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17-24 골고다 십자가

관리자
2018-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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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고다의 십자가 / 요19:17-24


로마는, 이탈리아 반도에 나라를 세우고, 바다로 진출하기 위해서

페니키아(베니게, 포에니)의 카르타고와

세 차례의 걸쳐 포에니 전쟁⚫페니키아 전쟁을 치르고,

승리하여 지중해를 앞마당으로 하는 대 제국을 건설합니다.

로마가 승리한 아주 작은 이유 가운데 하나는

카르타고는 전쟁에 패한 사령관을, 나무 기둥에 묶은 뒤, 창으로 찔러 죽이는 책형을 가했습니다.

로마는 전쟁에 패한 사령관에게, 아무런 문책도 하지 않았을 뿐더러, 다음 전쟁에 다시 출전케 하였습니다.

카르타고의 사령관은, 전쟁에 임하여 조심스럽게 작전을 펼칠 수밖에 없습니다. 패하면 책형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로마의 사령관은 전쟁에 임하여 과감한 작전을 펼 칠 수 있었습니다.


로마가 세계의 맹주가 된 뒤

국가의 기강을 세우고, 치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카르타고의 책형을 도입하였습니다.

흉악한 죄인, 반역자, 반란자를 - 책형을 발전시킨 십자가형에 처했습니다.

죄인을 가장 잔인하고, 끔찍하게 처형함으로

죄인에게 가장 큰 고통을 주고

이를 지켜보는 이들에게 “너희도 죄를 지으면 이렇게 끔찍한 고통을 받을 것이다.” 경고하는 것입니다.

십자가형을 받게 되면,

자신이 매어 달릴 십자가를 등에 지고 형장까지 가야 합니다.

처참하게 끌려가는 모습을 사람들로 지켜보게 하였습니다.

형장에 이르면, 십자가 형틀에 손과 발을 묶어 움직이지 않게 하고

손과 발에 굵은 대 못을 박습니다.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고통 속에서, 사형수는 크게 비명을 지르게 됩니다.

십자가가 세워지면, 체중으로 못 박힌 손과 발의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 아픔 속에서, 크게 절규하고, 시선은 허공을 맴돌다, 정신을 잃게 됩니다.

못 박힌 손과 발에서, 한 방울 두 방울 흘러내리는 피와 함께,

견딜 수 없는 고통 속에서 몸부림치다가, 천천히 죽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고 나무에 매어 달아 처형하는 것은

더러운 죄인을 그냥 죽이면 땅에 더럽혀진다는 생각하였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숨이 넘어가기까지 사흘이 걸리기도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은 시체를 매달아 두지 않는 풍습 때문에,

예수님은 장례를 치루셨지만, 원래의 십자가형은 시체마저도 새의 먹이가 되게 하였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너무나 끔찍하여, 로마의 시민권을 가진 사람에게는 사용하지 않았습니다.

로마의 시민권이 없는 베드로 사도는 십자가에 거꾸로 못 박혀 순교하였고

로마의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도 바울은 효수로 순교하였습니다.

(십자가 처형은, 정복된 식민지 백성이나 노예들에게만 사용하였습니다.

십자가의 처형은, 너무나 잔인한 것이기에, 전쟁터에 나가 싸움으로 많은 사람을 죽여 본적이 있는, 로마 군인들 조차도 십자가 형에 관하여는 이야기 하지 않았답니다.

만일, 황제가 식사할 때에 누군가 십자가 사형에 관하여 이야기 하였다면, 당장 끌어내어 심한 매질을 하였답니다.)

십자가 사형 언도를 받게 되면, 사형수의 친척 친구들이 사형을 집행하는 로마 병사들에게 뇌물을 주는데, 거칠게 다루어서 가능하면 빨리 숨이 넘어 가게 해 달라고 부탁하였답니다.


BC 73년, 로마의 검투사⚫글레디에이터였던 스파르타쿠스는, 동료 검투사 70명과 함께 검투사 양성소를 탈출하여 베수비오 산으로 들어가 은신처를 마련하였습니다.

