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자녀는 어린 감람나무다 / 시편128편

관리자
2020-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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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네 자녀는 어린 감람나무다 / 시편 128:1-6


며칠 전이 석가탄신일이었습니다. 

불교에서는, 자신을 수행하는 참선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불교에서, 참선을 통하여 깨달으려 하는 것을 화두라 하는데 

“나는 누구인가? 삼라만상 대 우주 가운데 나는 누구인가? 인생이란 무엇인가? 인생은 어디에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묵상하고 묵상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인간은?

지체와 오장육부를 가지고 있습니다. 

각 지체와 오장육부는 조직으로 되어 있습니다. 

조직은 세포로 되어 있습니다. 

세포 안에는 핵이 있습니다. 

핵은 분자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분자는 원자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아무 것도 아닙니다. 


세계는 어떠합니까?

측량할 수 없는 세상의 모든 존재, 삼라만상을 쪼개어 가다 보면 결국 아무 것도 아닙니다. . 


불교에서는! 인생을 물레방아와 같이 돌고 도는, 윤회로 봅니다. 

고통과 번민⦁108번뇌가 가득한 이 세상을 헤어나지 못하고, 계속 돌고 돕니다. 

이 번민의 윤회의 세계에서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요, 해탈하면 열반에 이른다고 믿습니다.

 

이것을 깨닫는 것이 불교입니다. 

불교에서는 세상과도 인연을 끊고, 홀로 남아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尊)”임을 깨닫고, 그 자신이, 무(無)의 세계, 멸(滅)의 세계에 이르려 합니다. 


불교에서! 궁극적으로 이르려 하는 곳은 열반(涅槃)의 세계인데 - 열반의 의미는 “불어서 끈 상태”입니다. 

멸(滅)⦁공(空)과 같은 의미입니다. 

불교에서는! 큰 우주에서 소우주로, 존재에서 무의 세계로 가려 합니다.   



우리 기독교는! 불교와 반대입니다.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 나아갑니다. 

주님께서! “교회는 몸의 지체다.” 말씀하셨습니다. 

작은 세포가 모여 조직을 이루고, 지체를 이룹니다. 

지체가 모여 한 몸을 이룹니다.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기 백성을 부르십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성도들이 모여 교회를 이룹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은 주님의 몸 된 교회의 지체입니다. 

 

아담 한 사람을 통하여 많은 사람이 되고, 

많은 사람 가운데 택함을 입은 아브라함을 통하여 믿음의 조상이 되게 하시고,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을 이루시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계 모든 민족을 부르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자녀⦁하나님 나라의 백성⦁천국의 시민이 되고

장차, 영원한 나라⦁영광의 나라⦁하나님의 나라⦁생명의 나라에서, 주님과 함께 영원토록 살게 됩니다. 



작은 것을 통하여 큰 것을 이룹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겨자씨와 같습니다. 

씨 중에 가장 작은 씨⦁보잘 것 없는 씨앗이지만, 자라면 새들이 깃들만큼 큰 나무가 됩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밀가루 반죽에 들어간 누룩과 같습니다. 

자그마한 누룩이 반죽에 들어가면 자그마한 반죽을 크게 부풀게 합니다. 


⦁ 하나님의 나라는 땅속에 심기운 씨앗과 같습니다. 

씨앗이 썩지만, 30배, 60배, 100배로 결실하게 됩니다. 



그리고 

큰 것을 이루기 위하여 작은 하나가 소중합니다. 


⦁ 우리에 있는 99마리의 양이 소중하지만,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도 소중합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기 위하여, 깊은 밤이지만, 횃불을 들고 산과 들을 헤멥니다.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으면, 너무 기뻐서 동네 사람들을 불러다 잔치를 엽니다. 


⦁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얼마나 소중한지

예수님께서는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어버린다면 무엇이 유익하겠느냐?”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서 보잘 것 없는 존재이지만, 우리 예수님은 나를 “천하보다 귀하게 여기십니다.”



큰 것을 위하여 작은 것이 소중한 하나님 앞에서! 

양을 치는 자에게, 1마리의 잃어버린 양이 소중하고

몸을 이루기 위하여, 한 지체가 소중하고

교회를 세워가기 위하여, 성도 한 사람이 소중하고

하나님 나라를 세우기 위하여 가정이 소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에

제일 마지막에 흙으로 빚어 아담을 창조하셨고, 

혼자 거하는 것이 좋지 않아, 아담을 깊이 잠들게 한 뒤에, 갈비뼈 하나를 뽑아 배필 하와를 지으셨습니다. 

