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4-1 복음을 싫어하는 사람들

관리자
2021-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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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음을 싫어하는 사람들 / 행4:1-4

 

베드로와 요한은!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앉은뱅이에게

“금과 은은 내게 없지만, 내게 있는 것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외쳤습니다.

날 때부터 한 번도 걸어 본 적이 없는 앉은뱅이가 벌떡 일어나, 걷고, 뛰고, 하나님을 찬양하였습니다.

 

“성전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를,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고 주장하는 예수의 제자가 일으켜 세웠다.”는 소문이, 입에서 입으로, 온 예루살렘에 퍼졌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이를 확인하기 위하여 성전으로 몰려 왔고,

늘 보아 왔던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걷고 뛰고 찬양하는 모습을 확인하였고,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운, “베드로와 요한”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았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자신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향하여

“이스라엘 백성 여러분!

우리의 능력이나 우리의 경건함 때문에 이 사람이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 우리 조상의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고, 무덤에 묻히셨지만,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고

날 때부터 앉은뱅이였던 이 사람을 일으키시고, 걷고 뛰게 하셨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계속하여 설교합니다.

“여러분들은, 얼마 전, 예루살렘에 있었던 큰 소동을 알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율법과 선지자를 통하여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대로, 그 아들을 세상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이방인인 로마의 빌라도의 손을 빌어 나사렛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였습니다.

이스라엘이여! 확실히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죽인 예수님을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셔서

예수님을 우리의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보내 주신 ‘메시야⦁그리스도⦁구원자⦁생명의 주님⦁부활의 주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이여!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십시오.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모든 죄가 씻음을 받습니다. 정결하게 됩니다. 의롭게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영생⦁구원을 받으십시오!”

 

예루살렘에, 예수님을 믿고 영접한 사람이 3천명이더니

얼마 있지 않아 5천명이 되었습니다.

 

 

오늘 말씀!

이를 지켜보던, 제사장⦁성전 경비대장⦁사두개인은

사도들로 말미암아 “복음의 역사⦁구원의 역사⦁생명의 역사”가 일어나는 것을 몹시 싫어하였습니다.

“예수 부활! 예수 생명! 예수 구원!”을 사도들이 더 이상 외치지 못하도록,

“예수 복음⦁생명의 복음”이 더 이상 민가에 퍼지지 못하도록,

사도들 붙잡아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왜!

제사장⦁성전 경비대장⦁사두개인은!

“천국복음인데⦁생명의 복음인데⦁구원의 복음인데” 싫어하였고,

복음을 증거 하는 사도들을 싫어하였고,

사도들을 감옥에 잡아 가둔 것일까요?

 

 

 

성자 예수님께서 육신을 입으시고 이 세상에 탄생하시기 60여 년 전인, 주전 63년!

로마의 장군 폼페이우스가 유대를 정복하고, 시리아에 합병시킴으로, 로마제국의 속주가 되었습니다.

로마는! 대제국을 건설하면서, 정복한 곳을 속주나 속국으로 삼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천국 복음을 전파하실 때

로마의 황제는! 속주인 시리아에, 로마에서 집정관을 지낸 이를 총독을 파견하였고

시리아의 지방인 유대에는, 집정관보다 낮은 호민관 출신이었을 것입니다. 빌라도를 파견하였습니다.

빌라도의 로마 이름으로, “폰티우스 필라투스(Pontius Pilatus)”!

직책은, “총독(procurator)”이 아니라, 유대 지방 “행정관(praefecter)”이었고

주후 26년에서 36년까지, 10년 동안 유대를 “행정관”으로 통치하였는데

우리는 “총독”이라 부르고 있습니다.

 

 

헬라는! 정복한 땅에 헬라 문화와 종교를 강요하였습니다.

로마는! 정복한 속주와 속국의 “종교⦁문화⦁언어⦁관습” 등을 존중하고 인정해 주는 “존중과 관용⦁똘레랑스”로 통치하였습니다.

속주와 속국이! 로마에 반기를 들지 않는 한 “팍스 로마나 – 로마의 평화⦁로마인에 의한 평화”가 이루어졌습니다.

 

로마는!

유대 땅을 정복하고, 유대인들만의 독특한 종교와 생활⦁신정정치를 보았습니다.

모든 민족⦁족속이! 여러 신을 섬기지만, 유대인은 오직 한 분의 신을 섬깁니다.

