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복음 19:25-27 거기 너 있었는가?

관리자
2018-0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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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너 있었는가? / 요19:25-27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산헤드린 공회에서, 본디오 빌라도에게 재판을 받으살 때

이사야 53:7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라.” 말씀대로,

어떠한 이유와 핑계와 변명도 없이 침묵하셨습니다.


빌라도에게 십자가 사형 판결을 받으신 예수님께서,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시고,

해골이라는 형장 “골고다, “갈보리”까지

쓰러지시고, 넘어지시며, 힘들게 가셨습니다.

형장에 이르자,

로마군 백부장의 지휘에 따라, 형을 집행하는 병사들은,

예수님을 십자가 위에 눕히고

몸이 움직이지 못하도록, 손과 발을 밧줄로 단단히 고정하고

굵은 대못을 양 손과, 양발에 박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고통 가운데, 크게 신음하셨습니다.

십자가가 세워졌습니다.

체중으로 예수님의 살이 찢어지고, 뼈가 부서지는데

너무도 고통스러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크게 울부짖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좌우편에는, 흉악한 강도 둘이 함께 처형되고 있습니다.

강도는, 자신들이 지은 흉악한 죄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나

태초부터 스스로 계신 성자 하나님!

모든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말씀이 육신이 되시고, 인간의 땅에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탄생하시고, 성육신, 도성인신, Incarnationg 하신 성자 예수님!

아무런 흠과 점도 없으시고, 죄와 어두움이 조금도 없으신 성자 예수님이!

가장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 사형 틀에

가장 흉악한 죄인처럼 못 박혀 매어 달리셨습니다.


성자 하나님! 성자 예수님께서

가장 흉악한 죄인처럼, 십자가 형틀에서 죽임을 당하시는 것은!

우리의 모든 허물과 불의함과 죄악을 담당하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찔리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징계를 받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채찍에 맞으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시는 것입니다.

인류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과,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온 인류를 구원하시려,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시는,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의 현장에 있었던 사람들은!

첫째, 예수님을 처형하는 로마의 병사들

둘째, “당신이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 그리스도, 구원자요? 자신도 구원하지 못하면 어찌 우리의 구원자란 말이오!” 빈정거리며 비난하는 유대인들

셋째,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 가운데는 – 몇 명의 여인들과 나이가 제일 어린 요한 뿐입니다.


스스로 계신 성자 하나님,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성자 예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 대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탄생하심으로

자신이 지으신 자신의 땅에 오셨습니다.

갈릴리의 나사렛 마을에서 목수 일을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서른 살 쯤 되셨을 때에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고, 백성 중의 모든 병과 약한 것을 고치셨습니다.

예수님의 소문이 퍼져, 갈릴리는 물론이고 예루살렘과 유대 수리아 데가볼리 베뢰아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와

주님의 말씀을 듣고, 병 고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수의 벳세다 들녘에 계실 때에

허다한 사람들이 말씀을 듣기 위하여 몰려 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모인 사람들 모두를 배불리 먹여 주셨고,

더 이상 먹을 수 없는 남은 것을 거두었는데, 12광주리가 되었습니다.

이 때 떡을 배불리 먹은 사람들의 숫자가, 남자 장정만 5천여 명이었습니다.

아마도 여성들과 아이들까지 하면, 2만 명 가량이었을 것입니다.


유월절에,

유월절 어린 양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유월절 양으로 죽임을 당하고 계십니다.

유월절은! 유대인의 가장 큰 명절이라

유다와 갈릴리는 물론이고, 멀리 해외에 사는 디아스포라 유대인들도 예루살렘에 모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보리 형장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실 때에

예루살렘에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하여 올라온 사람들 가운데

예수님의 오묘하신 천국 복음의 말씀을 직접 들은 사람

예수님이 행하시는 기사와 표적을 직접 눈으로 본 사람

예수님께서 5병 2어의 기적을 행하실 때에 배 불리 먹은 사람

예수님으로부터 병 고침을 받고, 건강해진 사람 등

허다한 사람들이, 유월절 명절을 지키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왔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시는 골고다 형장에

예수님과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 전파하시면서

“나를 따르라!” 12명을 제자로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거라사라는 동네에서

군대 귀신에 들려, 미쳐 날 뛰던 사람을 고쳐 주셨습니다.

