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살아 나셨느니라 - 부활주일

관리자
2021-04-04
조회수 1140

다시 살아나셨느니라 / 마 28:1-6

 

세상의 법칙과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다릅니다.

• 세상의 법칙은! 썩으면 없어집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썩으면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습니다.

• 세상의 법칙은! 낮아지면 짓밟힙니다. 멸시당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자신을 낮추면 높아집니다. 작은 자가 큰 자가 됩니다.

• 세상의 법칙은! 섬기는 자는 천한 자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섬기는 자가 섬김을 받습니다. 섬기는 자가 존귀한 자입니다.

• 세상의 법칙은! 죽으면 끝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칙은! 죽으면 삽니다. 죽으면 생명입니다.

이를 “역설적 진리 • Paradox”이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말씀하신 대로

자신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시기 위하여, 예루살렘에 올라가셨습니다.

배반한 가룟 유다가 인솔해 온 군병들에게 체포될 줄 아시면서도, 겟세마네 동산에 기도하러 가셨습니다.

체포되셔서 유대인 산헤드린 공회에서 재판을 받으셨고

로마인에게 넘겨져 – 희롱과 침 뱉음을 당하시고, 채찍에 맞으시고

총독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으실 때에, 죄 없음을 변명하거나 항변하지 않으시고,

‘도살장에 끌려가는 양과 털 깎는 자 앞에 잠잠한 양처럼 입을 열지 아니하시고’

매어 달리실 무거운 십자가를 등에 지고, 형장 갈보리 • 골고다 언덕으로 끌고 가셨습니다.

 

형장 갈보리 언덕에서

로마제국에서 가장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 사형틀에

못 박히시고, 고통 가운데 크게 울부짖으셨습니다.

이를 바라보던 사람들 가운데

“엘리야를 부른다.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셔서, 십자가에 매달려 고통당하는 예수를 건지시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는 로마 사람들과 유대교의 지도자들을 심판하실 것이다.” 기대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이신 그리스도 • 메시야 • 구원자”라고 믿는 사람들의 기대와 바램을 저버리고,

예수님은 가쁜 숨을 몰아쉬며 “다 이루었다.” 말씀하시고 운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은, 돌무덤에 장사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3년 전, 예수님을 만나 부르심을 받을 때에

“이 분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이시다.” 믿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로, 예수님과 함께 할 때에

물을 포도주로 바꾸시고

거칠게 이는 파도를 잔잔케 하시고

주님께 나아오는 모든 병든 자를 고치시고,

심지어 죽은 자까지도 살리셨습니다.

어린아이가 가지고 온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장정만 5천 명을 모두 배불리 먹이시고, 12광주리를 남게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바로 그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이심을 확신하며

곧! 로마인들을 몰아내시고, 무너진 다윗 왕국을 회복하시고, 찬란한 유대왕국을 세우시리라.” 확신하였습니다.

 

그런데

그렇게도 능력이 많으신 예수님께서

무기력하게 붙잡히시고, 십자가 사형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차디찬 돌무덤에 묻히셨습니다.

3년 동안의 꿈이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3년 동안 헛수고를 하였습니다.

3년 동안 헛되이 시간을 보냈습니다.

크게 실망한 제자들은! 망연자실하였습니다.

 

그러나

제사장, 바리새인, 사두개인 등 유대의 종교 지도자들은 승리의 축배를 들었습니다.

예수는 자신들에게 “회칠한 무덤, 독사의 자식, 외식하는 자”라는 독설을 서슴없이 퍼부었습니다.

40년 동안 지은 성전을 “허물고 사흘 만에 다시 짓겠다.”는 망말도 하였습니다.

갈릴리 지방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인 나사렛의 목수요, 천박한 출신인데,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하늘에서 내려온 자!”라고 주장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하며, 하나님께 불경죄 • 참람한 죄를 지었습니다.

유창한 말과 행하는 마술로 백성들을 선동하였고, 자신들의 신성한 권위를,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예수는 3년 동안 눈에 가시였지만 어찌 할 수 없었는데,

드디어 로마의 총독 빌라도의 손을 빌어,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눈의 가시를 뽑아버렸습니다.

깨끗하게 제거하였습니다.