하나님 창조의 제일 마지막 작품은? 정확하게 말하면 가정입니다. 


가정을 만드심으로, 하나님의 창조 사역이 완성되었습니다. 

가정을 보시고 “좋다. 좋다. 심히 좋다.” 말씀하셨습니다. 

가정에 “생육하고 번성하라!” 축복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인류를 향하신 구원의 역사⦁구속사는 아브라함을 통하여 시작되는데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삭의 가정이 복을 받고, 

이삭을 통하여 야곱의 가정이 복을 받고, 

야곱을 통하여 12아들의 가정이 복을 받고

12가정을 통하여 12지파가 복을 받고, 

12지파를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이스라엘 나라가 복을 받고

이스라엘을 통하여, 세계의 모든 민족⦁족속⦁백성이 복을 받았고, 지금도 복을 받아 누리고 있고

장차, 영원한 영광의 나라⦁하나님의 나라가 완성 됩니다.  



불교에서는 신앙에 깊이 들어가면, 가정을 버리고 출가를 합니다. 

한국 불교계에서 가장 존경을 받는 성철은, 원래 가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아내와 딸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러나 신앙을 위하여, 아내와 딸을 뒤로하고, 출가하였습니다. 

가정의 연을 끊었습니다. 

가정을 포기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제일 소중하고 중요한 것이 가정이다. 

 무슨 일이 있어도, 가정을 포기해서는 않된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신 것을 결코 사람이 나누지 못한다.” 말씀하셨습니다. 



(신 25:5) “형제가 함께 살다가 그 가운데 한 명이 아들 없이 죽었을 때, 그의 아내는 다른 집안 사람과 결혼할 수 없다. 시동생이 그를 아내로 맞아 같이 살아서 시동생으로서의 의무를 감당해야 한다.”

형님이 아내를 홀로 남겨 두고 세상을 떠났을 때에 

동생은 형수님을 아내로 맞이하여, 자식을 낳아야 하는 의무가 있습니다. 

유교적 문화를 가지고 있는 우리로서는 결코 받아들일 수 없는 계명입니다. 

유교적 문화에서는, 형수가 수절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시동생에게 “거친 광야에서 형수가 혼자 살아갈 수 없으니, 아내로 맞아 들여 돌보라.” 말씀하셨고


이어지는 :6)에서 

“첫아들은,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아,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 가운데서 사라지지 않게 해야 한다.”

첫아들은,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받아서, 형은 죽었지만, 형의 집안이 끊어지지 않게 하고, 형의 가정을 세워야 한다는 말씀하십니다. 



(신 24:5) “사람이 새로이 아내를 맞이하였으면, 그를 군대로 내보내지 말 것이요, 아무 직무도 그에게 맡기지 말 것이며, 일 년 동안 한가하게 집에 있으면서 그가 맞이한 아내를 즐겁게 할지니라.”

전쟁이 일어나면, 남자들이 전쟁터에 나가지만 

신랑은 일 년 동안 전쟁터에 나가지 않고, 아내와 함께 지내며,  

가정을 이끌고 나갈 자녀를 두게 하셨습니다. 

전쟁터에서 생명이 끊어질지라도, 가정이 끊어져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고대 그리스에는 500여 개의 도시 국가가 있었습니다. 

그 가운데, 스파르타는 매우 독특한 정치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국정에 참여하며 군사 일을 하는 지배층인 스파르타 시민이 1만여 명

국정에 참여하지 못하고, 수공업과 상업에 종사하는 페리오이코스라는 평민이 7만여 명

농사와 목축업과 옷감 짜는 일을 맡아 하는 헬롯이라는 농노가 16만여 명이었습니다. 


1만여 명의 스파르타 시민이 23만여 명의 사람들을 지배한다는 것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스파르타 시민만, 스파르타 도시에 살았고

언제 반란을 일으킬지 모르는, 평민이나 노예를 도시를 둘러싼 외곽에 살게 하였습니다.  

이들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에, 빠르게 제압하기 위하여, 스파르타 시민 모두가 강한 군대가 되었습니다. 



그리스의 500여 크고 작은 도시 국가는, 늘 전쟁을 하였습니다. 

계속되는 전쟁에 지친 그리스인들은! 전쟁을 그치고 평화롭게 지내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전쟁을 그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올림픽 경기입니다. 

