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4-1 예수님이 받으신 광야의 시험

관리자
2021-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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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이 받으신 광야의 시험 / 마4:1-4

 

(요 3:16-17)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멸망하지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그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성부 하나님께서!

성령 하나님을 통하여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 • 성경에 약속하신 대로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저주와 심판과 멸망에 이르게 될 인생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시고, 영생 주시려고

성자 하나님을

성령 하나님으로, 동정녀 마리아에게 잉태케 하시고

세상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실 위대한 그 이름 ‘예수 • Jesus • Ιησυς(이에수스)’”로 탄생하셨습니다.

사람의 아들 • 인자(人子)로 탄생하셨습니다.

자신이 지으신 자신의 땅에 오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습니다.

성육신 • Incarnation • 도성인신(道成人身) • 도성육신(道成肉身) 하셨습니다.

그러나

세상은! 만물의 창조하시고, 주인 되시는 성자 하나님을 알지 못했고, 영접하지 않았습니다.

 

 

성자 하나님 •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육신으로 다윗의 후손인 갈릴리의 나사렛 목수 요셉의 아들로 태어나셨고, 갈릴리 나사렛 마을에서 자라셨습니다.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의 육신의 아버지인 목수 요셉이!

아내 마리아에게서, “야고보, 요셉, 시몬, 유다와 딸들”을 낳았는데,

일찍 세상을 떠났고

예수님께서!

소년 가장이 되셔서, 목수 일을 하시며, 어머니 마리아와 동생들을 돌보셨다고 합니다.

 

하늘 영광 자리를 내어 버리시고, 인간의 땅에 인간을 몸을 오신 예수님께서

(눅 3:23)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서른 살이 아니라, 서른 살 쯤 되셨을 때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의 사역을 시작하시는데

유대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낙타 털옷을 입고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치는 세례 요한에게 가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광야에서 왕의 길을 예비하는 자!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 보다 먼저 오시는 엘리야”입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나에게 세례를 베푸십시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찌 나에게 세례를 베풀라 하십니까?”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게

“하나님께서 당신을 ‘나의 길을 예비 하는 자 •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 • 내 앞의 엘리야로 세우셨으니,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고,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의 사역을 시작하는 것이 합당합니다. 의를 세우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예수님께서 요단강에서,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임하셨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성부 하나님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다!” 말씀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세상을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는 성부 하나님의 응원과

성령 하나님의 함께 하심과 역사하심 가운데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의 사역을 시작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의 사역지로 나가시기 전, 먼저 광야로 가셨습니다. 40일 금식기도하시며 준비하셨습니다.

 

 

금식해 보셨습니까?

제가, 목사안수 받기 전, 새로운 각오와 결단을 위하여 “몸이 견딜 수 있을 만큼 금식기도 하기로 하고” 기도원에 들어갔습니다.

사흘 지나니, 배가 고파 견딜 수가 없습니다.

주님 생각! 내가 가야 하는 사명을 생각하여야 하는데,

“된장 찌개, 짜장면, 김이 모락모락 나는 진빵”이 생각나는 것입니다.

선배 목사님이

“금식기도 하는 것도 은혜지만, 먹고 힘을 내어 기도하는 것도 은혜다.” 말했던 것이 떠오르고

“예수님도 무덤에 사흘 계셨다.” 생각하며, 사흘로 금식을 마쳤습니다.

 

 

 

예수님께서! 40일을 금식하였으니 얼마나 힘이 드셨을까요?

그러나 이렇게 말하는 이가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라

물 위를 걸으시고, 거칠게 이는 파도도 잔잔케 하시고, 죽은 나사로도 살리신

능력과 권능이 많으신 분이시라

금식해도 배고프지 않으시고

채찍에 맞고, 못에 박히셔도, 아프지 않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매달리시고, 창에 찔리셔도 고통스럽지 않으시고

돌무덤에 갇혀 계셔도 답답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초대 교회 때에

이런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당시에 널리 퍼져 있던 헬라 철학의 영향을 받아

“인간이 신이 되는 것이지, 어찌 신이 인간이 되시는가?

육이 영이 되는 것이지, 어찌 영이 육이 되시는가?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은! 인간이 되시지 않으셨다. 인간이 되실 수 없으셨다.

단지,

인간이 되신 것처럼 보인 것이다.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처럼 보인 것이다.

무덤에 묻히신 것처럼 보인 것이다.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것이 아니라, 영이신 하나님의 본래의 모습을 보여 주신 것이다.”