검투사 노예인 스파르타쿠스가 산에 은신처를 마련했다는 소식이 퍼지면서,

평생 노예로 살다가 자식에게도 노예의 무거운 짐을 물려주어야 하는 노예들과 비천한 자들이 모여들기 시작하였는데, 9만 명에 이르렀습니다.

로마의 정규 군단이 이들을 진압하기 위해 투입 되지만,

실전 경험을 쌓은 검투사들의 스파르타쿠스 반란군에게 패하게 됩니다.

스파르타쿠스는 알프스 산맥을 향하여 싸우면서 진군하였습니다.

국경을 넘은 뒤에 부하들을 고향으로 돌려보낼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하들이 이탈리아를 떠나기를 거부하자,

이탈리아 반도의 남쪽까지 내려와 시칠리아 섬으로 건너가려 하였습니다.

그러나 크라수스와 폼페이우스의 군단과 전면전을 벌입니다.

패하여 상당수가 죽임을 당하였습니다.

포로가 된 스파르타쿠스와 6,000명의 반란군은

사도 바울이 죄수의 몸으로 로마로 끌려 갈 때에, 걸어갔던 아피아 고속도로 양편에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되었습니다.

로마 시대에,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 된 사람은?

수 만, 수 십 만 명이 됩니다.

예수님도, 로마의 식민지 유대지방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 된 사형수 가운데 하나입니다.



1970년, 평화시장의 노동자였던 전태일은, 열악한 노동조건과 근로기준법 위반에 대하여, 노동청에 진정하였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전태일은, ‘근로기준법을 준수하라’ ‘우리는 기계가 아니다’ ‘일요일은 쉬게 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휘발유로 자신의 몸을 적시고 불을 붙여 분신자살하였습니다.

이를 계기로, 언론은 노동문제를 특집 기사로 다루었고, 노동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기독교에서는 도시산업선교회가 생겨났습니다.

40여 년 전입니다.

근로조건 개선을 위한 기도회가 열렸는데

한 젊은이가 “전태일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하고 기도를 마쳤습니다.

아무리 훌륭해도,

노동 운동하는 이들에게 열사로 불려도,

하나님께 기도 드릴 때에, 전태일의 이름으로 기도해서는 안 됩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께 기도 드려야 합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은 자들이, 수만 수십만이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 나의 구원이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입니다.

(고전 1:23-24)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

(고전 2:2) “내가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 된 수많은 사람들이 있지만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원이요, 생명이신 이유는!


첫째, 예수님은 태초부터 말씀으로 계신, 스스로 계신, 성자 하나님이십니다.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이 세상의 존재하는 모든 것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습니다.

세상의 모든 존재가, 예수 그리스도 없이는 하나도 된 것이 없습니다.


둘째,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성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고

하늘 영광 자리에서, 인간의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탄생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성육신, 도성인신, Incarnation 하셨습니다.


셋째, (요일 1:5) “성자 하나님은 빛이시라. 그에게는 어둠이 조금도 없으시니라.”

(벧전 1:19) “흠이 없고 티가 없는 어린 양 예수”

예수님은 성자 하나님이시기에,

어둠과 죄가 하나도 없습니다. 흠과 티가 전혀 없습니다.

(찬송 229장) “아무 흠도 없고 거룩 거룩 하신”

(찬송 161장 3절) “할렐루야 우리 예수 흠과 티가 없도다.”


넷째, 어둠과 죄가 하나도 없으시고, 흠과 티가 전혀 없으신 예수님께서

가장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 사형틀에, 가장 흉악한 죄인처럼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아합 왕은 왕궁 곁에 있는 나봇의 포도원이 탐이 났습니다.

아합 왕은 나봇에게 포도원을 팔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봇은 “하나님께서 조상에게 유산으로 주신 것이기에 팔 수 없습니다.” 말합니다.

이를 본 왕후 이세벨이 “제가 나봇의 포도원을 왕께 드리겠습니다.” 말하고

이세벨은, 불량자 둘을 세워 “나봇이 하나님과 왕을 저주하였습니다.” 거짓 증거하게 하였고,

나봇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성 밖에 끌려 나가 돌로 쳐 죽임을 당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그를 시기하던 자들에게 “신을 모독하고 청년을 타락시켰다.”는 누명을 쓰고,

“도망치십시오” 제자들의 권유에도 “악법도 법이다.”라는 말을 남기고, 독배를 마시고 죽었습니다.

