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6-1 하나님 앞에서 ⦁ 코람데오

관리자
2022-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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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나님 앞에서 ⦁ 코람데오 / 마6:1-6

 

예수님께서! 산에서 가르치신 보석과도 같은 말씀인 “마태복음 5, 6, 7장 - 산상보훈⦁산상수훈”의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까지 나눈, 마태복음 5장에

유대인의 서기관 바리새인들이

“예수가, 안식일에 병든 자를 고쳐 안식일을 범했다.

예수가 율법을 지키지 않는다.

예수는 모세의 율법을 폐하려 한다.” 비난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예수님께서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성경을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온전하게⦁Perfect 하게 하려 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한 서기관⦁율법학자로부터

“수많은 율법의 계명이 있습니다. 어느 계명이 가장 큽니까?” 질문을 받으셨을 때

예수님께서

“신6:5절의 말씀인,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레19:18의 말씀으로, 둘째는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성경의 강령⦁핵심⦁요지이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가장 큰 계명을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심으로,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성경”의 말씀을, 온전히 이루셨습니다.

 

 

오늘 나누게 된 마태복음 6장은!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의 실천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에서 400년 동안, 파라오 임금의 노예로 살았습니다.

400년은! 화살처럼 날아가고, 잠간 잠을 자는 것과 같고, 외국인과 나그네로 살고 있는 우리 인생들에게는, 영원에 가까운 시간입니다.

파라오 임금의 종의 사슬을 끊으려 하였지만, 쇠심줄 보다 강하여, 연약한 이스라엘은 결코 끊을 수 없었습니다.

무거운 노예의 멍에를 벗어 버리려 하였지만, 이집트 사람이 너무도 강하여, 노예의 멍에를 벗어 버릴 수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아무런 소망이 없이, 종의 사슬에 묶인 채, 노예의 멍에를 메고, 자자손손으로 이어지는 긴 고통의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

고통 가운데 부르짖는 이스라엘의 기도를 들으시고, 구원하셨습니다.

끊을 수 없었던 파라오 임금의 종의 사슬을 끊으셨습니다.

결코 벗겨지지 않던 무거운 노예의 멍에를 벗기셨습니다.

홍해바다를 육지 같이 건너게 하였습니다.

양식을 구할 수 없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로 먹여 주셨습니다.

마실 수 없는 쓴 물을 단물이 되어 마시게 하셨습니다.

 

광야 길을 행진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내산∙호렙산에 이르렀습니다.

산 아래 장막을 쳤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마음을 성결하게 하고, 옷을 빨아 입으라 하시고

빽빽한 구름이 덮여 있는 시내산으로 모세를 부르시고

시내산 정상에 섰을 때에

하나님께서! 영광으로, 천둥과 번개∙불과 연기 가운데 임재 하셔서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 되었던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말씀하시며,

친히 2개의 돌 판에, 십계명을 새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주셨습니다.

 

 

제가 질문 하나를 하겠습니다. 잘 생각해 보십시오.

이스라엘이,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계명∙율례∙법도를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지켜 행해야 구원을 받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으니,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해야 합니까?”

 

 

“계명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과

“구원을 받았으니 계명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은 비슷한 것 같지만, 완전히 다릅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모두 지켜 행해야 구원을 받는다.”는 주장을 “율법주의”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으니,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자.”는 주장을 “복음주의”라 합니다.

 

 

하나님께서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주시며

“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 되었던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다.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 백성으로 삼았다.

내가! 나의 강한 능력의 오른손과 편 팔로, 이집트 파라오 왕에게, 이적과 기사와 능력을 행하여

독수리가 그 새끼를 날개로 업어옴 같이, 너희를 이집트 종 되었던 땅에서 구원하였다.

나 여호와가! 세계에 수많은 민족이 있지만, 너희 이스라엘을 택하였다.

너희는 나의 선택함을 받은 선민(選民) 이스라엘이다.

