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1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관리자
2021-08-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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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 행3:1-10

 

유대인들은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 시간으로 오전 9시, 낮 12시, 오후 3시는 기도 시간으로 성전이나 회당에서, 회당이 없으면 어디에 있든지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기도를 드렸습니다.

다니엘 선지자는, 왕의 칙령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창문을 열고 예루살렘 쪽을 향하여 하루에 3번 기도를 드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도, 오후기도 시간에 기도하기 위하여 예루살렘 성전을 향하여 가고 있습니다.

 

철학자 칸트는! 하루도 빠짐이 없이, 언제나 같은 시간에 산책을 하였다고 합니다.

얼마나 시간을 정확하게 지켰던지, 마을 사람들은 칸트가 산책을 나가는 것을 보고 시간을 알았다고 합니다. 시계도 칸트의 산책하는 것을 보고 맞추었다고 합니다.

한번은 칸트의 산책 시간에 시계가 고장이 나서 30분이나 늦어진 날이 있었습니다.

그 때 시민들은 바로 가는 자기들의 시계를 뒤로 돌려 30분을 늦추었다고 합니다.

 

칸트는 산책을 하는 일에 그토록 정확하게 시간을 지켰는데,

하나님의 백성 된 우리 성도들은!

하나님께 예배드릴 때! 기도할 때! 시간을 정확하게 지켜야 합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드리는 새벽기도회는, 우리의 경건의 삶에 큰 유익이 됩니다.

요사이 코로나로 새벽기도회를 드리지 않았는데, 경건생활에 장애가 되고 있습니다.

9월부터, 코로나와 관계없이 새벽기도회를 다시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분은

“유대인들이 매일 정해진 시간에 기도하는 것과 교회에서 매일 새벽기도회를 드리는 것과 주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을 가리켜 형식적이다.” 말합니다.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예배드리는 자는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 드려야지, 형식적인 예배와 기도는 의미가 없고, 위선적이다.” 말합니다.

“경건의 모양 만 갖추었지 경건의 능력이 없다.” 말합니다.

 

그러나,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형식에 내용을 담는 것입니다. 경건의 형식이 없이 경건의 내용이 있을 수 없습니다.

 

콩깍지는 필요 없는 것이기에 후에 불에 태워 버립니다.

그러나 콩깍지가 없다면 결코 콩이 영 글 수 없습니다.

콩을 수확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콩깍지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생활도! 형식적이고, 의식적이라고 생각될 때가 있지만

형식 안에 믿음을 담고, 의식 안에 경건을 담습니다.

주일에 드리는 예배를 통하여,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의 예배를 드리며 나아갑니다.

 

콩나물을 기를 때! 하루에 몇 번씩 물을 붓습니다.

물을 붓지만, 부은 물은 밑으로 다 빠져 버립니다.

“물을 부으면 다 빠져버리는데, 왜 물을 붓나?” 말 할 수 있습니까?

물이 다 빠져나갈지라도, 물을 부어야, 콩나물이 쑥쑥 자라게 됩니다.

 

우리들이!

매 주일 드리는 주일예배는

경건의 모양에, 경건의 내용을 담는 것입니다.

콩깍지 속 안에 콩 알이 영글어가듯이, 우리의 신앙이 매일 매일 자라고, 우리의 믿음이 날마다 자라갑니다.

 

유대인들은! 2천 여 년 가까이

세계에 흩어져, 나라 없는 백성으로 유랑하며 산 민족이지만

무슨 일이 있어도 “안식일⦁하나님의 날”을 지켰습니다.

지금의 유대인들이 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안식일을 지켰더니, 안식일이 우리 민족을 지켜 주었다.”

 

 

(딤전 4: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이 약속이 있느니라.”

우리가 건강을 위하여, 음식을 조절하고 정규적으로 운동을 하지 않습니까?

영적인 성장을 위하여도 이런 훈련이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생명의 양식⦁성경 말씀”을 정규적으로 먹고, 묵상하고

영적 호흡이라고 하는 “기도”를 시간을 정해 놓고 드리고

신앙생활의 기본이 되는 “성수주일⦁주일예배”를 철저히 지키며, 경건생활에 힘쓰면

땅의 기름진 복을 받고,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고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장차 올 세상에서도 복을 받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기도 시간에, 기도하러 성전으로 올라가는데, 성전의 “미문⦁아름다운 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를 보게 됩니다.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습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걸어본 적이 없는 불쌍한 사람입니다.

불구의 몸으로 세상을 살아야 하는 그가 택한 일은 구걸입니다.

가족들은 매일 그를 업고와 성전 문에 앉혀 놓고, 구걸로 살게 하였습니다.