 

예수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말하였기에

혹시라도, 제자들이 무덤에 묻힌 예수의 시체를 훔쳐 간 뒤에,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났다.” 헛된 말을 하고 다니면 안 되기에

돌무덤의 입구를 큰 돌로 막고, 인봉하고, 성전의 병사들로 무덤을 지키도록 하였습니다.

 

 

한 주간 동안,

예루살렘은 무척이나 소란스러웠습니다.

예수께서 백성들의 “호산나” 찬양을 받으시며,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며 시작된 소동은!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사람, 돈 바꾸는 사람을 채찍질하시고, 내어 쫓으며 성전을 난장판으로 만들었고

대제사장은 “무슨 권세로 이렇게 하는 것이오?” 말하며 예수님과 다투었고

바리새인은 “세금을 가이사에게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질문하여, 예수님과 크게 논쟁하셨습니다.

대제사장은 산헤드린 의회를 소집하고, 예수님을 붙잡아 심문하고

예수님을 로마의 총독 빌라도를 넘기고, 빌라도를 압박하여, 사형 판결을 받아 내고

드디어 십자가에 못박아 죽이고, 장례를 치렀습니다.

이렇게 하여, 예루살렘 성에 있었던 큰 소동은 잠잠해지고, 예전의 평온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니었습니다. 더 큰 소동과 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무덤에 장사 되신지 사흘째 새벽!

땅이 흔들리더니, 굳게 닫아 두었던 커다란 돌문이 활짝 열렸습니다.

파수하던 병사들은 넋이 나가 버렸습니다.

예수님이 누우셨던 곳에,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세마포만이 놓여져 있습니다.

예수님의 시신에 향품을 바르기 위하여 무덤을 찾아온 여인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누우셨던 곳에 서 있는 천사를 통하여

“어찌하여 산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크게 놀라고 두려워한 여인들이,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하여 달려가는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인들에게 나타나셔서 “샬롬 • 평안하냐!” 말씀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도 나타나셔서 “샬롬 • 평안하냐!”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 뿐 아니라, 여인들과 많은 사람들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을 친히 뵈었습니다.

예수님 손의 못자국과 옆구리의 창자국을 손으로 만지기까지 하였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식사도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나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리라.” 말씀하신 대로

예수님은 사망 권세 • 죽음의 권세 • 사단의 권세를 물리치시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주님 • 생명의 주님 • 구원의 주님이 되셨습니다.

 

“죽으면 살리라.” 말씀하신 “역설의 진리”가 “참 진리”인 것을 친히 확증되었습니다.

 

 

“역설 • 반전의 역사”는 계속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친히 뵌 제자들에게 부활의 기쁨이 충만하였습니다.

다시 사신 주님께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 하심을 분명하게 믿게 되었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이신 예수님을 따라, 부활의 자녀 • 하나님의 자녀 • 천국의 백성 • 하나님 나라의 시민 됨을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두려움으로, 마가의 다락방 문을 꼭 걸어 잠그고 크게 두려워하며 지냈는데

부활의 신앙을 갖게 된 제자들은, 걸어 잠근 문을 열어 제치고 뛰어 나가

예루살렘 온 성을 다니며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수를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우리의 그리스도와 생명의 주가 되게 하셨도다.

우리가 이 일에 증인이니라.” 크고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하루에 3천 명, 5천 명 –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이 “부활 신앙 • 천국 복음”은 유다로, 사마리아로, 아시아로, 아프리카로, 유럽으로

온 세계의 모든 나라 • 민족 • 백성에게 전파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죽음을 상징하는 십자가가, 부활 신앙과 함께 온 세계에 세워졌습니다.

주님의 교회가 흥왕하게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죽임이 아닙니다. 부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패배가 아닙니다. 승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수치가 아닙니다. 영광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저주가 아닙니다. 찬송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는 부끄러움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용서 하시는 사랑이고, 구원하시는 능력입니다.

 

 

교우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심으로

죽음이 생명으로 바뀌는,

수치가 영광으로 변하는,

깊은 탄식이 감격의 찬송이 되는,

살아 계셔서 -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고, 동행하셔서, 내 삶에 능력이 되시는 - 역설, 반전의 역사가!

예수님을 믿는 우리 모두에게 있었고, 지금도, 앞으로도 계속됨을 믿으시기를 축원합니다.

 

 

 

우리 모두는!

오래되었어도, 뒤집기 한 판의 멋진 경기를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다.


격투기 선수로 활동하기 전, 최홍만은 씨름 선수였습니다.