모든 민족⦁족속은! 섬기는 신의 신상이 있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에게는 신전은 있지만 신상은 없습니다.

모든 민족⦁족속이! 귀하게 여기며 섬기는 신상을, 유대인들은 우상으로 가증하게 여깁니다.

로마인들은! 원로원에서 법을 만듭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법을 만들지 않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신에게서 법을 받습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계명, 율법을 지킵니다.

 

 

까탈스러운 유대인들을 다루는데, 많은 신경을 썼습니다.

로마의 군단은, 언제나 “독수리 깃발”을 앞세우고 행진하고, “독수리의 깃발”과 함께 주둔합니다.

로마인들에게는 “독수리 깃발”이 로마군단의 상징이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우상입니다.

그래서,

로마는! 유대인들이 거룩한 곳으로 여기는 예루살렘에, 로마의 “독수리 깃발”을 가지고 가지 않았습니다.

로마 군단은! 유대의 중심지인 “예루살렘”이 아닌, “가이사랴”에 주둔하였습니다.

 

정복자 로마이지만, 유대인에 대한 존중과 관용⦁똘레랑스로

유대인의 종교와 전통에 따르는, “유대인 자치정부”를 구성하게 하였습니다.

 

(민 11:16) “장로와 지도자가 될 만한 자 칠십 명을 모아 내게 데리고 와 회막에 이르라” 는 성경 말씀을 따라

대제사장과 70명의 사두개인과 바리새인

71명으로 구성된 - “산헤드린”이라는 “자치정부⦁공의회⦁공회”를 허락하였습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 최고의 행정기관입니다.

산헤드린 공회는 유대인 최고의 재판기관입니다.

로마의 인준을 받은 대제사장은 - 유대교회의 최고 수장이고⦁자치 정부의 최고 권력자이고⦁재판장입니다.

제사장은 유대교의 당직자이고,

사두개인은 행정부서의 일을 주로 담당하는 관리였고

바리새인은 유대 신앙을 관장하였고

성전 경호대는 대제사장의 통솔 아래, 치안 책임자였습니다.

 

이들 모두는! 유대사회에서 권세자였고, 상류층이었고, 유대인들로부터 존경 받는 지도자였습니다.

그런데, 이들의 권세가 갑자기 흔들리기 시작하였습니다.

갈릴리의 아주 작은 시골 마을, 나사렛 출신인 예수라는 젊은이가 나타났습니다.

학력도 없고, 배경도 없고, 권세도 없는 시골 청년입니다.

연한 순 같고, 마른 땅에서 나온 줄기 같습니다.

고운 모양도 없고 풍채도 없습니다.

흠모할 만한 아름다운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데 이 시골 청년이 자신을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구원자⦁그리스도⦁메시야’라고 주장하였습니다.

심지어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이기에 “죄를 용서하는 권세도 가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이는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한 것으로

가장 큰 죄에 해당하는 “불경 죄⦁참란한 죄”입니다.

 

더욱 참을 수 없는 것은, 이 예수가!

제사장⦁사두개인⦁바리새인 등을 향하여 “너희들의 경건은 경건이 아니다.” 말하며, “외식하는 자⦁위선자”로 몰아세우고.

“독사의 자식⦁회칠한 무덤”이라고 독설을 퍼부었습니다.

 

예수의 이야기를 들은 서민들이나, 자신들의 부유함을 질시하는 가난한 사람들은!

통쾌함 느끼고, 박수를 치며 좋아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를 “구원자⦁메시야⦁그리스도”로 믿고 따랐습니다.

자신들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가르침을 받던 많은 사람들이, 예수에게 몰려갔습니다.

 

대제사장⦁사두개인⦁바리새인 등 유대교 당직자들은!

자신들을 조롱하는 예수를 그냥 놔 둘 수 없습니다.

자신들의 권위를 무너뜨린 예수를 용서할 수 없습니다.

 

예수를 붙잡아 와, 산헤드린 공의회에서 사형 판결을 내렸습니다.

로마의 속국인 자신들에게 사람을 죽일 권세가 없기에,

총독 빌라도에게 끌고 가, 빌라도를 겁박하여,

로마제국에서 가장 흉악한 죄인을 처형하는 십자가 사형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제사장⦁사두개인⦁바리새인 등 예루살렘 성전 유대교 당직자들은!

