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1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관리자
2018-10-07
조회수 1589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하게 / 엡 4:1


교회를 정의하면

“하나님의 부르심을 입은 사람들의 모임”입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사람 가운데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부르셨고, 약속하신 대로 큰 민족 이스라엘을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민족 가운데 택하신 이스라엘을

애급 땅 종 되었던 곳에서 불러내셨습니다.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고, 부르심을 받고 광야에 거하던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교회”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받고, 광야에서 생활 하였고

요단강을 건너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을 차지하고 생활하였고

바벨론에 끌려가 포로생활 하였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돌아온 이스라엘 백성이 “구약교회”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 잡고 있던 베드로를 부르셨고, 야고보 요한을 부르셨고,

무화과나무 아래 앉아 있던 나다나엘을 부르셨고

세관에 앉아 있던 마태를 부르셨고

12명의 제자를 부르셨고, 70명의 제자를 부르셨습니다.

예수님이 부활 승천하신 뒤에,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 하나님께서!

120명의 성도를 부르셨습니다. 3천, 5천명을 부르셨습니다.

유대와 사마리아, 헬라인 로마인 등 수많은 민족 족속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오늘날

나도, 우리도 부르셨습니다.

주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 우리들이 신약교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 공동체”입니다.

우리가 예배드리는 이 장소를 “교회”라고 부르지만, 정확하게 말하면 “교회당, 예배당”입니다.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교회의 정의 아래

나는!

하나님께 택하심을 받았고

택하신 나를 부르셨고

부르신 나에게 복음을 말씀을 들려주시고, 깨달아 알게 하셨습니다.

내가 허물로 저주를 받아야 하고

내가 불의함으로 형벌을 받아야 하고

죄 값은 사망입니다. 내가 지은 죄로 내가 죽어야 하지만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나를 대신하여 저주를 받으시고

나를 대신하여 형벌을 받으시고

나를 대신하여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로 “예수님께서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음”을 믿게 하셨고

하나님께서 나의 모든 죄를 씻어 의롭게 하셨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셨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몸 된 교회의 지체가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다메섹으로 그리스도인을 사로잡고, 교회를 잔멸하러 가는 사울을,

강한 빛 가운데 부르시고 사도 바울이 되게 하셨듯이

특별한 방법으로 불러 주신 우리교회 1부 찬양대로 봉사하시는, 임동호 집사님의 간증을 들어 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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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걸음을 인도하시는 하나님, 귀를 열어주시고 눈을 열어 주신 하나님 >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인슈타인같은 과학자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요즘 아이돌이 되려고 매일 춤만 추는 아이들처럼,

저는 과학에 대한 책이나 TV 프로만 시청하며 과학자의 꿈을 키웠고, 대학 물리학과에 입학하였습니다. 4년간을 학교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며 공부를 하였습니다.

과학을 공부하며,

모든 생물은, 단순한 생물에서 발전되었다는 진화론을 철저히 믿었습니다.

어떤 신이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주장하는 종교를 아주 싫어했습니다.

저에게 전도하는 사람들에게는 - 비과학적인 종교를 믿지 말라며, 과학적 증거를 대며 허탄한 것을 믿는 종교에 빠진 사람들을, 이성적인 정상인(?)으로 구원하여야겠다는 사명을 가지고 논쟁했습니다.

같은 과의 기독교인 동창들과는 많은 말다툼을 하였습니다.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그들은 “크리스천을 박해하다 크리스천이 된 바울처럼 변하게 하여 주십시오.” 기도를 했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을 몇 달 앞두고,

제가 하루 만에 크리스천이 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대학 4학년 11월.

저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집에서 나와 학교 도서관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런 저런 고민을 하며 걷던 저는, 도서관이 아니라, 도서관을 지나 공대건물의 강의실까지 왔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놀라, 다시 돌아 도서관으로 가려 했는데

강의실에서 찬양소리가 들려오는데,

교회 찬양을 싫어했고,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던 저에게 - 천사의 합창으로, 너무도 아름다운 노래로 들렸습니다.

찬양소리에 빨려 들어가듯, 강의실 문을 열고 들어가, 눈에 띄지 않게 맨 뒷 줄에 앉았습니다.

