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1-16 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관리자
2018-0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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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 왕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 요19:1-16

:12) “빌라도가 예수를 놓으려고 힘썼으나”

로마제국의 유대 지방을 통치하게 된 본디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재판하게 되는데, 예수님을 풀어 주려고 많은 애를 썼습니다.

첫째, 빌라도는, “예수가 황제에 반역하고, 로마에 반란을 일으킬 자”라는 유대인들의 고발에 의하여, 끌려온 예수님을 직접 대면하게 되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에 대하여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뿌리 같아서,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은즉, 우리가 보기에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없도다.” 예언하였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친히 뵈었을 때에 이러한 모습 이었을 것입니다.

반란자, 반역자의 괴수가 가지고 있을 만한 풍체나 위엄이 없습니다.

선동자가 가지고 있을 만한 권세가 없습니다.

외소하고, 나약하고, 초라합니다.

눈만은 반짝이는데,

모든 것을 녹일 것 같은 따듯함, 모든 것을 품을 것 같은 포근함, 바다와 같이 크고 강과 같이 잔잔한 평안함이 느껴졌습니다.

빌라도는, 재판장에 앉아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질문함으로 심문을 시작합니다.

예수님은

“나는 왕이지만,

이 세상의 나라, 땅의 나라의 왕이 아니라

영원한 나라, 신령한 나라, 하나님의 나라의 왕이다.” 말씀하십니다.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나아가

“이 사람은 결코 로마의 법을 어기지 않았소! 너희 유대인들의 문제이니, 너희가 데려다가 너희의 법대로 재판하라.”

그러나 유월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모인 수많은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크게 외칩니다.

유대인들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민란이 일어날 듯합니다.

둘째,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주려고, 유대인들에게 제안을 합니다.

“너희들에게, 유월절이면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지 않느냐?

너희는 바라바 예수를 너희에게 놓아주기를 원하는냐? 아니면 그리스도 예수를 놓아주기를 원하느냐?”

(마 27:20)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무리를 권하여 바라바를 달라 하게하고 예수를 죽이자 하게 하였더니”

대제사장과 장로들은, 성전의 돈을 무리들에게 풀었다고 합니다.

몇 푼의 돈을 받은 모인 무리들이

“바라바를 풀어 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크게 외쳤습니다.

셋째,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주려고, 예수님을 채찍질 합니다.

로마의 채찍은

끝이 3갈래로 갈라져 있고, 끝에는 납덩이가 달려 있습니다.

상의를 벗기고 손에 묶은 뒤, 등을 향하여 채찍을 날리고 당기면, 납덩이가 살점을 물어뜯습니다.

채찍은 매의 발톱과 같아, 몸을 누더기처럼 해지게 합니다.

채찍으로 예수님의 몸을 만신창으로 만든 로마 병사들은!

예수님께 왕의 옷이라고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머리에는 왕관을 대신하여 가시로 만든 관을 씌웠습니다.

손에는 왕의 홀을 대신하여 갈대를 들려주었습니다.

“유대인의 왕이시여! 평안할지어다.” 조롱하며, 침을 뱉고, 손으로 때렸습니다.

빌라도는

온 몸이 헤어진 채, 자색 옷을 입고, 머리에 가시관을 쓰고, 손에 갈대를 든 예수님을, 유대인들 앞에 세우고,

“보라!

내가 너희의 왕이라는 이를 모질게 심문하였다.

그러나, 이 예수에게서 나는 아무런 죄를 찾지 못했다.

보라!

이 사람이 너희의 왕이냐?

이렇게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자가, 반란을 일으키고 반역을 꾀할 너희의 왕이냐?

예수에게는 죄가 없다.

나는 죄 없는 예수를 풀어 주겠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더욱 큰 소리로

“우리의 왕은 오직 로마의 황제 가이사 뿐입니다.

가이사에게 반역하고,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려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당신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지 않으면 가이사의 충신이 아니오!”

유대인들의 고함은 더욱 커지고, 분위기는 더욱 험악해졌습니다.

넷째, 빌라도는 예수님을 풀어 주려고, 예수님을 다시 심문합니다.

“너는 세상 나라의 왕이 아니다.

너는 이 땅에 세워지는 나라의 왕이 아니다.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

너의 나라는 어디에 있느냐?”

예수님께서 시원하게

“나는 왕이 아니다.” 말씀 한 마디만 하여도

빌라도는 유대인들에게

“너희가 예수를 유대인의 왕이라 고발하였지만

예수가 ‘나는 왕이 아니다.’ 분명하게 말했고

나는 예수가 왕이라는 어떠한 증거도 찾지 못했다.

예수는 무죄다.

예수를 석방한다.” 말하려는데

예수님께서 빌라도의 질문에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답답해진 빌라도가 예수님께 말합니다.

“왜 나에게, ‘로마에 반역하여 유대 왕국을 세울 왕’이 아니라고 말하지 않는 거요?

나는 당신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권한도 있고, 놓아 줄 권한도 있소.

‘나는 왕이 아니다.’ 한 마디만 하여 주시오!