정신이 온전해진 그가 “저로 주님을 따르게 하옵소서.” 간청하였지만, 허락하지 않으셨습니다.

제자 된 12명 모두는

예수님께, 택하심을 받고, 제자 됨을 허락받고, 제자로 부르심을 받은 이들입니다.

3년 여 동안, 예수님과 늘 함께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실 때에,

나이가 제일 어린 요한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함께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실 때

소경 바디매오가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외쳤습니다.

제자와 무리들이 조용히 하라고 하자,

더욱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 예수여, 저를 불쌍히 여겨 주옵소서”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가던 발걸음을 멈추시고, 돌아서시고, 소경 바디매오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여리고에서 예루살렘까지는 24킬로로 하루 길입니다.

멀기도 하겠지만

소경이었을 때는 여행을 할 수가 없어서, 못 간다 하겠지만

예수님 때문에, 온 세상을 밝히 보게 되었는데

예루살렘으로 달려 올라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실 때에,

함께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된 병자를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실로암 연못에서, 날 때부터 소경이었던 자의 눈을 뜨게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베다니 마을의 나사로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려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을 당하시는데

예루살렘에 살고 있는 이들은 함께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열 명의 나병 환자가, 예수님이 지나가실 때에, “예수님!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멀리 서서 외쳤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사장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말씀하셨고, 제사장에게 몸을 보이러 가다가, 모두가 깨끗함을 받았습니다.

모두가 기쁨으로 가족에게 달려가는데, 사마리아 사람만이 돌아와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감사를 드렸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두가 깨끗함을 받았는데, 아홉은 어디 있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자신의 몸을 하나님께 화목제물로 드리시기에, 큰 고통 가운데

숨을 몰아쉬시며

“아버지, 어찌 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

내가 목이 마르다.

다 이루었다.” 짧게 7마디를 말씀하시고 운명하셨는데

“아홉은 어디에 있느냐?” 말씀하셨던 예수님이시기에

말씀을 더 하실 수 있으셨다면,

“요한과 몇 명의 여인들만 있구나. 다들 어디에 있느냐?” 말씀하시지 않으셨을까요?

“앉은뱅이였다가, 벙어리였다가, 중풍병에 걸렸다가, 귀신에 붙잡혀 살다가, 소경이었다가 고침을 받은 그들은 지금 다 어디에 있느냐?

천국 복음의 말씀을 듣고, ‘아멘’ 하며 믿어 구원함을 받은 사람들!

죄의 종, 멸망의 자녀, 저주 받은 백성에서 – 나를 믿어 하나님의 자녀, 천국의 백성, 부활의 자녀가 된 사람들!

오병이어 기적의 현장에서, 사람이 생명의 양식을 위하여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받은 사람들!

죽기까지 나를 따르겠다며 맹세하고 다짐한 제자들!

지금 다 어디에 있느냐?”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본문 25절 “예수의 십자가 곁에...섰는지라.” 말씀으로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 찬송가 147장으로 지어졌습니다.

마지막 심판 때에, 우리 모두 주님 앞에 서게 되는데

주님께서 “거기에 너 있었는가?” 물으실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영접한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 된 나에게

“거기에 너 있었는가? 지금 너는 어디에 있는가?” 물으십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영접하여 세례를 받습니다.

(롬 6:3)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세례는, 남자와 여자가 합하여, 한 가정을 이루는 결혼식과 같습니다.

결혼하여, 부부가 되고, 한 가정을 이루면,

기쁠 때나 슬플 때,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

죽음이 둘 사이를 갈라놓을 때까지,

언제나 함께 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예수 그리스도와 합하여 하나가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나의 신랑, 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입니다.

신랑 되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든, 무엇을 하시든, 언제가 함께 하여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오묘한 천국 말씀을 가르치실 때

예수님께서, 기사와 표적을 행하실 때

예수님께서, 여우도 굴이 있고 새도 깃들 곳이 있지만, 인자는 머리두실 곳조차 없다 말씀하시며 궁핍한 생활을 하실 때

예수님께서, 간절히 기도하실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향하여 걸어가실 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많이 아파하실 때

예수님께서, 차디찬 돌무덤에 묻히실 때

그리고 예수님께서, 부활의 찬란한 영광의 자리에 이르실 때

- 예수님이 계시는 모든 자리에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된 성도 여러분!