드러나지 않아서 그렇지

우리가 알지 못해서 그렇지

세상에는 이렇게 억울한 누명을 쓰고, 죽은 이들이 수없이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누명을 쓴, 억울한 죽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의 죽음을 택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린아이의 점심인, 보리떡 5개와 작은 물고기 2마리로

벳세다 들녘에 모인, 남자 장정만 5천 명이나 되는 사람들을 배불리 먹이시고,

12광주리가 남게 하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다음 날, 또 떡을 먹기 위하여 찾아온 무리들에게

“썩을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생명의 양식을 위하여 하라.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십자가에서 죽으실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유월절을 맞이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인자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붙잡혀 많은 고난을 받고

이방인에게 넘겨지고,

이방인들이 인자를 조롱하고 채찍질한 뒤에,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것이다.

그러나 제 삼 일에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이 기다리고 있지만,

피하지 않으시고

십자가를 향하여 묵묵히 걸어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유대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으실 때에

예수님께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실 때에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셨습니다.(사 53:7)”

십자가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다섯째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죽으심은! 대속의 죽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입니다.

빚을 지면 빚을 갚아야 합니다.

빚을 갚지 못하면, 종⚫노예로 팔려갑니다.

종⚫노예의 무거운 멍에를 메고, 아침부터 저녁까지, 허리가 휘도록, 죽도록 일해야 합니다.

평생토록 종⚫노예의 멍에를 메고 살아야 합니다.

자식에게도 무거운 종⚫노예의 멍에를 물려주어야 하였습니다.

빚을 갚을 수 없어 종으로 팔려 갈 때에

친척이나 친구가,

빚을 대신 갚아주면 종으로 팔려가지 않습니다.

종⚫노예의 멍에를 메지 않아도 됩니다.

이 때 갚는 돈을, “속바칠 속(贖) - 재물을 바치고 죄를 면죄 받다. 형을 면제 받다” - “속전(贖錢)”이라 하고

갚아 주는 것을 “대속/대신 재물을 바치고 죄를 면죄 받다” 혹은 “구속/대신 재물을 바치고 형을 면죄 받아 구원한다.”라고 합니다.

빚하고 죄하고는 같은 단어입니다.

주기도문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를

“우리가 우리에게 빚진 것을 탕감하여 준 것같이, 우리의 빚을 탕감하여 주옵시고” 번역하여도 됩니다.

스스로 계신 하나님이시고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인간의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탄생하신, 말씀이 육신이 되신, 성육신 하신, 도성이신 하나님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신 성자 하나님이시고

흠도 티가 없으시고, 어둠과 죄가 조금 없으신 성자 예수님께서

로마제국에서,

가장 크고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사형틀인,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습니다.

가장 흉악한 죄인처럼 돌아가셨습니다.


아담 한 사람의 죄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죄 가운데 잉태되고, 죄 아래 태어난 모든 인생들은

죄가 가운데 살다가,

죄가 이끄는 대로, 영원한 저주와 형벌과 멸망과 심판의 자리로 가고 있습니다.

이때에,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슬로 묶어, 끌고 가고 있는 죄에게

“잠깐!

내가 값을 지불하겠소.

내가 죄 값을 지불하겠소.

내가 속전을 지불하겠소.

내가 구속하겠소.

내가 대속하겠소!”

우리를 사슬로 묶고 있는 죄가 말합니다.

“온 인류가 지은 죄가 얼마나 큰데,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소와 양을 제물 삼는다 하여도, 턱없이 부족한데

도대체 얼마나 큰 값을 지불하기에,

온 인류를 위한 죄 값을 지불 할 수 있겠소?

온 인류를 구속할 수 있겠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몸이요!

내 생명이오!

죄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야 하는 저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어린 양인 내가 대신 저주를 받겠소!

죄로 말미암아 형벌을 받아야 하는 저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유월절 양인 내가 가장 흉악한 죄인들이 처형 되는 십자가 사형틀에서 대신 형벌을 받겠소!

죄 값은 사망이오. 죄로 말미암아 저들이 죽어야 하지만, 성자 하나님인 내가 십자가에서 저들을 위하여 대신 죽겠소!

