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8:39-40 예수냐? 바라바냐?

관리자
2018-0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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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냐 바라바냐? / 요18:39-40

유대인의 대제사장 가야바는 산헤드린 의회를 소집하고 예수님을 재판합니다.

심문을 받으시는 예수님께서 “나는 찬송 받으실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다. 인자가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앉는 것과,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기 위하여 이 땅에 다시 올 것이다.”

대제사장 가야바와 사두개인 바리새인 서기관 등 71명으로 구성된 산헤드린 유대 공회에서

예수님을 “불경죄, 신성모독죄”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식민지 유대인들은 사형판결을 내려도, 사형을 집행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죽이기로 결의한, 대제사장, 사두개인, 바리세인, 서기관은 많은 유대인과 함께,

예수님을 끌고, 유대 지방을 관할하는, 로마 행정관인 빌라도에게 갑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 대하여 많은 것을 들어,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에게 바치라.” 말씀하신 것도 알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가 유대인의 왕으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반역하고, 로마 제국에 반란을 일으키려 한다.” 고발하지만,

예수님께서 사람들을 모아, 무장 폭동을 일으키고, 로마의 군대에 대적하고, 유대 왕국을 세우려 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종교적 갈등으로 예수님을 고발한 것을 압니다.

유대교의 대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등이, 예수님을 미워하고 시기하여 죽여 없애려는 것을 압니다.

그러나 재판장이 된 빌라도는,

로마의 법에 따라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질문함으로, 심문을 시작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는 유대인의 왕이다.

내 나라는 이 땅에 속한 나라가 아니다. 이 땅에 세워지는 나라가 아니다.

내 나라는 하나님께 속한 나라다. 영원한 나라, 영광의 나라, 생명의 나라이다.”

헬라 마케도니아의 알렉산더는

주전 330년 페르시아를 멸망시키고, 세계의 맹주가 되었고,

헬레니즘 세계를 이룹니다.

알렉산더가 정복한 곳에 헬라의 언어, 문화, 종교를 심습니다.

200여 년의 헬레니즘 세계가 로마에 의하여 막을 내립니다.

지중해를 앞마당으로 삼아 대제국을 이룬 로마는,

헬라의 언어, 문화, 사상, 종교 등 모든 것을 그대로 받아들입니다.

로마의 귀족, 부자들은 자식들을 그리스로 유학을 보냈습니다.

로마의 권세자, 지식인들은, 로마의 글인 라틴어 뿐 아니라, 헬라어도 쓰고 말할 수 있었습니다.

로마의 공문서는, 라틴어와 헬라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빌라도, 폰티우스 빌라투스는 로마인입니다.

빌라도는 로마의 귀족입니다.

헬라의 언어, 문화, 종교, 사상에 대하여 상당한 식견이 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내 나라는! 하나님께 속한 영원한 나라, 영광의 나라, 생명의 나라다.” 말씀하실 때에

헬라의 철학자 플라톤을 떠올렸습니다.

플라톤은

“영원하고, 참되고, 본질적인 이데아의 세계가 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현상 세계요, 변하고, 거짓되며, 참 된 이데아의 세계의 그림자다.” 말했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하면서

“예수는, 세상 나라, 땅의 나라가 아닌

신령한 나라, 영원한 나라, 이데아의 세계를 세우려는 자” 라고 생각했습니다.

유대인들이 고발한 것처럼

반란을 일으키고, 반역하고, 무장 폭동과 봉기를 일으키려 하지 않았습니다.

결코 로마법을 어기지 않았습니다.

죄를 짓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을 향하여 말합니다.

“나는 그에게서 아무 죄도 찾지 못하였노라.

너희가 데리고 가서, 너희의 법대로 재판하라.”

유대인들은,

“우리는 사람을 죽일 권한이 없소.

우리의 왕은 로마 황제 가이사 뿐이오!

황제에게 반역하고,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려 하는 예수를 처형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황제의 신하가 아니오!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시오!”