‘나는 왕이 아니다.’ 한 마디만 하면 당신을 놓아 주겠소!”

빌라도는 재판장이 되어 많은 재판을 해 보았습니다.

모두가 똑 같습니다.

자신이 죄 없다는 것을 보이기 위하여 많은 변명을 하고

자신의 형량을 줄이기 위하여, 많은 이유와 핑계를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변명을 하라고 하여도, 이유와 핑계를 대라고 하여도,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멀리 달아나 버리라고 하여도”

아무 말씀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가 예수님을 풀어 주려고 많은 애를 썼지만,

유대인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외치며 민란을 일으키려 하고

예수님도, 살겠다는 의지를 보이지 않아

어찌할 수 없는 빌라도는

“당신이 세우려는 나라가 어떠한 나라인지 내가 알지 못하지만, 당신이 죽는다면 어찌 그 나라를 세울 수 있겠소!” 혼자 중얼거리며

유대인들은 향하여 “여기에 너희 왕이 있다. 너희 왕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 판결합니다.

며칠 전, 신문에서 보았습니다.

올겨울 흥행한 영화는 “신과 함께―죄와 벌”로 1440만 관객을,

애니메이션 “코코”로 343만의 관객을 동원했습니다.

두 영화 모두 죽음과 죽음 후의 세계를 다루고 있습니다.

웹툰 “죽음에 관하여”는 조회 수 1위로 연재를 마쳤다가, 독자의 요청으로 재 연재를 시작했습니다.

출판계에서도 “어떻게 죽을 것인가?” “숨결이 바람 될 때”에 이어

대학병원 교수가 펴낸 “우리의 죽음이 삶이 되려면”

모두 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우리는 “개똥밭을 굴러도 이승이 낫다.”는 속담이 있을 만큼, 삶에 대하여 강한 애착을 가지고 있습니다.

죽음과 죽음 이후가, 우리들의 담론이 된 것은!

죽음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죽음의 역사”라는 책에 의하면

죽음을 금기시하게 된 것은, 20세기 초 급격한 산업사회에 돌입한 미국에서 부터랍니다.

세상에서의 풍요롭고 넉넉한 삶에 대한 열망이 커지면서,

삶은 칭송 받았고, 죽음은 생각하거나 입에 담는 것조차 꺼려하였습니다.

사회에서 죽음을 기피하기에, 집이 아닌 병원에서 홀로 죽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병원에서의 임종이 70% 이상으로, 세계 최고랍니다.

우리는 – 일제, 해방, 한국전쟁, 가난과 궁핍함 속에서, “잘 살아 보세!” 노래를 부르며, 산업화의 과정을 겪으면서, 삶에만 온 관심을 가지고 살아 왔습니다.

죽음에 대하여는, 생각할 시간조차 갖지 못하며 살아왔습니다.

이제 잘 살게 되었습니다.

삶에 여유가 생겼고, 고령화 사회가 되면서

죽음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오직 Well – Being, 잘 사는 것, 품위 있게 사는 것, 여유 있게 사는 것에만 온 관심을 가졌지만

이제는 Well – Dying, 잘 죽는 것, 품위 있게 죽는 것, 죽음 이후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 11:13)에서

“인생은 이 세상에서 외국인과 나그네” 인생임을 말씀하셨습니다.

(시 90편)에서

“인생은 잠깐 잠을 자는 것 같다.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간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한 부자에게 소출이 너무나도 많아, 쌓을 곳이 없어, 곡간을 헐고 크게 다시 지었습니다.

이 부자가 혼자 중얼거리기를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매일, 친구를 부르고, 무희를 불러, 잔치를 열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그러나 하나님께서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이 세상에서의 삶만을 생각하며 사는 인생은, 어리석은 인생입니다. 미련한 인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로

“우리 인생이 얼마나 무상한 것인가!”를 알고 있습니다.

옛 노래

“인생은 나그네 길,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가?

인생은 연기 속에 재를 남기고 말없이 사라지는 모닥불 같은 것”

이러한 인생을 살면서

나에게는 죽음이 오지 않을 것처럼

이 세상에서, 천 년 만 년 살 것처럼 사는 것은!

미련하고 어리석은 일입니다.

오늘 날, 사람들이 죽음에 대하여 관심을 갖게 된 것은, 다행스러운 일입니다.

일본의 대기업 고마쓰의 81살된 전 사장 사토루씨는

지난 해 암 진단을 받은 뒤, “40여 년 신세 진 이들과, 인생을 같이 즐긴 이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며 생전 장례식을 치른다고 합니다.

유럽에서는 유해를 우주에 뿌리는 우주장이 생겼고

친환경 장례식이라고, 종이나 대나무 관을 사용하고

관에다 취미에 따라 악기나 골프공을 붙이고

납골당을 고풍스러운 서재와 카페로 꾸미고, 고인의 유품과 장례식 방명록을 책처럼 만들어, 유족이 볼 수 있게 하고

죽음을 염두에 두고 사는 것은 삶에 활기를 준다고, 죽음을 대비해 물건을 버리거나 기부합니다.