예수님을 사랑하여, 예수님을 따르는,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로 다짐한 교우 여러분!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든,

예수님이 계시는 모든 자리에 함께 하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솝우화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하늘의 날짐승과 땅의 들짐승 사이에 전쟁이 벌어졌습니다.

날짐승의 전세가 유리 하자, 박쥐는 날짐승 편을 들었습니다.

들짐승의 전세가 유리 하자, 박쥐는 들짐승 편을 들었습니다.

한참을 싸우던 들짐승과 날짐승이 휴전을 맺었습니다. 평화가 왔습니다.

전쟁 중에

박쥐는 날짐승이 이길 때 날짐승 편을 들고, 들짐승이 이길 때 들짐승 편을 들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들짐승은 힘들 때 날짐승 편을 든 박쥐를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날짐승은 힘들 때 들짐승 편을 든 박쥐를 상대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 부터 박쥐는 굴속에서 혼자 살게 되었답니다.

예수님의 제자라 하면서!

예수님께서 영광의 자리에 계실 때만 함께 하고

예수님께서 은혜와 복을 부어 주시는 자리에만 함께 하고

예수님 때문에 손해를 보고, 땀을 흘리고, 수고하고, 희생하고,

예수님께서 나에게 지워 주신,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가야 하는 자리에, 함께 하지 않는다면

우리 주님께서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불법을 행하는 자야! 내게서 물러가라.” 말씀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기 전,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3제자를 데리시고 겟세마네 동산에 올라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내 마음이 매우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나와 함께 기도하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해라.”

주님께서, 땀이 땅에 떨어지는 핏방울 같이 간절히 기도하시는데

제자들은, 밀려오는 피곤과 잠을 이기지 못하고, 주님의 애절한 기도 소리를 외면하고 잠을 잤습니다.

다른 제자는, “누가 크냐?” 말싸움으로 기도할 마음이 없었습니다.

가룟 유다는, 대제사장 집 사랑 방에서, 생명의 주님을 팔고 받은, 은 삼십을 세고 있었습니다.

나의 믿음이 더욱 자라기를 원하십니까?

어린 아이 같은 신앙으로, 믿음이 자라지 않아 답답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님의 향한 첫 사랑을 잃어버려, 얼음장 같이 차가운 가슴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까?

어려운 일을 만났고, 환란을 당하였고, 안타까운 일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의 크신 은혜로 - 문제가 해결 되고, 막힌 것이 뚫리고, 꼬인 매듭이 풀리고, 내 신앙이 회복되기를 바라고 있지 않습니까?

주님과 함께, 기도의 동산에 올라와,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 가운데 주님을 만나고

기도 가운데 기도의 응답을 체험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예수님께서, 빌라도에게 십자가 처형 언도를 받으시고

골고다 형장까지, 매어 달리실 십자가를 지고 가시는데, 연약하신 예수님께서 자꾸 넘어지고 쓰러지십니다.

사형 집행을 빨리 마치고, 쉬기를 원하는 로마 병사는

예수님을 채찍으로 때리며, 형장 가는 길을 재촉하지만, 시간이 계속 지체되고 있습니다.

로마 병사는, 연도에 서서 구경하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건장한 장정을 지목하여,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가게 하였습니다.

막 15:21을 보면, 주님의 십자가를 억지로 지게 된 사람은

“아프리카 북부 구레네에서, 유월절을 맞이하여, 순례를 왔던,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시몬”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오래 동안 준비하고, 오랜 시간 여행하여, 유월절에 예루살렘 성전에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려는, 디아스포라 유대인 순례자입니다.

유월절 준비일의 아침에, 웅성거리는 소리로, 무슨 일인가 구경하러 나왔는데

로마 병사가, 창칼로 위협하며, 형장으로 끌려가는 사형수의 무거운 십자가를 지게 하였습니다.

사형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는 구레네 시몬은!

“무척이나 운이 없는 날이네!

하필, 내가 사형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야 하는가?

하나님도 무심하시지! 난생 처음,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 예루살렘에 올라 왔는데, 나에게 흉악한 죄인의 십자가를 지고 가라 하시네!

