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33-38 주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

관리자
2018-0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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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의 나라와 세상의 나라 / 요18:33-38

로마의 재판장 빌라도가 예수님을 심문합니다.

“내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네가 스스로 하는 말이냐?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하여 네게 한 말이냐?”

빌라도가 말하기를

“내가 유대인이냐? 너의 백성 유대인들과 대제사장들이, 너를 내게 ‘유대인의 왕’이라 넘겼다. 너는 무엇을 하였느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이 세상에 세워진 세속의 나라가 아니다.

내 나라는 하나님께 속한 신령한 나라다. 영원한 나라다.

만일 내 나라가 이 세상에 속하였다면, 나의 종들인 천사들이 싸워, 나로 유대인들에게 잡히지 않게 하였으리라.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빌라도가 묻습니다.

“그렇다면, 네가 왕이란 말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십니다.

“당신이 말한 대로 나는 왕이다!

나는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태어났으며,

진리를 증언하기 위하여 세상에 왔다.

진리에 속한 사람은, 누구나 내가 하는 말을 듣는다.”

로마 황제가, 유대지방을 통치하도록, 본디오 빌라도를 임명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유대를 잘 다스려야 합니다.

유대를 잘 다스린다는 것은,

세금을 잘 거두는 것과

반란이나, 소요가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반란을 일으키고, 로마에 보고된다면, 황제는 책임을 물을 것입니다.

황제가 책임을 물을 때에, 단검을 내려 보내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자결하라는 것입니다.

빌라도는, 유대를 통치하면서,

반란이나 소요가 일어나지 않도록, 유대인들의 동향을 면밀히 살펴 왔습니다.

3년 전 쯤, 특이한 동향이 보고되었습니다.

갈릴리 사람인 예수라는 이가, 놀라운 기사와 표적을 행하며, 큰 무리를 몰고 다닌다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경전인 성경에 –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 · 왕이 올 것이고, 왕이 오시면 유대인을 구원할 것이라.”고 약속되어 있는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 · 왕으로 믿고 따른다고 합니다.

빌라도는

사람을 붙여, 예수의 일 거수 일 투족을 살펴 보고하게 하였습니다.

빌라도가 “갈릴리의 예수”에 대하여 받은 보고는 이렇습니다.

“로마에 대하여 반란을 일으키거나, 황제를 반역하여 유대왕국을 세울, 요주의 인물은 결코 아닙니다.

예수의 교훈은, 사랑, 자비, 섬김이고, 그들의 신에 대한 충성입니다.

예수가 12명을 제자로 삼았는데

갈릴리의 어부 농부로 하찮은 이들이고,

세리였다가 제자 된 이가 하나 있지만, 세리는 친 로마적 성향의 사람이고

반 로마적인 열심당원이 하나 있어서, 면밀히 조사해 보았는데, 위험인물은 아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따르지만,

영향력 있는 사람들은 거의 없고, 농부와 어부, 그리고 수많은 아녀자들과 아이들입니다.

유대인 중 하나가, 예수에게

‘로마에 세금을 내야 합니까?’ 질문 하였는데

예수는, 황제의 얼굴이 새겨진 데나리온을 들어 보이며

‘이것이 누구 얼굴이냐? 로마 황제 가이사의 얼굴이지 않느냐?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드려라.’ 말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그리스도 · 왕 · 주인이라 부르며 따르지만,

예수는, 로마에 반란을 일으켜, 유대 왕국을 세울 왕이 아닙니다.

‘왕 · 주인’은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믿는 신을 부를 때에 사용하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보고를 받은 빌라도는,

많은 사람들을 몰고 다니는 “예수”를 위험인물이 아니라고 판단했지만,

그래도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하였습니다.

이러던 차에

유대인의 제일 큰 명절인 유월절을 앞에 두고

유대인의 수장인 대제사장과 산헤드린 의원과 많은 유대인들이, 바로 그 예수를 고발하여 온 것입니다.

“예수가 자신을 왕이라 합니다.

로마 황제에 반역 하고, 로마에 반란을 일으켜

유대 왕국을 세우려 합니다.

황제의 반역자, 로마의 반란자를 처형하십시오!”

본문의 말씀은

재판장인 빌라도가, 유대인들의 “예수님 고발건”에 대하여, 예수님을 심문하는 내용입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하여 많은 보고를 받아 알고 있었지만,

처음으로, 직접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모습을 상상하여 그린 그림을 통하여

잘 생기시고, 위엄 있고, 호감이 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생각하지만

예수님의 실제 모습은 아마도, 이사야 선지자가 노래한 대로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고,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고,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으셨을 것”입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며 받은 첫 인상은!

보고 받은 대로

반란 · 반역을 할 만큼, 세상을 향한 냉소적이 미소나, 매서운 눈매를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외소하고, 초라하지만, 부드러웠습니다.

빌라도는,

“이 자는 결코 반란군의 우두머리가 될 만한 인물이 아닌데!