2미터 18센치로, 씨름 선수 가운데 제일 컸습니다.

큰 키에서 나오는 힘으로, 천하장사 타이틀을 여러 번 차지하였습니다.

잊을 수 없는 경기가 있었습니다.

1미터 87 센치의 원종수 선수가, 최홍만 선수와 맞붙었습니다.

두 선수가 삽바를 잡기 위하여 섰을 때, 최홍만 선수는 원종수 선수보다 머리 하나가 더 올라와 있었습니다.

몸무게도 165킬로 대 121킬로

원종수 선수는, 최홍만 선수의 상대가 되지 못합니다.

경기가 시작되자마자, 모래판에 내동댕이 쳐질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고, 가벼운 원종수 선수가, 큰 최홍만 선수를, 배지기 기술로 모래판에 눕혔습니다.

예상을 깬 멋진 승리였습니다.

 

 

권투에서 기억에 남는 뒤집기 한판은

1977년, 홍수환 선수와 카라스키야 선수와의 챔피언 결정전 경기였습니다.

홍수환 선수가 맥없이 다운되었습니다. 일어나는가? 했더니 또 다운되었습니다. 일어나는가 하였더니 또 다운이 되었습니다.

상대가 안 됩니다. 모두가 졌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것이 어찌 된 일입니까?

벌떡 일어난 홍수환 선수가! 어디서 힘이 생겼는지 카라스키야를 사정없이 두들기더니, K.O.를 시켰습니다.

이 극적인 뒤집기에, 중계하던 아나운서의 목은 쉬었고, 온 국민은 환호하였습니다.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 하는 홍수환 선수의 말과 함께, 칠전팔기의 전설로, 우리는 아직도 그 경기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축구에서 기억에 남는 뒤집기 한판은

2002년 월드컵 경기에서, 이태리와의 경기였습니다.

1대 0으로 뒤지고 있습니다. 후반전도 끝나려 합니다.

그때, 설기현 선수가 동점골을 터뜨렸습니다.

연장전에 들어갔습니다.

안정환 선수가 헤딩으로 골든 볼을 터뜨렸습니다.

극적인 역전승, 뒤집기 한 판입니다.

온 국민이 흥분하였습니다.

 

 

 

이 세상에서 가장 멋진 뒤집기 한판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못 박혀 저주를 받으셨습니다.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돌아가셨습니다. 무덤에 장사 되셨습니다.

그러나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사건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온 인류를 다스리고 지배하던 - 사망의 권세 • 사탄의 권세 •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 인류 역사에 생명이 사망을 이긴 가장 위대한 뒤집기 한 판입니다.

• 아담 한 사람의 범죄 함으로,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온 인류는 죄의 종으로 태어나, 죄가 이끄는 대로 살다가, 죄로 말미암아 사망과 저주와 심판에 이르게 되었지만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하여, 대신 저주를 받으시고, 형벌을 당하시고, 죽으셨고,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 • 생명의 주님 • 구원의 주님으로 말미암아,

전에는 사망이 왕노릇 하였지만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 왕노릇 하게 되었고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기신 가장 위대하고 멋진 뒤집기 한 판입니다.

 

 

• 어두운 밤이 지나 새벽이 온 시간은?

탈무드에, 옆에 있는 형제 자매의 얼굴이 보일 때랍니다.

• 추운 겨울이 지나 봄이 온 시간은?

어느 시인의 말에, 하얀 목련꽃이 활짝 필 때 랍니다.

• 아이가 자라나 어린 아이에서 벗어난 시간은?

짜장면이 맛이 없고, 산타클로스가 없다고 믿는 때랍니다.

저는 아직 어린아이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산타클로스를 보내셔서 은혜와 은사를 부어 주시고, 아직 짜장면이 맛있기 때문입니다.

• 우리 인생에! 참소망과 참기쁨을 누리기 시작하는 시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다는 것을! 확실하고 • 분명하게 믿을 때입니다.

 

사망을 생명으로 뒤집으신 예수님께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된 모든 성도들에게, 뒤집기 한 판의 역사를 베푸십니다.

 

• 베드로는 갈릴리 호수에서 물고기를 잡던,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는 보잘 것 없는 어부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고, 부활의 증인으로 살았는데,

세상에 가장 웅장하고 화려하고 경건한, 로마에 있는 위대한 건축인 성당에 “베드로”의 문패가 붙어 있습니다.