이러한 주장을

“거짓 가(假), 나타날 현(現)”자를 써서 “가현설”

“δοκέω • 보이다”라는 단어를 써서 “도케티즘(Docetism)”이라고 합니다.

 

 

이와 반대 되는 또 다른 주장은

“말씀이 육신이 되셨다. •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셨다.”는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 • 도성인신(道成人身) • 도성육신(道成肉身) • Incarnation을 믿지 않고

하나님께서!

갈릴리 나사렛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하나님께서 양자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아들로 삼으시고, 하나님의 구속사를 펼치셨다.”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을 “양자설”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이 영이신 하나님이시라 - 배고프시지도, 아프시지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지 않으셨고 그렇게 보였다.”는 가현설과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신 것이 아니라 - 하나님이 나사렛 예수를 양자로 삼으셔서, 우리의 구원자가 되게 하셨다.”는 양자설은

(요이 1:7) “미혹하는 자가 세상에 많이 나왔나니,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심을 부인하는 자라.

이런 자가 미혹하는 자요 적그리스도니”

1세기 때에, 이미 이단으로 정죄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모두의 죄악을 담당할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를 보내주겠다.”

예수님이 탄생하시기 600여 년 전에, 이사야 53장에서

“그는

우리의 질고를 지고 슬픔을 당하고

우리 대신 징벌을 받아 하나님께 맞으며 고난을 당하고

우리의 허물 때문에 찔리고

우리의 죄악 때문에 상하고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징계를 받고

우리의 나음을 위하여 채찍에 맞으신다.”

 

약속하신 대로

스스로 계시며,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하늘 영광 자리를 내어 버리시고 인간의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셨습니다.

말씀이 육신이 되셨습니다.

영어 성경에 “The word became flesh.” 로 번역하였는데, “flesh”는 “고기 덩어리 • 육신 • 육체”입니다.

 

복음이 여러 나라와 민족과 족속에게 전파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곳곳에 세워졌을 때에, 신학적 사고를 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신가? 예수님이 인간이신가?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인간이시라면, 예수님 몸의 반은 하나님이고, 반은 인간이신가?”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기독론에 대하여 논쟁이 있었습니다.

이어서

“하나님은 유일하신 한 분 하나님이신데, 예수님은 누구신가? 성령님은 누구신가?

예수님은 분명히 신이신데, 하나님이 세 분 하나님이신가?

한 분 하나님이 구약시대에는 성부 하나님으로, 예수님 때에는 성자 하나님으로, 예수님이 승천하신 뒤에는 성령 하나님으로 나타나신 것인가?”

오랜 시간, 많은 논쟁이 있었습니다.

교회 공의회 • 총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하여

“예수님은! 하늘 영광 자리에 계신 성자 하나님이시지만,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사람이 되셨다.

예수님은! 완전하신 하나님, 완전하신 인간이시다.” - 기독론 교리와

“하나님은 한 분 하나님이시지만, 성부 • 성자 • 성령 삼위 하나님으로 계시다.

하나님은 성삼위 하나님 •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다.” - 신론 교리를 확정하고, 신앙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독론 신앙과 삼위일체 신앙과 다른 주장을 하게 되면, 이단으로 정죄 되었습니다.

 

오늘 날도

“말씀이 육신 되신 성육신 신앙”과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지 않으면 이단입니다.

 

 

수도원의 수도사들이 고난 주간을 맞이하여

“우리가 어떻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보다 분명하게 이해할 수 있을까?”에 대하여 의논하다가

한 수도사가 “고난 주간 동안에는, 예수님이 하늘 영광 자리를 내어 버리시고 세상에 오신 성자 하나님이심을 잊고, 이 세상을 살아가시는 인간 예수님으로만 생각합시다.” 제안하였는데,

모두가 좋게 여겨 “예수님은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시다.” 생각하며, 예수님의 십자가 고난을 묵상하였습니다.

수도사들은,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한 큰 은혜를 받았습니다.

 

 

 

성자 하나님 •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온전한 사람의 몸을 입으시고, 자신이 지으신 자신의 땅에

성령으로 잉태되시어, 탄생하셨습니다.

온전한 사람 • 연약한 인간이 되셨습니다. 중보자로 오셨습니다.

 

서른 살 쯤 되셨을 때에

연약하고 나약한 인간의 몸을 입고 계신 예수님께서!

