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25-27 나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오

관리자
2018-0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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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예수의 제자가 아니오 / 요18:25-27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 유월절 명절을 맞이하여, 유월절 만찬을 제자들과 함께 나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떡과 잔을 나누어 주시면서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찢기는 나의 살이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때가 되었다.

이제 제사장과 서기관 장로 바리새인에게 붙잡힐 것이다.

그들이 나를 모욕하고 조롱한 뒤에

이방인의 손에 넘길 것이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다.

그러나 두려워하지 말아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날 것이니라.

너희들 모두는 나를 버리고 도망할 것이다.”

제자들 모두가

“그럴 리 없습니다. 어찌 저희들이 주님을 버릴 수 있습니까?”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이 다 주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겠습니다.

주님을 위하여 죽겠습니다.

정말입니다. 믿어 주십시오.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님을 위하여 죽으러 갑시다.”

예수님께서는 다짐하고 맹세하는 베드로를 향하여

“베드로야!, 네가 닭 울기 전에 네가 나를 3번 부인하고 저주 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감람산,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고

기도를 마치시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시자,

배신자 가룟 유다가 데리고 온 성전의 병사들에게 붙잡히셨고

산헤드린 공회, 가야바 법정에 끌려 가셨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제자들 모두가 도망하였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연행 되어 가시는 예수님의 뒤를, 멀지 감치서 조심스럽게 따라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가야바 법정 뜰에, 추위를 녹이기 위하여 모닥불을 피워 놓고 모여 있습니다.

베드로는 사람들 틈에 끼어 불을 쬐고 있습니다.

베드로를 본, 곁에 있던 사람이 “당신도 저 갈릴리 사람, 나사렛 예수와 한 패지?” 말하자

베드로는 “나는 예수와 한 패가 아니오.” 말했습니다.

조금 후에 또 다른 사람이 “당신이 저 예수의 제자가 아니오? 며칠 전, 나사렛 예수가 나귀 타고 예루살렘으로 들어 올 때에, 당신이 제일 앞에서 ‘호산나!’ 크게 외치는 것을 내가 보았소!” 말하자

베드로는 “지금 무슨 소리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잘 못 보았겠지요! 나는 예수가 누군지 모른단 말입니다!”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조금 후에 여종 하나가 “예수와 함께 다니던 사람이군요!”

베드로는 “그런 소리 하지 말아라. 나는 예수의 이름도 처음 듣는다. 망할 예수가 나까지 망하게 하는구만!” 예수님을 부인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에 저주까지 퍼 부었습니다.

이때에 닭이 울었습니다.

“닭 울기 전에 네가 3번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리라.” 하신 주님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베드로는 밖으로 뛰쳐나가, 심히 통곡하며 울었습니다.

베드로의 마음에, 주님을 향한 반석과 같은 믿음과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가이사랴 빌립보를 가실 때에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 하느냐?” 물으셨습니다.

아무도 이야기를 하지 못할 때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대답하였습니다.

이를 들으신 주님께서는, 크게 칭찬하시면서,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는데, 이때에 비로써 반석 · 베드로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이어서 “내가 이 믿음의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 약속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주님께서 ‘베드로’라는 이름을 바꾸어 주셨듯이, 반석과도 같은 큰 믿음이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붙잡히실 때에, 품고 있던 칼을 꺼내 휘둘러, 대제사장의 종인 말고의 귀를 짤랐습니다.

예수님을 지키려는, 예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습니다.

마음에 반석과도 같은 믿음이 있고, 가슴에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있지만

“너도 예수와 한 패지!” 갑자기 묻는 질문에

“나는 예수를 모릅니다. 예수가 도대체 누구입니까?” 말했을 뿐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팔아 넘긴 것도 아니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친 것도 아니고

단지 입술로 “나는 예수님 모릅니다!” 말한 것뿐인데

그렇게, 가슴을 치며, 크게 통곡하며, 심히 회개할 만한 일입니까?

구원은 믿음으로 받습니다.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행 16:31)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

우리 주님께서 인정하시는 구원하는 믿음은?

