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세 15 - 신명기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관리자
2020-10-05
조회수 1108

      은혜로 살았습니다, 은혜로 살겠습니다 / 신 4:32-35


이집트 파라오왕이 “유대인에게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강물에 던지라!” 는 명령으로

레위 지파에서 태어난 한 아이가,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강물에 띄워집니다.  

하나님께서! 

이집트 파라오 공주로 나일강에 나가 목욕하게 하시고

이 아이를 보고 “히브리 아이이지만,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갖게 하시고

공주는 아들로 삼아, “물에서 건진 아이 – 모세”라 이름 짓습니다. 

모세는! 

파라오 공주의 아들⦁이집트 왕자로, 화려한 왕궁에서 - 좋은 것을 먹고, 좋은 것을 입고, 좋은 것을 누리며 삽니다. 

세계 최고의 이집트 왕실 학교에서, 

세계 최고의 학문과 지식을 배우고, 무예를 익히며, 파라오 통치자 수업을 받으며

파라오의 왕좌에 올라, 세상의 부귀영화 권세를 한 손에 움켜쥘 야망을 가지고 40년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살인한 것이 탄로 난 모세는, 미디안 광야로 도망쳐, 양치기로 살게 됩니다. 

바위와 자갈과 모래 그리고 모래바람만이 휭하니 부는 광야에서

아침 일찍, 양을 몰고 나가

양이 풀을 뜯는 동안, 우두커니 앉아 있거나 누워 있고

때가 되면, 양들을 물가로 끌고 가 물을 마시게 하고

양들을 해치러 오는 맹수에게서 양을 지키며

왕궁에서 가졌던 - 꿈과 야망, 욕망과 바램들이 모두 다 사라지고, 부서지고, 무너지고, 깨어지며, 40년을 보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가 80살이 되었을 때에, 시내산 가시덤불에 타오르는 불꽃 가운데, 모세를 부르시고, 

“이집트 파라오의 노예로 살고있는, 내 백성 이스라엘을 구원하여, 

 조상 아브라함 때부터 주기로 약속한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라!” 사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세움을 입은 모세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구원해 냅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받고,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여, 40년 광야를 지나, 하나님께서 주시기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이, 발 이래로 내려다보이는 모압 평지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120살이 된 모세를 부르고 계십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품에 안기면, 

모세의 후계자 여호수아의 인도로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에 거주하고 있는 6부족을 몰아내는 정복전쟁을 치르고,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각 지파에게 분배하고, 가나안 땅에 정착하여 살게 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나와, 이곳 가나안 땅 입구까지 이른 40년 동안!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려면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발아래로 내려다보이는 모압 평지에서

이스라엘 백성들 모아 놓고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 앞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

마지막⦁간곡한⦁유언적 긴 설교를 하는데, 이것이 바로 “신명기서”입니다.  

영어로 “Deuteronomy” - “두 번째 율법”이라고 뜻이고

한자로, 하나님의 계명을 “거듭하여 되풀이하여 경계하여 말하다.”는 “申”자를 써, 신명기(申命記)라 부릅니다. 



신명기서에서 모세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의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큰 민족을 이루고,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맹세하시며 약속하셨다. 

 하나님의 약속하심 대로

 하늘의 별과 바다의 모래와 같은 큰 민족이 되었다. 

 우리는 이집트 땅에서 종으로 살았는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약속하신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강하신 손과 펴신 팔로

 이집트 파라오 임금의 - 쇠심줄보다 강한 종의 사슬을 끊으시고, 견디기 힘든 노예의 멍에를 벗시고

 홍해 바다를 육지같이 건너게 하셨다. 

 마치 독수리가 날개로 새끼를 업어 온 것처럼, 너희를 이집트 종 되었던 땅에 구원하셨다. 

 하나님께서는 

 너희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민(選民)으로 삼으시고, 거룩하게 구별하시고 거룩한 백성⦁성민(聖民)으로 삼으셨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나는 너희를 이집트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말씀하시며,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주셨고

 우리 모두는 ‘지켜 행하겠습니다.’ 다짐하고 맹세하며,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 되었다. 