 

• 높은 학식과 훌륭한 가문과 세상의 권세도 가지고 있던 가장 큰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사울은!

예수님을 핍박하고, 복음을 거부하고, 교회를 박해하는데 앞장섰던 사람이었는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

예수님을 핍박하는 자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셨고

복음을 거부하던 자에서,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로

교회를 박해하던 자에서, 세계의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구원의 복음을 증거하여, 주님의 교회를 세우는 사도가 되었습니다.

유대 땅 변방에서 시작 된 천국 복음을, 온 세계인의 복음이 되게 하는

위대한 뒤집기 한 판의 역사를 이루었습니다.

 

• 저의 친구 목사님의 어머니가, 93세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아들 목사님과 어머니가 나눈 마지막 대화는 다음과 같습니다.

“어머니 주일 지나고 서울대학병원에 예약했으니 모시고 갈께요.

조금만 참으세요.”

그러나 어머니는 그날 밤을 넘기지 못하셨습니다.

“어머니 평안히 가세요. 천당 가서 만나요.

하나님이 어머니가 아들 목사 만드느라 고생하셨다고 좋은 집 준비하고 기다리고 계세요.

아무 걱정 마시고 천당에서 만나요.”

어머니께서 마지막 숨을 몰아쉬면서

“어서 가야지!...” 한마디 말씀을 남기시고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어디로 간다는 것입니까?

누구에게로 간다는 것입니까?

 

큰돈을 벌어, 좋은 집에서, 좋은 옷을 입고, 좋은 것을 먹고, 좋은 차를 타고, 온갖 호사를 다 누려도

부활 신앙이 없으면 어디로 가는지, 누구에게로 가는지 알지 못하면 삽니다.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외국인과 나그네 인생이라’,

언제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 세상을 떠나는 시간이 옵니다.

그때에, “생명의 나라, 영광의 나라, 영원한 나라”에 들어가려 하지만, 문은 굳게 닫혔고, “나는 너를 알지 못한다.” 주님의 음성을 듣게 되고,

영원한 저주와 심판과 멸망의 자리에 던져지게 됩니다.

 

 

오래 전 뒤셀도르프에 슈테른베르크라는 화가가 있었습니다.

어느 날 교회에서 머리에 가시관 쓰신 예수님에 대한 그림을 그려 달라고 하였습니다.

슈테른베르크는 교회에 걸어 놓을 머리에 가시관을 쓰신 예수님을 그려 나가다가, 중단해 버렸습니다.

그림 값으로 너무 적은 돈을 받기로 계약하였기 때문입니다.

많은 시간을 들여서 그림을 완성한다고 하여도 수고한 것에 비하여 너무도 적게 받기 때문에, 돈이 되는 그림을 그리기로 하였습니다.

교회에서 사람이 오면, 그림 값을 다시 흥정하여, 제 값을 받고 십자가 그림을 그리기로 하였습니다.

슈테른베르크는 돈이 되는 세상의 그림을 그리는데, 페피타라고 집시 여인을 모델로 하여 세속적인 그림을 그리고 있었습니다.

누드화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림을 그리다 잠시 쉬는 시간에 모델인 페피타가, 그리다 세워 놓은 예수님의 그림을 보면서 “저 그림은 무슨 그림입니까?” 하고 물었습니다.

슈테른베르크는 “예수에 관한 그림이지!”

집시 여인은 예수가 누군지 모르고 있었습니다. 질문에 대하여 대답하기를 귀찮아하면서 슈테른베르크는 약간은 퉁명스럽게, 그리고 짧고 간단하게 말해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스라엘의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고, 많은 병자를 고치셨고, 사랑하라고 가르치셨는데, 미움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단다.”

집시 모델이 묻습니다. “저 사람은 죄를 무척 많이 저지른 모양입니다.”

슈테른베르크는 “저 사람은 우리의 죄를 대신해서 죽었단다.”

집시 모델은 “그러면 저 사람은 선생님을 위하여도 죽으셨습니까?”

슈테른베르크는 “예수님은 나를 위하여, 너를 위하여,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의 용서하여 주시기 위하여 대신 형벌을 받으셨고, 대신 죽으셨단다.”

“예수님께서 페티파를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하였는데, 페피타의 눈에 눈물이 고였습니다. 흐느껴 울기 시작하였습니다.