내 몸이 저들을 위한 속전이오!

내 생명으로 저들을 구속하겠소!

나의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요!

나의 십자가 죽음은 대속의 죽임이오!”


하나님께서 율법서 레위기 17:11에서

“생명이 피에 있으므로, 피가 죄를 속하느니라. 피가 죄를 씻느니라.”

하나님께서 율법서 신명기 21:23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서 이사야 53:5-6에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하나님께서 시편 22:18에서, 본문의 말씀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하나님께서!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저주와 형벌과 멸망과 죽음에 이르게 된

우리 인생들을 사랑하시사, 구원하시려고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을 통하여 말씀하셨고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인 구약성경을 통하여 약속하셨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고

하늘 영광 자리를 버리시고 인간의 땅에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나무에 매어 달리는 자가 저주를 받는 것인데,

내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저주를 받아야 하는데,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십자가는 형틀입니다.

내가 허물로 말미암아 형벌을 받아야 하는데,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죄로 죽어야 하는데,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죽으셨습니다.


요사이 Me too가 교육·사법·종교·문화 등 사회 전반으로 번져 나가고 있습니다.

노벨상 후보에까지 올랐던 시인에 대한 미투로, 그의 작품들이 교과서에서 빠질 것입니다.

영화, 연극인, 대학의 교수 등이 자리에서 내려 올 것입니다.

종교인도 교회법, 사회법으로 처벌을 받을 것입니다.

모두 비난 받아야 마땅합니다.


그런데

오늘날의 이 사태 앞에서, 예수님께서 뭐라 말씀하실까요?

“죄 없는 자가 돌을 던지라.”

우리가 그들을 비난하고,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 있는 것은?

안 걸렸기 때문입니다.

나의 허물은 드러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잠 21:2) “사람의 행위가 자기 보기에는 모두 정직하여도 여호와는 마음을 감찰하시느니라.”

(히 4:12) “하나님의 말씀은 마음의 생각과 뜻을 감찰하나니”

사람들은 외모로 판단하지만,

세상은 겉으로 드러난 것만으로 판단하지만,

하나님은 나의 마음, 나의 생각, 나의 뜻까지 감찰하십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완전합니다. 나는 의인입니다. 나는 정직합니다.” 할 인생이 어디에 있습니까?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바라보시며

(롬 3:10)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

(롬 3:23)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 말씀하십니다.


그래서

성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성자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 자리를 내어 버리시고 인간의 땅에 오셔서,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성부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셨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다는 것을 믿으면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흘리신 보혈의 피가

나의 모든 죄와 허물과 불의함을 깨끗하게 씻습니다.

깨끗하게 씻어 의롭게 하십니다.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십니다.

(벧전 1:18-19) “너희가 대속함을 받은 것은, 은이나 금 같이 없어질 것으로 된 것이 아니요, 오직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같은 그리스도의 보배로운 피로 된 것이니라.”


(찬양)

1.

십자가를 등에 지고 병정들에 이끌려

주님 갈보리의 길을 걸을 때

사람들은 몰려 왔네 죽음의 길 걷는 그를 보려고

가시 면류관을 쓰신 주를 조롱 하였네

채찍소리에 흥겨워하면서

그들은 소리 쳤네 자칭 메시야를 못 박으라고

사랑하는 제자마저 모두 떠나버리고

증오와 멸시의 비웃음 속에서

너와 나를 위한 그 애절한 사랑 때문에

주님은 그 길을 걸어 가셨네 갈보리길

2.

사람들은 말을 했네 이젠 모두 끝이라고

더 이상 그를 기대할 수 없다고

자신마저 못 구원한 그는 메시야일 수가 없다고

갈보리의 그길 만이 진정 구원의 길인 것을

그 누구도 이해하지 못했지만

너와 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 때문에

주님은 그 길을 걸어 가셨네 고난의길

3.

십자가에서 흘린 보혈은

예루살렘 유대와 땅 끝까지

구원의 강물이 되어 온 세상을 덮었네

세상의 모든 죄를 대속했네

모두 비웃고 조롱하며 떠났던 바로 그 길을

이젠 너와 내가 가야만 하네

생명의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