 

성전 미문에 앉아 있는 구걸하는 앉은뱅이는!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을 향하여 걸어오고 있는 것을,

긍휼을 베풀어, 적선하여 주기를 기대하며, 애절한 눈빛으로 바라봅니다.

 

베드로는! 몇 푼의 적선을 바라는 애절한 그의 눈망울을 보았지만, 적선할 돈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금과 은은 내게 없습니다. 당신이 원하는 세상의 재물은 내게 없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앉은뱅이처럼 “주님께⦁교회에” 세상의 재물을 주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천국복음을 전파하신지 3년이 되어 올 때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많은 고난을 받은 뒤에,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을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병든 자를 고치실 때, 표적을 보여 주실 때, 보리떡 5개와 물고기 2마릴로 5천 명을 먹이시는 기적을 행하실 때

구름과 같은 허다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이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밀물처럼 몰려든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루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 죽음”을 말씀하시자,

그렇게도 많던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갔습니다.

제자들만 남기고 모두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바라보시며 “너희들도 가려느냐?”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에 베드로가 “생명의 말씀이 주께 있사온대 우리가 뉘게로 가오리까?”

예수님으로부터 “금과 은⦁세상의 것”을 바라는 사람들은 모두 떠났고

예수님으로부터 “생명의 말씀⦁영원한 것⦁신령한 것”을 바라는 제자들만 남았습니다.

 

 

앉은뱅이가! “금과 은⦁세상의 재물”을 바라며, 베드로를 바라보았지만

베드로가 “네가 원하는 금과 은은 내게 없다.” 말할 때에, 매우 크게 실망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마실까? 세상의 것들을 위하여 살지 말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여라. 신령한 것을 위하여 살아라.

세상의 금과 은⦁재물이 주는 평안은 잠깐의 평안이고, 썩어질 세상의 평안으로, 이를 얻기 위하여 살지 말고,

내가 너희에게 주는 참 평안⦁영원한 평안⦁신령한 평안을 구하여라.“

 

많은 사람들이!

세상의 것을 바라고, 세상의 것을 얻기 위하여 교회에 나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이 구하는 세상의 것을 썩어질 것이라 말씀하시며, 이러한 것을 주시기 위하여 하늘 영광 자리를 버리시고 인간의 땅에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위에 세워진 교회는!

결코 많은 사람들이 바라는 세상의 것을 줄 수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와, 몇 푼 얻겠다는 사람들은 실망합니다.

세상의 재물을 바라며 교회에 오는 사람은 실망합니다.

교회에 다니며, 재물의 부자가 되려는 이들은 실망합니다.

예수님을 믿어, 부귀영화 권세를 누리려는 이들은 실망합니다.

세상의 것을 바라고, 세상의 것을 잡으려고 나온 사람들은, 큰 실망을 가지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서 떠나고, 주님의 교회를 떠나게 됩니다.

 

 

성전 미문에 앉은 걸인은 세상의 재물을 원했습니다.

애절한 눈으로 베드로와 요한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요한은 그가 원하는 세상의 것을 가지고 있지 못해서 줄 수가 없었습니다.

대신에

베드로와 요한이 가지고 있는 생명의 주님⦁구원의 주님⦁예수님을 향한 믿음으로 외쳤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곧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걸으라.”

베드로의 이 외침에 하나님께서 역사하셨습니다.

앉은뱅이가 일어나 걷고 뛰게 되었습니다.

성전 입구에 앉아 구걸만 하던 사람이, 성전 안에 들어가,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교회가 줄 수 있는 것은! 교회가 주어야 하는 것은!

위대한 이름⦁구원의 이름⦁능력의 이름⦁생명의 이름 -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교회가 세상을 향하여 봉사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교회가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 생명의 그 이름⦁구원의 그 이름⦁능력의 그 이름을 전해야 합니다.

 

봉사하는 것은! 생명의 주님⦁구원의 주님을 전하기 위해서입니다.

구제하는 것은! 생명의 주님⦁구원의 주님을 전해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 주님의 교회의 존재 이유는?

봉사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구제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들이 그렇게도 바라고 원하는 세상의 것들을 더하여 주리라.”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고 그 다음날 주님을 다시 찾아온 사람들을 향하여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들이 나를 찾은 것은 떡을 먹고 배부른 까닭이로다.

어제 배불리 먹었지만, 다 소화되고, 오늘도 배가 고파,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찾아왔구나.!

어제 떡으로 배불리 먹인 것은! 내가 생명의 떡⦁생명의 양식임을 알게 하기 위해서다.

너희 조상들이 광야에서 만나를 먹었지만 다 죽지 아니하였느냐?

나는 너희 조상들이 먹었던 일용할 양식인 만나가 아니다.

나는 생명의 만나다. 나는 생명의 양식이다.