 

 ‘너희는 하나님이 백성이 되었고, 하나님은 너희의 하나님이 되셔서’

 양식을 구할 수 없는 광야에서, 40년 동안 너희에게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셔서 먹게 하셨다. 너희 중 광야에서, 굶어 죽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느냐?“

 물이 써서 마실 수 없을 때, 쓴 물은 달게 하셔서 마시게 하셨고, 쓴 물도 없을 때에는 반석에서 샘물이 터져 마시게 하셨다. 너희 중 광야에서, 기갈하여 죽은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있었느냐?

 아말렉 족속이 우리의 가는 길을 가로막았지만, 하나님께서 여호와 닛시•승리의 깃발을 날리게 하셔서, 아말렉 사람의 땅을 지나게 하셨다.

 광야의 햇살은 따갑고, 밤의 추위가 매섭지만,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우리를 지키시고 보호하셨다. 

 광야에는 뱀과 전갈이 있고, 사람이 살 수 없는 간조한 땅이다. 

 그러나 우리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고, 우리를 인도하셔서, 거친 광야를 무사히 지나게 하셨다. 


 이스라엘이여!

 하나님이 사람을 세상에 창조하신 날부터 지금까지, 지나간 날을 상고하여 보라!

 세상에 이런 큰일이 있었느냐?  세상에 이런 큰 일을 들어 본 적이 있느냐?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기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한 민족을 다른 민족에게서 인도하여 낸 일이 있느냐?

 이는 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집트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의 목전에서 행하신 일이라.

 너희는 지금까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 

 너희는 앞으로, 가나안 땅에 들어가,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가나안 땅에서 살아 갈 때에,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



모세가!

마지막 있는 힘을 다하여, 마지막 호흡을 몰아쉬며, 간곡하게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를 잊지 말라!” 설교하는 것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경외하여

하나님께서 내리시고 부어 주시는 은혜로 살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를 나온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받기 위하여, 시나이 반도 남쪽의 시내산으로 돌아

바란광야, 신광야를 지나, 에돔 땅을 돌아, 아모리 족속의 땅을 지나, 모압 평지에 이르는데

4년이면 충분하였을 길입니다. 그러나, 40년 걸려서 도착한 이유는?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를 잊고,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400년 동안이나 끊을 수 없었던 종의 사슬을 끊으시고, 벗을 수 없었던 노예의 멍에를 벗겨주셨는데

이집트 파라오의 병거 부대가 추격해 오고, 홍해 바다의 푸른 물이 가로막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베푸신 크신 권능과 능력을 잊어버리고

“이집트에는 우리의 묻힐 곳이 없어서, 우리를 이곳으로 이끌어 내었느냐?”


홍해 바다를 육지같이 건넌 뒤,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오, 구원이시오, 능력입니다.” 찬양하였지만

이집트에서 지고 온 양식이 떨어지자

“우리 모두 굶어 죽게 되었다.

 우리가 이집트에서는 고기 가마 옆에 있었다.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종으로 사는 것이 낫겠다. 

 이집트로 돌아가자!”


하나님께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광야에 거하는 40년 동안, 매일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농사를 지을 수 없고, 양식을 구할 수 없는 광야에 살지만, 하나님께서 내려 주시는 “일용할 양식”을 먹었습니다. 

매일 매일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매일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일상으로 여기고, 당연히 여기고, 감사하지 않고, 

“우리가 매일 먹는 하찮은 음식에 물렸다. 

 이집트에서 먹던 파와 마늘과 부추와 참외가 먹고 싶다. 

 이집트로 돌아가자.

 이집트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곳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 

 

하나님께서 

광야의 따가운 햇살과 밤의 추위를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견디게 하시고

뱀과 전갈이 있어서, 사람이 살 수 없는 간조한 땅 광야에서

날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시간 시간, 하나님께서 동행하시고

순간 순간, 하나님께서 인도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어디 계시냐?” 말하며

이집트에서 이집트 사람이 섬겼던, 금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인도하여 낸 하나님이다. 

 지금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이다.

 우리의 길을 인도할 우리의 하나님이다.” 춤추며 노래하며 즐거워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주신 신명서는!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았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한다. 

(신 7:8-13) “여호와께서 너희를 사랑하시고, 너희에게 복을 주셔야

 네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이 풍성하고, 네 소와 양이 번성하리라.”