마음에 큰 감동이 일어났습니다.

기독 대학생 모임의 예배가 마쳐졌습니다.

예배실이며 계단 강의실의 제일 앞자리에

저에게 4년간 전도했던, 동기들이 앉아 있었습니다.

4년 동안 그들에게 심하게 대한 것이 미안했습니다.

사과를 하려고, 계단 강의실의 앞자리, 친구들에게 내려갔습니다.

저를 본 친구들은 깜짝 놀라며

“4년간의 기도가 응답 되었다.”고 크게 기뻐하였습니다.

저는 “믿으러 온 것이 아니고, 그동안 심하게 했던 일들을 사과하고 싶어 왔다.”고 하였지만, 강권적으로 저를, 강단의 많은 학생들 앞에 세웠습니다.

강단에 섰을 때에

제가 지금까지 철처하게 믿었던 과학적인 신념이, 단번에 무너짐을 경험했습니다.

제 앞에 모인 수십 명 학생들의 모든 얼굴에서, 눈부시게 밝은 광채가 뻗어 나오는 것입니다.

빛이 발생하는 원리를 물리적으로 화학적으로 설명할 수 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의 얼굴에서 밝은 빛이 나온다는 것은, 결코 과학으로 설명할 수가 없습니다.

과학도인 저에게는 너무나도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 후, 과학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신령한 세계가 있다는 것을 믿고 알게 되었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을 존재케 하신 하나님을 찾게 되었습니다.

< 하나님의 음성, 단 한마디 >

다음날 캠퍼스에 등교하는데 온 세상이 달라 보였습니다.

대학 졸업을 앞두고, 뜻대로 되지 않던 대학원 진로와 가난한 집안 형편, 자살충동을 일으킬 정도로 심한 비염과 디스크 통증 등... 저의 삶을 짓누르던 모든 고통과 문제들은 여전하였지만,

하나님이 계시는 새로운 세계를 발견했다는 기쁨 때문에

제 육체나 보이는 세상의 문제들은 별의미가 없게 느껴졌고,

세상의 부러운 것이나, 비관되는 것이 없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놀라운 체험과 기쁨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점점 여리어 가고,

또 다시 제 머리는, 이성적인 판단들로 의심하며 믿음이 흔들리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시 한 번 저의 믿음을 붙들어 주셨습니다.

대학을 마치고 원하던 대학원으로 진학을 못한 저는,

본교 대학원 진학을 위해 재수를 하며 시험을 준비하던 어느 여름날!

너무나도 어려운 물리학 문제를 풀기위해, 도서관 칸막이를 부여잡고 씨름하고 있는데, 갑자기 제 몸 안에서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7장7절” 단 한마디!

난생처음 몸에서 나는 소리를 들은 저는 너무 놀랐고, 책가방에 가지고 다니던 성경을 얼른 꺼내어 마태복음 7장7절을 찾아 보았습니다.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이 말씀으로 제가 처음으로 하나님 음성을 들었고,

처음으로 성경 말씀 중에 외우게 된 말씀이 되었고,

지친 저에게 큰 힘이 되는 말씀이었고,

제가 가정을 이룬 후에, 자녀들에게 가훈으로 주는 말씀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 말씀에 힘을 얻어,

다음해에 본교 대학원에 2등으로 합격하여, 학비는 물론 약간의 생활비까지 월급으로 받는 조교로 선발되어 대학원을 다녔고

IBM, Microsoft 사에서 일했습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교만하였던 저에게 찾아오신 주님!

저를 만나 주신 주님!

지금도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고 있고

앞으로도 주님 안에 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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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시 여러분 가운데

“나에겐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습니다.

사도 바울이 다메섹으로 교회를 잔멸하러 가다가 강한 빛 가운데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과 같은 경험이 없었고

주님의 음성도 듣지 못했고

주님의 손길을 느낀 적도 없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어려서부터 그냥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친구 친적의 권유로 교회에 나왔습니다.

갑자기 인생이 슬퍼져서, 신앙을 가져야 하겠다고 생각하여, 스스로 교회에 나와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말할지 몰라도

아닙니다.