그리스어를 구사하고, 그리스 신을 섬기는 모든 나라가, 

4년 마다, 올림픽 경기를 열고

경기가 열리는 1주간을 포함하여, 1달 동안은 무조건 휴전을 하기로 하였습니다. 


스파르타는!

이처럼 전쟁이 끊이지 않는 그리스에서 살아가려면 

강한 군사력만이, 국가의 안전을 보장할 수 있다고 믿어

이웃의 아테네처럼 - 민주적인 토론, 정치 개혁, 문학, 음악, 건축, 조각, 연극 등에는 전혀 관심 갖지 않고

오직 군사력 증강에만 힘을 쏟았습니다.   



스파르타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5명의 감독관이 “스파르타의 전사로 자랄 것인가?”를 판정하는데, 

나약한 아이는 불합격 판정을 받고, 평민이나 노예로 신분이 강등되었고, 

장애가 심한 아이는, 낭떠러지 아래로 던졌습니다. 

합격 판정을 받아 스파르타의 시민이 될 수 있는 아이는, 6살까지만 어머니의 보살핌을 받습니다. 

7살 때부터 집단생활을 시작합니다.  

간단한 읽기 쓰기를 배우는 것 외에는, 매일 정신과 육체를 단련하고, 군사훈련을 받습니다. 


20살이 되면 성년의식을 치르는데

활과 검과 창과 방패만 들고, 반나체로 산야에 던져지고, 7일 동안 살아남아야 하고

농노인 헬롯을 습격 살해하여 그 머리를 가지고 와야, 성년으로 스파르타의 병사가 됩니다. 


성년이 되어서도 병영 생활을 계속합니다.  

30살이 되어야, 결혼을 하여, 가정을 갖고, 아이를 낳게 되는데, 

밤이 되면 병영으로 돌아와 잠을 자야 하였습니다.

스파르타 시민은, 20세에서 60세까지 모두가 현역군인입니다. 


스파르타에서는

건강한 사내아이를 낳아야 하므로, 육체건 마음이건 여성다운 것은 인정받지 못했고, 골격이 좋은 여자가 우대받았습니다. 



에스더의 남편 되는 페르시아의 아하수에로 왕⦁페르시아어로는 크세르크세스 왕이!

주전 480년에, 

10년 전 선왕인 다리우스가 그리스를 침공하였다,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한 것을 복수하기 위하여

역사가 헤로도토스는 170만 명이라 하지만, 30만 명으로 보고 있습니다. 

대군을 이끌고, 바다와 육지로 그리스를 침공합니다.

그리스 도시 국가는 동맹을 맺어

해군은 아테네가 주축이 되고

육군은 스파르타가 주축이 되어 방언전을 치르는데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 왕은! 

300명의 병사로, 그리스 반도로 가려면 반드시 지나야 하는, 좁은 테르모필레 협곡에서 페르시아의 육군을 기다립니다. 

페르시아군은 좁은 협곡을 돌파하지 못하고 사상자만 늘어났습니다. 

스파르타는 300명의 병사로, 페르시아의 대군을 막아냅니다. 

한 주간 후, 

우회도로를 찾고, 뒤에서 공격하였습니다. 

그러나 육체와 정신을 강하게 무장한 스파르타의 병사에게는, 후퇴란 없습니다.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싸우다 모두 전사하였습니다. 


후에, 테르모필레 협곡에 비석을 세웠는데 

“나그네여! 가서 스파르타인에게 전하라.

 우리들은 조국의 명령을 지켜 여기 잠들었노라고” 

- 이 이야기가 “300인의 용사”란 영화로 제작되었습니다. 



2차 페르시아 전쟁에서 승리한 그리스 도시 국가들은 30여 년간 평화를 누렸지만

지중해의 패권을 두고, 

아테네가 중심이 된 델로스 동맹과 스파르타가 중심이 된 펠로폰네소스 동맹 간에, 

30년이 넘는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일어납니다. 

승자는! 

역시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는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입니다. 

스파르타는 지중해의 맹주가 됩니다. 


스파르타는 싸움만 잘하지

다스리고 통치하는 일은 잘하지 못합니다. 

힘들게, 강한 군사력으로 맹주 자리에 있었지만

테베 연합군에게 궤멸 되고 맙니다. 



주전 331년, 알렉산더의 통치에 맞서, 반란을 일으키지만, 대패하는데 

알렉산더는, 스파르타를 향해 “쥐들의 전투”라고 경멸하였습니다. 

용맹한 사자로 불리던 “스파르타”가 “쥐”로 전락하였습니다. 