 

오늘을 사는 

하나님의 은혜로 산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로 살아야 하는 우리가

“하늘의 신령한 복과 땅의 기름진 복, 영과 육이 강건한 복, 우리의 집인 가정과 하나님의 집인 교회가 번성하고 풍족한 복을 받아 누리며 살리라.”

주시는 말씀입니다. 




비가 억수로 올 때에

영어로 “cats and dogs ⦁ 개와 고양이”라 말하는데

개와 고양이는 만나 심하게 싸우는 것은, 싸인이 다르기 때문이랍니다. 

개가 꼬리를 세워 흔드는 것은 반갑다는 뜻이고

고양이가 꼬리를 세워 흔드는 것은 싸우자는 뜻입니다. 

개가 고양이를 보고 반갑다고 꼬리를 치켜들고 흔들며 인사하는데

고양이는 자기를 공격하려는 것으로 알고, 위협을 느끼며, 하얀 이를 드러내고 발톱을 치켜 세웁니다.  

개와 고양이는 큰 싸움을 시작합니다. 


“강아지 성도, 고양이 신자”란 책이 있습니다.  

개와 고양이는 생각도 다르답니다. 

주인이 예뻐해 주고 밥을 줄 때에

개는 “당신이 나를 귀여워해 주고, 먹여주며, 보살펴주고, 사랑해주는 것을 보니 당신은 나의 하나님이 분명합니다.” 

고양이는 “당신이 나를 귀여워 해주고, 먹여주며, 보살펴주고, 사랑해주는 것을 보니, 내가 당신의 하나님인 것이 분명합니다.”


개는 

주인이 자신을 귀여워해 주고, 먹여주고, 보살펴주고, 사랑해 준 것을 늘 기억하고, 

야단을 치고, 윽박지르고, 때려도, 금방 잊어버리고, 늘 주인에게 충성한답니다. 

고양이는

주인이 자신을 귀여워해 주고, 먹여주고, 보살펴주고, 사랑해 준 것을 잊어버리고, 

야단을 치고, 윽박지르고, 때린 것은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며, 기회를 엿보다 주인에게 복수하려 한답니다. 



개와 같은 성도와 고양이 같은 신자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늘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믿고 의지하고 살아가는 성도가 있고

하나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리다가도, 하나님께 불평하고 원망하는 신자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고양이 같은 신자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찬양도 부르지만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는 쉽게 잊고, 

광야 길이 힘들고 어렵고 답답하다고, 하나님께 자주 불평하고 원망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은 미련하고 어리석어서, 

우리 인생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살고 있어서

“은혜는 물에 새기고, 원수는 돌에 새기고 살아갑니다.”


소설, 드라마, 서부영화, 무협 영화의 소재 가운데 하나는 – 오랫동안, 원수를 찾아다니다, 원수를 갚는 이야기입니다. 

마지막 부분 

“아버지의 원수! 원수를 갚기 위해 20년을 기다려 왔다.

 이 원수! 네가 숨어 있다고 내가 못 찾을 줄 알았더냐?

 정의의 칼을 받아라! 복수의 총알맛을 보아라!”


그러나

은혜를 갚기 위하여, 오랫동안 찾아다니다, 은혜를 갚는다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습니까? 영화를 본 적이 있습니까?


은혜 갚는 것을 소제로 한 이야기! 

비둘기 한 마리가, 물속에 떠내려가는 개미를 보고, 나뭇잎 한 장을 물고 가, 나뭇잎 배로 개미를 살립니다. 

후에, 한 사냥꾼이 비둘기 향하여 총을 겨누었을 때, 개미는 사냥꾼의 발을 물어 총알이 빗나가게 하여, 비둘기를 구합니다. 

이 이야기는 실화가 아니라, 

“은혜를 잊고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을 주기 위한, 우화입니다. 



세상의 소설이나 영화 드라마에 “일생 동안 은혜를 갚기 위하여” 살았다는 내용은 거의 없지만

이렇게 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는 책이 있습니다. 

성경책입니다. 


아브라함이! 이삭! 야곱! 12아들과 요셉!

하나님께서 택하셨고, 부르셨고, 함께 하셨고, 동행하셨고,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부어 주시는 은혜로 살았고

하나님의 품에 안길 때까지,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키며 살았습니다.(창 26:4-5)

하나님의 은혜와 감사하며,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감사와 예배⦁존귀와 영광”을 돌렸습니다. 