나 여호와가! 너희 이스라엘을 거룩한 내 백성으로 구별하였다. 너희는 세상 수많은 민족 가운데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성민(聖民) 이스라엘이다.

 

나는 너희를 이집트 종 되었던 땅에서 구원한 여호와 하나님이다!

내가 내 백성으로 택한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계명을 내려 준다.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성민 이스라엘이, 거룩하게 구별 된 삶을 사는 규례와 법도를 내려 준다.” 말씀하시고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계명과 율례와 법도를 내려 주셨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은혜와 구원∙능력과 권능을 맛보아 알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 모두는! 무릎을 꿇고

(레 19:37)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계명과 규례와 법도를 지켜 행하겠습니다.” 다짐하고 맹세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계명과 율례와 법도보다

하나님의 택하심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구원하심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며,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을 지킵니다.

하나님의 구원에 감사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를 따라 삽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찬양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법도를 지켜 행합니다.

 

 

우리의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롬 5:10) “우리가 하나님과 원수 되었을 때에,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느니라.”

성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을 알지도 못하고, 하나님을 거역하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과 원수로 지낼 때에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내어 주셨고,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이 세상에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우리가 허물로 말미암아 받아야 하는 저주를, 십자가에서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가 불의함으로 말미암아 받아야 하는 형벌을, 십자가에서 대신 담당하셨습니다.

죄 값은 사망입니다.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저주와 심판과 멸망과 사망에 이르러야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보혈의 피를 흘리시고,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잘 지키고, 선하고, 착하고, 의롭고, 진실해서 구원함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우리를 위하여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찬양할 수밖에 없습니다.

(찬양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그러나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먼저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행하여야, 의롭게 되고, 구원을 받는다고 믿습니다.

 

 

눅 18장에, 한 유대인 관원이 예수님께 나와

“저는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웠고, 율법을 지켰습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는 계명 모두를 다 지켰습니다.” 자신 있게 말했습니다.

 

유대인의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어려서부터 율법을 배우고, 열심히 율법을 지켜 행하였습니다.

율법과 계명을 지켰기 때문에 “나는 의롭다. 나는 구원 받았다. 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다.” 여겼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이 율법과 계명을 모두 지키는 사람, 구제하는 사람, 자비로운 사람,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인 것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사람들이 많이 다니는 회당이나 거리에서, 사람들이 볼 때에 적선하였습니다.

 

사도행전 3장을 보면,

날 때부터 걷지 못하는 걸인이,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성전으로 들어가는 미문에 앉아, 구걸을 하였습니다.

이 걸인에게,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는 것이, 제일 수입이 괜찮았습니다.

유대인들의 기도 시간은 오전 9시, 정오, 오후 3시입니다.

기도 시간 전후로, 많은 사람들이 기도하기 위하여, 성전 미문을 지나게 되는데,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니는 기도 시간을 즈음하여, 많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적선을 하였습니다.

기도 시간이 지나서, 사람들이 뜸한 시간에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적선하지 않았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은!

적선을 하거나, 구제한 뒤에, 큰 소리로 나팔을 불었습니다. 큰 소리로 자랑하였습니다.

사람들에게 “구제하는 사람! 선한 사람! 자비로운 사람!” 이라는 칭찬을 들으려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한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는 산속에서 강도를 만났습니다.

만약에, 예루살렘 대로변에서 강도를 만났다면,

제사장과 레위인은 결코 그냥 지나가지 않았을 것입니다.

야단법석 하며, 강도 만난 사람을 도왔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에게 칭찬을 들으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가리키며

“외식하는 자와 같이 사람에게 영광을 받으려 하지 마라.

구제할 때에 나팔을 불지 말라.

구제할 때에 오른손의 하는 것을 왼손이 모르게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갚아주시리라.

사람들 앞에서 구제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자는! 이미 자기상을 받았음으로,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다.” 말씀하셨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자신이 기도하는 사람! 경건한 사람인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많은 사람이 모이는 회당에서,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큰 거리 어귀에 서서,

큰 소리로, 길고 장황하게 기도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으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가리켜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골방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시리라.