자기 백성을 죄로부터 구원하시기 위하여, 중보의 사역을 감당하기 위하여

“메시야의 길 • 그리스도의 길 • 인류 구원의 길 • 십자가의 길 • 고난의 길 • 죽음의 길”을 가시는데

어찌! 비장한 각오와 결단 없이 갈 수 있겠습니까?

 

광야로 가셨습니다.

40일 동안, 금식하시며,

“하나님!

십자가의 길 • 죽음의 길 • 인류 구원의 길 • 메시야의 길 • 그리스도의 길을 가겠습니다. ,

세상을 사랑하시어 구원하시고 영생 주시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이루겠습니다!

인생들이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받아야 하는 형벌을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

인생들이 허물로 말미암아 받아야 하는 저주를 제가 대신 받겠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인생들이 죄로 말미암아 죽어야 하지만, 제가 십자가에 못 박혀 대속의 죽음을 죽겠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아버지!

이 쓴 잔을 마시지 않으면 안 되겠습니까?

고난의 길 • 십자가의 길 • 죽음의 길을 피할 수는 없겠습니까?

 

하나님 아버지!

제 뜻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제 뜻을 접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게 하옵소서.

메시야 • 그리스도의 사명의 길을 잘 걸어가게 하옵소서!”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메시야 • 그리스도 • 인류 구원의 길을 걸어가시는 예수님께서!

40일 금식기도하신 것은

 

오늘을

하나님의 자녀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예수 그리스도의 군사로! 주님의 피로 값을 주고 산 교회의 일꾼으로! 살아 가는 우리들이

기도 없이는, 마음의 결단과 준비 없이는, 하나님의 도우심 없이는

사명의 길을 갈 수 없고

하나님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없기 때문에

주님께서 기도로 준비하는 모범을 보여 주셨습니다.

 

 

아프카니스탄 정부군은

30만 명이고, 미군이 건내 준, 헬기와 험비 자동자와 최신식 총으로 무장하고 있었습니다.

미군이 떠나자, 2달 만에, 초라한 구식 소총으로 무장한 7만의 텔레반 반군에게 무너져 버렸습니다.

숫자가 문제가 아닙니다.

장비가 문제가 아닙니다.

싸울 의지가 없고, 승리하겠다는 신념이 없다면

오합지졸입니다. 당나라 군대입니다.

 

 

강한 군인이 되기 위해서는 강한 훈련이 필요합니다.

강한 군대라는 해병대 훈련소에 가면, 입구에 “해병은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하는 붉은 색 글이 붙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도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용사도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꾼도 태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훈련과 연단을 통하여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욥 23:10) “나의 가는 길을 오직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같이 나오리라”

훈련과 연단을 통하여, 정금과도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 땅에서 400년 종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려고, 모세를 택하셨는데

40년 동안, 이집트 파라오 공주의 아들인 왕자로, 이집트 궁궐에서 당시의 최고의 학문과 지혜와 무예를 익히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높은 학문과 무예를 가지고 있다고 하여도, 하나님께서 사용하시기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광야로 보내셨습니다.

40년 동안, 따가운 햇살 아래 바위와 모래와 바람 가운데, 가축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궁궐에서 가졌던 정치적 야망, 부귀 영화 권세에 대한 욕망이 무너져 내렸습니다.

교만이 꺾였습니다.

강한 자아가 부서졌습니다.

40년 광야 학교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연단과 훈련을 시키신 뒤에

불타는 가시나무 가운데서, 부르시고,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라!” 사명을 주셨고

훈련과 연단 받은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 파라오의 손에게 건져내고,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받아 백성들에게 전달하고,

거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 가나안이 내려다보이는 모압 평지까지 인도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최고의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사울은!

헬라의 도시 타르수스 • 다소에서, 유대인의 베냐민 지파요, 바리새인의 아들이요, 부친으로부터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태어났습니다.

헬라의 도시에서, 헬라의 문화를 배우며 자랐습니다.

사울은!

유대교의 본산인 예루살렘으로 유학을 떠나, 당시 최고의 랍비 가말리엘의 문하생으로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인 성경을 체계적으로 공부하였습니다.

율법의 박사요, 유대교의 신학자요, 유대인의 차세대 지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울을 사용하시려,

다마스커스로 예수님의 교회를 훼파하고, 예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을 사로잡아 오기 위하여, 대제사장의 위임장을 가지고, 위풍당당하게 가고 있을 때에

눈을 뜰 수 없는 환한 빛 가운데 부르셨습니다.

