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관리자
2022-0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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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 마5:14-16

 

산상보훈의 말씀 가운데, 8복의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8복의 말씀은! 믿음과 신앙이 자라나는 신앙의 8계단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 애통하는 자 / 온유한 자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 긍휼히 여기는 자 / 마음이 청결한 자 / 화평케 하는 자 /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다.”

한 계단, 한 계단 밟고 오르며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게 되고,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 8복의 말씀에 이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성숙한 그리스도인⦁나를 따르는 제자 된 너희들은

‘화평케 하는 자!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자! 화목케 하는 Peace Maker!’로,

세상에서 소금의 삶을 살아라.”

 

이어지는, 오늘의 말씀은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요 1:4-)

“성자 하나님이신 예수님 안에 생명이 있었으니, 이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라

참 빛이신 성자 예수님이

자신이 지으신 자신의 땅에 오셨지만,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영접하지 아니하였다.

어두운 세상은! 빛을 미워하고, 어두움을 더 사랑한다.

그러나 빛이신 예수님을 영접하는 자,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스스로 계시고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성부 하나님의 유일하신 아들이신 성자 예수님께서!

(사 60:2) “어둠이 덮고, 캄캄함이 만민의 눈을 가리운 세상”에 기록된 대로

우리를 구원하시고,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참 빛으로⦁참 생명으로⦁참 진리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구약성경의 마지막 말라기 선지자 이후, 400여 년 동안,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세우지 않으셨고, 하나님의 말씀이 외쳐지지 않았습니다.

이 400년을 - “신구약 중간기⦁하나님의 침묵기⦁영적인 암흑기”라 부릅니다.

 

400년의 긴 침묵을 깨고,

광야에서 낙타 털옷을 입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치는 세례 요한이 나타났습니다.

세례 요한의 등장은!

오랜 가뭄 가운데 내린 단비였고, 어둠을 가르는 빛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사모하며, 하나님의 구원을 기다리는 수많은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이 외치는 광야의 요단강으로 모여들었습니다.

세례 요한의 강렬한 설교를 듣고, 많은 이들이 회개하고, 요한으로부터 “회개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보내 주시기로 약속하신

메시야⦁그리스도⦁구원자가 세례 요한이 아닐까?” 생각하였고

“세례 요한을 메시야⦁그리스도⦁구원자”로 믿는 이들도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에 대하여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세례 요한보다 큰 이가 없다.

그러나,

요한은 빛이 아니다. 메시야⦁그리스도⦁왕이 아니다.

요한은, 빛에 대하여 증거 하는 자⦁메시야의 길을 닦고 예비하는 자⦁광야에서 외치는 자이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은, 크고 존귀한 자이지만, 빛이 아니다.” 말씀하시는데

우리를 향하여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말씀하십니다.

 

예수님만이 참 빛이시고

위대한 세례 요한도 빛이 아닌데

우리가 어찌 빛이 되겠습니까?

 

 

밤하늘에 반짝이는 수많은 별이 있는데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이 있고, 빛을 받아 반사하여 빛을 내는 행성이 있습니다.

태양계에 많은 행성이 있지만 스스로 빛을 내는 항성은 태양뿐입니다.

지구를 비롯한 모든 행성은 태양빛을 받아, 밤하늘에 반짝입니다.

 

얼마 전, 보름달이 휘영청 밝았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보름달이 반달이 되고, 초승달같이 되고, 아예 달이 없어졌습니다.

조금 있다가,

다시 초승달이 되고, 반달이 되고, 보름달이 되었습니다.

옛날 사람들은, 상서롭거나 불길한 징조로 받아들였지만,

우리 모두는 월식이라는 것을 압니다.

태양⦁지구⦁달이 일직선으로 섰을 때

지구의 그림자가, 달의 반을 가리면 반달이 되고, 달의 거의 다를 가리면 초승달이 되고, 달의 빛을 완전히 가리면 그믐이 됩니다.

 

 

예수님께서!

“나는 참 빛⦁생명의 빛⦁구원의 빛⦁영광의 빛이다.

너희는 밤하늘에 반짝이는 행성처럼, 어두운 밤을 밝히는 달처럼

하나님의 자녀⦁나의 제자⦁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된 너희는

하나님의 영광의 빛과 나의 생명의 빛을 받아

너희의 착한 행실로,

너희의 아름다운 선행으로

나의 빛을 사람 앞에 비춰,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우리를 자녀 삼으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충성된 제자로 삼으신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빛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의 착한 행실⦁선행으로, 세상을 밝고 환하게 비쳐야 하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착하고 선하게 살면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십니다.