자녀를 전쟁을 위한 도구로 보는 스파르타!

어려서부터 군사훈련으로, 임전무퇴의 용감한 병사로 키운 스파르타!

국가의 자산이 군사력이라고 보았던 스파르타!   

국가를 위하여 가정이 존재하고, “나의 존재 이유는? 국가를 위하여”란 스파르타!

세상의 어느 누구도 대적할 자가 없어 보이고, 영원할 것 같은 강한 스파르타!

이 스파르타는 망했습니다. 역사 속에서 사라져 버렸습니다. 


지금도! 아테네에 가면 찬란한 문화유적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테네와 상벽을 이루다, 그리스의 맹주가 된 스파르타에 가면, 

박물관이 있기는 하지만, 볼 전시물이 없어, 10분이면 다 둘러본다고 합니다. 

고개 숙인 스파르타 용사의 동상만이 쓸쓸히 서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바라보시며

“돌 위에 돌 하나 남김없이 모두 무너져 내릴 것이다.” 말씀하셨는데

주후 70년에 이 말씀이 이루어집니다. 


유대인 열심당원이 주축이 되어 로마에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예루살렘 성문을 굳게 닫고, 

몰려온 로마의 정예군단과 대치하였습니다. 

유대인의 완강한 저항에 부딪힌 로마의 군단은,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여, 굶주려 항복하기를 기다렸습니다.


예루살렘 성안에서, 

랍비인 ‘요하난 벤 자카이’는, 유대 전쟁이 결국에는 대학살로 막을 내리고 유대인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말 것을 예견합니다. 

요하난 벤 자카이는, 예루살렘성을 몰래 빠져나와

로마의 베스파시아누스 장군을 찾아가

“당신은 얼마 안 있어 황제에 등극할 것입니다. 

 황제가 되면, 예루살렘 근처에서 평화롭게 유대 경전을 배우고 가르칠 수 있는 회당⦁학교를 열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베스파시아누스는 “자신이 황제가 된다는 예언에 충격을 받았고, 요청이 나무도 소박하여 놀랐습니다. 


랍비의 말대로, 네로 황제가 자살하고, 주후 69년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로 추대되었습니다. 

베스파시아누스의 아들인, 후에 황제가 되는 티투스 장군에게 예루살렘 성이 함락되고, 

저항하던 유대인들은, 노예로 팔려 뿔뿔이 흩어지게 됩니다. 

그러나,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는 약속을 지켜, 예루살렘에서 가까운 야브네⦁얌니아에, 유대학교 ‘예시바’를 허락합니다. 

유대 반란으로, 대제사장⦁사두개인⦁열심당원⦁에세네파⦁귀족 등이 모두 사라집니다. 

바리새파만 살아남아,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합니다. 

예시바에서 공부한 학생들은, 랍비⦁교사가 됩니다. 


세계 곳곳에 흩어져 사는 유대인들은 

배타적이라 다른 민족과 동화되지 못합니다. , 

유대인들끼리 모여, 유대 마을을 이루며 사는데

10가정 이상이 모이면, 회당을 짓습니다. 

랍비를 초정합니다.  


랍비는! 회당에서, 

안식일에, 하나님께 예배를 인도하고, 율법을 가르칩니다.  

평일에는, 유대인의 자녀들에게 율법을 읽을 수 있도록 히브리 말과 글을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가르치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려면 1/10을 계산할 수 있어야 하기에 셈을 가르치고, 

이스라엘의 역사와 문화를 가르쳤습니다. 



로마의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에, 유대인들은, 2차 반란을 일으킵니다. 

135년, 반란을 진압한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유대인들은 유대 땅에서 발을 들여놓지 못한다. 유대 지명을 없애고, 그 땅을 팔레스타인으로 불러라.”

이때부터, 1948년 이스라엘이 독립 국가를 선포할 때까지, 거의 2천여 년 동안

세계 곳곳에 흩어져, 

온갖 멸시와 수모와 박해를 받지만

유대인은, 유대인으로 살았습니다. 

나라는 없지만, 유대 민족은 있었습니다.  

유대 땅은 없지만, 유대교 신앙은 있었습니다. 

돌아갈 고향은 없지만, 유대인의 가정은 있었습니다. 