유대인들은 어찌 이러한 자를, 유대인의 왕이라고 고소하는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종교적 갈등으로, 예수를 고발한 것을 알지만

재판 절차에 따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질문함으로, 심문을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유대인의 왕이다.” 분명하게 말씀하셨고, 이어서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세속의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신령하고 영원한 나라요.

나는 진리 · 영원한 생명을 증거 하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났으며, 이 세상에 내려왔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대로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믿는 우리 성도들은

세상 나라에 살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속해 있습니다.

이 땅에 살고 있지만, 영원한 고향인 하늘나라를 향하여 가고 있는 순례자입니다.

세상의 왕국에 살고 있지만,

영원히 다스리시는 왕이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지키고

하늘의 왕국을 소망하며 달려가고,

우리의 믿음을 흔들고 소망을 희미하게 하는 악한 영과의 선한 싸움을 싸우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친히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 살고 있는 - 모든 나라, 모든 백성, 모든 족속 가운데,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고,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교회는, 노아의 방주와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구원을 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기관입니다.

교회는,

야곱이 광야에서 본 사닥다리로 천사가 올라가는 것처럼,

광야교회에서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물을 태워 그 연기를 하늘로 올리는 것처럼,

하나님의 자녀가 된 성도들이 – 하나님께 예배를 올려 드리고, 하나님께 나의 마음과 뜻과 정성을 올려 드리고, 하나님께 나의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올려 드리고, 나의 삶을 올려 드리는 곳입니다.

교회는,

야곱이 광야에서 본 사닥다리로 천사가 내려온 것처럼,

광야교회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은혜와 은총을 내려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받는 곳입니다.

교회는, 하나님께로부터 받고, 하나님께 드리는 - 축복의 통로, 은혜의 채널입니다.

예수님께서 교회를 세우신 것은!

이 땅에 - 하나님의 나라, 영원한 나라, 신령한 나라, 하늘 나라, 의의 나라, 생명의 나라, 영광의 나라를 세우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금 이 땅 위에, 지어져 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 주님이 재림하실 때에 완성 됩니다.

우리 주님이, 이 세상에 세우신 주님의 교회는, 어떠한 모습이어야 하겠습니까?

이 세상의 나라와 하나님의 나라인 교회는, 어떠한 관계를 맺으며 살아야 하겠습니까?

교회와 세상, 세상과 교회의 관계를,

가장 명쾌하게 정리한 학자가 ‘리챠드 니버’입니다.

리챠드 니이버 교수는 - “Christ & Culture, 그리스도와 문화”란 책에서

교회는 세상 속에서 3가지 유형으로 존재함을 말했습니다.

1. “문화에 대립하는 그리스도” - 세상과 대립하는 교회입니다.

(요일 2:15)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세상은 악의 영역, 사탄이 지배하는 영역으로, 거짓과 미움 등 온갖 죄가 가득하다고 보았습니다.

“세상과 대립하는 교회”는, 이 세상에 오직 두 개의 길만이 있다고 보았습니다.

하나는 생명으로 인도하는 신앙의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사망으로 인도하는 세상의 길입니다.

세상의 문화, 세상 풍조, 세상의 관습들은 세상의 길로,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을 - 교회와 세상, 선과 악, 영적인 것과 육적인 것, 거룩한 것과 속된 것으로 구별합니다.

주님의 거룩한 교회에는, 악한 것이 없고

세상에는, 선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의 적은 세상이고, 세상의 문화입니다.

세상의 학문과 철학과 예술을 저급한 것으로 무시하였습니다.

그림도 성화만이 존재하고,

음악도 성가만이 존재하고,

모든 학문 가운데, 신학이 가장 우위에 있습니다.

교회만 신령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의 수장인 교황은 절대로 악할 수 없다는 교황 무오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천문학자 갈릴레오가 “지구가 태양을 돈다.”고 주장하였을 때에, 악한 세상 사람의 말로 들었습니다.

(시 19:6) “해는 하늘 이 끝에서 나와서 하늘 저 끝까지 운행함이여!”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대로, 태양이 지구를 도는 것이 진리였습니다.

세상에 대립하는 교회는,

세상에 언제나 배타적입니다.

세상과 높은 담을 쌓습니다.

문화에 대립하는 교회는

복음의 순수함을 지킵니다.

하늘의 소망이 넘칩니다.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깁니다.

그러나,

교회가 쌓은 높은 담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오지 못합니다.

시편에 “해가 하늘을 운행한다.”는 구절을, 시로 이해하지 않고, 기독교 문학으로 이해하지 않아

갈릴레오를 종교재판에 세웁니다.

과학이 발달하여, “지구가 해를 돌고 있다.” 는 것이 밝혀지면서

많은 이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인간의 책으로 여깁니다.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신봉하는 많은 현대인들이, 과학으로 존재를 증명할 수 없는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께 은혜를 간구하는 교회를 외면합니다.

교회는! 소수의 열심 있는, 경건한 사람들을 통하여 유지됩니다.

2. “문화의 그리스도”입니다. 세상과 타협하고 조화를 이루는 교회입니다.