 

우리가 착하게 살지 않으면

우리가 선하게 살지 않으면

우리가 의롭게 살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 선하게 살면, 세상은! 하나님이 조금 선하신 분이라 생각하고

우리가 선을 버리고 악하게 살면, 세상은! “하나님이 없다.” 여깁니다.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나아와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느냐?” 물으시자

율법교사는

“네 마음과 목숨과 힘을 다하며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그런데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율법교사에게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800미터, 27킬로 떨어진 여리고는 해발 -250미터,

예루살렘과 여리고의 높이는 1000m이상으로,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는 길은, 매우 가파르고, 험하고, 구불구불한 길입니다.

예루살렘은 정치⦁종교의 중심지이고, 여리고는 경제의 중심지였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가다가 강도를 만났습니다.

가진 것을 다 빼앗겼습니다. 옷도 벗겨갔습니다. 많이 맞아 피를 흘리고 쓰러졌습니다.

 

한 제사장이, 강도 만나 피 흘리고 쓰러져 신음하는 강도 만난 사람 곁을 지나게 되었습니다.

한 레위인도, 지나게 되었습니다.

 

당시, 제사장과 레위인이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당번이 되면,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와, 한 달 쯤 머물며, 매일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를 마치고, 여리고 집으로 돌아가는 길입니다.

한 달 동안,

제사장은! 하나님께 제사⦁예배를 드렸으니, 얼마나 큰 은혜를 경험하였겠습니까?

레위인은! 간절한 기도의 제목을 가지고 간구하는 백성들의 제사⦁예배를 도우며, 얼마나 큰 기쁨이 있었겠습니까?

성전에서, 한 달 동안이나, 매일, 시간마다, 성경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하나님을 찬미하고,, 하나님께 기도하였으니, 은혜와 기쁨이 얼마나 충만하였겠습니까?

제사장과 레위인은! 화려한 예복을 입고, 경건하게 제사를 드렸는데, 이를 본 백성들이 얼마나 흠모하고 존경 하였겠습니까?

백성들로부터, 격려와 찬사를 받으며, 어깨가 얼마나 으쓱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제사장과 레위인은! 강도 만나, 상처 입고, 피 흘려 쓰러져 있는 것을 보면서

꺼져가는 목소리로 “도와주세요.” 말하는 것을 들으면서

“나도 강도를 만나, 내가 가진 것을 다 빼앗기고, 나의 생명을 빼앗기면 어떻게 하나?” 생각하였습니다.

“저 사람이 강도를 만난 것이 얼마 전인데, 강도가 근처 어딘가 가까운 곳에 있을 텐데!” 생각하였습니다.

“강도와 마주 친다면, 나는 강도를 이길 힘이 없고, 달리기도 잘하지 못해서 강도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는데...” 생각하였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이런 생각을 하면서, 빠르게 그 자리를 피하였습니다.

그 자리에서 멀리 벗어나려고, 할 수 있는 대로 빨리 달렸습니다.

잠시 후,

사마리아 사람이 지나가게 되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나 피 흘리며, 쓰러져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도와주세요!” 신음하는 소리를 듣고, 도와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눈빛을 보았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강도 만난 사람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나귀에서 내려, 강도 만난 사람에게 다가가 응급조치를 하였습니다.

자기 나귀에 태웠습니다.

편안하게 나귀에 앉아서 여행을 하던 사마리아 사람은, 나귀의 고삐를 잡고, 가파른 언덕길을 조심스럽게 내려옵니다.

여리고 가까이에 여행자들이 쉬었다 가는 주막이 있습니다.

주막 주인에게, 강도 만난 사람의 치료를 부탁하며, 두 데나리온을 값으로 지불하였습니다.

한 데나리온은 노동자 하루의 품삯입니다.

이틀 치 품삯을 건내며,

“돌아오는 길에 다시 들릴 것이고, 비용이 더 들면 그 때에 값을 지불하겠습니다.”고 말하며, 길을 떠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비유를 말씀하신 뒤, 율법사에게 묻습니다.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율법사는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 대답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사에게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이요⦁하나님의 선택 받은 백성이요⦁할례 받아 의롭게 되었다고 여기는 유대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연구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잘 알고 있다는 율법사에게!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의 축복을 선포하는 제사장에게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레위인에게!

