면,

로마의 군단이 몰려와 우리 모두를 죽일 것입니다.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예수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고, 온 민족이 망하지 않는 것이, 우리에게, 우리 민족에게 유익입니다.

그러니, 예수를 죽여 없애야 합니다.”

실제로, 15년 전 쯤,

로마의 속주였던 아프리카의 타쿠팔리나스라는 부족장이 로마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황제 티베리우스는, 몇 개의 로마 군단을 보냈습니다.

타쿠팔리나스 뿐 아니라 그를 따르던 많은 사람이 죽었고, 살아 남은 사람들 모두는 노예로 팔렸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예수님은

태초부터 계셨던 말씀이신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탄생하신 성육신 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이시고, 말씀이신 예수님께서

바리새인의 외식함과 허물을 지적하였습니다.

은밀히 보시는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행하여야 하는데

사람에게 보이기 위하여 – 기도하고, 금식하고, 구제하고, 헌금하였습니다.

사람의 의를 세우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생각하였습니다.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비난하고 정죄하였습니다.

성자 하나님의 지적을 받았으면

말씀이신 예수님의 책망을 받았으면

외식함에서 진실함으로

거짓됨에서 참 된 삶으로

자기 의를 세우려 하였지만, 하나님의 의를 세우고

사람들의 칭찬과 존귀함을 받으려 하였지만,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경건함으로

자기 사랑에서, 하나님 사랑으로 돌아서야 하는데

회개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경건하게 살지 않고

오히려, 말씀이신 예수님을 죽여 없애기로 하였습니다.


오늘날에도, 바리새인과 같은 신앙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여야 하는데,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여야 하는데,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지켜 행하여야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을 알고만 있습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외칩니다.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천국도 없고, 하나님의 심판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부르지만,

살아 계신 하나님, 역사의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 심판하시는 하나님을 믿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알고는 있지만

하나님보다, 세상의 재물과 권세와 명예를 더 사랑합니다.

사두개인의 우두머리인 대제사장은,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사두개인 신앙인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만 – 복 주시는 하나님, 재물과 권세와 영광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 말씀하셨지만,

결코 자기를 부인하지 않습니다. 오직 자기를 위하여 삽니다.

결코 십자가를 지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위하여 자그마한 희생과 손해를 보려고 하지 않습니다.

결코 예수님을 따르지 않습니다. 예수님이 주신다는 축복을 따라 갑니다.


한국교회는 세계 선교 역사상 유래를 찾을 수 없는

선교 한 세기에 급성장한 교회입니다.

한국교회에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에 대하여, 세계의 모든 교회가 크게 부러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국선교 130년을 넘어선 지금,

한국교회는 큰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사두개인 같은 목회자들 때문입니다.

바리새인 같은 교인들 때문입니다.

나 때문입니다.

우리 때문입니다.

교우 여러분!

바리새인이 되지 맙시다.

사두개인이 되지 맙시다.

하나님 앞에 아름답게 섭시다.

하나님만을 사랑합시다.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사람이 됩시다.

하나님만을 바라보며 삽시다.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삽시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어려움을 믿음으로 이겨 나갑시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맡겨 주신 일을 진실하게 감당합시다.


어디에서 본 글입니다.

“인생의 무대 위에서 연기하지 말라.

너희는 배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배우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 앞에서 연기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행해야 한다.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거짓된 연기를 그만두고 진실되게 살아야 한다.

연기자가 되지 말라.

종교인이 되지 말라.

진실 된 신앙인이 되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