유대인의 큰 명절인 유월절이 가까이 오면서, 예루살렘에는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허다한 사람들이 모였습니다.

빌라도의 집무실은 지중해 연안의 가이사랴에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백성들의 동요가 심상치 않고, 민란이 일어날 수도 있다는 보고를 받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와 집무를 보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유대를 통치하면서 많은 애를 먹고 있습니다.

수도공사를 하였는데 부실 공사로, 수돗물이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망대가 무너지는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었습니다.

민원이 많아지고

크고 작은 소요가 끊임없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하라.” 요구하는데

이 요구를 묵살하면, 유월절에 모인 허다한 유대인들 모두가 폭도로 변해 버릴 듯합니다.

폭동이 일어나면,

로마 황제에게 보고될 것이고,

통치력을 인정받고, 출세를 하여야 하는데

출세는 고사하고, 문책을 받고,

황제가 단검을 내려 보내, 자결해야 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유대인들의 요구를 들어주어

로마의 법을 어긴 것이 없는, 죄가 없는, 무죄한 자를, 십자가에 처형하면

후에,

법대로 재판하지 않은 불의한 재판관이라는 오명을 쓸 수 있습니다.

빌라도는 재판장으로,

“예수 반란죄, 반역죄”를 판결하여야 하는데

이럴 수도 없고, 저럴 수도 없는, 곤란한 상황에 몰렸습니다.

마태복음을 보면, 빌라도가 재판석에 앉아 있을 때에,

빌라도의 아내가 사람을 보내어

“저 죄 없는 사람에게 아무 일도 하지 마세요. 어젯밤 꿈속에서 제가 이 사람 때문에 몹시 고통을 받았습니다.” 말합니다.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빌라도의 아내가 꿈을 꾸는데,

구름 같은 수많은 사람들이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한 목소리로 외치는 것입니다.

생생한 꿈에, 애를 쓰다가, 식은땀을 흘리며, 잠에서 깨어났습니다.

그럴듯한 이야기입니다.

2천년 동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신앙고백으로 사도신경을 외우면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외쳤으며, 지금도 외치고 있고, 앞으로도 외칠 것입니다.

빌라도는 판결하여야 합니다.

유대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 것이고

유대인들의 요구를 들어주면, 죄 없는 자를 가장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불의한 재판관이 됩니다.

유대인들의 요구를 들어 줄 수도 없고, 들어 주지 않을 수도 없습니다.

궁리 끝에, 빌라도가 생각해낸 묘책이 하나 있습니다.

유월절 명절에는, 죄인 하나를 풀어 주는 관습이 있습니다.

흉악하여, 모든 유대인들이 증오하고 있는, 강도 바라바가, 십자가 처형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빌라도는 무리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들에게, 유월절이면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지 않느냐?

너희는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는냐? 아니면 강도 바라바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많이 미워하지만,

설마 흉악하고 포악하여, 많은 사람들이 재물은 물론이고 생명까지 빼앗아 간, 바라바 보다 더 미워하겠는가?

바라바를 십자가에 처형하고,

예수님은 풀어주고,

유대인들의 폭동을 막고

죄 없는 자를 처형하는 불의한 판결을 내리지도 않아도 됩니다.

빌라도는

매우 힘들고 어려운 판결을 하여야 하지만,

일을 매끄럽게 처리한다고 스스로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빌라도의 생각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흉악하고 포악한 바라바를 풀어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는 것입니다.

이제, 빌라도도 어찌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빌라도가 할 수 있는 것은! 물을 가져다가, 유대인들 앞에서 손을 씻으며

“예수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피 값을 너희가 받으라!” 말할 뿐입니다.

유대인들은 “예수의 피에 대한 책임은 우리와 우리의 자녀들이 받겠소.” 외쳤습니다.

빌라도는!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두려워하여,

로마의 법, 양심의 법을 어기고,

죄 없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판결하고, 내어 주었습니다.