사마리아 사람처럼, 너희가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라.

세상에서 힘들어 하고, 어려워하는 사람들의 이웃이 되어라.” 말씀하십니다.

 

 

(마 14:14)

“예수께서 큰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사 그 중에 있는 병자를 고쳐 주시니라.”

 

예수님께서 여리고를 지나실 때에, 소경이 큰 소리로 “다윗의 자손이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외칠 때에

(마 20:34)

“예수께서 불쌍히 여기사 그들의 눈을 만지시니 곧 보게 되어 그들이 예수를 따르니라.”

 

(마 9:35-36)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불쌍히 여기는 마음⦁긍휼히 여기는 마음”은!

“예수님의 마음⦁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주님의 교회에서, 주님의 양무리를 돌아보는 목사에게!

주님께서 어여삐 여기시사 충성 되이 여겨 - 장로⦁권사⦁집사와 모든 성도⦁직분자들에게!

“사마리아 사람처럼 ‘불쌍히 여기는 마음⦁긍휼히 여기는 마음⦁하나님의 마음을 갖고 살아라.” 말씀하십니다.

 

우리에게 “선한 마음”만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행해야 합니다.

 

선한 마음만 있지, 행하지 않는 사람은

한 달란트를 받았지만, 땅 속에 그냥 묻어 두는 것과 같습니다.

선한 마음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착한 행실로,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려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의 불행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신이 좋은 이웃이 되려고 하지 않고, 나에게 좋은 이웃이 어디 있을까?” 찾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좋은 이웃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자신이 좋은 교인이 되어 좋은 교회를 세우려 하지 않고, 내게 좋은 교회가 어디 있을까?” 찾고 있습니다.

그러는 사이에, 좋은 교회⦁교인을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믿음 - 역사가 없으면 믿음이 아니고

소망 - 인내가 없으면 소망이 아니고

사랑 - 수고가 없으면 사랑이 아닙니다.

(요일 3: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약 2:26)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맛을 잃어버린 소금! 빛을 발하지 않는 성도!를 향한, 어느 분의 책망의 글입니다.

“손들고 찬송하면 뭐하나? 혈기를 부리지 말아야지.

아-멘을 크게 하면 뭐하나? 말씀대로 살아야지.

은혜를 잘 받으면 뭐하나? 자아가 파쇄 되어야지.

주의 일을 잘하면 뭐하나? 순종이 안 되는걸.

신령하면 뭐하나? 신실하지 못한걸.

성경을 줄줄 외면 뭐하나? 고집이 꺽여야지.

신앙은 있는데 생활이 없고

은혜는 많은데 변화는 없고

체험은 많은데 성숙은 없고

말은 잘하는데 몸이 움직이지 않고

신령은 한데 신실하지는 못한 걸”

 

 

며칠 전, 100세가 넘은 김형석 교수님의 글이 신문에 실렸습니다.

 

오래 전!

경북 안동의 한 고아원에, 이(李)라는 성을 가진 소년이 있었습니다.

18세가 되면서 규정에 따라 고아원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이군은 먼저 군 복무를 끝내고 앞날을 개척해 보겠다는 계획으로 군에 입대하였습니다.

제대한다고 해서, 주어진 직장은 물론 갈 곳조차 없는 처지여서, 그대로 군에 남아 직업군인이 되었습니다.

중사까지 진급은 했으나 외롭고 쓸쓸함은 가중되었습니다.

면회를 오는 사람도 없고, 정을 나눌 사람도 없고, 휴가를 나가도 고아원밖에 갈 곳이 없습니다.

자신은, 세상에 홀로 버려져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자신은, 이 세상에 태어날 필요가 없는데 태어났고, 삶의 의미를 찾지 못했고, 장래를 위한 어떠한 계획도 세울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이 중사는 신병들에게 실탄훈련을 시키다가 수류탄을 군복에 넣고 탈영했습니다.

안동 거리를 무작정 거니는데, 탈영병을 체포하기 위한 압박이 조여 오고, 더 이상 숨을 곳이 없습니다.

그때, 문화극장에서 영화 관람을 마치고, 나오는 사람들을 보면서

“너희는 모두 행복하고, 나만 저주받은 인생을 살라는 법이 있느냐?” 말하며

수류탄 핀을 뽑아 군중 속에 던졌습니다.