내가 무슨 잘 못을 했는가?” 투덜거렸습니다.

골고다 형장에 이른 구레네 시몬은

“유대인의 왕 나사렛 예수”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처형되는 예수님을 바라 보면서

“유대인의 왕? 저런 나약하고 보잘 것 없는 자가 우리의 왕이란 말인가?

저자가 반란을 일으키려 했단 말인가?

저자가 민란을 일으키려는 주모자란 말인가?” 혼자 중얼거렸습니다.

예루살렘에서 무교절을 보내는 동안, 놀라운 소식을 들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무덤에 장사되셨는데, 그 분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 가야바가, 무덤을 지키던 병사들에게 돈을 주어, “예수님이 부활하였다는 소식을 말하지 말라.” 하였지만

사람들 사이에 “십자가에 못 박혀 장사되신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이야기가 빠르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목격하였다는 증인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사는 유대인인 구레네 시몬은

자신이 십자가를 대신 진 예수님이 -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야, 그리스도, 구원자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심으로

죽음의 권세, 죄의 권세, 사탄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승리하신 왕이신 메시야, 왕이신 그리스도임을 믿게 되었습니다.

불평 속에서,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졌지만

예수님이 구원의 주님,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고향 구레네로 돌아가,

아내에게, 아들 알렉산더와 루포에게, 이웃의 친구 친지에게

예루살렘에서 있었던 일을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 그리스도, 구원자가 예수님이신 것을 증거 하였습니다.

온 가족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시몬은, 자신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에 대하여, 평생 동안 감격하며, 자랑하며, 증거하며 살았다고 합니다.

롬 16:13에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 어머니에게 문안하라 그 어머니는 곧 내 어머니니라.”

사도 바울은, 억지로 십자가를 진 구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를 향하여, “내 어머니”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목회 할 때에, 어머니가 아들을 돌 본 것처럼, 바울의 선교에, 주님의 일에 충성 되이 섬겼던 것입니다.


교우 여러분!

억지로 십자가를 져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넘치게 됩니다.

마지못해 십자가를 져도,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이 임하게 됩니다.

기쁨으로 주님의 십자가를 진다면! -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이, 능력과 구원이, 얼마나 넘쳐나겠습니까?



신의주 장로교회를 시무하시던 한경직 목사님은

해방 후, 이북에 공산 정권이 들어서며 교회를 탄압하자 월남하셨고, 이북에서 내려온 피난민들과 함께 영락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처음에는 교회라기보다 피난민 수용소와 같았습니다.

교회가 부흥하여, 예배당이 좁아, 교회당을 건축키로 하였습니다.

교회당 건축을 시작하면서, 목사님께서 주일 예배 시간에 설교하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북에서 내려올 때에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이 빈 몸으로 왔습니다.

그런데 지금까지 하나님께서 은혜 주셔서, 여러분들이 잘 지내왔고 살림도 많이 넉넉해졌습니다.

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니 이제 교회를 짓는데 바치도록 합시다.”

다음 주일, 많은 교우들이, 많은 헌금을 드릴 줄 알았는데, 교회당이 썰렁해 졌습니다.

많은 교우들이 교회를 떠났기 때문입니다.

남은 사람들이, 헌금을 드리고, 교회당을 건축하였습니다.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 한경직 목사님의 말씀입니다.

“건축 할 때에 남아서, 자신의 재물을 헌신한 사람들이, 지금 한국의 경제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이 시간 주님께서 “거기에 너 있는가?” 물으십니다.

“너, 예배하는 자리에 있느냐?

너, 기도하는 자리에 있느냐?

너, 찬양하고 감사하는 자리에 있느냐?

너, 내가 너에게 준 은사를 가지고 나를 섬기는 자리에 있느냐?

너, 내가 너에게 부어 준 재물을 가지고, 나의 것을 구별하여 드리는 십일조의 자리에 있느냐?

너, 내가 지워진 네 몫의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고 있느냐?

나의 제자 된 너, 세상에서 빛으로 소금으로 살고 있느냐?”

주님의 질문 앞에,

“예, 제가 있어야 할 자리에 항상 있습니다. 항상 있겠습니다.” 대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찬송) 거기 너 있었는가 그 때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