평상시 많은 능력을 행하던 예수이기에, 혹시라도 “십자가에서 뛰어 내려오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숨이 넘어가고, 시신이 무덤에 묻힌 것을 확인하고, 모두들 안심하고 기뻐하였습니다.

예수 때문에, 지난 2-3년 동안 머리가 아팠는데, 깔끔하게 정리하였습니다.

눈의 가시 같은 예수를 완전히 제거하습니다.

자신들의 권세를 도적질한 예수를 없애 버렸습니다.

 

 

그러나!

정리된 것이 아닙니다.

예수가 살아 있을 때보다 더 소란스러워졌습니다.

예수의 제자들이 “예수님이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의 주님⦁생명의 주님으로, 우리의 그리스도와 주님이 되셨습니다.” 외치고 다니는데

예루살렘 성민 중 “예수를 메시야⦁그리스도⦁구원자”로 믿는 자들이,

3천 명이더니, 5천 명으로 불어났습니다. 여자와 아이들까지 하면 2만 명가량이나 됩니다.

당시 예루살렘의 인구가 6만 정도였다고 하니, 예루살렘 주민의 1/3 가량이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제사장⦁사두개인⦁바리새인 등은!

유대교⦁유대인의 권력자⦁지도자들은!

지금까지의 되어 온 일들을 보면서

“예수가 누구인가?

예수의 가르침이 진리인가?

예수의 행하는 능력이 하나님께로 온 것은 아닌가?

예수의 말대로 예수가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하여 약속하신 구원자⦁메시야⦁그리스도가 아닌가?

그렇게도 많은 사람들이 ‘예수가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부활의 주⦁생명의 주’라고 믿고 고백하는데, 예수가 진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것은 아닌가?”

알아보고, 확인해보고, 생각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부활의 예수님에 대하여 - 알려고도, 확인해 보려고도, 들으려고도, 믿으려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구원의 복음⦁생명의 복음⦁영생의 복음”이지만

영원한 것, 신령한 것에 대하여는 아무런 관심이 없습니다.

오직,

지금 움켜쥐고 있는 땅의 것⦁썩어질 세상의 것을 놓치 않으려 합니다.

사도들을 잡아들이고, 복음이 더 이상 전파되지 못하도록, 애를 쓰고 있습니다.

오직

자신들의 영향력이 약화되는 것만을 우려하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권세가 흔들리고 있다는 것만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무리가 많아지면서, 자신들의 울타리가 되고, 자신들의 권세와 풍요한 삶의 근거가 되는 예루살렘 성전 종교가 위협을 당하고 있다는 것만을 걱정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 복음을 증거 할 때의 일입니다.

바울은 두란노라 이름 하는 학교를 빌려서 매일 사람들에게 천국 복음을 가르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복음의 말씀을 듣고 예수를 믿었습니다.

점쟁이⦁박수⦁무당까지 예수님을 믿었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자신들이 얼마나 잘못 되었는가를 깨닫고는 점치는 책과 도구들을 다 불살랐는데 그 값이 은 오만이나 되었습니다.

 

이렇게 에베소에 교회가 세워지고, 말씀이 흥왕할 때에, 큰 소요가 일어났습니다.

허다한 무리들이 “에베소 사람들이 섬기는 아데미 신이여, 아데미 신은 위대하도다.” 외치며 몇 시간 동안이나 시위를 하였습니다.

에베소의 관리가 나와서 무리를 진정시키지 않았으면, 사도 바울은 큰 해를 입었을 것입니다.

 

이 소요는!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파는 데메드리오란 사람이 일으켰습니다.

로마사람들은 달 신을 다이아나(Diana)라고 불렀고, 그리이스 사람들은 아데미, 아르테미스(Artemis)라고 불렀습니다.

그리스 신화에 - 아데미는 제우스의 딸이며, 태양신 아폴론(Apollon)의 쌍둥이 자매로 나옵니다.

낮은 태양신인 아폴론이 다스리고, 밤에는 달신인 아데미가 다스린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이스 최고의 도시 아테네에는 태양신인 아폴론 신전이 있습니다.

아테네 사람들은! 자신들의 수호신을 “태양신⦁아폴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자신들의 수호신을 “달의 신⦁아데미”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에베소 사람들은! 고대 7대 불가사의로 불릴만한 거대한 아데미 신전을 지었습니다.