(고전 12:3)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느니라.”

(엡 2: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이 없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대속의 죽음을 죽으셨지만,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신 부활의 주님, 생명의 주님이심을 믿을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고백할 수 없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접하여,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시고 부르셨습니다.

(사 43:1)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롬 1:6) 너희는 예수 그리스도의 것으로 부르심을 입은 자니라.

(롬 1:7) 하나님의 사랑하심을 입고 성도로 부르심을 입은 모든 자에게

(히 3:1) 하늘의 부르심을 입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의 믿는 도리의 사도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찬양)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

나를 부르신 이가 하나님

나를 보내신 이도 하나님

나의 나 된 것을 다 하나님 은혜라



오늘 본문은

하나님의 택하심과 부르심을 입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생활을 하라.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자녀답게 살아라.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 되었으니, 하나님 나라 백성답게 살아라.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로 살아라.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값 주고 사신 몸 된 교회의 일꾼으로 부르심을 받았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충성된 일꾼으로 살아라.” 말씀하십니다.



“나이가 들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선하게 살았으면 선한 얼굴이 되고, 악하게 살았으면 악한 얼굴이 된다는 말입니다.

제가 자전거 길을 산책하는데, 근래 들어 “잘 생겼다.” 하는 말을 간간히 듣습니다.

제가 “지금까지 잘 살아 왔더니, 곱게 늙어가는 구나!” 생각하였습니다.

여러분도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어느 날, 산책길에 처음 보는 아주머니신데 “잘 생겼다.” 말씀하십니다.

자주 듣던 말이지만, 확인 들어갔습니다. “저요?”

아주머니 말에 “아니, 개요!”

“잘 생겼다”는 말은, 저와 함께 산책 다니는 리트리버, 맥스에게 한 말이었습니다.


예전의 기르던 맥스가 장염으로 갑자기 죽었습니다.

마음이 얼마나 아픈지!

다시는 개를 안기르겠다고 굳게 마음을 먹었습니다.

류제성 집사가,

“목사님, 얼마나 외로우세요. 레브라도 리트리버입니다.”

강아지 한 마리를 가지고 왔습니다.

개를 안 기르려 하였는데

다시 맥스를 기르기 시작하였고, 지금 1년 9개월이 되었습니다.


제가 자전거로, 맥스를 데리고 산책을 할 때에

맥스에 대하여 말을 거는 사람에게

벤치에 앉아 쉬는 사람에게

아침 인사를 할 때, 받아 주는 사람에게

“저는 월산교회 목사입니다.

맥스는 교회 개입니다.

아이들이 맥스를 좋아해서, 교회지만 개를 기르고 있습니다.

개 보러 교회에 오세요!”

전도가 될까 하여, 말을 겁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나, 신앙에 관심 있는 사람은

“목사님이세요!” 말하고

교회를 싫어하는 사람, 신앙 없이 사는 사람은

무덤덤합니다.


오래 동안 “저는 월산교회 목사입니다. 개는 월산교회 개입니다.” 말하고 다니던 어느 날

맥스를 데리고 산책하는데, 처음 보는 분이 “목사님이시죠? 안녕하세요!” 인사를 합니다.

“자전거로 개 데리고 다니는 이가 월산교회 목사다.” 소문이 난 것입니다.


저는 맥스와 함께 산책할 때에, 맥스가 변을 보면, 자전거에 달고 다니는 모종삽으로 변을 묻습니다.

자전거 길에 개를 데리고 산책하는 분들이 많은데

개가 변을 보면, 치워야 하는데, 그냥 두고 가는 분들이 있습니다.

생각해 보았습니다.

어느 분이 “자전거 길에 개똥이 있어!” 말하고

다른 분이 “월산교회 목사는 개를 데리고 다녀!” 말하면

아무런 관계가 없는 두 이야기이지만,

두 이야기에 관계를 맺게 하여 “월산교회 목사는 개를 데리고 다니는데, 개똥도 안 치우고 다녀!” 말할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혹시라도, 사람들이 이렇게 오해하면 안 되겠기에

맥스 것은 물론이지만, 맥스 것이 아닌, 굵기가 다른 것까지, 제가 다 치웁니다.