본디오 빌라도(폰티우스 필라투스)는, 주후 26년에서 36년까지, 10년 동안 유대를 다스렸습니다.

후에, 빌라도가 어떻게 살았는지, 전설은 있지만, 기록된 것은 없습니다.

분명한 것 하나는, 죽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되었을 것입니다.

빌라도는, 하나님 앞에 이렇게 변명하였을 것입니다.

“유대인들이 폭동을 일으키려 하는데, 제가 어찌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 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유대인들의 고소대로, 예수님께서 자신을 왕이라고 주장하는데, 로마의 법을 집행해야 하는 제가 어찌 반역자로 십자가에 처형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게 하시려는 계획을 세우지 않으셨습니까? 저는 하나님의 구원의 계획에 귀한 도구로 사용되었을 뿐입니다.

저는 죄가 없다고 선언하며 물로 손을 씻었습니다. 유대인들이 ‘그 죄 값을 자신들과 후손이 받겠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저를 영원한 형벌의 자리에 던져 넣으시면 안 됩니다.”

이렇게 말하는 이들은! 신천지입니다.

신천지 성경공부 교재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이렇게 말한다면

“예수님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인류 구원의 역사를 이루게 한, 가룟 유다에게 상을 줘야 합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친, 모든 유대인들에게 상을 줘야 합니다.

‘예수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였다. 예수를 죽여야 한다.’ 판결한 대제사장과 바리새인 사두개인에게 상을 줘야 합니다.

빌라도도 물론 상을 줘야 합니다.”

물로 손을 씻어서는 구원 받지 못합니다.

물로 몸을 씻어서는 구원 받지 못합니다.

인도의 갠지스 강에서, 몸을 물로 씻는 힌두교인들이 모두 구원을 받습니까?

아닙니다.

예수 피로 씻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보혈의 피가 죄를 씻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가 죄를 씻어 의롭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며 흘리신 보혈의 피가, 죄를 씻어 의롭게 하고, 하나님의 자녀로 구원을 받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섰을 때에,

여러 가지로 변명을 하고, 많은 이유와 핑계를 대겠지만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광채 앞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로, 씻음을 받지 못한 사람들은

죄와 허물이 낱낱이 드러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게 될 것입니다.

259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더러운 죄 회개하는 능력을 그대는 참 의지 하는가

예수의 보혈로 그대는 씻기어 있는가

마음속의 여러 가지 죄악이 깨끗이 씻기어 있는가

세상 사람들 모두는!

우리 신앙인들은! 살면서 선택해야 합니다.

선택빌라도 법정

빌라도가 유대인들에게

“너희는 선택하라!

유월절이면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으니, 내가 누구를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바라바냐 그리스도라 하는 예수냐?”

성경의 어느 사본에는 “바라바 예수”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사본대로라면, 빌라도는

“바라바 예수냐? 그리스도 예수냐?”

“예수” 그 이름의 뜻은 구원자입니다.

빌라도는

“너희는 선택하라! 너희를 구원할 예수가 바라바냐? 너희를 구원할 예수가 그리스도냐?”

놀랍게도, 유대인들은!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성자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거부하고

“바라바 예수!”를 선택하였습니다.

어리석은 유대인들은!

빛이신로 “그리스도 예수”를 거부하고, 어둠의 자식인 “바라바 예수”를 선택하였습니다.

생명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멸망의 자녀인 “바라바 예수”를 풀어 주었습니다.

어리석고 미련한 유대인들은!

구원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면서

“예수의 피 값을, 우리와 우리 자손이 받겠다.”고 외쳤습니다.

선택여호수아의 세겜

애급을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40년 생활을 마치고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들어가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고, 땅을 차지하고,

이스라엘의 12지파에게 땅을 분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모든 지파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땅에 정착하여 살게 되었을 때에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장로, 수령, 재판장, 관리들을 세겜으로 불러 모았습니다. 여호수아는, 그들에게 말합니다.

(수 24:15)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모인 사람들 모두가 대답합니다.