사람들 앞에서 기도하여,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자는! 이미 자기상을 받았음으로,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다. 하나님께서 기도를 응답하지 아니하신다.” 말씀하셨습니다.

 

 

열왕기상 22장에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과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연합군을 구성하여 “아람⦁시리아”가 빼앗아간 “길르앗 라못” 땅을 되찾기 위하여 출정합니다.

전쟁터로 나가기 전,

남 유다의 여호사밧 왕이 북 이스라엘의 아합 왕에게

“출정하기 전에, 여호와의 말씀이 어떠하신지 물어 보는 것이 좋겠습니다.

이곳에 물어 볼만한 선지자가 있습니까?”

아합 왕이 대답하기를

“미가야란 선지자가 있긴 합니다. 그런데 그 사람은 나를 미워합니다. 늘 나에게 흉한 일만 예언하였습니다.”

여호사밧 왕이

“그런 말씀 하지 마시고, 그를 불러다 물어 보아야 하겠습니다.”

 

아합 왕은, 미가야 선지자를 불러 오라 명령하였습니다.

미가야 선지자가 도착하기 전

아합 왕의 수하에 있는 ‘시드기야’ 선지자가 왕 앞에 나와 예언을 합니다.

“속히 출정하시옵소서.

임금님께서, 아람 사람을 진멸하시고, 빼앗긴 ‘길르앗 라못’ 땅을 되찾을 것입니다!”

 

‘시드기야’ 선지자가! 왕에게 기분 좋은 예언을 하였을 때에

‘미가야 선지자’가 도착하였습니다.

미가야 선지자는!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예언의 말씀을 전합니다.

“하나님께서 보좌에 앉으셨습니다.

말씀하시기를 ‘누가 아합을 꾀어 길르앗 라못에서 죽게 할꼬?’

한 영이 말하기를 ‘내가 그를 꾀겠습니다. 거짓말 하는 영이 되어 모든 선지자의 입에 두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럼 너는 꾀어라. 나는 이루리라!’”

 

시드기야 선지자는 “왕이 출전하시면 승리하십니다.” 예언하였는데

미가야 선지가가 “왕이 출전하면 죽는다.” 정 반대의 예언을 하였습니다.

 

화가 난 시드기야 선지자는, 미가야 선지자에게 달려들어 뺨을 때리며

“여호와의 영이, 나를 떠나 네게만 말씀하시더냐?”

 

뺨을 얻어맞은 미가야 선지자가! 시드기야 선지자에게

“네가 골방에 들어가서 숨는 그 날에 보리라.

기도의 골방에 들어가야, 하나님의 영이 임할 것이다.

골방 기도가 없는 네가 어찌 하나님을 말씀을 받을 수 있느냐?

기도하지 않은 너는, 네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거짓 예언을 하고 있다.”

 

아합 왕은!

기도의 골방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여,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말씀을 전하는 미가야 선지자의 말을 듣지 않고

기도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거짓 예언한 시드기야의 말을 듣고 출정합니다.

전쟁터로 나가며 신하들에

“내가 전쟁터에서 죽을 것이라 예언한 미가야 이놈을, 감옥에 가두어, 내가 전쟁터에서 평안히 돌아올 때까지,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게 하라.”

 

이스라엘⦁유다 연합군과 아람나라와의 전투는 맹렬하였습니다.

아람 병사 한 사람이, 무심코 활을 쏘았는데, 아합 왕의 갑옷을 뚫었습니다.

아합 왕은! 화살이 꽂혀 있는 채로, 전쟁터를 빠져 나왔습니다.

화살에 맞은 아합 왕은, 많은 피를 흘렸고, 날이 어두워졌을 때에 죽었습니다.

전에, 엘리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대로, 아합 왕의 피를 개들이 핥았습니다.

 

교우 여러분!

기도의 골방 없이, 선지자 노릇을 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골방 없이,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제사장과 왕의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골방 없이, 목회할 수 없습니다.