(롬 10:9-10)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얻으리니,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

마음으로 믿어 의롭게 됩니다.

“성육신 하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음을 믿으면”

예수님의 흘리신 보혈의 피가,

나의 모든 죄를 씻으시고, 의롭게 하십니다.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죽으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나신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 구원의 주님이십니다.”

입술로 고백하고, 입으로 시인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 백성이 되며, 영생을 얻습니다.

(마 10:32-33)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저를 부인하리라.”

구원 받는 믿음은!

첫째, 하나님께 시인하고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우리는 예배 가운데, 나의 믿음과 신앙을 “사도신경”으로, 마음과 입술로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성령 하나님을 믿습니다.

나는 거룩한 교회, 우리 안에서의 교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사죄의 은총, 영생을 믿습니다.”

어느 분이, 우리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린 뒤에

“목사님, 사도신경이 무척 느립니다. 역사가 깊은 교회라 나이 드신 교우가 많아서 그런가봅니다.” 말했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사도신경은 “하나님께, 나의 믿음의 고백, 신앙의 고백”을 하는 시간이기에

천천히, 구절구절 음미하면서, 뜻을 생각하면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생각하면서, 고백을 해야 합니다.

구원 받는 믿음은,

둘째, 사람 앞에서 시인하고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내가, 마음으로 예수님을 믿지만,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도, 하나님 앞에서, 나를 시인하지 않으십니다.

입술로는 “주여! 주여!”하지만, 사람 앞에서 “예수님이 나의 주인이십니다.” 고백하지 않으면

예수님께서도, 마지막 심판 때에 “내가 너를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여, 내게서 떠나가라.” 말씀하십니다.

베드로가 “나는 예수가 누군지 알지 못합니다. 나는 예수의 사람이 아닙니다. 예수 때문에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 예수님의 이름을 부인하고, 예수님의 이름에 저주까지 한 것은!

믿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인정하시는 믿음이 아닙니다.

구원 받는 믿음이 아닙니다.

가룟 유다는, 예수님을 은 삼십에 팔았지만, 베드로는 자신의 영혼을 사탄에게 판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하였는데, 베드로도 예수님을 배반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떠났는데, 베드로도 예수님에게서, 믿음의 길에서, 신앙의 길에서, 영생의 길에서 떠난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받습니다.

구원하는 참 믿음은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고백하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이, 나의 구주되심을 사람들 앞에서 시인하는 믿음입니다.

초대교회 때에,

주(主). 퀴리오스는 로마 황제에게 사용하던 용어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성도들은

황제가 아닌, 예수님께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주 예수 그리스도! 주여!” 고백하였습니다.

로마는!

“황제를 주, 퀴리오스”로 부르도록 강요하였습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 이외에 누구에게도 “주, 퀴리오스”라 부르지 않았습니다.

황제가 구원하지 못하고, 황제가 영생을 주지 못하고

오직 예수님만이 구원이시고

오직 예수님이 구원의 주님, 생명의 주님, 부활의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초대교인들 가운데

황제를 나의 주님이라 부르는 것을 거부하고

예수님만을 나의 주님이라 고백하고, 이 믿음을 지키느라

(히11:36- )

“어떤 이들은 조롱과 채찍질뿐 아니라 결박과 옥에 갇히는 시련도 받았으며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며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로마에 가면, 카타콤이라는 지하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로마인들은, 땅을 파고, 굴을 만들어, 그 안에 시신을 넣어 장례를 치렀습니다.

초대교인들은 박해를 피하여, 죽은 송장들이 가득한 카타콤 지하 공동묘지로 피하였습니다.

오래 동안, 이곳에서 생활하였습니다.

터키의 카파도키아에는,

초대교인들이 바위산에, 구멍을 파고 생활한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지금도 일부는 식당으로, 호텔로, 집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에 기록된,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여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았으며,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였느니라.”

초대교인들은, 환란과 박해 가운데서도, 믿음을 지켰습니다.