2천여 년 동안, 나라 없이 산 민족인데

세계의 정치⦁경제⦁문화⦁과학 등 모든 분야에서 크게 두각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유명한 성서 주석가 William Barclay는 “고대 세계 속에서의 교육이념”이라는 책에서

“겉으로 보면

 스파르타 교육 - 강건한 육체와 탁월한 전투력이 스파르타를 구원하는 듯 하고

 유대인의 교육 – 나약하고 무기력한 교육은 유대인을 좌절시키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스파르타와 유대인의 교육 사이에는 결정적 차이가 있습니다. 

⦁스파르타의 교육은!

 채 자라지도 않은 어린이를, 국가가 끌어다 병영에서 훈련 시킴으로, 성장 과정에서 받아야 하는 부모의 사랑을 송두리째 부정해 버렸습니다. 

 스파르타 사람은 ‘힘’만 자랐지, 힘을 올바로 쓸 수 있는 ‘지혜와 사랑’을 망각했습니다. 

 가정은 하찮은 인간 공동체 같으나, 생명의 오고 감이 있고, 놀라운 사랑과 신뢰가 있다는 것을 부정하였습니다. 

⦁유대인의 교육은!

 계속하여 외국 침략에 지쳐 나가면서도, 가정만은 철저하게 지켰습니다. 

 아버지 어머니의 가장 큰 의무는, 자녀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가르치고, 결혼을 시키고, 손일을 가르쳐 주는 일이었습니다. 

⦁스파르타는 가정을 버리고 국가를 선택하는 교육을 시켰고

 유대인은 예루살렘을 빼앗겨도 가정만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스파르타 교육은, 사람을 죽이는 군사적 승리에 목적을 두어, 인간의 참된 모습인 이웃 사랑을 거부하였습니다. 

 모든 이웃을 적으로 삼고, 적을 언제나 무찔러야 하는 군인, 노련한 싸움꾼으로 길렀습니다. 

⦁유대인 교육은!

 자녀를 율법의 상속자로 보고 

 날마다 율법을 가르치고, 율법을 묵상하며, 율법을 따라 생활하도록 하는 가르치는 신앙교육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우리의 가정에서, 자녀에게 스파르타와 같은 교육을 시키고 있습니다.

스파르타에서는! 자녀를 싸움 잘하는 군인으로 교육하였고

우리는! 자녀를 공부 잘하는 사람, 좋은 대학에 입학하여, 좋은 직장을 갖고, 돈 잘 벌고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라고 교육합니다. 

어려서부터 학교성적이 좋은 자녀를 만들기 위하여,

좋은 대학에 들여보내기 위하여 

부모가! 자녀의 매니저로, 자녀의 일과를 정하고, 엄격하게 관리하고 체크 합니다. 


자녀의 모든 생활을 엄격하게 관리하는 호랑이 엄마⦁타이거맘에게

“공부 잘하는 것이 효자다.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효녀다. 

 인성교육? - 공부 잘하는 것이 먼저다.  

 신앙교육? –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것이 먼저다. 

 얘야!

 이것이 모두, 너 잘되라고 하는 것이다. 

 고3으로 시험이 코앞인데, 교회는 좋은 대학에 들어간 뒤에 열심히 나가고, 오늘은 학원에 가서 공부하여야 한다.”



우리의 가정에 신앙 교육이 있습니까?

우리는 유대인의 가정처럼

인생의 주인은 하나님이시고

모든 인생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으며, 하나님께로 가야 하며

인생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고 기쁘시게 하며

이웃을 사랑하고 섬기며 살고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살아야 함을 가르치고 있습니까?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입을까? 무엇을 마실까?” 생각하며 사는 성도들에게, 

예수님께서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더 하여 주시리라.”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나의 자녀를 어떻게 부자가 되게 할까? 어떻게 권세자가 되게 할까? 어떻게 출세하게 할까? 어떻게 성공하게 할까?” 생각하며 사는데, 예수님께서

“자녀를 내 것이라 하지 말아라!

 하나님의 자녀다. 하나님께서 너희에게 선물로 주셨다. 너희에게 자녀의 양육을 부탁하셨다.

 너희는 먼저 자녀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양육하여야 한다. 

 너희는 자녀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양육하여야 한다. 

 너희는 너희 자녀를 사랑과 기도로 양육하여야 한다. 

 너희는 너희 자녀로 - 하나님의 사람임을 알아, 하나님을 기쁘시고 영화롭게 하고, 하나님 나라의 기둥,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도구로 살아가도록 가르쳐야 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너희의 자녀에게 복을 주신다. 

 너희의 자녀를 인도하신다. 

 너희의 자녀와 함께 하신다.

 너희의 자녀를 하나님이 사용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