많은 사상자가 생겼습니다.

현장에서 체포된 이 중사는 헌병에게 넘겨졌고

큰 사건이었기 때문에, 직속상관은 모두 군복을 벗었고, 이 중사는 군사재판에 넘겨졌고, 사형 언도를 받았습니다.

이미 각오한 바였던 이 중사는,

유일하게 방문하는 군목의 면회까지도 거절하고 죽음을 맞기로 하였습니다.

 

군목은!

몇 차례 이 중사를 찾아갔으나 만나지 못했고, 깊이 생각하였습니다.

“무엇이 이 중사로 범죄를 저지르게 하였는가?

사랑의 단절이다.

사랑하는 사람도 없고, 사랑할 사람도 없으니, 살아갈 힘이 있었겠는가?

누군가가 그를 사랑하고, 이 중사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

군목은,

이 중사를 위하여 간절히 기도고, 이 중사를 찾아가 눈물로 호소했습니다.

“이 중사! 너만이 죄인이 아니오.

나도, 너를 사랑하지 못한 죄인 중의 한 사람이오.

너를 사랑해 주지 못한 나와 우리 모두의 죄를, 네가 먼저 용서해 주기 바래.”

군목의 이야기를 들은 이 중사는, 흐느끼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도 사랑하지 못했습니다.

나도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다면, 그 사람을 위해서라도, 이런 범죄는 저지르지 못했을 것입니다.”

둘은 손을 잡고 함께 울었습니다.

군목이 조용히 입을 열었다.

“과거에도 너를 사랑했고 지금도 너를 사랑하고, 앞으로도 네 영혼을 사랑해 주실 분이 계시는데, 그분에게로 가자.”

“그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 우리 아버지시다.

우리를 사랑하셔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이시다.”

 

이 중사는 예수님을 영접했습니다. 기도를 드리고, 성경을 읽었습니다.

언제 처형될지 모르기 때문에, 서둘러 세례까지 받았습니다.

많은 신앙의 대화를 나누다가 이 중사가

“목사님! 제가 죽을 때 장기를 기증하면 몇 사람의 목숨을 구할 수 있다고 들었는데 가능하면 저도 마지막 사랑을 남기고 싶습니다.” 말했고

알아본 군목은

“네 눈을 누구에게 줄 수 있다. 그러나 다른 장기는 총살형이어서 허락되지 않는다.”

얼마 후, 사형이 집행될 때

군목과 안과 군의관 앞에서

“저는 육신의 눈은 떴으나,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해 큰 죄를 범했습니다.

내 눈을 받는 사람은, 육신의 눈만 아니고 마음의 눈도 떠서, 나대신 여러 사람에게 사랑을 베풀어 달라고 얘기해 주세요.”

이 중사는 목사님과 찬송을 부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100세가 넘은 노 철학교수가! 왜 이 글을 신문에 썼을까요?

100년을 살았고, 곧 이 세상을 떠날 철학교수가!

“우리 인생에, 우리 사는 세상에, 오늘 우리 사회에, 제일 중요한 것은 사랑이다.”

마지막, 유언적 간곡한 권면을 하신 것입니다.

 

 

요사이 편리한 기계 중에 하나가 복사기 입니다.

예전에는 손으로 다 베껴 썼지만, 요사이는 손가락으로 누르기만 하면 똑같은 서류를 얻을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라가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작은 예수! 예수님의 복사본입니다.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원본과 많이 비슷한, 예수님을 많이 닮은 성도이고

보통 그리스도인은 원본과 많이 다르기는 하지만, 비슷하게 닮은 성도입니다.

 

요사이, 복사기 성능이 좋아져서

복사본이 원본과 비슷하여, 또 “다른 원본”이라 말합니다.

그런데

요사이, 신앙 복사기의 성능은 점점 떨어지고 있습니다.

예전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많이 닮았습니다. ‘

예수님처럼, 예수님이 주신 내 몫의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소금과 빛의 삶을 살아서, “작은 예수”라는 칭송을 들었습니다.

지금의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조금 닮았습니다.

예수님이 주신 내 몫의 십자가를 외면하고, 나의 기쁨과 만족과 행복을 위하여 신앙생활을 합니다.

소금과 빛의 삶을 살지 못하여,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며 살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너희의 착한 행실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