2세기 중반, 기독교에 대한 박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아시아의 총독인 스타티우스는,

빌라델비아 등지에서 잡아 온 11명의 기독교인을, 원형 경기장에서 맹수에게 물려 죽게 하였습니다.

서모나 교회의 감독인 폴리캅이 체포되어 왔습니다.

총독은, 그리스도인인 폴리캅을 처형하여야 하지만, 86세가 된 노인을 처형하는 것이 마음에 걸려

“나는 예수를 믿지 않습니다. 나의 주인은 황제입니다. 단 한 마디만 하여 주십시오. 당장 풀어 드리겠습니다.” 제안하였습니다.

그러나 폴리캅은 “86년간 나는 그분을 섬겨 왔고, 그분은 나를 한 번도 모른다고 한 적이 없는데, 내가 어떻게 나의 주님을 모른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거절하였습니다.

총독은 “사자의 밥이 되게 하겠습니다.” 말하자

폴리캅은 “사람이 악한데서 선해져야지, 어찌 선에서 악해 질 수 있습니까?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을 얻어야지, 어찌 생명에서 사망에 이르겠습니까?” 대답하였습니다.

총독은 “당신을 불에 태우겠소?” 말하자

폴리캅은 “잠시 타다 꺼지는 불이 아니라, 영원한 형벌과 저주와 심판인 지옥의 불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기둥에 묶여 화형을 당하는 폴리캅이, 하늘을 우러러

“주여! 이 시간 성령의 불로, 영과 육이 영원한 생명의 부활을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순교 하는 영광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외치고 순교하였습니다.

1937년, 일제는 중일전쟁을 일으킨 뒤에

신사참배, 궁성요배, 황국신민서사 제창 등을 강요하였습니다.

기독교에서 강하게 반대하였지만,

일제의 강압에 굴복하여, 장로교 감리교회 총회는 신사참배를 결의하였습니다.

평북노회가 신사참배를 결의하자,

평양 산정현 교회를 시무하시던 주기철 목사님은

“신사 참배는 하나님의 계명 중,

제1계명 - 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제2계명 - 우상을 만들지 말고, 섬기지도 말라. 두 계명을 동시에 범하는 일입니다.

신사를 참배하는 교인은 지위나 신분을 불문하고 공개 제명 출교시킬 것입니다.”

일경은, 목사님을 회유 설득 하다, “설교하지 말라.” 압박을 가하였습니다.

목사님은 “설교하라! 말라! 할 수 있는 이는 경찰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 뿐이시오. 설교는 내가 할 일이고, 경찰은 체포하는 일이오. 나는 내 할 일을 하겠소!”

목사님은, 일경에 끌려가 투옥되셨습니다.

목사님은 1938년부터 1944년 4월, 47살로 순교하실 때까지,

5차례, 5년 4개월 감옥에서 보내셨습니다.

주기철 목사님을 회유하는 일경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신사참배는 국민의례요.

국민으로 국가의 시책에 따르는 것은 당연한 일 아니오?

국기 앞에 경례 하듯이,

신사 앞에 가서, 머리 한 번 만 숙이시오.”

신사참배를 결의한 선배, 동료 목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보게, 주 목사

주 목사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 나도 아네!

나도 주님을 사랑하네.

주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이 우리 마음에 있지 않은가!

우리 주님은 우리의 마음을 보시지 않는가?

그러니 마음속으로 뜨겁게 ‘주님 아시지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것을! 주님 사랑합니다. 주님 사랑합니다.’ 고백하게!

우리의 육체란 흙에서 와서, 흙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닌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 앞에 가지 않는가!

그러니 썩어질 육체로 신사 앞에 서서, 국민의례로, 머리 한 번만 숙이게!

자네가 살아야, 자네 가족도 살고, 주님의 교회도 평안할 것일세!

자네에겐 사모님과 자식들, 가족이 있지 않은가?

가장인 자네가, 가족들을 남겨 둔 채로 이 세상을 떠난다면

가장으로서 너무 무책임한 것 아닌가?