기도의 골방 없이,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장로⦁권사⦁집사⦁찬양대원⦁교사의 직무를 감당할 수 없고, 주님의 몸 된 교회를 든든히 세울 수 없습니다.

기도의 골방 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예수님을 따라 갈 수 없습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일주일에 두 번, 금식하였습니다.

자신이 금식하고 있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하여

매우 배고픈 표정을 짓고, 슬픈 기색을 하였습니다. 머리를 헝클어뜨리고, 머리에 재를 뿌리기도 하였습니다.

 

(민 29:7) “칠월 십일은 속죄일로, 스스로 괴롭게 하라.”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것은, 금식 기도를 의미합니다.

금식은! 속죄일, 죄를 자복하고 회개할 때에 하였습니다.

 

사무엘이 이스라엘의 선지자가 되자,

백성들을 미스바에 모이게 하였고, 우상 숭배한 것을 회개하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며 살겠습니다.” 금식하며 다짐케 하였습니다.

 

페르시야 아하수에로 임금 때에, 에스더가 왕후가 되었는데, 하만의 음모로 유대인들이 모두 죽게 되었습니다.

에스더 왕후는! “죽으면 죽으리이다.” 왕께 나아가기로 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식하며 기도하였습니다.

 

안디옥 교회가! 금식하고 기도하는 가운데, 바울과 바나바를 선교사로 세우고 파송하였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 크고 더럽고 무거운 죄를 철저하게 자백할 때에

하나님께 간절한 소원의 기도를 드릴 때에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감당하려 할 때에 금식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죄를 회개함이 없이, 하나님 앞에 간절한 소원의 기도를 드리지도 않으면서,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게 살려는 다짐도 없이

자신이 “경건한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형식적인 금식 기도를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칭찬을 들으려는 바리새인과 서기관을 가리켜

“금식할 때에,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슬픈 표정을 짓지 말아라.

금식할 때에, 얼굴을 깨끗하게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라.

금식하는 것을 사람에게 보이지 말고, 은밀한 중에 계신 네 아버지께 보이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으시리라.

사람들 앞에서 금식하고,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은 자는! 이미 자기상을 받았음으로, 하나님께 받을 상이 없느니라.” 말씀하셨습니다.

 

 

 

산헤드린 유대 공회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과 부활을 증거 하여, 예루살렘에 허다한 그리스도인이 생기게 한,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세우고,

“예수에 대하여 다시는 증거 하지 말라.” 엄중 경고하는데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노라.” 담대하게 외쳤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는 베드로와 요한은

“하나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사도의 사명을 감당하였습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 라틴어로 “코람데오”입니다.

 

우리 모두는!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나를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의 말씀을 들려 주셨고

“(고전 12:3) 성령이 아니고서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라 할 수 없느니라.” - 성령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의 문을 열어 주셔서, 예수님을 믿고 영접하게 하셨고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부활의 자녀로 삼으셨습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 “하나님의 자녀⦁부활의 자녀”로,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망하며, 광야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지만, 우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시고,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인도하고 계십니다.

 

(시 1:6)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리로다.”

우리가 은밀하게 행할지라도, 모든 것을 보고 계시고, 모든 것을 알고 계신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복을 주시고, 갚아 주시고, 상급 주시는 의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삶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하나님께서 인정하시고, 복을 주시고, 인도하시고, 함께 하시는 삶이 가장 복된 삶입니다.

 

그러나 어리석은 이들은!

은밀히 보시는 “코람데오⦁하나님 앞에서” 살지 않고, 사람 앞에서 삽니다.

하나님께 인정 받으려 하지 않고, 사람에게 인정 받으려합니다.

하나님께서 갚아 주시고 상급 주심을 바라지 않고, 사람들로부터 칭찬과 존귀함을 받으려 합니다.

 

 

(딤 4:7-8)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사도 바울의 이 고백이

“코람데오⦁하나님 앞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의 고백과 삶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