“우리가 결단코 여호와를 버리고 다른 신들을 섬기지 않겠습니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의 목전에서 큰 기사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이 땅에 거주하던 모든 족속을 우리 앞에서 쫓아내셨습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선택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

여호수아 앞에서 “여호와만 섬기겠습니다.” 다짐하고 맹세하였지만

여호수아가 죽고, 200여년 사사시대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가나안 족속들이 섬기는 - 바알 아세라 맘몬 그모스 몰렉 다곤을 하나님으로 섬겼습니다.

하나님께서 치셨던 블레셋, 암몬, 모압, 아말렉, 미디안 족속을 일으키셔서

하나님을 배반하고, 하나님 앞에서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을 치셨습니다.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은

페니키아 시돈의 공주 이세벨을 왕비로 맞아들이고

이세벨이 섬기는 바알과 아세라를 함께 섬겼습니다.

왕궁에서, 여호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 선지자를 죽이고

바알 아세라 선지자를 세워, 녹을 주며 일하게 하였습니다.

왕과 왕비를 따라, 대소신료 백성들이, 바알 아세라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선택갈멜산

엘리야 선지자가, 갈멜산에서 여호와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신지, 바알 아세라 하나님이 참 하나님인지 대결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바알 아세라 선지자, 엘리야 선지자가 제단을 쌓았습니다.

엘리야 선지자는 모인 백성들에게 말합니다.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두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좇고, 바알이 하나님이면 그를 좇으라.”

이스라엘은 여호와 하나님이든지, 바알 하나님이든지 분명하게 선택하여야 하는데

여호와 하나님도 섬기고, 바알 하나님도 섬기고 있습니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든, 바알 하나님이든 선택하여야 합니다.

여러 신을 섬기는 이방인들에게는, 함께 섬기는 것이 가능한 일이지만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 유일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이스라엘에게, 우리에게는, 결코 함께 섬기는 것은 안 되는 일입니다.

선택이사야예레미야 선지자 앞에서의 이스라엘

하나님께서는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백향목, 상수리 나무를 베어다가

절반을, 땔감으로 몸을 덥게 하고, 떡을 구워 먹고

나머지 절반으로, 우상을 만들고, 그 앞에 엎드려 경배하며, ‘너는 나의 신이니 나를 구원하라.’ 하는도다.”

택하신 하나님, 구원하신 하나님, 인도하신 하나님, 복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숭배하는

어리석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책망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다.

하나는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이고

둘째는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니라.

선택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

오늘날도 미련하고 어리석은 사람들이

“우리를 구원 하실 이는 그리스도 예수가 아니라, 바라바 예수” 라고 외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님 말고

부귀와 영화를 가져다주는 재물의 하나님을 원합니다.

십자가를 지고 따르라는 예수님 말고

늘 평안하고 풍요케 하는 맘몬 하나님을 원합니다.

서로 발을 씻어 주며, 사랑하고 섬기라는 예수님 말고

최고가 되고, 으뜸이 되게 하는 바알 하나님을 원합니다.

영혼이 잘 됨과 같이 사업이 잘 되어 부자가 되게 하는 예수님을 원합니다.

영혼이 잘 됨과 같이 질병을 치료 하여, 건강하고, 장수케 하는 예수님을 원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은

풍요롭고 부요케 한다는 바알 하나님이고

맘몬 하나님, 미혹하고 넘어지게 하는 악한 영, 멸망케 하는 사탄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선택하라!” 말씀하십니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 험한 길을 걸으라. 문은 좁고 그 길이 험하여, 찾는 이가 적지만, 이 길이 생명과 영광의 길이다.

넓은 문으로 들어가면, 편하고 걷는 것이 쉬어 찾는 이가 많지만, 이 길은 사망과 심판과 멸망의 길이다.”

딤후 4:7-8의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나의 인생길에서,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달리고, 믿음을 지키고,

주님께로부터 의의 면류관을 받아쓰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찬양) 나 무엇과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