이렇게 하는 것이 죽음을 준비하는 것입니까?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가장 지혜롭고, 가장 복된 인생은

첫째, 언제인지 모르지만, 죽음이 곧 나를 찾아 올 것이라는 것을 아는 것이고

둘째, 죽은 뒤에

영생의 나라와 영벌의 나라가 있고

하나님께서 준비하신 영원히 영광 된 나라와 마귀와 그의 사람들을 위하여 예비 된 영원한 심판과 저주의 나라가 있고

하나님을 찬양하며 기뻐하며 감사하는 천국과 슬피 울며 이를 갈며 탄식하는 지옥이 있는데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며 사는 인생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우리 주님의 영접을 받는 인생

우리 주님께서 친히 우리를 위하여 준비하여 놓으신 영원한 생명의 나라, 영광의 날,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는 인생이

가장 지혜롭고 복된 인생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

은혜와 자비가 풍성하신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가장 복되고 아름답게 하기 위하여,

우리 인생에 가장 필요한 것, 꼭 있어야 하는, 반드시 가져야 하는

크고 놀라운 사랑과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요 3: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성자 하나님이시고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지만

하늘 영광 자리에 계시지 않으시고, 인간의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이 죄를 짓고,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아담의 후손 된 모든 인류는

죄 가운데 잉태되어, 죄의 종으로 태어나, 죄가 이끄는 대로 살고 있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죄의 종입니다. 멸망의 자녀입니다. 저주 받은 백성입니다.

영원한 저주와 심판과 멸망의 자리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모든 인생들이, 영원한 저주와 심판과 멸망 아래 있는 것을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려고,

멸망치 않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시려고

유일하신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을!

하늘 영광 자리에서, 인간의 땅에, 인간으로 내려 보내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실 때에

하나님이 인간이 되실 때에

성육신, 도성인신, Incarnation 하실 때에

처녀 마리아의 몸을 통하여 탄생하실 때에

이름을 예수라 짓게 하셨습니다.

“예수” 그 이름의 뜻은 - 자기 백성을 죄에서 구원할 자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 있는 영원한 저주와 심판과 멸망이 있습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고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 영원한 영광을 주시려고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보내셨고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 자리를 내어 버리시고, 인간의 땅에 오셨습니다.

광야에서,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 외치는 자의 소리인 세례 요한이

예수님이 자신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성령의 감동으로

“(요 1:29)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외쳤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급 나라의 바로, 이집트의 파라오의 노예로 400년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애급 바로 임금의 손에서 구원하시는 날,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가정은

“1년 된 양을 잡아, 양의 피를 대문의 설주와 인방에 바르라.” 명령하셨습니다.

그 밤에, 애급 사람들의 모든 집에 큰 변고가 생겼습니다.

집안의 모든 장자가 다 죽었습니다.

가축도 처음 태어난 수컷은 다 죽었습니다.

애급의 모든 가정에서, 탄식하며 울부짖는 소리가 흘러 나왔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 밤에 하나님의 사자가 애급 땅을 두루 다니며

애급 사람들의 모든 집에 들어가, 장자와 가축의 처음 난 수컷을 죽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집에 이르렀는데, 벌써 피가 묻어 있는 것입니다.

피는 생명입니다. 이미 죽은 것입니다.

죽음의 사자가, 피가 묻어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집은 그냥 넘어서 지나갔습니다.

이 날이 한자로 - 넘을 유, 넘을 월자를 써서 유월절(逾越節)입니다.

이 날이 영어로 - 넘는다는 뜻의 over와 지나간다는 뜻의 pass가 합쳐져, Pass-over Day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를 중심으로 3년 여 동안, 천국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유월절이 가까워질 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루살렘에 올라가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인자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 많은 고난을 받고

이방인에게 넘겨지고, 이방인들이 인자를 조롱하고 채찍질한 뒤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다.

그러나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리라.”

예루살렘에서,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만찬을 나누시면서

“이 떡은 너희를 위하여 찢기는 나의 살이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유월절 양으로,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아버지여!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그러나 나의 뜻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간절히 기도하고,

잠을 자고 있는 제자들을 깨우시면서 “일어나라. 가자. 때가 되었다.” 말씀하시고

기드론 시내를 건너, 기다리고 있던 대제사장의 하속들에 붙잡히셨습니다.

대제사장 가야바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에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이는,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미리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유월절 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는,

유월절에

내가 허물로 받아야 하는 저주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시고

내가 불의함으로 받아야 하는 심판을 십자가에서 대신 감당하시고

죄 값은 사망입니다. 내가 죄로 죽어야 하는데, 십자가에서 대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나를 구원하시기 위한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으심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한 대속의 죽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Well Being과 Well Dying에 관심을 갖게 되었는데

Well Dying을 진정으로 준비하는 것은!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님을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어 나의 모든 죄를 씻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죄를 씻어, 하나님께 의롭다 함을 받는 것입니다.

의롭다 함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 이 세상을 떠나는 날,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친히 예배하여 놓으신 영광의 나라, 생명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찬양) 십자가 그 사랑 멀리 떠나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