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17-24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관리자
2018-1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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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사람을 벗고, 새 사람을 입으라 / 엡 4:17-24


역사의 시간을 B.C. Before Christ 주전과 A.D. Anno Domini 주후로 나눕니다.

예수님의 탄생을 역사의 기준점으로 삼았는데, 4년을 빠뜨렸습니다.

동방박사는, 별을 보고 위대한 왕의 탄생을 알았습니다.

동방박사는,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간 유대인의 후손으로, 페르시아에 살게 된 디아스포라 유대인 천문학자입니다.

동박박사는, 주전 7년 5월에서 12월 사이에, 물고기 자리에서, 왕의 별인 목성과 악한 별인 토성과 전쟁의 별인 화성이 합쳐지는 삼중합 현상을 목격하였습니다.

왕 중 왕의 오심을 기다리던 유대인 천문학자는!

물고기자리인 유대 땅에, 악의 세력을 싸워 이기는 왕이 탄생하신다고 해석하였습니다.

헤롯왕은 동방박사에게 속은 것을 알고 2살 이하의 아이는 모두 죽이는데,

헤롯왕은 주전 4년에 죽었습니다.

예수님의 탄생은, 주전 6년-4년 사이입니다.

(눅 2:1-2) 로마 황제 아우구스토가 온 천하에 호구 조사령을 내리는데,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입니다.

로마의 초대 황제 카이사르 아우구스투스는, 세금을 거두기 위한 국세조사를 3번 하였습니다. 주전28년, 8년, 주후14년입니다.

시오노 나나미가 쓴 “로마인 이야기”에서,

“예수가 탄생한 것으로 되어 있는 주전 1년을 전후해서, 국세조사는 실시되지 않았다.

멀리 떨어진 속국이니까 시간차를 감안한다고 해도 8년의 차이는 너무도 크다.

나의 이 소박한 질문에 납득할 만한 해답을 준 연구자는 지금까지 한 명도 없다.”

구레뇨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는 주전 6년입니다.

로마에서 시리아의 안디옥까지 황제의 명령이 전달되는데, 육로는 4달, 바닷길로 순풍을 만나면 2달이지만, 순풍을 만나지 못하면 더 걸릴 수 있습니다.

시리아의 총독 구레뇨가 황제의 령을 받아,

시리아의 모든 지역으로 황제의 령을 내려 보내고,

헤롯왕이 령을 받고, 유대와 갈릴리에 호적하라는 방을 붙이고,

이를 보고 호적 하러 갑니다.

황제가 영을 내리고, 시행되기 까지는 1-2년 걸리지 않았을까?

창조과학회, 예수님의 탄생 강의에서, 여러 가지 증거를 대며 설명하는데

창조과학회가 내린 예수님의 탄생일은! 주전 6년 5월 14일이랍니다.

성탄절을 앞에 두고,

역사의 분기점은!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땅에 인간의 몸을 입고 탄생하신, 성육신, 도성인신, Incarnation 하신 때라는 것을 말씀드렸습니다.



우리 인생의 분기점은!

예수님을 믿기 전과 예수님을 믿은 후입니다.

예수님께서 니고데모에게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말씀하시자

니고데모가 “엄마 뱃속에 들어갔다 다시 태어납니까?” 묻습니다.

몇 살이십니까?

30세면 30년 전, 60세면 60년 전, 80세면 80년 전

나는, 엄마의 뱃속에서, 이 땅에 태어났습니다.

처음 사람 아담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왔고

아담의 후손 된 온 인류는! 나는!

죄 가운데 잉태되어, 죄의 종으로 태어났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까지 죄가 이끄는 대로 살았습니다.

죄로 말미암아 죄의 종, 저주 받은 족속, 멸망의 백성, 사망의 자녀였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말씀하신 대로

(요 1:12)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롬 8:15) “너희는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예수님을 믿고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부활의 자녀, 천국 백성, 하나님 나라의 시민으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지난 주일에 나눈 말씀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가 씻음을 받고,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다.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로 갓 태어난 간난동이다. 어린아이다.

늘 간난동이,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된다.

믿음이 자라야 한다.

신앙이 성장하여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이르러야 한다.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여야 한다.”



오늘의 말씀은!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으니

부활의 자녀, 천국 백성,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으니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어야 한다!

죄의 옷을 벗어 버리고,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새 옷을 입어야 한다!”

:17) “이제부터 너희는 이방인이 그 마음의 허망한 것으로 행함 같이 행하지 말라.”

옛 사람의 더러운 옷은! 이방인처럼 사는 것입니다.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는 죄의 누더기 옷은! 이방인처럼 사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이스라엘이 아닌 모든 백성은 이방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지 못한 모든 백성은 이방인입니다.