새터까지 다녀오면, 보통은 2덩어리를 치우고, 3덩어리를 치울 때도 있습니다.

자전거 길, 교회에서 새터의 중간 쯤, 쉼터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쉬면서, 먹고 마시고 피우는데, 쓰레기들을 그냥 버리고 갑니다.

늘 지저분한데, 치우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교회에서 사용하는 푸른 큰 봉투를 가지고 가, 쓰레기들을 담고

자전거길 관리하는 아저씨에게 말했더니, “감사합니다. 저희들이 치우겠습니다.” 말은 했는데,

아직 치우지 않아, 지금 쓰레기가 담겨 있는 큰 봉지 5개가 쌓여 있습니다.


제가 “월산교회 목사입니다.” 말 안 했다면

개똥을 보고도 그냥 지나가면 되고

쓰레기를 보고도 그냥 못 본척하면 되었을 것입니다.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라고 권면하는 사도 바울은!

“당신은 사도가 아닙니다.

사도란,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을 직접 듣고, 행하신 이적을 보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목격한 증인이고

예수 그리스도에게 보냄을 받은 자를 말하는데

그 때에 당신은 거기에 있지 않았습니다.” 하는 비난을 많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나는 다메섹으로 가다,

강한 빛 가운데 나타나신 부활의 주님을 뵈었습니다.

주님께서 ‘너는 이방인에게 복음을 증거할 나의 택한 그릇이다.’ 말씀하셨고,

주님의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나는 사도입니다.” 말할 뿐 아니라

바울 서신의 첫 머리는 항상

“(롬 1: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고전 1:1)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 바울은

(갈 1: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항상 자신을 사도라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전11장

“나는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습니다.”

바울이 사도가 아니라는 비난을 들었지만

바울은 사도가 맞습니다.

왜냐하면 사도로 살았기 때문입니다. 사도의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거지 왕자란 동화가 있습니다.

거지가 왕자가 되고, 왕자가 거지가 되었습니다.

거지가 된 왕자는 거지처럼 살면 됩니다. 그러나 왕자가 된 거지는 왕자처럼 살아야 합니다.


미운 오리 새끼란 동화가 있습니다.

오리일 때는 오리처럼 살면 됩니다.

그러나 자신이 백조인줄 알았다면 백조처럼 우아한 생활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기 전에는,

하나님의 자녀이기 전에는

세상에 속한 사람들처럼 살면 됩니다.

그러나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야 합니다.

천국 백성이 되었으니, 천국 백성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으니,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었으니,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주님 몸 된 교회의 일꾼이 되었으니, 충성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써 합당하지 않게 사는 이들을 바라보는 어느 분의 글입니다.


“인생의 무대 위에서 연기하지 말라.

너희는 배우가 되어서는 안 된다.

사람을 감동시키는 배우가 되지 말고, 하나님을 감동시키는 신실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사람 앞에서 연기를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서 은밀하게 행해야 한다.

사람에게 영광을 얻으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연기자가 되지 말라.

종교인이 되지 말라.

진실 된 신앙인이 되어라.

손들고 찬송하면 뭐하나? 혈기를 부리지 말아야지.

아-멘을 크게 하면 뭐하나? 말씀대로 살아야지.

은혜를 잘 받으면 뭐하나? 자아가 부셔져야지.

주의 일을 잘하면 뭐하나? 순종을 안 하는 걸.

신령하면 뭐하나? 신실하지 못한걸.


찬송을 잘하면 뭐하나? 하나님께 시간과 재능과 재물을 드리지 않는 걸

믿음이란, 느끼고 체험하고 충성하고 선하게 사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믿음이란, 주님과 함께 동행하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위기는 믿는 사람이 모자라고, 비전이 없어서가 아니다.

제대로 믿는 사람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령한 예배는 있는데, 생활예배는 없다.

기도실에서는 신령한데, 생활 속에서는, 불평과 염려가 충만하다.

가슴은 뜨거운데, 마음은 냉냉하다.

예배는 좋아하면서도, 순종에는 인색하다.

받기는 좋아하는데, 섬김에는 게으르다.”



찬양)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