“너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할 택한 나의 그릇이다.” 말씀하시며 사명을 주셨습니다.

사울은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예수님이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 • 성경을 통하여 약속하신 메시야 • 그리스도 • 구원자이심을 분명하게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고, 다마스커스에서부터 “예수님이 그리스도의이시다.” 증거 하였습니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다.” 고백한 것처럼

로마제국에 복음을 증거 하기 위하여 - 로마 시민권자로, 로마제국의 공용어인 헬라어를 유창하게 구사하고

“율법 • 선지자 • 하나님의 약속”에 대하여, 잘 알고 있는 성경의 박사이지만

이것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이방인을 위한 하나님의 택하신 그릇으로 사용되기에는 합당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을, 아라비아 광야로 가게 하셨습니다.

아무 것도 없는 광야에서, 3년 동안 기도하며,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 • 성경 말씀을 묵상하고,

성경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약속과 예언이라는 것을 깨닫고,

깨달은 말씀을 잘 정리하였습니다.

 

사울을 사도 바울이 되게 하시고

사도 바울로, 시리아 • 갈라디아 • 아시아 • 마케도니아 • 아가야 그리고 로마에 가서 복음을 증거 하게 하시고.

로마서 • 갈라디아서 • 에베소서 • 빌립보서 • 골로새서 • 고린도서 • 데살로니가서 • 디모데서 • 디도서 등을 기록하게 하셨습니다.

만약에,

하나님께서 유대교와 헬라문화에 정통한 로마시민권자로 자라게 하지 아니하셨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훈련과 연단 받지 않았다면

복음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족속에게 전파되지 못하였을 것이고

복음이 전파되었어도, “율법과 복음 • 약속과 응답 • 예언과 성취”에 대하여 명확하게 알지 못하였을 것이고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 위에 서지 못했을 것이고

교회는! 끊임없이 신학적 논쟁을 벌이다, 자멸하였을 것이고

복음은! 세계 모든 나라와 민족과 족속의 구원의 말씀이 되지 못하였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광야로 가셔서, 40일 금식기도하시고, 스스로 훈련과 연단을 받으신 것은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를 따르며,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로 한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용사로 승리하여야 하는 우리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몸 된 교회의 지체로 부름 받고, 하나님의 일꾼 • 교회의 기둥이 되어야 하는 우리에게

“영적 훈련 • 신앙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환난을 만나거든 즐거워하라.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룬다.

영적인 훈련과 신앙의 연단을 통하여,

정금과도 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우뚝 설 것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능히 감당할 것이다.

사명자로, 하나님께서 존귀하게 사용하실 것이다.

사명을 감당하는 필요한 은혜와 은사를 풍성하게 부어 주실 것이다.”

 

 

교우 여러분!

우리의 교회는 영적인 훈련소입니다.

오늘 우리의 신앙생활은 영적 훈련입니다.

오늘 우리의 예배는 영적 훈련입니다.

오늘 우리의 섬김과 봉사는 영적 훈련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세상은 영적인 연단의 장소입니다.

 

 

오늘 즐거운 일을 만났습니까?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릴 시간입니다.

오늘이 힘들고 어렵습니까?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할 시간입니다.

오늘이 답답합니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고 묵상하여,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깨달아 알아야 합니다.

 

우리의 매일매일 신앙생활은! 신앙의 훈련시간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역경과 환란은! 우리의 믿음을 정금으로 제련하는 연단의 시간입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받게 되는 영적인 훈련과 연단은

하나님의 크고 풍성한 은총을 입게 되는 축복의 열쇠요, 은총의 문입니다.

 

사람이 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도 훈련과 연단을 받으셨습니다.

주님을 따르는 우리도 연단을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

 

욥이 “내가 가는 길을 그가 아시나니, 그가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정금과 같이 나아오리라.(욥 23:10)”

욥과 같이 형통이든 불통이던, 인생의 낮이든 밤이든, 인생의 여름이든 겨울이든, 인생의 오르막이든 내리막이든,

언제나 하나님 안에! 하나님의 은혜 안에!

시련과 연단을 잘 통과하여

정금과도 같은 순전한 믿음과 온전한 신앙인으로 우뚝 서게 되기를 바라고

욥에게 베풀어 주신 곱절의 은혜가 우리 가운데 충만하며,

하나님께 더욱 존귀하게 쓰여 지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