할례 받지 못한 모든 백성은 부정한 이방인입니다.

율법과 선지자인 구약성경에서

자주 반복하여 하시는 말씀은!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마음을 다하고, 성품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너희 하나님을 여호와를 사랑해라!

여호와 하나님을 버리고,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을 섬겨서는 안 된다.

이방인들처럼, 사람의 손으로 만든 우상을 만들지도 말고 섬기지도 말아라.

이방인의 풍속을 따라 살아서는 안 된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과 규례와 법도를 듣고 지켜 행하여야 한다.”

신약성경에서는!

예수님을 믿지 않은 사람이 이방인입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아, 죄 씻음의 세례를 받지 못했고, 의롭게 되지 못했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지 못한, 모든 사람이 이방인입니다.

“이방인이었지만, 죄의 종이었지만

물과 성령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성도들이여!

하나님을 모르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처럼 살아서는 안 된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고 걱정하는 것은!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하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너희에게 이 모든 것이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

너희는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하나님의 의를 구하여라!”



본문의 말씀에서 이방인의 삶은!

첫째, 허망(虛妄)한 마음으로 삽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실 때에,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셨습니다.

우리 인생만이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이 부어 주시는 사랑과 은혜를 누렸습니다.

그러나

처음 사람 아담이

하나님처럼 되어, 하나님의 자리에 앉아서, 경배와 찬양과 영광을 받으려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파괴 되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모든 인생의 총명이 어두워졌습니다.

영의 눈이 닫혀 캄캄해졌습니다.

무지함으로 마음이 딱딱하게 굳어졌습니다.

영원한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영생 주시는 하나님을 볼 수도 없고,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만날 수도 없고,

영복 주시는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인생들은

눈에 보이는 썩어질 세상의 것만을 바라보고

세상의 썩어질 것들을 위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위하여 살고 있습니다.

이 땅의 것만을 소망하는 “허망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허망은 “빈 소망, 헛된 소망, 거짓된 소망”이라는 뜻입니다.


탈무드에 있는 이야기입니다.

배고픈 여우가 잘 익은 포도가 주렁주렁 달려 있는 포도밭을 발견하였습니다.

포도밭에 들어가려고 하지만 울타리로 막혀 있습니다.

울타리를 둘러보다, 몸 하나가 간신히 빠져 들어갈 수 있는 자그마한 구멍을 발견하였습니다.

여우는 작은 구멍으로 몸을 디밀고, 힘들게 포도밭에 들어가, 배가 터지도록 주린 배를 채웠습니다.

포도밭을 나오려는데, 작은 구멍에 부른 배가 걸려, 몸이 빠져 나오질 않습니다.

주인에게 들켰다가는 몽둥이로 맞아 죽을 것이니,

주인이 오기 전에 “어떻게 저 작은 구멍으로 빠져나갈까?”를 생각하는데

지혜로운 여우는 잘 익은 포도를 바라보면서, 포도가 먹고 싶지만 꾹 참고 굶기를 시작하였습니다.

배를 홀쭉하게 한 뒤에야, 포도원에서 간신히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우리 인생입니다.

세상의 것을, 움켜쥐려고 열심히 달려가서,

움켜쥐었다고 좋아하고 즐거워하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에, 모든 것을 남겨 두고 빈손으로 떠나야 합니다.

모든 인생이! 허망, 빈 소망, 거짓된 소망을 붙잡고 살고 있습니다.



둘째, 이방인의 삶은, 감각 없는 방탕한 삶입니다.

녹촌리에 성생공단, 성생가구단지가 있습니다.

오래 전에는 성생농장이었고, 음성 나환자들의 거주지였습니다.

음성 나환자는 나병, 한센시병을 앓았지만 지금은 병균을 가지고 있지 않아, 나병 한센시병을 전염시키지 않아, 격리 수용할 필요가 없는 이들입니다.

성생공단에 정착한 이들은 양계와 양돈, 구걸로 생활하였습니다.

지금은 방주교회로 이름이 바뀐 성생교회가 있었는데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였습니다.

찬송을 부를 때에, 나병으로 손이 없어졌지만, 없는 손으로 박수를 치며 찬송을 불렀습니다.

이 분들이 기도원엘 갔습니다.

요즘은 숙소가 기름보일러이지만, 예전에는 나무를 때서 방을 데웠습니다.

추운 겨울 밤, 나무를 많이 때서 방을 뜨끈하게 데웠습니다.

새벽 기도회에 가려고 일어났는데,

교우들의 살이 벌겋게 익었고, 물집이 생겼습니다.