내가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이제는! 썩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지 말고, 영생하도록 있는 양식을 위하여 일하라.”

 


70년대에, 매우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판자촌 마을에,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하던 목사님이 계셨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자그마한 바람에도 날아갈 것 같은 판자로 얼기설기 지은 2-3평 집에 살고 있습니다.

열심히 일해서, 판자 집을 벗어나려고 노력해야 하는데, 자포자기한 사람들은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매일 술에 취해 있는 한 사람에게, 목사님께서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열심히 일해도 부족한데, 이렇게 매일 술로 세월을 보내서야 어떻게 하겠습니까?” 이야기 하자

그 분이 “소도 언덕이 있어야 비비지 않습니까? 리어카 하나 살 돈만 있어도, 그것으로 노점상이라도 해 볼 텐데, 가진 것은 하나도 없고, 속은 상하고, 그래서 이렇게 술을 마시고 있습니다.” 말합니다.

그 이야기를 들은 목사님께서! 이곳저곳에서 돈을 모아, 리어카 사라고 건네주었습니다.

그 다음날, 리어카를 사서 거리에서 노점상을 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하며 그 집 앞을 지나가는데, 부인과 크게 다투는 소리가 들립니다.

들어가 봤더니, 리어카 사라고 준 돈으로 술을 먹고 부인하고 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 때, 목사님이 깨달은 것이 있습니다.

“몇 푼의 돈으로 구제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진정한 구제와 섬김은! 예수 그리스도를 전하여 믿게 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찬양)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계신 후 변하여 새 사람 되고’,

예수 그리스도로 변화되는 것이다.”

 

 

제가 신학교를 졸업반 때에,

“저를 불러 주는 곳이 있으면 어디든지 가겠습니다.” 기도하다가

마지막 가을 학기를 보내고 있는 10월에, 28살인 저를 부르는 교회가 있었습니다.

가평에 있는 마장교회입니다.

전도사로 목회를 시작하였습니다.

한 달에 한두 번 교회에 나오는 젊은 부부가 있었는데, 참으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이 부부에게, 도움을 주어야겠다 생각하여,

이일 저일 알아보다가, 잘 아는 집사님께서 양봉을 하면 괜찮을 것이라 하여,

“양봉을 해보겠습니까?” 물은 뒤에,

이곳저곳에서 돈을 구해, 벌통을 2개 사 주었습니다.

두 달쯤 되었을 때에 “지금 긴 장마로 벌이 굶어 죽게 생겼습니다. 설탕을 사도록 도와주십시오.” 말합니다.

힘들게 마련해 준 벌들이 굶어 죽으면 어떡하겠습니까?

있는 돈을 다 긁어서 설탕 값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얼마 뒤에, 그 분을 볼 수가 없었습니다.

벌통은 팔아서 썼고, 아주 작은 겨자씨만한 믿음도 팔았고, 교회를 떠났습니다.

돈도 잃고, 사람도 잃었습니다.

 

 

진정한 구제는, 돈 몇 푼 집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진정한 적선은, 필요한 몇 가지 채워주는 것이 아닙니다.

베드로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전해야 합니다.

생명의 주님을 전하고

구원의 주님을 알게 하고

능력의 주님을 믿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앉은뱅이가 원하는 금과 은을 주지 않았습니다.

앉은뱅이가 원하는 몇 푼의 돈 하고는 비교도 할 수 없는, 능력의 주님, 생명의 주님, 부활의 주님을 전했습니다.

 

 

일본에 미즈노 겐죠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이질에 걸려 고열에 뇌를 상하게 되었고, 그 후 그는 뇌성마비 환자가 되어 보는 것과 듣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중증 장애인이 되었습니다.

그러던 그가 성경을 읽게 되었고, 성경을 읽는 가운데 예수님을 만났고,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2장 9절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말씀에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 그의 삶은 놀랍게 변화되었습니다.

자신이 만난 주님을 향한 사랑을 시로 지었습니다.

어머니가 모음 표와 자음 표를 만들어, 한자 한자 글자를 손으로 짚어 가면, 자신이 쓰려고 하는 글자를 짚을 때 눈으로 신호를 하는 어려운 작업을 통하여 글을 쓰기 시작하였습니다.

미즈노 겐죠가 지은 시중에 “내 마음 속에” 라는 시가 있습니다.

“내 마음속에 기쁨이 있다.

내 마음속에 희망이 있다.

내가 나아갈 길이 있다.

그건 그리스도 예수가 열어 주신 것

어두워도 헤메이지 않아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기쁨의 길이 있다.”

중증 장애인이 쓴 시라고는 믿겨지지 않는, 큰 기쁨과 감사와 소망이 담겨있습니다.

미즈노 겐죠가!

예수를 믿은 뒤에 달라진 것은 아무 것도 없었습니다.