아데미 여신은, 18개의 가슴을 가지고 있으며, 생산과 풍요의 신이며, 아데미 신에게서 복을 받아 풍족한 생활을 하고 있다고 믿었습니다.

 

아데미를 섬기는 에베소에서, 아데미 신상을 만들어 파는 데메드리오는 큰돈을 벌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매상이 줄기 시작하였습니다. 아데미 우상이 예전처럼 많이 팔리지 않고, 재고가 쌓여 갑니다.

 

예루살렘에서 왔다는 유대인인 바울이라는 사람이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상이며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는 것입니다.

우상은 결코 사람들에게 복을 주지 못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과 복을 주십니다.” 가르쳤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을 믿게 되자, 집안에 모시고 있던 아데미 신상을 밖으로 끌어내어,

돌로 만들어 진 것을 깨 버리고, 나무로 만들어 진 것은 불에 태우고, 은금으로 만들어진 것은 녹여 반지나 목걸이로 만들었습니다.

집에 있는 아데미 신상도 버려지는 판인데, 만들어 놓은 아데미 신상이 팔려 나갈 리가 없습니다.

아데미 우상 제작자인 데메드리오는! 월급을 받지 못한 공장의 직원들과 우상을 만들어 파는 다른 동업자들과 함께

“에베소는 아데미 신전을 지키는 자인데, 우리가 아데미 신을 소홀하게 대하였도다.

에베소의 아데미 여신이여! 위대한 아데미 여신이여!” 외치며 에베소 거리에서 시위하였고

수많은 사람들이, 영문도 모른 채, 시위대에 참여하여

에베소 대 원형경기장이 가득 찼습니다.

 

에베소에 일어난 소요는

돈벌이가 안 되는 우상장사가

“바울 때문에⦁예수 때문에⦁복음 때문에⦁교회 때문” 이라고, 일으킨 소요였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 인생은? 외국인과 나그네 인생입니다.

화살처럼 날아가고, 잠간 잠을 자는 것과 같고,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와 같고, 들의 풀과 같고 꽃의 영광과 같고, 우리의 인생이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인생의 연수가 70이요 강건하면 80인데,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입니다.

 

이러한 인생을 살고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리석고 미련한 인생들의 소원이

부자가 되는 것입니다. 권세를 잡는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칭송을 듣는 것입니다. 장수하는 것입니다.

썩어질 세상의 것을 움켜쥐고, 세상이 주는 잠간의 평안을 누리려 합니다.

 

제사장⦁사두개인⦁바리새인 등 유대교 신앙인들 뿐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늘의 소망을 붙잡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다고 하지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처럼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며

하나님께서! 자녀 된 우리들을 이 세상에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와 동행하시며,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신데

 

하나님보다 세상을 더 사랑하고

영생의 소망보다, 세상에서의 평안을 누리려 하고

함께 하시고 동생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보다, 세상의 것을 의지하며 살려 합니다.

 

 

교우 여러분!

사도 바울이! 나그네 인생을 마치고 하나님께로 가기 바로 직전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다.” 고백하였습니다.

 

우리의 삶도!

악한 영⦁원수⦁마귀⦁사단이 ‘나를 섬겨라! 세상을 사랑해라! 세상의 부귀 영광을 주리라.’ 우리를 유혹하며, 우리를 넘어뜨리려 하는데

선한 싸움을 싸워 승리하기를 축원합니다.


악한 영⦁원수⦁마귀⦁사단이

세상의 달콤함과 세상의 평안과 세상의 쾌락으로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세상이 아니요?’ 유혹할 지라도

하나님의 자녀⦁천국의 백성⦁그리스도인으로서 달려야 하는 신앙의 길을 잘 달겨 가기를 축원합니다.

 

악한 영⦁원수⦁마귀⦁사단이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하나님이 세상을 만들었다고? 이 세상은 진화된 것이다.

하나님 없이도, 얼마든지 행복하고, 평안하고, 풍족한 삶을 살 수 있다.

21세기 최첨단 과학⦁기술⦁A.I 인공지능 시대에 눈에 보이지도 않는 하나님을 믿고 사느냐?’ 속삭이고

이 속삭임이에 넘어가

하나님이 없다는 무신론주의와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악한 세상의 풍조가 넘실거리고 있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히 11장)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믿음 위에 굳게 서서, 믿음으로 승리하게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