이스라엘의 초대 왕이 된 다윗은

평생을,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하나님의 베푸신 은혜에 감사하며, 찬양하며, 하나님께 영광과 기쁨을 드리며 살았습니다. 

죽는 날이 임박하자, 아들 솔로몬에게 

“여호와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인도하셨다. 

 너도, 네 하나님 여호와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가 무엇을 하든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의 은혜로 형통하리라.(왕상 2:1-4)” 



사도 바울이 사울이었을 때에, 

하나님을 대적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핍박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파괴하며 살았습니다. 

죄인의 괴수, 죄인 중의 가장 큰 죄인으로 살았습니다. 

그러나 다마스커스로 교회와 성도를 핍박하러 갈 때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레와 같은 음성과 눈을 뜰 수 없는 강한 빛 가운데, 찾아오셔서, 모든 죄를 씻어 의롭게 하시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사도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직분”을 주셨습니다. 

사도 바울이 되어, 조롱을 당하고, 매를 맞고, 옥에 갇히고, 죽을 고비를 수없이 넘기면서도

“하나님의 은혜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족합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내게 넘쳐납니다.”

노인이 된 사도 바울이, 로마의 감옥에서, 효수로 순교하기 직전

“나는 하나님께 내 삶을 바쳤고, 이제 이 땅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달리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습니다. 

 의로우신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주님이 다시 오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다리는 모든 사람에게 주실 것입니다.(딤후 4:6-8)”



성경에는

일생 동안, 하나님께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여,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고

죽는 순간에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이 세상을 떠나는

수없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찬양) 이 믿음 더욱 굳세라!” 찬양처럼, 

우리의 믿음과 신앙이 자라나, 반석과도 같은 굳센 믿음의 사람으로 성장하려면

“(찬양) 나 같은 죄인 살리신 그 은혜 놀라워” 찬양처럼,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크신 은혜를 잊지 말고, 은혜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고, 쉬지 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는!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40년을 산 것처럼, 

(찬양) “괴로운 인생길 가는 몸이 / 이 험한 세상 나 살아갈 동안 / 이 광야 같은 세상에 나 방황할 때에”

외국인과 나그네로, 우리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인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인생의 낮과 밤이 있고, 

오르막과 내리막이 있고, 

희망으로 가득찬 인생의 봄과, 패기와 열정으로 가득한 인생의 여름과, 풍성한 결실과 열매로 만족스러운 인생의 가을과,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인생의 겨울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생을 살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이집트의 병거부대가 추격해 오고 앞에는 홍해바다가 가로 막혀 있다고 “우리의 매장지가 없어 이곳으로 이끌어 내었느냐?”

양식이 떨어졌다고 “이집트에서는 고기 가마 옆에 있었다.” 원망해서는 안 됩니다. 

매일매일 순간순간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살면서도 “천박한 만나와 메추라기에 물렸다. 파와 마늘과 부추와 참외를 먹던 이집트로 돌아가자! 이집트 파라오 임금의 종으로 사는 것이 낫겠다. 이집트로 돌아갈 수 없다면 이곳 광야에서 죽는 것이 낫겠다!”

불평하고 원망하며 살아서는 

결코 광야와 같은 이 세상에서 승리할 수 없습니다. 

우리의 믿음이 자라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셨는데,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 갈 수가 없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오늘을 사는 우리 모두,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풍성한 사랑을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게 되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전에는 

죄의 종⦁저주받은 족속⦁멸망의 자녀⦁영원한 심판에 이를 백성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을 내어 주신 성부 하나님의 사랑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성자 하나님의 은혜와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시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 믿게 하시고

믿는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 부활의 자녀 ⦁ 천국의 백성 ⦁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삼으시고

광야와 같은 세상을 살고 있는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와 동행하시는 성령 하나님의 역사하심 가운데

매일매일, 시간 시간, 순간순간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 

더욱 열심히 “경배와 찬양⦁감사와 예배⦁존귀와 영광”을 드리며 살아간다면

은혜 베푸시는 하나님께서

더욱 넘치는 풍성한 은혜를

우리와 우리의 가정과, 우리의 자녀와 우리가 섬기는 이 교회와, 우리의 나라와 민족 가운데

넘치게, 흔들어 부으시고, 채워 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