방이 너무 뜨거워 화상을 입은 것입니다.

보통 사람들은, 화상을 입을 정도로 뜨거우면, 자다가 일어났을 것입니다.

그러나 나병을 앓아, 신경이 죽어 있어서, 뜨거움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이방인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감각이 없습니다.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무엇이 죄인지? 무엇이 부끄러운 일인지? 모릅니다.

죄를 짓고, 부끄러운 일을 하여도, 화인 맞은 양심이라, 죄를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않고, 방탕한 삶을 삽니다.

자기 뜻대로 삽니다.

자기 기쁨과 만족과 영광을 위하여 삽니다.

죠지 워싱턴이, 영국과 독립전쟁에서 승리하고, 나라를 세웠는데

“나라 이름을 무엇으로 할까?” 생각하는데

동방에 조선이라는 나라가 있는데, 세종이란 지혜로운 임금이 백성을 위하여 조선의 글을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워싱턴은 조선으로 사신을 보내

세종 임금께, 정중하게 나라 이름을 지어 주기를 부탁하였습니다.

세종 임금은 한참을 생각하다가 “아무렇게나” 지으시오 하며,

붓에 먹을 묻혀 한글로 “아무렇게나” 써 주었고,

사신은 붓을 받아 영어로 “아무렇게나” 발음을 적었습니다.

사신이 워싱턴에게 보고하려는데, 긴 항해 중 비를 맞아

받아 적은 먹 글씨가 번져서 알아 볼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사신은 들은 것을 더듬어, “조선의 왕 세종이 아메리카로 짓도록 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무렇게나”로 지어준 이름이 “아메리카”가 되었다는

믿어서는 안 되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교우 여러분!

하나님의 자녀가, 아무렇게나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감각 없이 방탕하게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 욕심대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녀가, 자기 기쁨 자기 영광만을 위하여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비오는 날 깨끗한 옷을 입고 외출을 하였을 때에, 흙탕물이 튀지 않도록 조심하며 걸음을 옮깁니다.

그러나 흙탕물이 - 한 방울, 두 방울, 여러 방울, 많이 튀게 되면, 조심스럽게 걸어가는 것을 포기합니다.

아무렇게나 걷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방탕함에 자신을 던져 버리던 감각 없는 옷을 벗어버리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의 새 옷을 입고

아무렇게나 살아서는 안 되고

조심스럽게 살아야 합니다.



셋째, 이방인의 삶은, 생명 없는 삶입니다.

처음 사람 아담은 에덴동산에서

하나님을 경외하고, 경배와 찬양을 드리고, 감사와 영광을 드렸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거역하였습니다. 하나님께 죄를 지었습니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생명을 잃어버렸습니다.

사망이 왕노릇 하고 있습니다.

(히 9:27)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하나님을 떠나, 생명 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시 90)

“주께서 인생을 티끌로 돌아가라 하셨습니다.

우리 인생은, 밤의 한 순간 같습니다.

우리 인생은, 잠깐 자는 것 같으며, 아침에 돋았다 저녁에 시드는 풀과 같습니다.

우리 인생의 모든 날이, 순식간에 다하였습니다.

우리 인생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화살처럼 신속히 날아가나이다.”

(약 4:14) “너희 생명이 무엇이뇨? 너희는 잠간 보이다가 없어지는 안개니라.”

하나님을 떠나, 생명 없이 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요 15:5-6)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지 아니하면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마르나니, 사람들이 그것을 모아다가 불에 던져 사르느니라.“

하나님을 떠나, 생명 없이 살았는데

(롬 11:23) “예수님을 믿으면 하나님께서 접붙여 주실 것이니, 접붙이실 능력이 하나님께 있음이라.”

예수님을 믿으면,

(요 15:5-7)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거하면 열매를 많이 맺는다.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본문의 말씀!

“이제부터, 이방인처럼 살지 말라!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는데

천국 백성이 되었는데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 되었는데

어찌, 이방인처럼 사느냐?

어찌, 죄와 짝하여 옛 사람으로 사느냐?

죄의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는 옷을 입고 사느냐?

하나님의 자녀답게, 의와 진리와 거룩함의 새 옷을 입고 살아라!”



예수님께서, 탕자의 비유를 말씀하셨습니다.

둘째 아들이 아버지께 “나에게 돌아올 유산을 미리 주십시오.” 말하는데, 나쁜 아들입니다.

“유산을 미리 주세요!” 말하는 것은, “아버지, 왜 아직도 살아 계십니까? 아버지 빨리 안 돌아가십니까!” 말하는 것과 같습니다.

아버지는 “이 나쁜 자식, 나보고 죽으란 말이냐?” 말씀하실 수 있을 텐데 ...