세상의 철학, 학문, 예술 등을 인정하고,

세상의 문화 가운데, 가장 좋은 것을 기독교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교회는, 세상과 아무런 마찰 없이 조화를 이루며 지냅니다.

예수님은!

인류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는, 구원의 주님이지만

훌륭한 교육자, 사상가, 사회운동가, 혁명가입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풍요롭게 하고, 아름답게 하고, 사회 제도를 개혁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소크라테스, 플라톤, 공자, 맹자, 석가, 마호멧과 같은 – 성현 가운데 한 사람입니다.

구원은 예수 뿐 아니라 – 석가, 마호멧, 공자, 맹자 등을 통하여도 받을 수 있다는 종교다원주의를 주장합니다.

“문화의 그리스도” - 세상과 타협하고 조화를 이루는 교회는, 결코 세상과 충돌하지 않습니다.

일제 강점기의 신사참배는, 국민의례였습니다.

산신제, 풍어제, 기우제는, 조상 때부터 내려오는 미풍양속입니다.

“문화의 그리스도 교회”는

영원한 천국만 바라보며, 세상을 무시하면 살았던 기독교인들에게,

세상을 향한 관심과 사명을 갖게 하였습니다.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인류의 삶을 풍요롭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주신 복음을 변질시켰습니다. 교회를 세속화시켰습니다.

3. “문화 위의 그리스도” -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입니다.

리챠드 니버 교수가 말하는, 가장 합당한 교회의 모습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문화를 변화시킵니다.

교회는 세상 문화를, 기독교 문화로 바꾸어 갑니다.

“세상이 어둡고, 악하고, 거짓되다.”고 외면해서는 안 됩니다.

어두운 세상에 빛을 비춰야 합니다.

악한 세상에서 착한 행실로 선하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거짓된 세상을 진리로 인도해야 합니다.

교회는 세상과 대립하지 말고

교회는 세상 사상과 풍조를 무조건 수용하지 말고

진리를 지키고

선한 것은 더욱 선하게 만들고,

악한 것은 제거하고

문화를 변혁하고,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 가야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 열정적 신앙인인 바리새인이 있었습니다.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삽니다.

메시야의 오심을 간절히 기다리며, 메시야에 의하여 세워질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살았습니다.

하나님께 택함을 입었다는 강한 선민의식 가운데, 세상으로부터 구별된 삶을 살았습니다.

세상을 악으로 보고, 세상에 대적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사두개인들이 있었습니다.

오랜 억압 가운데,

메시야가 오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않습니다.

로마 사람들을 몰아내고, 이스라엘의 왕국을 세운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니

로마 사람들에게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로마 사람들의 권세를 이용하여, 부귀영화 권세를 누리며,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두개인들은

부활을 믿지 않습니다.

영을 믿지 않습니다.

천사도 믿지 않습니다.

성경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윤리와 도덕의 교과서입니다.

수많은 교양서적 가운데 한 권입니다.

사두개인은 세상과 타협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상과 높은 담을 쌓고,

자신들을 의롭다고 생각하고

의롭지 않은 죄인들을 비난하고,

이방인과는 높은 담고 쌓고 살아가는,

바리새인을 비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하나님보다 세상의 재물, 권세를 사랑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기 위하여

세상과 타협하고, 세상과 짝하여 살아가는

사두개인을 비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모든 사람들을 맞아 주셨습니다.

부자나 가난한 자나

아이나 어른이나

남자나 여자나

자유인이나 종이나

예수님께 나아오는 자는 결코 내어 쫓지 않으셨습니다.

바리새인들이

더럽고 추한 죄인이라고,

비난하고 정죄한

세리와 창녀!

사두개인들이

힘없고, 가난하다고

멸시하고, 천히 여긴

이스라엘과 갈릴리의 사람들!

유대인들이

아브라함의 순수한 피를 더럽혔다고,

상종하지도 않은 사마리아 사람들!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지 못하여, 이방인으로 불리던 모든 민족 족속들!

예수님께서, 이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하늘 영광 자리를 내어 버리시고, 인간의 땅에 오셨습니다.

죄의 종으로 태어나, 죄가 이끄는 대로 살다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저주와 심판과 멸망에 이를 수밖에 없는

세상의 모든 민족, 족속, 사람들을 위하여

이 세상의 재판장인 빌라도의 입을 통하여

“예수는 죄가 없다.” 선언한 대로,

죄가 하나도 없으신 예수님, 흠과 티와 점이 전혀 없으신 예수님, 어두움이 조금 없으신 예수님께서

세상의 모든 죄를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형벌을 받으시고, 멸망을 당하시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 구원의 주님께서는!

주님께 나아오는 자는 누구든지, 맞아 주셨습니다.

모든 죄를 씻어 주셨습니다.

의롭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셨습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친히 주님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고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 의의 나라를 세우신 왕이신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세워진 교회에

주님의 교회의 지체 된 성도들에게

사명을 주셨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고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려라.

너희의 삶으로, 하나님께 영적 예배를 드려라.

이 세상을 변화시켜라.

이 세상을 새롭게 하여라.”

찬송 / 502. 빛의 사자들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