머리 한번 숙이세!

감옥에서 풀려나고, 살아남아야지!

욕심 부리는 일본도 곧 망하지 않겠는가?

그러면, 우리 해방 된 조국에서, 더욱 열심을 품고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세!

머리 한번 숙이는 것은

주님께도, 주님의 교회에도, 하나님의 나라에도 더 이득이 될 것일세!

사랑이 많으신 우리 주님께서도 이해하실 것이네!”

회유하러 갔던 목사님은

무슨 말로도, 뜻을 굽히지 않는 주기철 목사님이 계신 감옥을 나오면서,

“답답한 사람, 앞뒤가 꽉 막힌 사람 같으니라고!” 중얼거렸습니다.

교우 여러분! 생각해 보십시오.

주기철 목사님이 목회하시던 시대는 일본제국주의 시대입니다.

신사참배는 국가적 시책입니다.

국민의례와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영혼을 구원하십니다.

영혼이 천국에 갑니다.

그러니 마음속에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확실하고 모신 뒤에

진심으로 “예수님은 나의 주님이십니다.” 고백을 하고

국민의례로서, 신사 앞에 가서 머리 한번 숙이면 어떻겠습니까?

안됩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릅니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시인하면,

마지막, 하나님의 심판의 날에

우리 모두의 변호인이 되시는 예수님께서, 재판장이신 하나님께

‘내가 저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었습니다. 저의 더럽고 추한 모든 죄를 나의 보혈의 피로 씻어 주었습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품에 안으시고, 영원한 영광의 나라에 인도하십니다.

사람 앞에서 예수님을 부인하면,

예수님께서 하나님께 ‘나는 저가 누구인지 도무지 알지 못합니다.’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와 영원한 심판이 임하게 됩니다.

2천 여 년, 교회의 역사 가운데

수많은 성도들이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말 할 수 없는 환란과 고통과 핍박을 받았습니다.

21세기가 되었지만,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느라 많은 이들이 순교하고 있고, 환란과 핍박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님을 믿는다는 이유로

“조롱을 당하거나 채찍에 맞지 않고

결박과 옥에 갇히지 않고

돌로 치는 것과 톱으로 켜는 것과 시험과 칼로 죽임을 당하지도 않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입고 유리하며, 궁핍과 환난과 학대를 받지도 않고

광야와 산과 동굴과 토굴에 유리하지도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믿음을 지키기 위한, 환란과 핍박을 전혀 받지 않으며

모든 것이, 풍요롭고 넉넉하고 평안한, 샬롬의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주셨으니,

감사함으로, 더욱 열심을 품고 주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감사를 잃어버리고, 대신에 불평과 원망으로 살아갑니다.

풍요롭고, 넉넉하고, 평탄한 가운데

하나님 보다 세상의 썩어질 것을 더 사랑하며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영광과 기쁨을 위하여 살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고

세상을 향하여 빛으로, 소금으로, 하나님의 자녀로서의 고백적인 삶을 살아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하나님과 세상을 향한 사명은 생각조차 안하고 살아갑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지 못하고,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영혼이 잠이 들고, 신앙은 병들고, 나의 영혼이 천천히 죽어가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을 받습니다.

세상 속에서, “예수님이 나의 구주이십니다. 나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입니다. 나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고백하고, 시인하여야 구원을 받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고백적인 삶을 삽시다.

먼저,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나의 주, 나의 하나님! 사랑합니다.” 고백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을 최우선으로 하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은사를 가지고, 나의 시간과 건강과 재능과 재물로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다음으로

우리의 매일의 삶이

하나님께 드려지는 거룩한 산제사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나의 가정을 주님을 모신 아름다운 가정으로 세우고,

나의 가정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충만한 작은 천국을 이룹니다.

나의 일터,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자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일하고

어디에 있든지

주님이 부탁하신

착한 행실로 빛을 비추고

정의가 물 같고, 공의가 하수 같은 소금의 삶을 살아 갑시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자녀로

가정에서 천국 백성이로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