둘째 아들 몫을, 미리 나누어 주십니다.

“철없는 자식이 철들었으면 좋겠다. 못된 자식이 좋은 자식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는 마음에서입니다.

유산을 받은 아들은 며칠이 못 되어, 먼 곳으로 떠났습니다.

아버지가 간섭 할 수 없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아주 먼 곳으로 갔습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자기 욕심대로, 자신의 즐거움을 위하여 방탕하게 살았습니다.

얼마 못되어, 그 많은 돈을 다 허비하였습니다. 젊음을 허비하였습니다. 인생을 허비하였습니다.

돈이 많을 때에, 곁에는 늘 친구들로 북적였는데

돈과 함께, 그 많던 친구들이 다 떠났습니다.

그 때에, 흉년까지 들었습니다.

먹을 것이 없습니다.

배가 너무도 고팠습니다.

이 아들은, 주린 배를 채우기 위하여, 돼지 농장에 들어가, 돼지가 먹는 “주염 열매”로 배를 채웠습니다.

돼지는 이스라엘에게 부정한 짐승입니다.

이스라엘은 돼지를 키우지도 않고, 먹지도 않습니다.

돼지농장에 들어간 것은?

갈 곳이 아무데도 없습니다.

어찌 할 수 없습니다.

우리 식으로 말한다면, 막장 인생이 된 것입니다.


비로서, 아버지를 생각합니다. 아버지의 집을 생각합니다.

“아버지께 큰 죄를 지었지만, 아버지께 돌아가자!

아버지께 ‘저는 아들이 아닙니다. 저를 품꾼의 하나로 써 주십시오!’ 말하리라.”

아버지께 돌아갑니다.

아버지를 떠나 멀리 왔기 때문에,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는데도 먼 길을 한참 가야합니다.

집에 거의 다 이르렀습니다.

고개만 넘으면, 아버지의 집입니다.

“무슨 낯으로 아버지를 뵐까?

아버지에게 뭐라 말할까?

품꾼의 하나로 써 달라고 해야 하겠다.

나를 품꾼으로라도 맞아 주실까?”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고갯마루에 올랐습니다.

그런데, 거기에 아버지가 계셨습니다.

아버지는, 아들이 떠난 때부터 지금까지,

아들이 떠난 곳을 바라보시며 “우리 아들이 언제 돌아오려나?”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항상 기다리고 계셨습니다.

거지꼴을 하고 있지만, 한 눈에 아들임을 알아 본 아버지는!

아들에게 달려가,

아들을 가슴에 안고,

아들의 볼에 입을 맞추며,

“아들아! 네가 돌아왔구나.

아들아! 사랑한다.

아들아! 네가 이렇게 살아 돌아왔구나.”

뜨겁게 맞아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왜 떠났냐? 그 많던 돈을 다 어디다 썼냐? 참으로 꼴이 좋구나. 이 꼴로 돌아오다니, 차라리 죽어 버리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들을 집으로 이끈 아버지는, 종들에게 “살진 소를 잡아 큰 잔치를 열자. 죽은 아들이 살아 돌아 왔다!” 말씀하시고

헤지고 더럽고 냄새나는 누더기 옷을 벗기셨습니다.

목욕을 시키셨습니다.

새 옷을 입혀 주셨습니다.

새 신을 신겨 주셨습니다.

손에 가락지도 끼워 주셨습니다.

교우 여러분!

우리가 전에는 탕자처럼 살았습니다.

하나님 없이 살았습니다.

생명 없이 살았습니다.

내 기쁨과 내 영광을 위하여 살았습니다.

내 기쁨을 위한 방탕한 삶을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값없이 베풀어 주시는 은혜로

부르심을 받고, 예수님을 믿고, 죄 씻음을 받고,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났습니다.


거지 왕자란 동화를 보면

왕자가 거지 옷을 입고 거지가 되었습니다.

거지가 왕자의 옷을 입고 왕자가 되었습니다.

거지가 왕자 옷을 입으면 안 되고, 왕자가 거지의 옷을 입으면 안 됩니다.

아직도!

죄 가운데 살 때에 입고 있던, 옛 사람의 옷을 계속 입고 있지 않습니까?

더럽고 추하고 냄새나는 죄의 누더기를 계속 걸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하나님의 자녀 된 우리들은!

정결한 옷을 입고, 정결하게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백성인 우리들은!

의의 옷을 입고, 의롭게 살아야 합니다.

천국의 시민인 우리들은!

거룩한 옷을 입고, 거룩한 구별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찬송/항상 진실케 ..하나님 닮게 하여 주소서)