여전히 누워 있었고, 여전히 몸을 움직이지 못했고, 여전히 답답한 가운데 살았습니다.

그러나 달라진 것은 그의 마음입니다.

마음에 주님을 모셨습니다. 그의 마음에 주님이 계셨습니다. 그의 안에 계신 주님께서 그에게 믿음을 주시고, 기쁨을 주시고, 평강을 주시고, 소망을 주셨습니다.

주님을 모셨을 뿐인데 그의 삶은 완전히 달라졌습니다.

믿음으로, 기쁨을 얻었습니다.

절망에 빠진 많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복음의 능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증거 하였습니다.

 

예수님이 능력입니다.

예수님이 생명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위대한 이름이 사람을 살립니다. 사람을 변화시킵니다. 사람을 새롭게 합니다.

 

 

 

우리 모두는! 나의 자녀들이 잘 되기를 바랍니다.

세계화 시대에, 세계인으로 키우기 위하여 영어를 가르칩니다.

정보화 시대에, 잘 살아 갈 수 있도록 컴퓨터를 가르칩니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도록 학원에 보내고 과외도 시킵니다.

후에, 가능하면 많은 유산도 물려주려 합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 가르쳐야 하는 제일 귀한 것은!

자녀들에게 물려주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과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입니다.

 

유대인들은!

자녀들에게 생선을 주지 않고, 생선을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답니다.

“신앙교육⦁믿음의 교육”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창조하신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다스리시는 세상에서!

가장 잘 사는 방법은? 가장 지혜롭게 사는 방법은? 가장 복되게 사는 방법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내 발의 등불이요, 내 길을 비취는 빛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입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십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하나인 여호와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하는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자녀들에게 집에 앉았을 때에든지, 길을 걸어갈 때에든지, 자기 위하여 잠자리에 들 때에든지, 잠자리에서 일어날 때에든지, 항상, 언제나, 부지런히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나님을 경외하라. 하나님을 네 인생의 최고로 여겨라.” 하는 것을 자녀의 마음 판에 새겼습니다.

 

 

유대인들은! 이름을 부를 때에 언제나 아버지 이름과 같이 불렀습니다.

“기스의 아들 사울⦁이새의 아들 다윗⦁아모스의 아들 이사야⦁힐기야의 아들 예레미야”

“훌륭한 사람이야! 아버지가 누구인가? 아버지가 자식 교육을 잘 시켰네.”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 망나니는 누구 아들이야? 아들에게 도대체 무엇을 가르쳤어? 아비 노릇 똑바로 했어야지!” 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삼상 3:14) “엘리 제사장 집에 죄악이 깊어서 제물이나 예물로 영영히 씻음을 받지 못할 것이다. 엘리가 악하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삼상 2:12)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여호와를 알지 아니하더라.”

엘리 제사장은 - 자식 농사를 잘 못 지었습니다. 자식에게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을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자식을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지 않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자식에게 무엇을 주려 하십니까?

믿음을 주시기 바랍니다.

신앙을 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경외하는 사람으로 키우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으로 키우기 바랍니다.

 

 

 

우리들이 자식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들이 자식에게 신앙을 주지 못하는 이유는?

베드로가 “내게 있는 것으로 네게 주노니!” 외쳤습니다.

베드로가 믿는 예수님! 베드로가 받은 하나님의 은혜! 베드로가 가지고 있는 예수님을 향한 사랑!을 주었습니다.

베드로 안에, “예수님을 향한 믿음! 하나님의 은혜!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없었다면, 결코 예수님의 이름을 외칠 수 없었습니다.

 

우리들이 자식에게 믿음과 신앙을 주지 못하는 것은?

우리 안에 믿음이 적고, 우리 안에 신앙이 얕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먼저 믿음 위에 서 있어야 합니다.

우리들이 먼저 신앙으로 살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아무리 귀한 것이 있어도 우리 예수님을 최고로 섬겨야 합니다.

이 세상에 아무리 바쁜 일이 있어도 우리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일이 제일 우선이어야 합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며, 하나님께 감사하여야 합니다.

혼자 서 있기도 힘들고, 어찌 해야 할지 알 수 없을 때에, 하나님 앞에 나와 무릎 꿇고 간절히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막힌 것이 뚫리고, 답답한 것이 시원케 되고, 꼬인 매듭이 풀리고,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뒤로도 돌아갈 수 없는 진퇴양난의 길에서 피할 길을 열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고

자녀들에게

은혜 베푸신 하나님! 인도하신 하나님! 함께 하신 하나님! 역사하신 하나님을

부지런히 간증하며 가르쳐야 합니다.

 

(신 5:10)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

자자손손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자자손손 귀한 믿음의 가문을 이루는 은혜가 우리에게 있어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