슈테른베르크는 울고 있는 집시여인을 위로해야 하겠다고 “울지 말아라. 예수님은 부활하셨단다. 비참하게 돌아가셨지만, 무덤에 묻혀 계시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단다.”

이 말에 집시 여인은 눈물을 닦으며, “정말로 부활 하셨습니까?” 말하는데,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슈테른베르크는 집시 여인이 십자가의 사랑을 깨닫고, 부활의 소망을 갖는 것을 바라보면서 마음에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내가 지금 이 여인에게 예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고 말했는데...

페티파는 이 말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부활의 소망을 갖게 되었는데...

나는 예수님을 믿는가?

예수님이 나의 구원자이신가?

예수님이 부활하셨다고 믿고 있는가?

나는 부활의 소망을 가지고 있는가?

나는 예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죽으셨다고 말은 하지만 그렇게 믿지 않고 있으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고 말은 하면서 부활의 소망이 없지 않은가?

나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림을 그리면서 돈 적게 준다고 그리다 말고, 다시 돈을 많이 받으려고 흥정을 하고 있지 않은가?

예수님께서는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자신의 생명을 주셨는데, 나는 예수님을 위하여 무엇을 드렸는가?”

슈테른베르크는 아들을 보내신 하나님의 사랑과, 자신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의 희생, 그리고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으며, 부활의 소망을 주신 구세주 예수님을 생각하며 회개하였습니다.

그리다 말고 놓아두었던, 다시 그릴 마음이 없었던 그 그림을 앞에 놓고, 기도하며 완성하였습니다.

그림 값을 더 받아야 겠다고 생각하였지만, 완성된 그림을 교회에 기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림 밑에 은혜 받은 말씀 “내가 너를 위하여 이렇게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느냐?” 하는 글을 적어 놓았습니다.

 

 

진젠도르프라는 백작이 있었습니다.

교회당에서 슈테른베르크가 그림 가시관 쓰신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이렇게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느냐?” 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큰 감동을 받았습니다.

주님께서 백작에게 “나는 너를 위하여 몸을 주었다.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주겠느냐?” 물으셨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주님, 제가 주님을 위하여 살겠습니다. 나의 생명, 나의 건강, 나의 재물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결심하였습니다.

 

진젠도르프 백작은 로만 캐톨릭의 박해를 피해 피난 온 성도들을 자기 영지에 다 받아들였습니다.

이들과 함께 경건주의 운동, 모라비안 운동, 기도운동, 성령운동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시에 잠자고 있던 교회를 깨워 14개 나라에 3천 여 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습니다.

진젠도르프는 영국의 요한 웨슬레 형제에게 큰 영향을 미쳤고, 감리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해버갈이라는 사람이 뒤셀도르프에 유학을 하게 되었습니다.

해버갈은 교회당에서 슈테른베르크가 그린 예수님 그림을 보게 되었습니다.

그림을 볼 때에 마음에 큰 감동을 받았는데, 쓰여 진 글 “내가 너를 위하여 이렇게 하였다. 너는 나를 위하여 무엇을 하였느냐?” 하는 글에 또 다시 감동을 받았습니다.

마치 주님께서 자신에게 말씀하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해버갈은 이 글을 적어 가지고 돌아와, 생각하고 또 생각하고...그리고 찬송가를 짓게 됩니다.

 

그 찬송가가 311장입니다.

“내 너를 위하여 몸 버려 피 흘려

네 죄를 속하여 살 길을 주었다.

널 위해 몸을 주건 만 너 무엇 주느냐?

널 위해 몸을 주건 만 너 무엇 주느냐?”

 

 

부활의 믿음과 소망 가운데 살아가는 교우 여러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서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주와 심판과 멸망에서, 영생과 구원으로 옮기시고

죄의 종 • 저주 받은 족속 • 멸망의 자녀였지만, 부활의 자녀 • 하나님의 자녀 • 영광스러운 천국 백성으로 삼으시고

사망이 왕노릇 하였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이 왕노릇하고

수고와 슬픔이 가득한 이 세상을 살아 갈 때에, 고아와 같이 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인도하십니다.

 

부활하신 주님!

부활의 첫 열매가 되신 주님!

살아 계셔서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의

크고 놀라운 은혜와 사랑이 우리 가운데 충만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